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서 들려오는 엄청난 아잔 소리에 깼다. 더듬더듬 시계를 찾아보니 새벽 4시 30분. 새벽도 보통 새벽이 아닌데 이 시간부터 기도하러 오라니.
쿠웨이트에서 맞는 첫 아침이다. 인터넷에서 예약이 가능한 호텔 중 가장 저렴한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호텔은 호텔인지라 로비에서는 무선인터넷이 가능하고(프런트에서 패스워드를 받아야한다. 무료 ^^). 아침으로 간단한 부페식을 제공한다. 흠, 이 나라 사람들은 아침부터 이렇게 달달하기 그지없는 케이크및 과자류를 즐기는구나.
시내로 나가는 버스 정거장의 위치를 물어 확인한 후 쿠웨이트 시내 구경에 나선다. 숙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24번 버스를 타면 시내의 버스터미널이 종점이다. 혹시나해서 김원장과 속성으로 아랍어 숫자를 외운다. 워낙 벼락치기에 익숙한 인생이라서인지, 비록 그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않을테지만 다행히 곧 숫자가 외어진다. 그러자마자 주변의 저 개미 기어가는 글자들 중 상당부분이 전화번호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역시 알면 보이고 그 때 보이는 것은 예전과 같지 않구나! 그런데 왜 ‘아랍’에서 ‘아라비아’ 숫자를 쓰지 않을까?
하지만 24번 버스는 머리에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24라고 쓰여져 들어온다. ㅎㅎ 버스비는 150 fils(1000fils=1디나르). 운전사가 운전과 동시에 차비를 받고 표를 내어준다.
버스터미널에 도착, 이번엔 버스 루트 맵을 사야하는 미션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사무실인 것처럼 보이는 곳에 찾아가 맵을 찾으니 역시나 사무실 속 사람들이 동양 여인인 나를 보고 시끌벅적하게 반응한다. 결국 판매한다던 맵은 공짜로 얻었다. 귀찮다고 내게 맵을 사오라고 했던 김원장이 그들이 내게 보이는 다소 비정상적인 관심을 제 눈으로 확인하자 생계에 밀려 마누라를 앵벌이시킨 가장 느낌이 든다고 한다. ㅋㅋ 그럼 앞으로는 김원장이 직접 하슈.
이들이 수크라고 부르는 재래시장을 두 발로 거치는 동안 다시 눈이 최고의 호강을 누린다. 이 현란하다못해 정신없는 시각적 자극. 쿠웨이트에서 나름 유명하다는 대추야자도 종류별로 공짜로 몇 개 얻어 먹는다. 지도를 들고 서있으면 누군가 다가와 묻지도 않았는데 설명해 준다.
그랜드 모스크를 거쳐 생선 시장으로, 그리고 샤크 수크(Sharq souq)로, 이어 쿠웨이트 만으로 나가본다(샤크 수크의 ‘술탄 센터’ 수퍼마켓에서 우리나라 쌀과 비슷한 쌀을 구할 수 있으며 이외 일본산 식품이 단무지까지 구비되어 있다). 쿠웨이트 사람들이 장미향을 좋아한다고 했던가? 바닷가 바로 코 앞에 앉아있어도 바닷내음보다는 은은한 장미향이 살랑살랑 코 끝에 감돈다. 눈은 눈대로 호강하고 코는 코대로 호강하고 있는데 귀로는 또 다시 아잔이 울려퍼진다. 이론적으로는 하루 5번 이런 소리를 듣고 그 때마다 충실히 기도한다면 도무지 세속적으로 살래야 살기 어려울 것 같다. 절로 성스럽게 세팅(세뇌?)되어 자라지 않을까?
다음 방문지는 쿠웨이트의 랜드마크라는 쿠웨이트 타워. 입장료(1디나르/인)를 내고 들어가니 우리의 남산타워처럼 엘레베이터를 타고 지상 120m의 전망대에 씽~하니 올려다 준다. 전망대는 복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층 역시 360도 천천히 돌아가고 있다. 발 아래 펼쳐지는 쿠웨이트의 전경이 가이드북의 설명처럼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도시쪽도, 그리고 넓고 푸르른 걸프만쪽도 멋지다. 그간 이라크와의 전쟁의 흔적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는데 전쟁 당시의 쿠웨이트 타워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둔지라 새삼 삐까뻔쩍한 현재의 모습과 비교된다. 돈이 많긴 많은 나라구나. 어느새 이렇게 복원을 했담.
