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요란하리라 기대했던 새벽녘 아잔이 들리는 둥 마는 둥이다. 여기가 이란인가? 오히려 새벽의 빈틈으로 고양이들이 울어댄다. 말 그대로 페르시아 고양이들이다.

 

 

밥을 지어 김 싸 먹고 국내선 비행기를 끊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여행사들이 포진해 있다는 골목으로 길을 나선다(이번엔 김원장의 목 부근에서 벼룩이나 빈대스러운 놈의 흔적 3곳을 발견한다. 뭐야, 이 놈들은 베개에 사나?). 원장실에 편하게 앉아 이란 지도를 보며 스무스하게 짜본 원계획과는 달리 내가 받아온 이란 비자는 겨우 8일짜리라 에스파한이나 쉬라즈에서 연장을 해야만 하는데, 비자 만료일이 3일 이상 남아있으면 연장을 잘 해주지 않는단다. 거기에 우리 막판 일정이 이란 최고의 명절이라는노루즈와 겹치기도 한다. 그 바람에 김원장이 열라 스케줄을 이리 저리 조정해 본다. 그리고 결국 옵션 3개를 만들어낸다. 과연 여행사에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30분 정도를 걸어 여행사 골목에 도착한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어제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공기는 여전히 좋지 않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지? 아니, 그간 내가 너무 공기 좋은데 살았던게지. 생각보다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여인들이 너무 많다. 물론 테헤란이 서울에 맞먹는 대도시이긴 하다만 그 비율로 봐서도 쿠웨이트보다도 훨씬 높은 것 같다. 그리고 그 복장 제한의 와중(?)에 정말 멋을 한껏 냈다. 얼굴들은 또 어찌나 예쁜지. 시아파의 이란이 오히려 훨씬 개방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여행사 앞 골목에 도착, 가이드북을 꺼내들어 추천 여행사 위치를 살피다보니 어랍쇼, 숙소 바로 근처에도 추천 여행사가 하나 있었다. 이런, 진작 살펴볼 것을. 주인 잘못만나 몸이 고생하는구나. -_-

 

추천하는 여행사고 뭐고 그냥 아무데나 들어가 본다(www.persepolistour.com). 어지간한 항공사 표는 다 파는 곳이었는데, 데스크의 직원들이 영어를 못한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불러 중간에 세워놓고 통역을 해서 원하는 항공편 스케줄을 불러주는데 1순위 옵션은 좌석이 없어서 실패, 2순위에서 시간대가 마음이 안들긴 하지만 표를 구하는데는 성공한다(쉬라즈-테헤란행 1인 편도 395,000리알/우리돈 4만원이 안 되는 셈). 사람들이 비행기값 계산을 위해 돈을 세는 내 모습을 보고 돈을 빨리 잘도 센다고 감탄한다. 내가 만 5년 이상 매일같이 돈을 세어온 것도 모르고 -_-;). 이로써 우리의 일정은 테헤란-마술레-테헤란-카샨-아비아네-에스파한(여권연장)-야즈드-케르만-쉬라즈-(뱅기타고)-테헤란으로 잠정 결정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사설 환전소에 들러 300불 환전을 더 한다. 1불에 9,150리알이란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겨 근처 Mellat 지하철역으로 간다(www.tehranmetro.com). 우리의 1차 목적지는 2호선 지하철의 종점. 표파는 언니가 Two-Trip Ticket이라 쓰여있는 티켓을 준다. 투 트립 티켓이라... 이게 2구간이라는 소리인가, 아님 왕복표인가? 어쨌거나 우리돈 200원이다. 일단 개찰구에 표를 넣고 통과한다. 통과하고 보니 티켓은 투입구 바로 근처인, 나의 저만치 뒤에 나와있다. 뭐야, 왜 여기로 안 나와? 손이 안 닿아서 낑낑하려던 차에 뒤에서 들어오려던 승객이 사태를 파악하고 표를 꺼내 건네준다. 이거 심히 바보스럽네.

 

버스 뿐만 아니라 지하철에도 여성 전용칸이 따로 있다. 지하철은 우리나라와 흡사하다. 다소 카오스적인 테헤란의 지상 모습에 반해(서울의 테헤란로와 테헤란 어딘가에 있을 서울로를 상상해보자니 그 곳의 차이가 궁금하다) 지하철 속은 매우 익숙하다.

 

테헤란 지하철은 현재 1호선, 2호선, 그리고 5호선이 있다. 3, 4호선은 어디간겨?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 터미널이라고 쓰여있는 곳을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막상 나가보니 내가 원하던 2차 목적지, 서부 터미널이 아니다. 그냥 단순 버스 종점같다. 어리버리 서있으니 역시나 현지인이 다가와 짧은 영어로 어디를 가냐고 묻고 뭘 타고 가고 싶냐고 한다. 그 총각이 우리를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인 합승택시 타는 큰 길까지 직접 안내해 준다. 열라 친절하다.

