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 화폐. 워낙 디나르 단위가 만만치 않다보니 실생활에서 자주 통용되는 1/2 디나르, 1/4 디나르 지폐. 분수 지폐라... 좀 황당하다> 

 

숙소에서 공항으로 가기. 택시를 타고 가느냐, 아니면 버스를 갈아타가며 가느냐로 잠시 고민. 버스로 간다면 비용은 거의 1/10으로 줄어들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짐을 들고 왔다리 갔다리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결국 택시를 타기로 결정. 흥정 가격은 역시 5디나르. 공항과 시내는 대략 20여 Km 떨어져 있지만 시내측 교통 체증이 있는 관계로 약 30분 가량 소요된다.

 

내가 이미 예약을 해온 자지라 항공은 쿠웨이트 기반의 저가 항공사다. 그제 쿠웨이트 입국시에는 몰랐는데 출국을 하려고 보니 체크인 카운터가 3개란다. 나는 다짜고짜 눈에 들어오는 1번 카운터로 들어갔더니 여기가 아니라네. 이 과정에서 새삼 발음할 때마다 우스웠던 자지라 항공을 이 나라 사람들은 재쥐라에 가깝게 발음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 어쨌거나 자지라인지 재쥐라 항공은 좀 더 안쪽의 3번 카운터를 이용한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내게 물어본 것. 이란 비자는 있느냐, 이란에서 머무른 후에는 어디로 가느냐, 오만행 비행기 티켓을 보여다오, 그 티켓은 이후 다시 보여달라 요구받을 수 있으니 들고 다녀라. 흠... 은근 겁주네. 이래서 이란에 제대로 들어갈 수 있을까?

 

남아있는 쿠웨이트 디나르를 재환전하러간다. 공항 비면세구역에 사설 환전소가 몇 있다. 남아있던 24.5디나르를 1:3.6의 환율로 재환전한다. 88.2달러. 처음엔 88달러만 줬는데 내가 영수증을 달라고 하니 그제서야 약 0.2달러에 해당하는 쿼터를 추가로 한 개 더 내놓는다. 어라, 미국 달러화로 동전까지 챙겨주는 나라가 다 있네? 보통 지폐로 계산해주고 나머지 우수리는 자국 화폐로 주던데. 쿠웨이트랑 미국이랑 이렇게 친한가?

 

출국심사. 임신한 여인이 그 자리에 앉아있어 내 눈길을 끈다. 쿠웨이트 여성일까? 처음 입국시 받았던, 스탬프 3개가 붙어있는 A4용지를 수거한다(그러므로 버리면 안 되는 거였군). 용지상의 내 이름이 역시나 문제가 되었을까? 내 심사가 통과되는데 좀 더 시간이 소요된다.

 

입국시 이용했던 라운지 외에 이용할 수 있는 또 다른 라운지(Pearl lounge)에 들어가 본다. 에어 아라비아(www.airarabia.com)에 접속하여 오만->예멘 항공편의 2/4분기 스케줄이 이제 나왔는지를 확인해 본다. 아, 나왔다! 그런데 생각보다 요금이 비싸다. 일인당 160불이 넘는다. 게다가 항공편을 부드럽게 연결하려면 오만에 만 일주일 정도 있어야 한다. 김원장은 딱 5일 정도만 머무르고 싶어하는데. 김원장과 잠시 고민하다 끝내 예약하지 않는다. 일단 이란에서 장거리 버스를 타보고 탈만하면 오만->예멘도 장거리 버스를 이용하고, 많이 힘들면 그 때가서 항공편을 다시 알아보기로 한다. ‘아시아룸스’에도 접속해 봤는데 예약이 가능한 오만의 가장 저렴한 숙소도 70불 가량 한다. 오만도 물가가 만만치 않은 나라구나.

 

펄 라운지에서 파인애플을 두 대접이나 가져다먹고 치즈케�이니 블루베리 파이까지 챙겨 먹는다. 자지라 항공은 저가 항공이라 밥을 안 준다고 했으니 라운지에서의 식사가 기내식 대용으로 좋다. 입국시 이용했던 Dasman 라운지나 여기나 모두 공간이 널찍널찍하다. 이용하는 고객들이 보통 대가족들이라 그런가, 이렇게 넓은 라운지가 다른 나라에 또 있을까?