박물관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라 이번에는 아쿠아리움에 가보기로 한다. 쿠웨이트의 것이 중동 최대의 아쿠아리움이라나. 버스 노선도를 보고 정거장에서 해당 버스를 기다리는데 온갖 고급차들만 씽씽 거리를 달려댈 뿐(그야말로 고급차들의 전시장이다. 벤츠, BMW, 아우디, 렉서스... 그 중 그랜저가 ‘아제라’라는 이름으로 살짝 섞여있다) 우리가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는다. 결국 길거리에서 2디나르에 흥정해 이 곳에서 10Km 가량 떨어져 있다는 아쿠아리움까지 가기로 한다(역시나 아저씨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로 Scientific center를 가자는 우리를 city center앞에 세워주었다. 지나던 영어를 하는 현지인의 도움으로 원하던 사이언티픽 센터에 도착은 했으나 아저씨가 돈을 더 달라 우기는지라 결국 2.5디나르를 주고 내렸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도우미를 많이 쓴다더니 쿠웨이트 현지인 가족들이 하나 혹은 둘 이상의 도우미들까지 데리고 놀러나왔다. 버거킹에서 와퍼세트(1.4디나르/5,000원)를 먹고 있을 때 우리 앞을 지나던 어떤 가정은 아이가 셋이었는데 잠이 든 두 아이를 인도네시아인이나 필리핀인으로 보이는 두 도우미들이 각각 품에 꼬옥 안고 주인 부부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저 두 도우미의 아이들은 정작 누구의 손 아래서 자라고 있을까. 그들의 모습을 보며 쿠웨이트로 한참 돈을 벌러 나왔을, 우리의 윗세대를 떠올려본다.
아쿠아리움은 충실했다. 처음 코스엔 아쿠아리움답지 않게 이런저런 박물관스러운 전시와 사막에서 사는 동물들을 보여주었던지라 마치 동물원인 것도 같았지만, 뒤로 갈수록 점점 물에서 사는 동물들이 나타나더니(이 중 수달은 정말 압권이었다. 우리나라도 쿠웨이트식으로 수조를 제작하여 수달을 보여준다면 인기 짱일 것 같다) 결국 아쿠아리움다운 아쿠아리움이 등장했다. 사실 김원장은 외국의 이름난 아쿠아리움을 안 가본 것도 아니고(63빌딩이나 코엑스의 아쿠아리움은 안 가봤으면서), 열사의 나라 쿠웨이트에서 웬 아쿠아리움이냐며(게다가 1인당 3디나르에 달하는 요금마저 -_-) 투덜거렸지만 이내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보여주는 신비에 마치 애들마냥 즐거워했다(이 곳 아이들도 크라운 피쉬를 보면 이렇게 외친다. 니모!). 간만에 봐서 그런지 이렇게 편하게 물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게다가 이렇게 다양한 어종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데 그간 왜 쉽지않은 다이빙을 해왔던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_-
돈이 안 아까웠다는 김원장과 함께 다시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맥도날드와 버거킹,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이며 심지어 하드락 카페와 하디스까지. 마치 미국의 어디래도 믿을만한 체인점들을 본다(동시에 아랍어로 쓰여져 있기도 하지만). 같은 산유국인데 내일 방문할 이란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 곳에는 이런 체인점들이 단 하나도 없겠지? 비록 종파가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큰 카테고리 안에서 쿠웨이트와 이란 모두 이슬람 산유국가라면, 그들이 어떤 노선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보여질 모습의 차이가 무척 흥미로울 것 같다.
그러나저러나 쿠웨이트 박 최주봉 아저씨는 쿠웨이트 명예 시민일까?
만수는 어떻게 자랐을까?
막판에 완전 flight of idea군. -_-
# 오늘도 흥미로운 조성환님의 쿠웨이트 관련글 몇 개를 덧붙인다. 돈이 많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
쿠웨이트 항공
아마도 GCC국가들 중 가장 불친절하기로 악명 높은 항공사를 뽑는다면 그것은 쿠웨이트 항공이다.
