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택시 아저씨 Shahram (휴대폰 0911 933 6255)로는 바닥인 라쉬트에 비해 마술레가 지대가 높아(해발 천미터쯤 되나 그렇다) 추울거라고 했는데 그다지 추운줄 모르고 잤다. 고개만 들면 손에 잡힐 듯 눈 앞을 가로막는 높은 산 정상부에는 여전히 하얀 눈이 그 자리를 감싸고 있지만 말이다. 일어나보니 오늘은 내가 흡혈충에게 당했다. 배둘레햄으로 집중 공격이다.

 

아침 식사로는 어제 사온, 즉석에서 뜨끈하게 구워내던 빵과 틈날 때마다 사두었던 각종 과일들이 당첨이다. 오렌지도 맛있지만 석류의 맛은 단연 뛰어나다. 한국에도 이란산 석류가 수입되어 들어오지 않던가? 마치 붉고 투명한 옥수수알같은 석류알들을 한 웅큼 떼어 입안에 부어넣으면 그 맛이 끝내준다. 이란에 있는 동안 많이 사랑해줘야지.

 

나의 피를 빨아대는 뭔가가 있으니 방을 한 번 바꿔볼까, 아침 산책겸 어제 노렸던 호텔로 나서본다. 그러나 노루즈 기간이 다가와서일까? 호텔은 영업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쩔 수 없이 마리암네 하루 더 묵기로 한다(사실 주인 아줌마를 비롯 1 2녀의 딸딸아들까지 이 집 가족들 이름을 쭈욱 들었는데 기억에 남는 이름은 둘째딸 마리암 뿐이다. 우리 입에서 발음이 잘 되는 이름이 잘 외워지기도 하는 것 같다). 벌레에 더 물린다고 죽냐. 어쩜 카페트 위에서 하루 종일 굴러다니면서도 비염 증상이 없는게 다행이다. 공기가 습하기라도 했으면 완전 대박이었을텐데 말이지.

 

 

마주치는 마술레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게 중 가끔 영어가 되는(?) 분들이 있어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내용은 거의 같다. 어디에서 왔냐, 남한이냐 북한이냐, 이름이 뭐냐... 내 이름은 뭐다.

간혹 웃기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네 이름을 my name이라고 한다거나 김원장을 가리키며 your wife?라고 묻는다거나 하는. 작년까지만 해도 엄청난 대장금 열풍으로 이란에서는 양곰(?)이라 불리우는 이영애의 인기덕에 한국인 여행자들도 환대를 받았다던데, 우리에게는 아직 양곰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없다. 요즘 이란 TV에서는 최수종과 송일국이 나오는 사극을 하는 것 같던데 이영애는 이제 이란에서 한 물 갔나?

 

<자카트함이라고 부르면 될라나? 우체통처럼 생겼지만 실제로 이란인들은 여기에 돈을 넣는다. 이웃을 돕기위한 자선함이라고나 할까>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또 출출하다. 이상하게 여행을 나오면 별반 하는 일도 없는데 무지 먹는다(김원장 말로는 별반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더 먹는데 집착하는 것이라던데 -_-). 김원장이 밥을 앉히고 태국 숙소 공용 부엌에서 굴러다니던 너구리도 하나 끓인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라면 중 대부분은 외국에서 먹는 라면이다.

 

컴을 뒤져보니 이란 관련 다큐멘터리가 4개 정도 있다. 현지에 와서 보는 다큐라 그런지 동물들 이야기라서 그런지 쏙쏙 잘도 들어온다. 그리고는 다시 바닥에 대자로 누워 오수를 청한다. 벌러덩 누운 채 창밖을 바라보니 구름들이 흘러간다. 오늘이 며칠이지? 무슨 요일이지? 둘이 서로 헛갈려하며 헤아려보니 화요일이다. 김원장은 불과 열흘 전까지 병원일에 매여 그것이 진실한 삶인양 살아왔다는게 믿기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 그게 진정 의미있는 고민이었다면 지금 이순간에도 그 고민을 하고있어야 맞지않겠냐. 그러게, 김원장의 말이 맞다. 말 그대로 열흘 전 김원장이 했던 고민은, 이젠 완전 딴......가 되어 버렸다.

지구상에는 50억 인구가 살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 대부분이 우리와 비슷한 모양으로 살고 있으리라 막연히 여기는 경향이 있는 듯 싶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런 의심을 품지않은채 믿고 따르는 머릿속 가치관이라는 것은 알고보면 참으로 가변적이다. 따지고보면 우리의 가치관은 결국 코딱지만한 한반도 내에서만, 그것도 비슷한 세대내에서만 먹히고 있지 않은가.

