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번 트램핑을 마치고 디바이드에서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Milford Sound Cruise)를 떠났습니다.

 

@ 참고로 sound에는 우리가 흔히 쓰는 <소리, 음성> 따위의 뜻 말고도 중학교 시절 시험에 자주 나오는 <건전한, 건강한, 정상의>라는 형용사형 뜻이 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sound가 동사로 쓰이기도 하는데, 그 경우 <깊이를 재다, ~의 밑을 조사하다>라는 뜻이라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뜻이 있는데 그게 바로 밀포드 사운드의 사운드, 즉 <좁은 해협>이라는 뜻의 사운드가 되겠습니다.   

 

워낙은 루트번 트램핑의 종점인 디바이드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에코 투어(Eco tour)라는 이름을 가진 회사의 버스가 우리를 픽업하여 밀포드 항까지 안내, 그 곳에서 크루즈를 시켜주고, 다시 우리를 태우고 테 아나우(Te Anau)까지 데려다 주는 일정으로 모두 미리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문제가 발생합니다. 약속 시간인 1시가 좀 넘어 관광객을 꽉 태우고 디바이드에 나타난 에코 투어 버스의 운전사 설명이, 어쩌다 오버 부킹이 되는 바람에 이 버스에 우리 좌석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며칠 되지는 않았지만 뉴질랜드를 겪으면서 그야말로 관광대국, 그리고 그 이름에 걸맞는 관광 인프라/시스템을 갖춘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버 부킹이라니 황당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이제 막 2박 3일간의 트램핑을 마친 우리에겐 차도 없고, 이 길에 다니는 차 역시 별로 없고, 운전사의 빠른 영어는 잘 들리지도 않고 -_-; 이래저래 난감할 따름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운전사 왈, 본인들이 그런 사실을 뒤늦게나마 파악하여 테 아나우에 연락을 해 지금 우리를 태울 다른 차가 이 곳으로 달려오고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알아들었습니다 ^^;).

 

- 그럼 그 버스에도 에코 투어라고 써 있어?

- 오, 아니야. 그 차는 작은 승용차야. 흰색.

- 흰색 작은 차?

- 응. 그 차가 너희를 곧 데리러 올거야.

- 곧?

- 응. 곧.

 

재차 확인을 마친 저희는 그녀(그 버스를 운전하는 분이 여성이었습니다)를 그냥 보내줄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젠 그녀가 말한, 곧 온다는 하얀 차를 기다리는 수 밖에요.

 

불안한 1시간을 보내고서야(곧, 이라더니 곧 나타나지 않아 저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김원장 붙들고 아까 분명 금방 온다고 하지 않았냐, 내가 잘 못 들은 것은 아니냐, 만약 이대로 그 차가 안 나타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걱정하려는 순간) 정말 하얀 차가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말 그대로 티코처럼 작은, 게다가 아주 낡은 차량입니다. 그 차에서 얼른 내리는 분은 나이가 지긋이 드신 할아버지.

 

- 어서 타. 이 차가 좀 작긴 하지만 그렇다고 꼭 아시안(Asian)용은 아냐. 나같이 덩치가 큰 사람도 이런 차를 탄다고 ^^

 

정말 우리를 데리러 왔군요. 기대보다 많이 늦긴 했지만요. 할아버지는 그걸 잘 알고 있다는 듯, 작은 차에 우리를 태우고 밀포드 항으로 향하는 속도를 한껏 높힙니다. 그러면서도 지나치는 모든 풍경에 대해 설명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즘 구정 연휴라 대만인들이 떼로 몰려와 어딜봐도 대만인들 투성이라느니, 일본인들을 안내하다보면 군대에 와 있는 것 같다느니(그들의 하잇, 하잇 말투를 흉내내시며) 요즘같은 관광철 성수기에는 퀸스타운에 나가 관광객들을 상대로 색소폰을 부시기도 한다는 둥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해주시네요. 연주하면서 만나게 된 한국인 관광객들도 꽤 많았다며 저희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 궁금한게 하나 있어. 한국 사람들은 모두 이 노래를 알던데~ !#$%^&*

 

오~ 익숙한 멜로디. 할아버지 입을 통해 나오는 곡조는 바로 <연가>였습니다.

 

- 맞아요, 한국 사람들이 모두 아는 노래지요. 한국어로는 이렇게 불러요.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오면~

- 그래, 맞아 맞아. 바로 그 노래. 그 노래는 원래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노래인데 말이야. 한국 사람들이 모두 이 노래를 알고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색소폰으로 이 노래를 연주하면 다들 따라 노래를 부르지.