쿠웨이트 항공의 이코노미 클래스는 가장 낮은 항공요금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가장 낮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 쿠웨이트 항공을 탔다면 그것은 대단한 실수다. 특히 장거리 여행에서는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다시는 경험하기 싫은 스트레스를 선물받는다.
미국 시카고에 사는 인도인이 고향으로 가기 위하여 가장 저렴한 (정확히 200불이 싼) 쿠웨이트 항공권을 구입하면서 고생은 시작된다. 쿠웨이트 항공을 타기 위해 시카고 공항에 도착한 인도인은 300명의 이코노미 승객을 처리하기 위한 카운터가 2개 밖에 없음에 놀랜다. 아수라장 같은 긴 줄에서 1시간 30분을 기다린 후에야 드디어 탑승권을 받는다. 이 항공기는 항상 그렇듯 2시간 늦게 출발하였다. 하늘에 오른 비행기 안에서는 가장 불친절하며 무례한 승무원들을 만난다. 스트레스로 받은 두통 때문에 물과 아스피린을 요구하였으나 무려 1시간이 지나서야 받았다. 비행기는 A340 최신기종이지만, 좌석은 특별히 편안하지 않으며, 다른 유럽 항공사 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기내식을 맥주나 와인없이 제공한다.
이 비행기는 암스테르담을 경유하여 쿠웨이트 공항에 1시간 늦게 도착하였다. 필사적으로 달려 겨우 올라 탄 뉴델리 행 쿠웨이트 항공기는 시카고에서 탄 비행기와는 비교가 안되게 매우 오래되었으며 내부는 닳고 많은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화장실은 더럽고 냄새가 나고, 식사는 더 형편없으며, 승무원들의 서비스는 더 나빴다. 더 황당한 것은 사람은 무사히 도착하였으나 3개의 짐은 도착되지 않았다. 결국 그 짐은 3일 후에야 도착한다. 참변은 종료되었으나 다시는 쿠웨이트 항공은 타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방콕과 쿠웨이트 구간의 쿠웨이트 항공이다. 2004년 4월 어느 날 중국인이 방콕에서 쿠웨이트를 경유 런던으로 가기 위하여 쿠웨이트 항공표를 구입하였다. 황당함은 비행기를 타기도 전인 쿠웨이트 항공 카운터에서부터 시작한다. 공항에 도착한 승객들은 아무런 사전 통보없이 쿠웨이트행 비행기가 하루 연기된다는 통보를 받는다. 쿠웨이트 항공은 하루 연기된 승객들이 무슨 곤경에 처할 지, 어떻게 지낼 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으며 아무런 보상도 언급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인 양 다음날 오라는 것이 그들의 줄기찬 대답이며, 승객들이 이들과 싸워봐야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다. 결국 다음 날에 공항에 온 승객들이 겨우 쿠웨이트 비행기에 올라탔으나, 기름기가 많은 1970년대식 기내음식과 오래되고 낡은 좌석, 그리고 작동이 안 되는 기내 오락시설, 무례한 승무원들로 인하여 여행은 스트레스로 바뀐다. 겨우 런던에 도착하였으나 영국 내 다른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와 연결이 안되어 그날 밤을 공항에서 잔다. 이 승객은 방콕에서부터 영국 지방의 목적지로 가기 위하여 3일을 낭비하였으며, 제발 쿠웨이트 항공만은 타지말기를 신신당부한다.
런던에서 쿠웨이트로 오는 쿠웨이트 항공의 경우, 승객들의 불편함에 대한 호소는 극에 달한다. 아무런 설명, 혹은 이유 없이 5시간이나 출발이 지연되었으며, 터미널에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가능한 한 스낵제공을 꺼리며, 마치 공짜로 비행기를 태워주는 식의 자세로 승객을 대한다. 기내음식 또한 형편없으며 기내 오락시설은 대부분 작동되지 않는다.
쿠웨이트와 봄베인 구간의 쿠웨이트 항공 역시 황당함의 극치다. 승무원들 대부분이 무례하며 기내 화장실은 문이 닫혀 있거나, 더러운 물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승객들은 기름기 많은 기내식과 재미없는 영화로 불편하다. 그나마 좌석에 부착된 대부분의 비디오 시스템은 잘 작동되지 않는다. 특히 잘 훈련되지 못한 승무원들의 인도인에 대한 불친절은 극에 달한다.
