숙소창 하나 가득 햇살이 쏟아진다. 아침부터 못다한 마을 구경을 더 하기로 하고 옛 장족 마을로 나선다. 산 굽이를 돌고 돌아 가는 길에 몇 마리의 소들이 지나가고 대나무 장대 광주리를 어깨에 메고 일 나가는 장족 마을 사람들 발걸음이 분주하다. 마을쪽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광주리에 새끼 오리들이 가득한데 어디에 쓰이는 오리인가가 궁금하다. 답은? 본인들의 논에 새끼 오리들을 풀어 놓자 오리들이 알아서 헤엄을 치며 논 바닥을 헤집으며 벌레를 잡아 먹는다. 아하, 오리 농법! ^^; 다 자란 오리들은 이리저리 날아다니기 때문에 아마도 새끼 오리를 쓰는 게 아닐까… 우리끼리 결론을 내렸다.

 

용배제전에서 내려 오는 길은 올라오는 길보다 훨씬 빠르다. 용승을 거쳐 삼강으로 가는 길, 삼강까지 내내 멋진 강을 끼고 달렸다. 종종 물소들이 길을 막고 서 있는데 오히려 버스가 돌아간다. 삼강 역에 도착해서 장가계로 가는 기차표를 알아보려는데 도무지 표가 있다는 소리인지, 없다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역무원이 내 준 표 2장을 들고 나서야 드디어 기차를 타게 되나 보다 생각이 든다. 삼강 기차역은 아주 작은 역이다. 기차를 타러 나온 사람들은 제각기 본인만한 짐을 꾸려 들고 기차가 오기만을 앉아서, 졸면서, 누워서, 먹으면서, 그리고 또 뭔가를 뱉어내면서 기다린다. 나는 중국에서의 첫 기차 체험이라 기대가 된다. 기차가 들어오기 몇 분 전, 사람들은 일찌감치 아예 기찻길에 내려서서 기차를 맞는데 그 얼굴 표정에 잔뜩 긴장들이 서려 있어 슬슬 불안해 진다.
“오빠, 나, 가슴이 뛴다”
“나두”
오빠 역시 한 번도 경좌(중국 기차 좌석에는 모두 다섯 등급이 있는데 푹신푹신한 침대 연와, 딱딱한 침대 경와, 말랑한 의자 연좌, 딱딱한 의자 경좌, 그리고 입석 무좌가 있단다. 우리는 경와를 사고 싶었는데 역무원이 매몰차게 ‘메이요우(없어요)’하더군)를 타 본 적이 없어서 은근히 걱정이 된단다. 말이 딱딱한 의자지, 폭이 매우 좁고 각도가 등받이가 직각이라 우리같이 밤에 장거리를 뛰기에는 다분히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요란한 경적 소리와 함께 기차가 서자 듬성 듬성 기차를 탈 수 있도록 문이 열리고 열린 문 쪽으로 사람들이 정신 없이 뛰기 시작한다. 오빠와 나도 배낭을 맨 채로 손을 잡고 허겁지겁 그들 뒤를 쫓는다. 우와, 계단이 겁나게 높은 데 있다. 다리를 찢어 타기가 부담스럽지만 어쩌랴, 곧 떠나버릴텐데… 누군가 손을 잡아주어 “씨에씨에(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재빨리 뒤로 돌아 올라 오는 오빠에게 손을 내민다. 오빠가 올라타고 기차는 떠난다. 칙칙폭폭칙칙폭폭. 자, 이제 엉덩이를 붙일 좌석을 찾아야할텐데 객실을 쭈욱 돌아다녀봐도 도무지 자리가 없다. 서 있는 사람들 사이 사이로 앉아있는 사람들이 모습이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온갖 군것질 부스러기, 담배 꽁초, 침 등으로 객실이 지저분한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앉아있는 사람들 조차 뭐랄까, 심히 부담스럽다. 그 사이에 혹 자리가 있다 해도 선뜻 앉기가 힘들 것만 같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인가 보다. 자욱한 담배 연기로 숨조차 쉬기가 힘든 데도 카드 놀이며, 마작이며 여유를 부리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는 일단 배운 대로(?) 좁은 복도를 헤쳐 나가며 식당칸을 비틀비틀 찾아 간다. 그 곳에서 우리 표를 경와로, 침대 칸으로 바꾸어 볼 요량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9시간을 서서 가야 한다. 근 10년 전, 선배 언니와 청량리 밤 기차를 입석으로 타고 신문지 깔고 앉아 강릉까지 갔던 생각이 난다. 그나마 그 때는 신문지를 깔 만한 공간이라도 있었지, 지금 그런 공간에는 사람들이 들어차 있거나 침 투성이다.

