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번 트램핑의 최고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해리스 새들(Harris Saddle)의 쉘터(Shelter) 모습입니다. 아래 사진상 왼편이 저희같은 독립 트레커들을 위한 쉘터이고, 오른편이 가이드 동반팀(Guided walks)을 위한 쉘터의 모습입니다. 왼편은 벽면을 따라 자리한 긴 의자들 외엔 편의 시설이랄 것이 전혀 없고, 오른편은 번호키가 장착된 문 뒤로 커피 따위를 조리할 수 있는 간단한 부엌 시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흑, 그 놈의 돈이 뭔지... 이런 곳에서까지 차별을 -_-;). 어디까지나 쉘터이기 때문에 잠시 쉬었다 갈 수 있을 뿐 숙박은 제한됩니다. 참, 이 쉘터들 뒤에는 작은 화장실도 있습니다.

 

 

 

이 곳에서 왕복 1시간이 걸리는 Conical hill track을 side track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해리스 새들은 사실 산과 산 사이를 넘어가는 고개일 뿐, 봉우리의 정상은 아니거든요. 날씨가 좋을 경우 Conical hill에 올라 바라보는 전경이 무척 훌륭하다고 하는데, 오늘의 날씨는 구름이 많이 껴서 올라도 전망이 나올 것 같지 않습니다. 잠시 고민하다 저희는 그냥 포기하고 맥켄지 헛을 향해 곧장 내려가기로 결정합니다. 아, 물론 이 곳에서 점심 식사는 하고 내려가야지요. 메뉴는 식어버린 밥에 장조림 ^^ 입니다. 어찌나 맛있게 먹었던지 사진으로 다시 봐도 침이 절로 고이는군요.

 

 

 

요 놈은 뉴질랜드 수퍼에서 구입한 과자인데요, 트램핑시 과자라기 보담은 비상식에 견주어 먹었습니다. 유기농으로 재배한 여러 과일과 곡물들을 적절히 가공하여 꿀과 함께 버무린 것이죠. 가격은 저렴하지 않지만 맛도 영양도 칼로리도 훌륭한 놈이었습니다.   

 

자, 이제 밥도 먹었겠다, 재충전을 했으니 맥켄지 헛을 향해 내려가야겠죠? 표지판엔 아직도 3시간 30분을 더 가야한다고 나와있지만, 전 여정상 최고점을 돌파했으니 이제는 전반적인 내리막길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십분 여유로와집니다.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지네요.

 

 

 

해리스 새들에서 내려오는 계단에서 올라오는 존을 다시 만납니다. 벌써 맥켄지 헛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합니다. 믿을 수 없군요. -_-; 축지법이라도 구사하는 걸까요?

 

 

 

전반적인 내리막길임에는 틀림없지만, 해리스 새들에서 맥켄지 헛을 향해 출발하는 초반 구간 잠시를 제외하고는 상당 구간이 얕은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왼편으론 산을 안고 오른편으로는 깊은 계곡을 품은 채 천천히 산길을 걷습니다. 

 

 

이 쯤 걸으니 반대편, 즉 맥켄지 헛에서 오늘의 여정을 시작한 팀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아직은 이른 시간인지 독립 트레커들만 보입니다. 마주칠 때마다 인사는 물론이고, 한꺼번에 두 명이 지나갈 수 없는 좁은 길에서는 서로 양보를 하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주고 받습니다. 트램핑 분위기 아주 좋습니다~ ^^ 대부분 무지막지해 보이는 짐을 지고 있어 캠핑을 하는 사람들인가 했는데, 그렇다고 하기엔 캠핑장 인원수를 넘어설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저 짐 속에는 텐트가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지난 밤, 헛에서 만났던 사람들처럼 저 사람들도 커다란 후라이팬까지 들고 온 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화장실에서 신는 플라스틱 재질의 슬리퍼를 가져온 사람들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집에서 쓰던 커~다랗고 두꺼운 유리 접시까지 몇 개씩 들고 오신 분도 있었다는 -_-;  

 

 

 

비록 구름이 많아 반대편 봉우리들의 모습을 한꺼번에 보기는 어려웠지만 나름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오른편에는 Hollyford 강이 흐르는 계곡이 계속해서 보였고요,

 

 

간혹 구름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봉우리들의 멋진 모습이 보였다 안 보였다 약을 올리기도 합니다.

 

 

결국 누가 이기나~ 자리를 잡은 김원장입니다. 김원장 뒤로 저희가 지나온 길이 보입니다(보이세요?).

 

 

 

시간이 흐르니 가이드와 동반한 팀원들이 지나갑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대부분 60대 이상의 노부부가 많습니다. 산을 오르기에 부적합해 보이는 나이와 몸매를 지니신 분들도 좀 있습니다. ^^; 가이드 동반팀의 짐은 현격히 적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대부분 저희보다 큰 짐을 지고 있습니다. 음식물을 많이 가져갈 필요도 없는데 백인들 기본 덩치가 커서일까요? 