 

어제의 택시아저씨 샤흐람이 테헤란으로 돌아갈 때 또 이용해 달라며 본인의 핸드폰 번호를 남겨주고 갔지만 아직 그에 대한 감정이 완전히 개운치 않은 관계로 다른 차편을 수배해 보기로 한다. 우리 숙소에서 제일 가까운 축에 속하는 작은 수퍼 점방 아저씨가 그나마 이 동네서 영어가 되는 관계로 그에게 마술레-테헤란 직통 대절택시를 물어보지만 그렇게는 너무 비쌀거라며 마술레-푸만-라쉬트-테헤란의 단계적 접근 방법을 권한다. 하지만 내일 카샨까지 가고 싶은데 그렇게 되면 비용이야 적게 들겠지만 언제 카샨에 도착할지 모르는 일이다(참고로 나는 이 점방 아저씨가 마음에 든다. 우리 숙소인 마리암네 집에서 왼편으로 돌아 나오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다시 왼편으로 있는데, 다시 말하자면 윗 바자르에서 사람들이 때가 되면 몰려나와 빵을 사가는 집을 마주 바라보았을 때 바로 빵집 왼편에 있는 곳이다. 이렇게 밖에 설명을 못하는 동네가 바로 이 곳 마술레다 ^^;)

 

일단 마을 아래로 내려가 푸만까지의 합승 택시 아저씨들 중 하나와 테헤란까지 네고를 해본다. 7만원을 부르던 택시 아저씨에게 뭔 소리냐, 어제 4 5천원에 왔다고 가격을 깎는다. 어제에 비하면 쉽사리 원하는 액수에 협상이 되자 김원장은 더 깎을 것을, 하며 후회한다. ㅋ 그런데 내일 아침, 과연 그가 약속시간을 제대로 지킬수 있을까?

 

저녁거리를 사러 바자르에 갔다가 자칭 마술레 가이드라는 모하메드씨를 만난다. 가이드라고 하기엔 영어가 많이 딸리시지만 본인 집구경을 시켜준다고 해서 쫄랑쫄랑 따라 나선다. 모하메드씨네 집은 마술레에서도 꼭대기쪽에 가깝다. 아버지, 어머니와 여동생, 이렇게 함께 살고 있다(왜 모하메드씨에게 아내가 없는지, 여동생에게 남편이 없는지는 묻지 않았다). 외국인인 우리가 집에 들어오자 할머니는 얼른 평소 본인이 팔던 손뜨개 기념품들을 가져와 내게 팔려 애쓴다. 모하메드씨네 집은 지금 우리가 묵고 있는 마리암네보다 누추해 보인다. 하지만 겉보기보다 실제 공간이 훨씬 넓게 느껴지는 것은 공통적인 특징이다(입구가 워낙 작은데다가 변변한 가구들이 없어서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대장금을 아는 사람을 발견했다. 모하메드씨의 여동생 ^^ 재미있는건 대장금이 한국 드라마인줄 모르고 있었다는 것. 뭐 어떠냐? 분위기는 이미 훈훈해졌는데. 영어가 안 되는 관계로 제대로 이어지지 않던 대화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이야기는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넘어가더니 반미로 흐르고 있다. 그래, 미국이 웬수다.

 

바람부는 마술레에 봄이 오고 있다 

 

 

 

# 오늘의 영화 

@ EBS 자연 다큐멘터리 페르시아가 남긴 자연유산-이란 1, 2 : BBC가 제작한 것을 EBS가 사왔나보다. 이 다큐를 보니 이란에 엄청난 종류의 동물들이 살고 있다. 곰이나 표범은 이란에 살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동물들이다. 그러나저러나 이슬람국 이란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단어는 오히려 페르시아가 아닐까? 페르시안 카페트, 페르시안 고양이, 그리고 페르시아 왕자! ^^ 분명 영광스러운 과거이기는 하지만 여기 자연유산에까지 페르시아라는 이름을 붙이다니 ㅎㅎ(그저 이란판 <동물의 왕국>이라 이름 붙이기엔 너무 밍숭맹숭하다고 생각했나보다)

 

@ 히트맨 : 뭔 컴퓨터 오락을 영화화한 모양이다(여행을 떠나오기 직전에 김원장이레지던트 이블인가 하는 영화에 꽂혀서 시리즈를 다 본 적이 있는데, 그 영화도 컴퓨터 오락을 영화화한 것이라고 했었다). 보고나니 히트맨은 다소 <본 아이덴티티>를 닮았다(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배우 맷 데이먼과는 다른 분위기의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내가 석호필 다음으로 좋아했던 배우가 나와 즐거웠다(지금 극중 호칭이 기억이 안 난다 -_-). 이란에 이런 폭력적인 영화를 들여온게 들키면 안 되지 않나?

 

<사과와 바나나를 섞은 음료. 맛은 놀랍게도 사과와 바나나를 섞은 맛이 난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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