카이로와 쿠웨이트 구간 역시 황당하다. 어느 한국인이 카이로를 여행하고 쿠웨이트로 올 예정이었으나, 3일전에 재확인을 하지 않아 예약이 취소되었다. 다음 날 비행기는 1등석만 남아 있다고 하여 기장 비싼 값을 치르고 탔으나 실제로 이코노미 좌석은 많이 비어 있었다. 최신 기종인 A340의 쿠웨이트 항공은 겉모양과는 달리 내부는 매우 오래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그만큼 정비와 청결관리가 전혀 안되어 있다. 비행기는 다행스럽게 1시간 늦게 출발하였다.
쿠웨이트 항공을 경험한 수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호소하며, 다시는 이용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한다. 쿠웨이트 항공의 출발시간이 지연되는 것은 거의 일반화되어 있으며, 보안을 핑계로 몇 번씩 승객들의 몸과 짐을 수색한다. 형편없는 기내식, 훈련되지 않으며 피곤한 얼굴 표정을 한 승무원의 미숙한 서비스, 불친절함과 무례함, 지저분한 비행기 내부, 내용이 별로인 기내 오락 프로그램, 그나마 작동이 되지 않는 시설들로 인하여 여행은 스트레스가 된다. 성수기에 쿠웨이트 항공은 항상 만원이라고 하며 예약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비행기를 타면 많은 자리가 비어있다. 도대체 어떻게 관리하는지 알 수 없다.
만약에 운이 나빠 쿠웨이트 항공을 탔다면 유의할 점이 많다. 첫째로 쿠웨이트 항공의 출발지연에 대비하여야 한다. 연결 시간을 가능한 한 많이 잡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비행기를 못 탈 가능성이 높다. 둘째로 비행기를 타면 술은 절대 제공이 안되며 기내식 또한 질이 안 좋다. 가능한 한 타기 전에 미리 식사를 끝내거나, 아니면 별도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셋째로 이코노미 승객의 경우 그들의 무례한 태도를 감수하여야 한다. 기내 오락시설이 망가지거나 볼 것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사전에 인식하여 읽을 책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넷째로 중요한 서류와 생필품은 가능한 한 직접 갖고 다녀야 한다. 화물로 부친 짐은 3-4일씩 늦게 오거나 분실되는 일이 자주 발생된다.
쿠웨이트 항공이 주는 불편함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탑승하기 전, 술을 적당히 먹은 후 기내에서는 잠만 자는 것이다. 다음 비행기편이 또 쿠웨이트 항공이면 미리 3일전에 예약을 반드시 재확인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예약이 취소된다. 쿠웨이트 항공은 쿠웨이트인이 최우선이며, 특히 성수기에는 자국인들에게 좌석표를 주기 위하여 동양인 승객의 자리를 빼앗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비효율적 관리와 불편한 서비스로 국영 쿠웨이트 항공은 2003년에는 2.4억불의 적자를 보았으며, 2004년에는 누적된 손실을 보전하기 위하여 7억불의 긴급수혈자금을 국회에 요청하였다. 누적된 적자로 인하여 6년 전에 계획된 쿠웨이트 항공의 민영화 사업은 계속 늦어지고 있다. 쿠웨이트 정부의 전형적인 관료 스타일이다.
이를 비집고, 쿠웨이트 최초의 민간 항공사인 자지라 항공(Jazeera Airways)이 36,000명의 일반주주들이 투자하여 새롭게 설립되어 10월부터 운항을 시작한다. 지난 1월 A320 비행기를 구매하기 시작하였으며, 조만간 바레인, 두바이, 암만, 다마스카스, 베이루트, 카이로 등의 중동 주변국가에 취항한다. 쿠웨이트 항공이 에미레이트나 카타르 항공과 같이 서비스의 질을 급속히 개선하지 않는 한 승객들은 외면할 것이며, 상대적으로 걸음마 상태인 자지라 항공은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조성환의 쿠웨이트 이야기) (2005.6.15)
쿠웨이트와 술
이 세상에서 술을 합법적으로 마실 수 없는 나라는 5개국뿐이다. 여기에 쿠웨이트가 들어가 있다. 따라서 쿠웨이트에서는 합법적으로 술을 팔거나 살 수 없으며, 마실 수 없다. 당연히 음주운전 단속도 없다.