 

그러고보니 노래 가사조차 우리나라의 정서와는 좀 다른 듯 합니다. 비바람이 치는 바다나, 바다 건너 오실 그대라뇨. 게다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에 대한 부분(우리나라는 밤, 하면 아무래도 별보담 달이 더 우선시 되어오지 않았던가요?)과 사랑하는 그대의 눈에 대한 언급도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죠(우리나라 옛날 연애담 들어보면 서로 눈도 제대로 못 맞추잖아요 ^^;). 아무래도 가사조차 그대로 번안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거나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연가를 다시금 함께 합창하며 밀포드 항을 향해 달립니다.

 

 

 

국제선 취항의 중심지인 오클랜드가 뉴질랜드 북섬에 있는 탓에 뉴질랜드 패키지 관광은 주로 북섬 위주로 짜여져 있습니다만, 사실 경관이 더욱 아름다운 곳은 북섬보다 남섬이라고들 하지요.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는 뉴질랜드 남섬에서도 최고의 경관을 보여준다는, 그야말로 뉴질랜드 여행의 핵심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뉴질랜드 남섬을 커버하는 여행 상품치고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를 빼놓는 상품은 없을 거라는데 100원 걸겠습니다. ^^; 심지어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오직 그걸 위해 북섬에서 하루 종일 달려 퀸스타운에서 자고, 다음 날 밀포드로 이동, 크루즈를 하신 뒤 다시 퀸스타운으로 돌아와 잠만 잔 뒤, 다시 다음 날 차를 몰아 크라이스트처치를 거쳐 다시 북섬으로 이동하셨다고 합니다(패키지 상품 역시 하루에 비슷한 거리를 이동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만큼의 이동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할 만큼 명성을 떨치는 곳이지요.

 

디바이드를 떠난 우리 차 역시 그 자체가 하나의 구경거리가 되는 호머 터널을 지나 본격적인 피요르드 관광의 중심이라는 밀포드 항에 도착합니다. 사실 디바이드에서 이 곳까지는 30 여 Km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우리 원래 팀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혹 우리 둘을 그 팀에 합류 시킬 수 있는지를 알아보지만, 근 1시간이나 차이가 나니 이미 그들은 크루즈에 승선한 뒤라고 합니다. 결국 우리 둘은 할아버지의 안내에 따라 한 크루즈 회사 데스크에 섭니다. 

 

@ 밀포드 항에 가보니 생각보다 많은 크루즈 회사가 밀포드 사운드를 취항하고 있었습니다. 종류도 다양해서 굳이 예약하고 오지 않더라도 원하는 타입의 크루즈를 골라 즐길 수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여러 회사가 다양한 간격으로 운항을 하기 때문에 특별히 따지지만 않는다면 대기 시간도 길지 않을테고요.    

 

- 이 둘은 원래 에코 투어 팀인데 오버부킹으로 에코 투어 본 팀에 끼이지 못했소. 돈은 나중에 에코 투어에서 낼테니 지금 떠나는 당신네 배에 이 둘을 일단 좀 태워주쇼.

 

옆에서 듣기엔 다소 말이 안 되는 이야기처럼 들리는데 - 할아버지를 비롯, 우리를 언제 봤다고 배에 그냥 태워주겠어요 -_-; - 데스크에서는 순순히 그러라며 할아버지에게 두 장의 패스를 내어줍니다. ^^;

 

- 자, 곧 배가 출발할테니 이 배를 타. 2시간 정도 걸릴거야. 나는 그동안 에코 투어에 다시 연락을 해볼께. 너희가 다녀왔을 때 내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 하지만 어쨌든 끝나면 저기 보이는 과자 단지 앞에서 만나자구. 알았지? 과자 단지야.  

 

할아버지는 몇 번이고 저희에게 과자 단지의 위치를 주지시킵니다. 하도 들어서 할아버지의 cookie jar를 말하는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나는 것 같네요.

 

 

저희가 탈 크루즈선입니다. 패스를 제출하고 항으로 나오니 다시 한국말이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합니다. ^^ 퀸스타운 다운타운에서 듣고는 트램핑을 하게 되면서 며칠 못 들었는데 다시 들으니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시 사바세계(?)로 돌아온 것 같아 서운하기도 합니다. 