 

 

서부 터미널에서 최종 목적지인 마술레행 합승택시(싸바리 Savari)를 찾아본다. 조금 헤맸지만 두 세명에 물어 택시를 찾는데는 성공했다. 그런데 어찌 합승택시가 아니라 대절택시다. 말이 잘 안통하지만 현재 라쉬트까지는 합승택시가 있는데 마술레까지는 없다는 것 같다. 라쉬트로 일단 간 뒤 다시 마술레행 합승택시를 찾아볼까 어쩔까 하다 그냥 한 대를 대절해서 편히 가기로 한다. 문제는 가격 결정인데 아저씨는 우리돈 6만원, 우리는 미리 알아온 작년 가격 4만원으로 그 갭이 크다. 어느새 주변의 영어 좀 한다는 사람들은 다 몰려온다. 치열한 접전 끝에 4 5천원으로 쇼부를 본다. 그리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적어도 열 댓명은 몰려와 있더라 -_- 이란인들은 거의 짱가스럽다. 어디서든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디선가 와다다다 나타나 주신다.

 

대절 택시는 쾌적했다. 김원장은 쿠웨이트에 있다 이란에 오니 돈 쓰는 재미가 있다며 제법 흡족해 한다. 신나게 달리던 택시 아저씨는 고속도로 휴게소 역할을 하는 작은 구멍가게 밀집지역에 차를 세우고 우리에게 차이(tea)와 초컬릿을 대접하기도 한다. 역시 이란인들은 친절해. 하지만 아저씨가 한 손엔 찰랑찰랑 뜨거운 차이를 들고, 다른 한 손엔 초컬릿을 든 채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은 어쩐지 심히 불안하다.

 

풍경은 황량하다. 거의 같은 황갈색의 톤이 계속 이어진다. 오히려 우리의 눈을 자극하는 것은 아저씨의 현란한 운전 솜씨다. 내가 이란에서 교통사고가 나면 얼마를 받을 수 있더라? 보상 보험료가 떠오르질 않는다. -__- 가끔 고속도로 톨비를 내기도 한다. 금액은 우리 돈 100. 100원을 받을바엔 받지를 말지, 싶은 건 오직 나같은 외국인뿐이겠지.

 

끼때가 된 것인지 차는 그럴싸한 식당 앞에 차를 세운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식당이다.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우리도 따로 한 테이블로 안내된다. 스무가지도 넘는 메뉴판을 보여주는데 다 이란어로 적혀있다. 마침 옆 자리의 가족이 먹고 있는 케밥이 눈에 들어온다. 관심있는 척을 하니 가족의 가장인 듯한 아저씨가 김원장에게 맛 보라며 접시채 건네준다. 하나를 집어먹어본 김원장, 우리도 닭꼬치 그 놈을 시키기로 한다. 생양파와 오이, 재크가 심었을 만한 커다란 콩, 시큼하게 절인 브로콜리, 요거트 등, 곁반찬이 많이도 나온다. 생각보다 입맛에 그다지 거슬리지 않아 많이 먹는다. 식탁 위 음식들의 색상이 워낙 화려하고 다양한지라 어느 정도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 면도 있는 것같다.

 

 

문제는 계산할 때 발생했다. 우리가 먹은 밥값이 자그마치 우리돈 14,000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미리 묻고 먹지 않은 우리의 잘못인 것을. 김원장은 우리 운전사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하자 해보지만 내보기엔 둘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사실 돈 얼마 더 낸 것이 문제가 아니다. 정작 문제는 바가지를 썼다는 마음의 속상함인 것이다. 일이 이렇게 벌어지고 나니 방금전까지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친절하다 생각했던 우리의 운전사 아저씨가 얄미워진다. 죄만 미워하면 되는데 그게 잘 안 되네.

 

속이 상한 우리는 서로 5분간 말도 없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우리 아저씨가 그야말로 진기명기 혹은 믿거나 말거나에 나가도 될만큼 멋진 곡예 운전을 뽐내자 이번엔 딴 생각이 든다. 이러다 여기서 교통 사고로 죽거나 다치게 되면 그깟 바가지가 뭐 그리 대수랴 하는. 아저씨는 수시로 중앙선을 넘는 것으로 모자라 반대편의 2차선을 달리기까지 한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그러니까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아주 심각한 역주행인 셈인데, -_-; 이란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듯 싶다. 그야말로 운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행위는 한 입 꺼리도 안 되는 셈이다. 결국 김원장이 더이상 못참고 아저씨를 말린다. 그 효력이 얼마 가진 않지만.