쿠웨이트는 마치 사우디의 그림자처럼 보수적인 이슬람 색채가 아주 강해 술과 돼지고기를 일체 허용하지 않는다. 인구 2백만 중의 반은 외국인이며, 그것도 남자가 대부분인 이상한 나라다. 술이 가장 많이 팔릴만한 곳이지만, 술을 마시면 그 자체가 범법행위에 속한다. 그래도 술은 불법으로 거래되고 있다. 목요일 저녁 수 많은 비밀파티에서는 술이 공급된다. 수 많은 범법자들이 쿠웨이트에서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애주가들에게 쿠웨이트는 지옥이다. 쿠웨이트의 여름 한낮은 세계에서 가장 더운 귀양지가 된다. 공공장소에서는 아직도 남자와 여자의 자리를 구분한다. 책과 영화는 사전에 검열을 받아 일부 내용이 삭제 당한다. 모든 콘서트도 이슬람 가치에 반하는지 여부를 사전에 조사하기에 적절한 문화 프로그램은 아예 없다.
좋은 음식은 있으나, 어울리는 와인이 없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춤추는 장소나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바도 없다. 모래바람과 양고기 기름냄새가 진동하는 메마른 곳이다. 인간으로서의 자유가 박탈된 것처럼 볼 곳도, 할 것도, 갈 곳도 없는 잔인한 쿠웨이트다. 쿠웨이트 법은 외국인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으며, 마치 한 마리의 양으로 간주하는가 보다.
이러한 쿠웨이트가 관광지를 개발하겠다고 한다. 수 많은 특급호텔, 대형 리조트와 쇼핑몰 등이 들어서고 있으며, 이라크 특수를 염두에 둔 무역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꿈꾸고 있다. 쿠웨이트가 진정으로 관광과 비즈니스의 중심지로 자리잡아 세계인들의 방문을 원한다면, 이제 술 금지는 풀려야 된다. 술은 자유로움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술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이러한 개발이 가능할까?
술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해보자. 2002년 봄 어느 날, 쿠웨이트에서 몰래 보드카를 만들던 공장이 적발되었다. 러시아인들이 먹어본 바에 따르면, 러시아 외의 지역에서 만든 보드카 중 제일 좋은 품질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쿠웨이트에는 술을 빚는 아마추어 기술자들이 많다. 서양인들은 집에서 맥주와 와인을 만들어 마신다. 찢어지게 가난한 아시아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하여 재료가 불분명한 50도짜리의 밀주(일명 싸대기)를 만들어 판다. 한국인이 주요 고객이다.
쿠웨이트에서 제일 유명한 위스키는 죠니워커 레드 라벨이다. 일반적으로 1리터짜리 한 병이 140불이었지만, 최근에는 공급이 부족하여 200불 선에 거래된다. 반입이 금지된 삼겹살을 안주 삼아, 위스키를 마시는 저녁파티는 묘한 맛에다 짜릿한 스릴을 느끼게 한다.
술과의 숨바꼭질은 공항 입국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술병을 찾아내기 위하여 모든 짐은 반드시 엑스레이를 통과하여야 한다. 술병 색출 전문가인 통관원의 눈을 피하기란 매우 어렵다.
술에 목마른 한국인들은 오래 전부터 소주팩을 들고 왔으나, 이제는 대부분이 적발된다. 그리하여, 소주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 쿠웨이트는 잔인한 나라다. 그 동안 수 많은 외국인들이 술을 반입하기 위하여 아이디어를 짜내고 시도하고 있으며, 지금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공항을 통하여 술을 몰래 갖고 들어오는 여러 가지 방법 중, 성공률이 매우 높은 비법 3가지가 있다.
첫째, PET 병으로 만든 포켓용 위스키 (500 밀리 리터)를 양복 양쪽 호주머니에 각각 하나씩 넣고 공항을 빠져 나간다. 모든 짐은 엑스레이를 통과하지만, 사람의 몸은 예외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병처럼 생기지 않은 것은 술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에밀레종 모양이나 대나무 모양의 전통주는 통과 된다.
