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셉션에서 차를 한 대 대절하여 카샨을 출발, 아비아네(Abyaneh) 마을을 들렀다 에스파한으로 가면 얼마나 드는지 묻자 35000원이라 알려준다. 그러면서 그게 부담스러우면 카샨을 출발, 아비아네를 본 뒤 아비아네 근교의 나탄즈라는 마을까지만 택시를 이용하고, 나탄즈에서 에스파한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라고 덧붙인다. 나탄즈까지만 택시를 이용한다면 26000원이라면서.
김원장은 호텔을 믿고 택시를 불러달라 하자고 하는데 나는 거리를 아무리 계산해봐도 비싼 것 같다. 썩 내켜하지 않는 김원장을 끌고 일단 체크아웃을 하고 에스파한행 버스가 선다는 5분 거리의 로터리로 가 본다. 예상대로 택시들이 보인다. 한 택시 아저씨가 카샨-아비아네-에스파한을 15만원 부른다. 정말이지 이럴땐 이란욕을 알면 한 마디 해주고 싶다. 모여든 사람들에게서 알아들을 수 없는 파르시가 난무하는 가운데 어디선가 영어가 들려온다. 본인이 우리가 묵었던 사이야 호텔과 연계된 택시기사라며 카샨-아비아네-나탄즈를 2만원에 가겠다고 한다. 이 역시 좀 바가지스러웠지만 일단 오케이하고 그 상황에서 탈출한다. 어쨌든 호텔에서 소개한 가격보다 6천원은 내려갔으니까(김원장은 호텔에서 그렇게나 중간 마진을 많이 남길 줄 몰랐단다. 이럴 때보면 좀 순진한 구석이 -_-).
카샨 외곽에 이란-이라크 전쟁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묘가 있는데 그 규모가 상당하다. 아닌게 아니라 차로 이란을 달리다보면 지나는 마을 입구마다 남자들의 얼굴이 사진 혹은 그림으로 입간판화되어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김원장 왈 저 사람들이 바로 이란-이라크 전쟁때 각 마을에서 난 희생자들이라고 알려준다. 어떤 마을은 한 두 명뿐이지만 어떤 마을은 수십 명에 이르기도 한다. 전쟁이 길어지자 정규군이 부족해져 가난한 마을의 소년들에게 사후 천상의 부귀영화를 약속하며 징집했다고 했던가. 길고도 지난했던 이란-이라크 전쟁. 이란 사람들은 이라크를 더 미워할까, 미국을 더 미워할까. 그래도 미국이겠지? ^^;
차는 곧이어 이란의 심장이라는 다쉬트(Dasht) 사막을 지나간다. 말이 사막이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막과는 좀 다른 모습이다. 입자 굵은 사막이랄까. 바람이 불 때마다 뿌리를 잃은 관목들이 성근 실타래처럼 크고 작게 얽혀 데굴데굴 도로를 가로질러간다. 어찌보면 남아공 북서부 어디메같기도 하다. 김원장은 이런 다쉬트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긴다. 이를 보던 택시 아저씨가 한 마디 한다.
“좀 있다가부턴 찍으면 안 돼. 핵 시설이 있거든. 조지 부시에게 알려지면 안 되지”
아무 것도 못살 것 같은 황량한 사막 한복판 지하에 핵시설이라! 아닌게 아니라 철조망도 보이고 눈에 뜨이게 -_-; 위장해 놓은 대공포 수십기를 본다. 김원장에게 물으니 저런 포들로 전투기 격추는 힘들거라고 한다. 어쨌거나 ‘악의 축’이라는 웃긴 수식어가 붙어있는 이란엔 핵이 정말 있다(부시에겐 비밀 ^^;).
아비아네로 오르는 길의 풍경은 아주 좋다. 파키스탄처럼 8000m급 산들이 병풍처럼 도열해있진 않지만(아비아네를 둘러싼 최고봉은 4000m에 채 못 미친다) 절로 훈자 생각이 난다. 도처에 피기 시작한 벚꽃까지. 오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풍경들에 비하면 정작 아비아네 마을은 내게 있어 덜 매력적이었다. 붉은 진흙으로 지어올린 집들과 여성들이(이 마을도 젊은이들은 대부분 도시로 빠져나가고 분교생들도 겨우 예닐곱만 남았을 뿐, 노인들만이 이 곳을 지키고 있는지라 여성이라고 해도 여성성을 거의 잃은 할머니들을 말한다) 색이 알록달록한(그러나 결국 그 무늬에도 한계가 있는) 의상을 두른다는 점은 인상적이지만, 내게 이들이 쓴다는 독특한 언어는 파르시나 마찬가지로 외계어 수준이므로 패스할 밖에. 주페르시아님처럼 몇 번씩 이 곳에 방문한다거나 하룻밤 이 곳에 머무르며 천천히 누려본다면 모를까, 이렇게 훌쩍 왔다 한 바퀴 휘익 둘러보고 돌아가는 뜨내기가 뭘 더 따질까마는.
그러나저러나 이들의 조상은 14세기경 몽골이 쳐들어왔을 때 이 곳으로 숨어든 것이라고 했다. 지금처럼 이 곳까지 도로가 나 있어도 찾아오기 험난한 길이두만, 당시 몽골이 얼마나 잔혹했으면 이런 곳까지 들어와 숨어 살았을까.