 

아저씨는 라쉬트(Rasht)에 이르러 차를 세운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뒷좌석의 내 옆자리로 올라타는 한 여인. 아저씨 집이 라쉬트라더니 와이프라고 한다. 같이 마술레까지 드라이브라도 하려나? 혹 와이프가 아니고 세컨드 아냐? 와이프라고 하기엔 너무나 꽃단장에 콧소리 아양이 끝내주니 말이다. 그런 의심으로 우리끼리 낄낄거리다가 문득 여기가 그런 동네가 아니라는데 생각이 미친다. -_- 분명 와이프일거야. 아암, 그렇고 말고.

 

라쉬트에서 푸만(Fuman), 그리고 다시 마술레에 이르는 동안 아저씨보다 영어 단어를 몇 개 더 아는 그녀 덕분에 아저씨 나이가 35, 아줌마 나이가 34, 큰 딸이 12, 아들이 5살이라는 걸 알게 된다(휴대폰에 저장된 아이들 사진도 보여준다. 그러길래 부부맞다니까) 아저씨 나이가 35?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삭았다. -_- 김원장보다도 훨씬 늙어보이는데. 아저씨 역시 김원장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다. 김원장을 위아래로 다시 훑어본다. 그리고는 아이에 대해 묻는다. 아아.. 무슬림들에게 이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없음을 설명하기란 참 어렵다.

 

드디어 마술레 도착. 소문대로 마을로 들어서자 입구 식당 아주머니가 하우스? ?을 외치며 호객을 한다(마술레는 이란에서 민박이 가능하기로 이름난 곳이기도 하다. 부엌과 화장실이 딸린 현지인 집을 빌려 묵을 수 있다). 화장실이 없는 방은 8천원, 화장실이 있는 방은 만원꼴인데 어둡고 답답하니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좀 더 나은 뷰를 위해 마을 위편에 있다는 호텔쪽으로 몸을 옮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간 마을인 마술레를 걸어 오르는데 이 곳에 놀러온 일단의 날라리 여학생(?)들이 내려오다 우리를 발견하고 사진을 같이 찍자며 수작을 걸어온다.

 

 

안 그래도 이쁘게들 생겼는데 모두들 있는대로 멋을 부렸다. 한바탕 수두룩하게 사진 찍히고 다시 길을 나선다. 한발짝씩 오를 때마다 그녀들의 짙은 향수 냄새도 사라져간다. 호텔 앞에 거의 다 왔을 무렵, 저 멀리서 우리를 부르는 듯한 느낌에 고개를 돌려보니 현지 아주머님 한 분이 정신없이 뛰어오고 있다. , 저 열렬한 호객이라니. 우리는 결국 이 아주머님 댁에서 묵기로 한다. 볕이 잘드는 2층 방은 밝고도 전망이 아주 좋다. 바닥에는 여러 개의 페르시안 카페트가 깔려있다. 1박에 12만 리알이란다. 깎지 않고 오케이한다

 

<방 벽에 걸려있는 이맘 후세인. 혹자는 잘 생긴 그가 예수님과 닮았다고도 하던데>

 

마술레는 아늑한 마을이다. 산간에 위치한 마을이기 때문에 경사를 최대한 이용하여 독특한 구조의 흙집들이 탄생했다. 우리 집 지붕이 남의 집 마당이 되는 식이랄까(우리나라에서도 간혹 이런 비슷한 모양의 타운 하우스를 소개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처음 숙소를 나설 땐 이 꼬불꼬불한 길을 어떻게 되찾아 돌아올까 싶었는데(물론 이때도 우리의 짱가 아주머니가 어디선가 다시 나타나 자신의 이름이나 딸 이름인 마리암 이름을 대면 누구든 이 집을 안내해 줄 것이라 했다-물론 바디랭귀지 의역 ^^;) 막상 돌아다니다 보니 마을 자체가 그다지 크지 않아 걱정 따위는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마술레의 집집마다 이어지는 작은 소로와 계단들을 걷고 있자니 여행 전 챙겨본 이란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였나에 나오는 시골 마을 배경이 그대로 떠오른다. 그리고 이 곳을 오기 전에 이미 이 곳 여행을 다녀온 여행자들의 사진을 통해 가졌던 느낌보다 실제 느낌이 더 좋다. 물론 그 사진 속 마을보다 체감하는 크기는 작지만.

 

 

 

 

 

마을 옆을 흘러가는 커다란 계곡물 소리, 그리고 끊이지 않는 바람 소리, 한 면 가득 차지한 창으로 들어오는 산의 풍경이 참 좋다. 스카프를 벗어제끼고 창밖으로 머리를 몰래 내어보니 어디선가 내게 건네는 인사소리들이 들려온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주인 아주머니가 다른 동네 아주머니들과 어울려 마실나와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다. 그들이 둘러앉아 늦은 밤까지 소소한 일상사를 나누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그 장소는 갑돌이네집 앞 마당이자, 갑순이네집의 너른 지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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