셋째는, 유럽인들이 많이 쓰는 방법으로, 박스로 포장한 와인, 소위 박스인박스(Box-in-Box) 와인을 과감하게 트렁크에 넣어 갖고 온다. 유럽에서는 쉽게 구입이 가능한 박스인박스 와인은 3 리터, 5 리터, 10 리터짜리의 크기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쿠웨이트 호텔에서는 술 판매가 자유로웠다. 술 없는 관광지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관광지와 술과는 불가분의 관계다. 이제 술 금지는 해제될 때라고 모두가 말한다. 그럼 쿠웨이트에서 언제나 술을 합법적으로 마실 수 있을까?
금년 1월말, 개방적 성격의 국왕이 새로 취임하면서 조만간 술을 허가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정부내각을 유일하게 감시할 수 있는 국회의원 중 보수파 의원들은 이슬람문화와 전통을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술은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아직도 큰 소리로 주장하고 있다.
시간이 가면서 쿠웨이트에서의 술 허용은 위락지로 개발되는 파일라카 섬에 한한다는 소문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술이 허용될 수 있는 시점은 아마도 위락지 개발이 이루어졌을 때이며,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즉 파일라카 섬 개발이 이루어지기까지 최소한 4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술에 취하기 위하여 주말과 휴일에 사우디인들은 바레인으로, 쿠웨이트인들은 두바이로 간다. 쿠웨이트인들은 쿠웨이트에서 맛볼 수 없는 자유를 두바이에서 만끽하고 돌아온다. 술 허용이 늦어질수록 쿠웨이트의 오일머니는 주변국가로 계속 새어나가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꿈 같은 복지국가, 쿠웨이트
쿠웨이트는 석유 덕분에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완벽한 복지를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전세계 석유 매장량의 10%를 보유하고 있는 쿠웨이트는 국가재정 수입의 95%에 달하는 오일머니 중 쓰고 남은 일부를 서방국가에 투자하고 있다. 그 금융자산은 1,660억 불에 이르며, 부가적인 가치를 다시 생산해낸다. 한 마디로 돈은 계속 돈을 불러들이고 있으며, 고유가로 금고의 돈은 흘러 넘치고 있다.
쿠웨이트인으로 태어나는 순간, 그 아이는 쿠웨이트 화폐로 매월 50 디나, 즉 175불을 받는다. 정부는 아이가 성장해서 직장을 잡을 때까지 175불을 매월 지급한다. 22세에 대학을 졸업하여 직장을 잡는다고 가정하면 총 46,200불을 받게 된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정부의 각별한 보살핌 속에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교육에 대한 모든 비용은 철저하게 무료이며, 유치원에서부터 국립대학교까지의 교육비, 책값, 의료비, 교통비, 식비 등도 전부 정부에서 지급하며, 해외 유학이라도 가게 되면, 교육비와 왕복 항공료는 물론, 매월 2,000불의 용돈도 받는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져야 될 의무를 짊어진 정부는 쿠웨이트인에 대한 의료비 또한 전액 무료로 제공한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종합병원에서의 진찰, 검사, 치료, 수술, 입원 및 약 처방에 한 푼도 내지 않으며, 정부 치과병원에서 제공하는 치아교정, 보철, 임플란트, 스케일링 등도 공짜다.
젊은이에게 고질적인 문제였던 결혼지참금 문제도 정부에서 해결한다. 첫 번째 결혼할 때는 결혼수당으로 6,900불이 지급되며, 추가로 6,900불의 무이자 대출이 이루어진다. 두 번째의 부인을 얻으면 정부 자선협회로부터 3,500불이 나온다.
쿠웨이트인이 살 집도 정부에서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는 수 만 채의 주택을 건설하고 있으며, 컴퓨터로 당첨된 순서대로 쿠웨이트인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수요가 공급이 따라가지 못함에 따라 일부에게는 주택수당을 대신 지급하고 있다.
쿠웨이트인의 92%, 즉 대부분은 정부 각 기관과 자회사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다. 정부재정의 40%가 공무원의 월급으로 지출된다. 공무원들은 주 40시간 근무와 매년 2개월간의 휴가가 있으며, 각종 혜택을 정부로부터 받으나, 노동강도는 매우 낮다. 지저분한 일은 인도와 이집트에서 온 3국인들의 몫이다.