 

 

항구에서 바라본 밀포드 사운드의 풍경입니다. 엇, 사진 왼편의 저것은 크루즈선들을 위한 주유 호스일까요? 그러고보니 이와 비슷한 풍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 어때요? 윗 사진은 동유럽 크로아티아의 '코르출라'라는 섬에서 찍은 건데요, 크로아티아 역시 달마시아 해안으로 무척 유명한 곳이죠. 이 곳도 수 많은 섬과 육지 사이를 오가는 페리들이 많아 저렇게 바다 위에 주유소가 있었답니다.

 

여하간, 다시 남반구 뉴질랜드의 밀포드로 돌아와 볼까요? 저희가 탈 배, Lady of the sounds에 막 승선하려는 모습입니다. 트램핑을 끝내고 곧장 온 터라 다른 사람들의 가벼운 옷차림에 비해 배낭이며 스틱까지, 김원장 짐이 좀 많아 보입니다. ^^;

 

 

저는 처음에 밀포드 사운드를 배로 여행하며 해안을 관찰한다고 해서, 아래 지도에 제가 그려놓은 노란색 선처럼 망망대해 큰 바다로 나가 뉴질랜드 서해안을 쫘-악 훑으며 관찰하는 크루즈인 줄로 알았답니다(지도상의 뉴질랜드 서해안 좀 보세요. 저 수많은 사운드들 말여요). 그런데 막상 이 곳에 도착해 알고보니 저의 그런 생각은 완전 축척을 무시한 거였더군요. -_-; 실제로 그렇게 엄청난 거리를 크루징하자면 하루 밤낮을 해도 모자랄 것 같네요.

 

실제 크루즈는 제가 옆에 덧 그린 빨간색 선, 즉 이름 그대로 밀포드 사운드만을 오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 참고로 테 아나우에 가면 다웃풀 사운드 크루즈를 내건 광고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지도상 Te Anau거의 일직선상에 있는 Doubtful sound를 찾으셨나요?

 

<출처 http://www.travelindex.co.nz/maps/fiordland>  

 

<출처 http://www.fiordland.org.nz/Travel-Guide/Maps/Milford-Sound.asp>

 

밀포드 사운드만을 확대한 모습이여요. 바닥쪽으로 승선장(Boat Departure Terminal)이 보이죠? 저희는 그 곳에서 배를 타고 왼편 해안을 따라 큰 바다와 만나는 지점까지 올라간다음, 이번엔 그림 상의 오른편 해안을 따라 다시 터미널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습니다. 대략 편도 1시간, 왕복 2시간이 걸렸네요.

 

 

항에 한국인들은 많았지만 다들 다른 배를 이용하는지 저희가 올라탄 배에 한국인은 오직 저희 둘 뿐이었습니다. 선장인가가 계속해서 마이크를 통해 주변 경관을 자세히 설명해주긴 하지만 어차피 제대로 들을 수 없는 몸, -_-; 다행히도 배에 비치된 4개 국어의 설명서 중에 한국어 설명서가 포함되어 있었던지라 편하게 구경할 수 있었어요. 이 곳에 한국인들이 정말 많이 오나 봅니다. 직항도 없는 곳인데..

 

@ 배에서는 무료로 커피와 차 등을 제공하며 간단한 간식거리도 판매합니다(트램핑하면서 점심까지 잘 먹었는데도 배가 또 고팠습니다 -_-;). 크루즈 종류에 따라 식사가 포함된 배도 있다고 하더군요.

 

http://www.redboats.co.nz/home/

http://www.realjourneys.co.nz/Korean/

 

 

 

밀포드 항과 가까운 보웬 폭포(Bowen falls)의 모습입니다.

 

 

보웬 폭포는 루트번에서도 보였던 Darren range에서부터 흘러내리는 161m 높이의 폭포입니다.

 

 

 

배의 꼭대기 deck에서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한가로이 크루즈를 즐기고 있습니다. 밀포드는 그 지형적 특성상 날씨가 안 좋은 날들이 많다고 하는데 - 하긴 그 점은 루트번 트램핑도 마찬가지라 3일에 한 번은 비가 오니 트램핑 중 적어도 한 번은 비를 맞을 각오를 하고 트램핑 준비물을 챙겨오라고 하여 저희도 1회용 우비를 배낭에 넣어 갔었지요 - 저희는 운이 좋아서였는지, 바람은 좀 불었어도 날은 아주 화창했습니다. 루트번 트램핑 중에도 날이 좀 흐리기만 했을 뿐, 비를 맞은 적은 없으니 여행 내내 날씨 운이 아주 좋았지요. ^^ 

 

 

후미에서 바라본 밀포드 항쪽의 모습입니다.

