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도 졸리지만… 오빠가 먼저 자고 있다. 출발까지 17시간 21분 남았는데, 아직 짐도 안 꾸렸다. 집은 폭탄을 맞은 것처럼 난리도 아니다. 15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에 어디 한 구석 엉덩이를 붙여 볼 곳이라고는 침대 위, 그나마 오빠가 먼저 널브러져 ^^ 낮잠을 자고 있는 지금, 그 공간마저 사라졌다. 어서 준비물들을 꾸겨 넣고 짐을 꾸려야 할 터인데…

 

혼수로 따라 온 조리용 저울은 내일이면, 결혼 2주년, 지금에서야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조리용 저울의 특성 상 최대 1Kg까지 측정할 수 있는 눈금 많은 그 작은 저울은 지나 온 2년간 집안 먼지만을 내내 재고 있다가 얼마 전부터 50g 가지고도 갈등을 하는 오빠에 의해 부엌에서 방바닥으로 자리를 옮겼다. 짐이 무거우면 그만큼 옮기는 발걸음이 무거워질 것을 알기에 어떻게든 줄여보려 애를 쓰지만, 각자의 배낭과 침낭만 해도 2Kg에 육박하는지라 갈등에 갈등을 거듭하고 있다.

 

당분간은 못 먹을 것 같은 맛난 한식 메뉴 손 꼽아 세어 두었다가 어제 점심 회 (친정에서 얻어)먹고, 어제 저녁 닭 (시댁에서 얻어)먹고, 오늘 점심 생선구이 먹고, 오빠 일어나면 마지막 만찬으로 바싹 잘 구운 삼겹살에 푸욱~ 익은 신 김치 돌돌 싸 먹으러 가자고 다짐을 받아 두었다(사실, 후식으로는 장국수를 먹자고 까지 정해 두었다). 이러는 우리가 80g짜리 고추장을 가져 가야 하는가, 내어 놓아야 하는가 고민하는 심정을 이해해 주시려는지…

 

오빠가 흘리던 침을 들이키는 소리가 난다. 짐도 안 싸두고 저렇게 편하게 자다니… 사실 요 며칠,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오빠 예비군 훈련까지 일시 정지하거나 연기해 두고, 중국과 인도 비자 얻고 필요한 물품 구매를 위해 남대문과 종로 등지를 싸돌아 다니는 둥, 분당에서 강북까지 매일 출퇴근을 해 온지라 오히려 여행 가서 푹 쉬자~ 했었다. 아, 정말이지 내일도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비행기에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늘어지게 한잠 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밀린 설거지도 하고, 냉장고 정리도 하고, 돌리고 있는 빨래도 널고, 오빠 깨워서 삼겹살 거나하게 먹고 배 두들기며 들어와 짐을 꼭 싸야겠다. 이거야, 원… 시험 때도 아닌데 이것마저 벼락치기 신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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