공무원들의 정년 퇴직 연령은 남자는 55세, 여자는 50세이며, 마지막 봉급의 95%를 죽을 때까지 받는다. 인사 적체 난으로 조기 명예퇴직이 가끔 실행될 경우, 위로금으로 100만 불을 받기도 한다. 직장 여성은 출산할 경우, 1년간의 유급휴가가 있으며 무급으로는 4년까지도 출산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수도와 전기료는 거의 무료에 가까워 무한정 쓸 수 있으며, 그마저 5년에 한 번씩 밀린 요금을 일괄적으로 탕감해준다. 유선전화의 경우 국내 통화비는 통화시간에 관계 없이 무료다. 휘발유는 정부 보조금으로 충당됨에 따라 리터당 요금이 20센트에 불과하며, 돌아다니는 대부분의 승용차는 3,000 CC 이상이다.
쿠웨이트에는 세금이 전혀 없다. 자기 소득에 대해 어떠한 세금을 내지 않으며, 증여는 물론 상속세도 없다. 주식이나 펀드 등에서 얼마를 벌든지 간에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부가가치세도 없으며 자동차 등록세도 없다. 아니, 세금을 낸다기 보다는 거꾸로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데 익숙해져 있다.
2006년 7월에 쿠웨이트는 왕의 지시로 100만 명에 달하는 국민들에게 690불의 하사금을 주었다. 2005년에는 국민들의 월급이 1인당 170불이나 올랐으며, 가구당 6,800불의 수당도 제공받았다. 특히 2002년 당시의 국왕은 영국 병원에서의 입원치료를 끝내고 귀국하는 날, 이틀간의 공휴일 공표와 함께 전 국민에게 용돈이 지급되었다.
고유가로 인한 횡재로 수 백억 불을 보유하게 된 쿠웨이트는 2006년 11월 1일 93억 불을 투자하여 그 수익금을 전국민에게 골고루 분배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돈을 나누어 주는 대신에 국책사업의 주주로 국민을 끌어들인 것이다.
국왕이 승인한 법령에 의하면, 대형 컨테이너 항구가 들어설 부비얀 섬 개발에 41억 불, 보건산업 프로젝트에 35억 불, 투자 펀드설립에 17억 불 등 총 93억 불을 정부에서 투자하며, 발생되는 이익은 100만 명에 달하는 쿠웨이트인에게 분배한다. 국민 한 사람에게 9만 3천 불의 주식을 나누어 주는 셈이며, 매년 10%의 이익을 올린다고 가정하면, 1인당 매년 9,330불이 자동으로 호주머니에 들어온다.
국회는 한 발 더 나아가 정부에 제안하기를 쿠웨이트 국민이 갖고 있는 은행 부채가 80억 불에 달하며 이를 탕감하여 줄 것을 정부에 제안하였다. 이번 제안은 처음이 아니며 매년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공약이기도 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혜택을 받고 있는 쿠웨이트인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70%는 비만으로 인한 당뇨병과 심장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혼율 또한 매우 높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에서의 불행은 부자나라에서의 불행보다 더 불행하다.(조성환의 쿠웨이트 이야기 - 2006/11/07)
PS 금년 상반기에 쿠웨이트 국왕의 연봉이 인상되었다. 국왕의 연봉은 5천만 쿠웨이트 디나르이며, 달러로 환산하면 1.7억불로, 봉급으로 매월 천 4백만 불 (130억 원)을 받으며, 물론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는다.
와스타(Wasta) 이야기
중동 산유국 중, 와스타 (Wasta)가 가장 파워풀하며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는 곳이 쿠웨이트다.
와스타란, 아랍어로 관계, 즉 콘넥션 (Connection)이란 뜻이며, 우리 나라 말로는 인맥이란 말이 더 어울린다. 더 나아가 영향력이라는 의미도 된다.
쿠웨이트는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된 게 아니라 사막 속의 기름으로 인하여 어느 날 갑자기 부자나라가 되었다. 그리하여 국민들은 경쟁으로 돈을 벌기 보다는 삶의 모든 것을 정부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사람간 그룹간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던 전통적인 와스타가 이제는 뇌물보다 나쁜 의미로 진화되었다.
와스타의 본거지는 정부 관공서이다. 대부분의 관료들은 거의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월급에 만족하지 않는다. 터키쉬 커피를 마시면서 친구와 와스타를 위한 잡담을 나누던가, 아니면 노키아 폰으로 장시간 통화하면서 개인의 이익을 위한 와스타를 계속 생산해낸다.