 

 

 

항을 출발한 배는 추기경의 모자를 닮았다는 마이터 피크(Mitre peak ; 1,682m)를 지나 밀포드 사운드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요정들의 폭포(Fairy falls)로의 접근을 시도합니다. 마이터 피크는 깊은 대양의 해면에서 직접 솟아오른 봉우리로는 세상에서 가장 높다고 하네요.

 

 

요정들의 폭포는 2, 3일 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그새 말라버리는 일시적인 폭포로 비가 많이 온 뒤로는 수량이 풍부해져 더욱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고 합니다(혹시 아름다와서가 아니라 보였다 안 보였다 해서 요정들의 폭포라고 이름 붙인 건 아니겠죠? -_-;).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무지개가 폭포 바닥에 그려집니다.

 

 

 

선장은 배를 한껏 폭포 가까이로 몰아 관광객들에게 요정들의 폭포 샤워를 시키면서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줍니다.  

 

 

요정들의 폭포가 있는 이 부근에는 구리가 많이 매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오는 길에 할아버지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구리 말고도 이 피요르드 지역에는 수많은 광물이 매장되어 있다고 하네요. 그러나 뉴질랜드 정부에서는 일부러 개발을 하지 않고 있답니다. 

 

 

좁은 협곡을 지나,

 

 

드디어 망망대해와 만났습니다. 이 곳에 도착하니 몇 마리의 야생 돌고래들이 떼를 지어 크루즈 배를 따라오더군요. 마치 서커스단의 돌고래들 마냥 쇼타임에 맞추어 등장한 것처럼 몰려든 관광객들에게 잠시 멋진 수중 쇼를 선사하고는 금방 사라졌습니다. 다음 배가 이 곳에 도착하면 다시 쇼를 시작해야 하므로 자기들은 그 동안 잠시 쉬겠다는 듯이.

 

저는 돌고래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간 돌고래와는 연이 없었습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잔지바르에서 볼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돌고래를 보러나가는 일이 잔지바르의 자연 환경을 깨뜨리고 있다고 하여 자제했고,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당일 아침 배타고 바다로 나가기 직전, 날씨가 좋지 않다고 하여 취소가 된 적이 있지요. 할아버지가 운이 좋으면 돌고래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를 했었는데, 이번만큼은 돌고래를 보는 데 성공했네요. 비록 사진으로 남기는 데는 실패를 했지만 ^^; 사진은 또 다음 기회를 노려봐야겠지요(김원장이 배타는 것만 좋아해도 훨씬 그 확률을 높힐 수 있을텐데 말이죠).

 

 

타즈만 해의 푸른 바다를 잠시 보여준 배는 180도 머리를 돌려 다시 밀포드 항을 향해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타즈만 해에서 바라보면 밀포드 사운드의 입구격인 데일 포인트(Dale point)를 지나 반대편의 요정들의 폭포를 다시 지나고 나니, 이번에는 일년 내내 이 곳에서 서식한다는 바다표범들이 한껏 늘어져 쉬고 있는 씰 록(Seal rock)을 만나게 됩니다.

 

 

뉴질랜드인들이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환경주의자들이라고 하던데.. 그 속에 살고 있어 더욱 행복해 보이는 녀석들입니다.  

 

 

 

씰 록을 지난 배가 다음으로 들르는 곳은 높이 155m의 천연 폭포, 스틸링 폭포(Stirling falls)입니다. 요정들의 폭포와 마찬가지로 밀포드 사운드를 오가는 모든 배들이 이 폭포 아래로 접근을 하는데요, 가만히 보니 크기가 작은 배를 탈수록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더군요. 다만 그만큼 더 흔들리기는 하겠지만요. 

 

 

앗, 차거라~ 그래도 웃고 있는 김원장입니다.

 

이 밖에 사자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는 라이언 마운틴(Lion Mt.)을 지나 해양 박물관 앞에서 잠시 멈추기도 했던 배는 총 두 시간의 크루징을 마치고 다시 항구로 돌아옵니다.

 

참, 제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에 대한 감상을 말하는 걸 잊었군요.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 자체는 사실 기대 이하였습니다. 저는 좀 더 드라마틱하고 좀 더 거칠 줄 알았는데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밀포드 사운드로 향하는 <길>의 풍광이 더 좋았는데요, 거의 파키스탄이 아니면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 물론 파키스탄의 그것보다는 좀 덜하긴 하지만 - 빙하와, 그것이 만들어낸 경치의 어우러짐이 무척이나 멋졌습니다. 뉴질랜드 남섬이 유명세를 겪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만큼요.

 

자, 그럼 이제 할아버지와 약속했던 cookie jar 앞으로 가볼까요?