이제 나탄즈를 향해 출발하는 길, 우리 택시 아저씨는 당신의 휴대폰으로 여기저기 전화를 하는 듯 싶더니 10분 후 버스를 태워주겠단다. 어떻게? 아저씨가 무서운 속도로 산길을 빠르게 내려가니 카샨-나탄즈를 잇는 국도에서 아비아네로 들어오는 길 입구에 웬 버스가 한 대 서 있다. 알고보니 아저씨가 터미널로, 다시 에스파한행 버스 운전사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여 지나는 길에 우리를 태우라 잠시 정차를 부탁한 것이다. 나머지 버스 승객들은 영문도 모르고 우리가 아비아네에서 내려오기만을 어정쩡한 곳에서 기다린 셈이 된다. 덕분에 우리는 다시 나탄즈 터미널까지 간 뒤 에스파한행 버스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정거장도 아닌 곳에서 에스파한행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워낙은 카샨-에스파한 구간이 2500원 정도 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중간에서 올라타는 바람에 1인 2000원을 지불). 정말이지 멋진 서비스가 아닐 수 없다(물론 아저씨가 우리를 나탄즈까지 안 태우고 여기서 카샨으로 돌아가면 그만큼 기름값이야 아낄 수 있겠지만, 이 나라 기름값이 얼마나 된다고 ^^;). 버스에 올라타서도 우리는 연신 아저씨의 고급스런 서비스에 대해 칭찬을 했다. 카샨에서 아비아네까지의 대절비야 다소 비싸다하더라도 아저씨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와 이 곳에 아저씨에 대한 정보를 남긴다.
성함 : 레자(Reza?)
휴대폰 : 0913 361 1136
집(카샨) : 444 9581
그동안 만났던 택시 운전사 중 가장 영어를 잘하는 분이기도 하거니와 아비아네를 오가며 가이드 역할도 해주신다.
버스에선 ‘다이하드 4’를 이란어로 더빙하여 보여주고 있다. 이란이 미국을 싫어한다고 하지만, 이란인들은 미국 영화를 보고 코카콜라와 환타를 마시며(물론 이란제 콜라가 더욱 popular하지만), 미제 담배를 태우고 영어를 배운다. 어, 그런데 이제 와 다시보니 다이하드 4의 악역이 얼마전 본 ‘히트맨’ 주연 배우와 닮았다. 동일인물인가?
에스파한 북부터미널에 도착. 시내 버스를 타고 찍어둔 숙소로 가기 위해 터미널 앞 정거장에서 기다렸으나 좀처럼 버스가 오질 않는다. 결국 배낭 무게에 굴복, 택시를 타기로 한다. 몇 번의 흥정 끝에 2000원에 합의. 아, 비싸다.
찍어둔 숙소 도착. 그러나 오늘 방이 없다고 한다. 흑. 주인 아저씨가 주변의 몇 숙소 이름을 대가며 그런 곳으로 찾아가 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숙소 이름들중 귀에 꽂히는 이름이 하나 있다. Pars Hotel. 뭉그니님 여행기에서 본 기억이 난다. Pars Hotel은 어딘데요? 아저씨가 알려준 방향으로 좀 걸으니 곧 나타난다. 이 곳은 방이 있다. 화장실이 딸린 방은 시내 메인 도로와 면한 25000원짜리 방이고, 반대편의 보다 조용할 방은 공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방이다. 소음이 곧 쥐약인 김원장, 17000원짜리 후자를 선택한다.
시내에 사람이 무지 많다. 오늘이 금요일, 우리나라의 일요일에 해당하는 날이라 그런가. 덕분에 시오세 폴 다리(이란 고원지대에 이렇게 큰 강이라니!)와 이맘 광장을 오가는 길에 완전 동물원 원숭이가 된다. 카샨에서도 전화를 걸던 사람이 하던 통화를 멈추고 인사를 건네오는 바람에 웃은 적이 있는데, 이 곳은 운전을 하다가도 창을 내리고 인사를 한다. 물론 젊은 것들은 보다 짖궂다. 졸졸 따라다니며 중국인이라 놀리거나 아는 영어 단어를 모두 총동원하여 아무렇게나 말을 건다.
견과류는 여전히 넘치는데 석류는 라쉬트를 벗어나면서부터 보이질 않는다. 석류철이 지난걸까. 그래도 카스텔라 비슷한 빵(200원)도 사먹고 전기(장작?)구이 통닭(반마리 2500원)도 먹고 이란식 커다란 햄버거(1000원)도 먹어본다(시내 거리에 유달리 눈에 많이 뜨이는 가게는 생과일쥬스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파는 집이다). 저녁엔 숙소 근처 Ali Qapu Hotel 지하의 <베니스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는 곳에서 스파게티도 먹어본다. 외국에서 먹는 스파게티치고 맛이 좋다(이탈리안 메뉴가 주. 스파게티는 대략 종류별로 3~4천원선. 샐러드바도 운영. 17%의 서비스차지가 붙는다. 패스트푸드점은 보통 주문부터 운반까지 셀프라서 서비스차지가 안 붙던데 직원이 오가는 레스토랑에서는 붙는 것 같다). 지금까지 이란을 며칠간 여행해 보니 이란은 결코 못사는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먹거리를 비롯한 모든 생활용품들은 다양하면서도 풍부하고, 비록 절대 수입은 우리 기준으로 적다하더라도 자체내 구매력을 갖춘 사람들의 수는 많은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비해 오히려 평균 생활수준은 내가 예상했던 바를 훨씬 웃돌지도 모르겠다.
방에 화장실이 없으니 볼일을 보기 위해 복도로 나갈 때에도 스카프를 뒤집어 써야한다. 몇 발짝도 바깥은 바깥이니. 아, 이럴땐 정말 귀찮은 일이로구나.
# 해발 2000m급의 아비아네에 이어 에스파한도 1600m의 높은 지역에 있어서인지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이란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옷을 챙겨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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