와스타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무엇을 아는가 보다, 누구를 아는가가 더 중요한 곳이 쿠웨이트다. 쿠웨이트인이라 하더라도 쿠웨이트에서 좋은 직장을 얻기란 힘들다. 물론 많은 직장들이 있지만 좋은 곳에 위치하고 일하기 쉬우며 봉급이 높은 직장을 찾기 위해서는 와스타가 필요하다. 게으르고 능력이 없어도 보스를 알고 있거나, 와스타가 있으면 채용이 된다. 와스타가 이력서보다 더 강하다.
서류를 발급 받거나 결재 스탬프를 받기 위하여 관공서에 갔을 경우 일반적으로 10분 이상을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차례가 와서 서류를 제출하면 공무원들은 다음 주에 와서 찾아가라고 말하는 것이 통례다. 만약에 당신이 와스타가 있다면 메니저에게 가서 서류를 건네줄 수 있다. 그러면 메니저는 즉시 자기의 설합에서 스탬프를 꺼내어 찍어준다. 10분 동안 줄 서 있지 않아도 되며, 더구나 다음 주에 다시 올 필요도 없다.
쿠웨이트인이건 외국인이건 간에 와스타 없이는 살기가 어려운 곳이 쿠웨이트다. 아무리 베테랑 운전수라도 와스타 없이 운전시험을 보면 첫 번째 시험에서는 항상 떨어진다. 와스타가 있으면 시험을 보지도 않고 운전면허증을 획득할 수 있는 천국이 된다.
와스타는 이권이 개입되어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나타난다. 국립대학에 입학허가를 받기 위하여, 직장을 얻기 위하여, 그 직장에서 진급하기 위하여, 은행대출을 받기 위하여, 비밀정보를 입수하기 위하여, 계약을 따내기 위하여 필요하다.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하여 와스타를 최대한 이용한다. 당선이 되면 와스타에 대한 보답으로 전기며 수도료를 면제하거나 개인부채 탕감을 위해 정부에 압력을 넣기도 한다.
일상생활에도 와스타가 있다. 국립병원에서 전문의로부터 빨리 진찰받기 위하여, 교통딱지 벌금을 내지 않기 위하여, 보다 빠른 수속과 허가를 받기 위하여, 비자를 받기 위하여, 여권을 갱신하기 위하여, 수입 금지된 술을 반입하기 위하여,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하여, 시험에 합격하기 위하여, 아이들 학교성적을 높이기 위하여, 아이들 미술대회에 입상하기 위하여, 경품에 당첨되기 위하여, 성수기 만석 때 쿠웨이트 항공 비행기 표를 사기 위하여, 심지어는 교통사고 시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기 위하여 와스타가 필요하며, 그 리스트는 끝이 없다. 감옥에 들어가도 나오게 하는 힘이 와스타다. 숨을 쉬는데도 와스타가 필요할 지경이다.
와스타가 많은 사람은 영향력이 있는 인물로 평가 받으며, 반대로 와스타가 없는 사람은 무능력자를 지칭하기도 한다. 쿠웨이트 사회에서는 가장 강력한 와스타를 가진 자만이 살아남는다.
그러나 기존의 규정이나 법을 교활하게 어기는 와스타는 국가 발전에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부패를 만연시킨다. 와스타를 자꾸 쓰면, 그 사람은 와스타 때문에 계속 와스타에 의존하게 되며, 와스타 없는 정직한 사람들은 손해를 보게 된다.
모든 사람들은 와스타가 국가 발전에 해가 되어 반드시 없어져야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와스타는 항상 실존하며,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들 또한 말하고 있다.
이렇듯 와스타는 필요악이다. 처음 쿠웨이트에 온 외국인이 와스타를 쌓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한국인은 현지인들과의 접촉이 거의 없어 와스타에 아주 약하다. 한국인들은 쿠웨이트 인사들을 자주 만나 우정을 가꾸어 현지문화에 적응함은 물론, 상류사회로 진출하여야 한다. 와스타야말로 쿠웨이트에서 목적을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와스타가 있으면 지루한 이 곳에서 즐겁고 편안하게 살 수 있다.(조성환의 쿠웨이트 이야기 - 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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