 

어, 그런데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질 않습니다. 두리번거리는 저와 눈이 딱 마주친 사람은 '에코 투어'가 가슴팍에 수 놓아진 조끼를 입은 키 큰 아저씨.

 

- 혹시 당신이 에코 투어에서 나오신 분인가요?

- 아, 당신들이 바로 그 둘이군요. 당신들 팀은 이미 떠났어요. 나는 당신들을 테 아나우까지 데리고 갈 사람입니다.

 

할아버지는 2시간을 기다릴 이유가 없으셨는지 아저씨한테 바톤 터치를 하시곤 떠나셨나봐요. 그럴 줄 알았으면 인사를 더 잘 하는건데.. 이번엔 아저씨를 따라 주차장으로 갑니다. 어째 좀 여기저기 토스를 당하는 신세같지만 ^^;

 

- 어머나, 이게 우리가 탈 차인가요?

- 왜, 놀랐어요?

 

놀라고 말고요. 우리 앞에 놓인 차는 바로,

 

오픈카였던 것입니다. ^O^ 

 

그러니 제 입이 다물어 질리가 있겠습니까?

 

 

좀 낡긴 했지만 - 뉴질랜드 대부분의 차들이 그렇듯이 - 어쨌든 오픈카임에 틀림없습니다.

 

- (짖궂은 표정을 지으며) 바람이 좀 부는 날씨긴 한데... 뚜껑 닫을까요?

- 농담이죠? 당연히 열어야죠~

 

아저씨는 너무 좋아라~하는 저를 보면서 사실 이 차가 테 아나우에서 가져올 수 있는 단 한 대의 오픈카인데, 우리를 위해 특별히 이 차를 대절했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기분이 너무 좋네요. 

 

 

자, 이제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테 아나우를 향하여 출발!

 

이번에 우리를 태운 아저씨는 독일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한참을 지내시다 요즘엔 뉴질랜드로 들어와 몇 년째 보내고 계신다고 합니다(그러니 기본적으로 독일어, 불어, 영어에 능통하시겠죠? 부러운 일이네요 ^^). 독일에서는 유도 선수였다며 내밀어 보여주시는 팔뚝이 정말 범상치 않군요. 아저씨 역시 주변에 보이는 경치 하나하나를 설명해주시느라 바쁩니다(나중에야 알았는데 다른 버스 운전사 아저씨들 역시 가이드 역할까지 하시더군요. 뉴질랜드 관광 문화인 듯 싶기도 합니다. 이 때만 해도 저희는 아무 것도 모르고 운전을 해주러 나오신 분이 이런 관광 안내까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죠. 전 국민의 가이드화랄까 ^^;).  

 

 

 

 

 

이름난 자동차 회사들이 줄줄이 찾아와 차 광고를 찍었다는 피요르드 지역을 빠져 나와 반지의 제왕 전투 장면에 나온 나무(팡고른 숲이던가요?)와 같은 수종들로 이루어졌다는 숲을 지나니 이제는 풍광이 점점 부드러운 곡선으로 변합니다. 테 아나우가 가까와지면 가까와질수록 평탄한 초원들의 모습이 보이네요. 아침엔 루트번 트램핑을 하면서 산과 계곡이 빚어내는 장엄한 풍경을, 점심엔 밀포드 크루즈를 하면서 피요르드 해안의 아름다운 절경을 즐겼는데, 이젠 다시 따뜻하고 평화로운 초원이 반겨줍니다. 하루가 무척 길죠? 

 

 

테 아나우 호수가 보이기 시작하는 view point에서 우리 차는 잠시 멈춥니다. 이 지점에는 우리말고도 이미 다른 관광버스가 멈춰서서 승객들로 하여금 휴식도 취하고 멋진 풍경을 즐기게끔 배려를 하고 있었는데요, 어머나, 이런! 멈춰서 있던 그 버스가 바로 점심때 오버 부킹 되었다며 우리를 디바이드에 남겨 놓고 먼저 떠났던 에코 투어 버스였습니다. 이제야 따라 잡았네요 ^^ 운전사 아주머님도 저희를 알아보고 방그레 웃어 주십니다.   

 

 

두 분의 에코 투어 소속 운전사가 서로 아는 척을 하고 계시는군요 ^^ 

 

 

제 인생 첫 오픈카를 타고 결국 버스보다 먼저 테 아나우에 도착했습니다. 이 쯤 되면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이겠죠? 이제 로망 목록에서 오픈카는 쓰윽~ 과감히 삭제해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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