 

식당칸 앞에 있는 차장에게 우리 기차표를 보여 주면서 차액을 지불할 테니 경와로 바꾸어 달라고 해 보지만 역시나 없다고 한다. 일단 승무원들 이외에는 아무도 손님이 없는 식당칸에 앉아서 버텨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알아볼 수 없는 간체로 쓰여진 메뉴가 나오는데 온갖 바디랭귀지로 그 중 하나, 달걀 요리를 시킨다. 기차 안이라 그런지 가격은 15원. 최대한 천천히 요리를 집어 먹으며 틈나는 대로 혹 경와 자리가 나는지를 물어 보지만 그들 모두의 태도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장가계까지 내내 경와 자리가 안 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경좌 자리로 돌아가기에는 까마득하다. 이 냉혹하기 만한 현실. 삼강에서 자고 왔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후회해 봐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오빠와 나는 얼굴에 최대한 철판을 까는 수 밖에 없다는 데 동의한다. 그리고는 쓰윽 노트북을 꺼내 든다. 승무원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기 시작하더니 이것 저것 물어보는데 이 노트북이 한국제이냐고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대답해 주고, 한국 노래도 틀어 주고 오빠가 병원에서 근무할 때 찍어 둔 사진을 비롯(오호, 승무원들이 오빠가 이 사람이냐며 엄지 손가락을 세워 든다. 하긴 지금 오빠 몰골이라면 match가 잘 안 될 듯 싶다 ^^;), 그 동안 중국에 와 찍어 둔 사진들도 보여 준다. 노트북의 충전해 둔 밧데리 용량이 거의 떨어질 무렵, 우리는 더 이상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 그 후에도 몇 번씩 다른 사람들이 자리가 비어있는 식당칸으로 들어오려 했으나 제지 당하는 데 반해 우리에게는 틈틈이 따뜻한 물까지 따라준다.

 

춥고 피곤한 길이다. 이렇게 오전 6시까지 가야 한다. 번갈아 눈을 붙이기로 하고 오빠가 먼저 식탁에 엎드려 잠을 청한다. 나는 책 한 권 꺼내 정말 오래간만에 밤을 새워가며 책을 읽으려 한다. 여전히 기차 속이다.

 

* 그 이후 덧붙임 : 우리가 구입한 표가 경좌가 아니라 사실 무좌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장가계역에 내리고서도 만 하루가 지나서야 알았다. 다시 말해 우리는 가장 저렴한 입석을 사 놓고도 뻔뻔스레 식당칸에 앉아 밤새 온 것이다. 푸하하… 어쩐지 지정 좌석 번호가 없더라니… 어리버리 부부가 간체로 쓰여진 무(無)자를 못 읽었던 탓에(그 글자가 하늘 ‘천’자 비스끄리무리하게 생겼다) 철떡 같이 경좌로 믿고 온 것이다. 장가계행 1474차 중국 철로여유부 관계자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 드린다.^^

 

Tip

교통 : 용배제전 - 용승 / 마을 입구 매표소 앞 / 1인당 6.5원 / 50분 / 용승에는 유명한 온천 지구가 있다
용승 - 삼강 / 내려준 버스 터미널 / 1인당 8.5원 / 2시간
삼강 버스 터미널 - 삼강 역 / 터미널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 사거리에 도달하면 화차점(기차역)을 표기한 개조된 용달차를 만난다 / 1인당 2원 / 20분 / 짐칸에 실려 이게 진짜 역으로 가는 걸까 의아해질 때쯤 역에 닿는다.
삼강 역 - 장가계 역 / 보쾌 무좌(입석) 1인당 32원 / 오후 8시 56분 출발 익일 오전 6시 도착, 약 9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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