 

배가 불러와서 라운지를 나와 면세 구역을 이용하여 걷기 운동을 한다. 여전히 동양인은 없다. 이 곳을 거닐다 보니 내가 한국인으로서가 아니라, 동북아인으로 정체성이 재확립된다. 시간이 되었는지 아잔이 공항안에 가득 울려퍼진다.

 

몇 바퀴를 돌다보니 우리의 자지라 항공이 1시간 출발 지연된다고 한다. 어라, 그럼 어쩌지? 이번엔 입국시 방문한 바 있었던 다스만 라운지로 다시 가본다. 처음 이용했을 땐 몰랐는데 처음보다도, 그리고 펄 라운지보다도 음식이 좋다. 비프 스테이크에 쿠웨이트에서 자주 보던 브랜드 커피샵까지 내점해 있다. 무선 인터넷 연결도 펄보다 나은 것 같다. 잠시 전 배불러했던 기억을 잊고 또 먹는다. 김원장이 먹던 아이스크림도 한 입 빼앗아 먹어본다. 심지어 물과 콜라캔 하나를 슬쩍 챙겨두기까지 한다. 김원장은 평소 안 먹던 음식들을 라운지를 이용하면서 먹게 된다며(1년치 아이스크림과 청량음료를 벌써 먹었다!) 오히려 무료 라운지 이용이 독이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그 말에 동의를 하지만 그래도 이처럼 갑작스레 비행기가 지연될 때는 나름 유용한 것 같다. 아, 그리고 인터넷 사용 부분도.

 

 

보딩. 비행기 속의 모든 여인들이 루싸리라고 부르는 스카프로 머리를 가리고 있다. 이란에서는 외국인이라고 예외가 없다. 나도 스카프를 꺼내 머리를 이리저리 가려본다. 스카프 두르기를 익숙치 않아하는 나를 보며 주변 사람들이 웃는다.

 

이란은 쿠웨이트보다 30분이 빠르다. 쿠웨이트에서 테헤란까지 비행시간은 1시간 반 정도 된다. 비행기가 제 궤도를 찾아오르자 승무원이 카트를 밀고 나와 간단한 빵이며 음료를 팔기 -_- 시작한다. 콜라가 0.4 디나르 정도 하니까 1,500원 정도 하는 것 같다. 라운지에서 챙겨온 음료가 있어 든든하다. ㅎㅎ

 

뜰 때도 단체로 기도를 하는가 싶었는데 랜딩시에도 입을 맞춰 뭐라뭐라 기도하는 사람들과 함께 테헤란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창을 통해 내려다 보던 이란 땅을 실제로 밟는다. 입국 심사를 담당하는 아저씨가 나의 어설픈 스카프 두른 모습을 보며 웃는다. 어, 그런데 이란어(파르시)와 아랍어는 숫자도 조금 다른 모양이다. 4, 6이 아랍어와 좀 다른 모양이다. 5가 제일 예쁘다. 하트를 뒤집어 놓은 모양인데 어찌 보면 똥 같기도 하다. ㅋ

 

짐을 찾고 세관 신고가 이루어 지기 전 구역에, 다시 말해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구역에 멜리 은행(Bank Melli Iran) 환전소가 보인다. 이란에서 가장 환율이 좋다던 은행이다. 얼른 환전을 한다. 이 곳이 공항이기도 하거니와 돈 부피가 상당하는 이야기를 들어 일단 300불만 한다. 환율은 1달러에 9,138리알. 총 2,741,400리알에서 11,400리알을 제하고 2,730,000리알을 받는다. 2만 리알짜리 지폐가 대부분인데도 양이 상당하다. 이란 사람들은 10리알을 1토만이라고 부른다(실생활에서도 토만으로 주로 칭한다고 한다). 1토만은 우리나라와 환율이 거의 같은 셈이다. 리알이라고 해도 0을 하나 제외하고 계산하면 편하다. 예를 들어 2만 리알은 2천 토만, 우리 돈 2천원 정도다.

 

Nothing to declare를 지나니(형식적인 검색조차 없다. 이란 맞나?) 한 편에 Airport Taxi라 쓰여진 책상에 앉아 있는 아리따운 여성이 보인다. 택시에 이런저런 말이 많은 이란이다. 특히 공항에선 안전한 택시를 타라는 정보가 있었다. 그 언니에게 가서 우리가 갈 호텔 이름을 댄다. 언니가 그 이름을 종이에 이란어로 옮겨주고 밖으로 나가 노란색 택시를 타라 일러준다. 미터 택시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미터 택시라니까 믿고 탄다. 물론 그 전에 우리를 두고 택시 아저씨들이 모여 우리가 가는 호텔이 어디일까에 대하여 일장 토론을 벌였다. 중동에서 겪게 될거라 익히 생각해 왔던 모습 그대로.