 

놀랍게도 이들 부대를 맨 앞에서, 중간에서, 그리고 맨 뒤에서 이끄는 가이드들은 모두 20대의 젊은 여성들입니다. 괜시리 뿌듯해진다는 ^^ 

 

 

해리스 새들에서부터 전반적으로 크게 왼쪽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며 돌다보면,  

 

 

어느 순간 저 아래 숲가, 맥켄지 헛의 모습이 아득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어, 그런데 건물이 두 개네요. 맥켄지 헛은 왼쪽일까요? 오른쪽일까요?

 

 

맥켄지 헛은 맥켄지 호수변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맥켄지 호수의 색이 무척 아름답네요.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지점부터 급격한 내리막길이 시작됩니다. 경사도를 줄이기 위해 지그재그로 길을 내었습니다. 내리막길을 걷다보니 슬슬 다리가 풀려오네요. 그러다 내리막길 한 켠에서 오래 전 이 곳에 올랐다 목숨을 잃은 아이들을 추모하는 비를 발견하곤 다시 다리 근육에 힘을 줘봅니다.

 

 

드디어 알파인(alpine) 지대가 끝나고 다시 지의류와 양치류가 반기는 부시 라인(bush line)으로 진입합니다. 알파인 지대는 알파인 지대대로, 이 곳, 여기 저기서 요정들이 튀어 나올 것만 같은 이 숲속은 이 숲대로 무척 매력적이군요. 지의류와 양치류가 이 곳에 이렇게 무성하다는 사실은 이 곳이 평소에도 해가 잘 안 드는 무성한 나무 숲이라는 증거가 되겠지요.   

 

 

이런 숲속을 20여 분 걷고 나자, 드디어 오늘의 종점인 맥켄지 헛에 도착했습니다. 중간 중간 편히 쉰 시간을 포함, 해리스 새들의 안내판 말처럼 딱 3시간 30분이 걸렸군요. 맥켄지 헛 가까이에 가서야 아까 산 위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편이 맥켄지 헛이고, 오른편이 가이드 동반 팀을 위한 헛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맥켄지 헛에는 2개의 벙크룸(bunkroom)이 있습니다. 하나는 부엌/식당이 딸린 건물의 윗층에, 다른 하나는 이 메인 건물과 화장실 건물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따로 있습니다. 총 50개의 침상이 있는데, 지난 밤 루트번 폴 헛(Routeburn falls hut)과 마찬가지로 2층 침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난 밤은 한 침대에 한 명씩 누워 잘 수 있게끔 만들어졌지만, 이 곳은 한 침대에 4명씩 자야하는, 커다란 2층 침대라는 점이지요.

 

 

 

 

저희는 별채의 1층, 가장 안쪽 자리 두 개를 사용했는데요, 아무래도 한 침대에서 네 명이 자야하는 만큼 좀 불편하고 루트번 폴 헛에 비하면 제반 시설 역시 낙후된 편입니다. 맥켄지 헛에는 루트번 플랫 헛(Routeburn flats hut)과 마찬가지로 9개의 캠프 사이트(campsite)가 있습니다. 고로 만약 루트번 트램핑을 캠핑으로 커버하시겠다 마음 먹으신 분들은 루트번 플랫 헛과 맥켄지 헛 사이를 대략 7시간 30분 가량의 산행으로 예상하시면 됩니다.    

 

 

부엌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사용함에 있어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합니다(라이터를 들고 있던 김원장이 여기저기 불 붙여 주느라 불려 다닙니다). 채광이 잘 되어 따뜻하기도 하고요. 오늘 저녁 메뉴는 신라면입니다. ^O^ 사실 한국에서는 되도록 라면을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한국에서도 조절을 잘 못하는데 외국에선 얼마나 정신 못 차리겠어요? 게다가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맛있는걸요? -_-;

 

 

 

 

내려오는 길에 카누를 타고 맥켄지 호수를 멋지게 가로지르는 사람을 본지라 헛에 도착한 뒤에 날이 더우면 우리도 한 번 수영을 해볼까 했는데 그 정도로 더워야 말이죠. 그냥 맥켄지 호수변을 산책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웬 여인이 저희 모두를 식당으로 모이라며 부르기 시작합니다. 오, 저렇게 젊은 여성이 바로 맥켄지 헛의 warden이었군요. 아직은 앳된 얼굴의 그녀가 모든 방문객들을 모아놓고 마찬가지로 약간은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면서 바이브레이션이 섞인 목소리로 어제 존이 했던 그것을 비슷하게 반복합니다. 남아있던 오늘의 헛 티켓(hut ticket)까지 절취선을 갈라 그녀에게 주고 나니 이제 벌써 마지막 밤이구나, 하는 아쉬움이 밀려오네요.

 

 

참, 그들의 가방 속에선 엄청 두꺼운 책도 나오더군요. 하루의 트램핑을 마친 후 헛 벤치에 앉아 한가로이 책들을 읽는 모습이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제게는 좀 무리일 듯 싶네요. 전 차라리 호수변을 걸을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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