 

공항에서 테헤란까지 40Km 가량 떨어져 있다는데 왜 소요시간은 1시간에서 1시간 반이 걸린다고들 하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테헤란에 가까와질수록 교통 정체가 장난이 아니다. 장난이 아닌 것은 정체 뿐만이 아니다. 엄청난 매연에다가 운전하는 양들까지 아주 가관이다. 차선 자체가 아예 사라지기도 하고, 2차선을 3차선처럼 이용한다. 갑자기 끼어들기, 급정거하기, 과속으로 달리기... 결국 접촉사고가 난 광경을 두 번이나 목격한다. 김원장은 공기 탓인가, 머리가 아프다며 타이레놀을 꺼내 먹는다.

 

우리가 말한 숙소를 못 찾아서 좀 빙글빙글 도는 듯 싶었는데 138000리알 근처에서 결국 멈춘다(미터기에는 요금 외에 주행 거리가 나와있는데 50Km가 넘었다). 다행히 숫자를 읽을 수 있어 14만 리알(14000원)을 주고 내린다. 론리플래닛에 저자의 추천을 받은 곳(Firouzeh Hotel / 1박 22만 리알, 아침 포함)을 찾아가니 친절한 주인 아저씨왈 오늘은 방이 없단다. 대신 한국사람이 한 명 묵고 있다고 하며 인사를 시켜준다. 테헤란에 일주일째 묵고 있고 앞으로 일주일 더 계셔야 한다는 40대 아저씨. 방문 목적도 통성명도 없이 간단한 인사만을 나누고 분당에서 영어를 가르쳤다는, 자신을 최홍만이라 한국어로 소개하는 외국인과도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근처의 두 숙소(Hotel Khayyam & Mehr Hotel)를 둘러본다. 전자와 후자가 방 수준은 거의 비슷한데 피루제 호텔 주인 아저씨의 추천을 받은 메흐르 호텔이 카얌 호텔의 반값이다. 예전엔 메흐르 게스트하우스였을 곳이 이제는 리모델링을 했는지 메흐르 호텔로 불리우고 있다. 방값도 그에 걸맞게 20만 리알이다(2만원).

 

앞선 태국, 쿠웨이트와는 달리 숙소를 예약해 놓지도 않은데다가 마음에 두었던 숙소에 방이 없어 이 곳 저 곳 쑤시고 다니다보니 이제야 터프한 배낭여행이 시작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수건도 마실 물도 휴지도 없는(이 나라에서 화장실에 휴지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 궁금한 것은 우리나라 비데에는 건조 기능이 있는데, 이 나라 사람들은 물로 처리한 후 어떻게 건조를 시키느냐, 이거다. 그냥 축축한 채로? -_-) 어두컴컴한 방에서 빨빨거리는 바퀴벌레 한 마리를 잡고 나니 김원장이 한 마디 한다.

 

어제 쿠웨이트 호텔이 정말 좋은 호텔이었구나!”

 

우리는 항상 뒤늦게 깨닫곤 한다.

 

물과 휴지를 사러 어두워진 거리를, 예전 청계천이나 세운상가 삘이 나는 동네를 돌아다닌다. 왜 이런 곳이 여행자들 숙소촌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여행자들에게 그야말로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동네같은데.

 

결국 가게를 못 찾고 돌아온다. 프런트에서 물은 어디에서 사야 하나를 물으니 바로 근처를 가리킨다. 아저씨 손끝 방향으로 몇 발짝 옮기니 이런, 코딱지만한,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게 다 있는 미니 수퍼가 있다. 진작 물어볼 것을(사온 휴지를 풀어본 김원장 왈, 이런 휴지로 닦다간 똥구멍이 아작나겠다고 한다).

 

이란에 왔다. 이럴 줄 알고 머리를 볶고 왔는데도 스카프가 자꾸 뒤로 흘러내린다. 그게 싫어 꽉 묶어보니 이번엔 구역질이 일어난다. -_- 뿐만 아니라 스카프를 쓰면 측면 시야도 가려지고 귀가 잘 들리지도 않는다. 이렇게 하고 어떻게 그 난장판인 도로를 아무렇지도 않게 건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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