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번 트램핑의 둘째날이 밝았습니다. 간 밤엔 그다지 추운 걸 모르고 잘 잤습니다. 나름 산 속이라 추울 줄 알았는데 폴라텍에 내복, 그리고 얇은 봄/가을용 침낭으로도 충분한 밤이었습니다. 다만 코를 고는 분이 좀 있긴 했죠 ^^; 

 

아침으로 즉석 누룽지를 끓여 김치(캔)와 함께 든든히 먹었습니다(메뉴가 아침 식사로 딱이죠?). 물론 점심 도시락용으로 밥을 지어 준비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답니다. 어째 매일 소풍가는 날 같아요 ^^

 

오늘은 루트번 폴 헛(Routeburn falls hut)을 출발, 해리스 새들(Harris Saddle)을 넘어 맥켄지 호숫가(Lake Mackenzie)에 자리한 맥켄지 헛(Mackenzie hut)에 이르는 여정입니다. 아래 첨부한 지도의 파랑 동그라미 구간입니다.  

 

 

상기 지도에서 보시는 것처럼 오늘 하루간 갈색의 알파인 지대를 모두 통과하게 됩니다. 산장지기인 존 말로는 내내 고산 지대를 걷다가 맥켄지 헛을 앞에 두고 불과 10~20분 전부터 다시 bush line이 시작될거라고 합니다. 루트번 폴 헛부터 전체 트램핑 여정에 있어 가장 높은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해리스 새들까지는 마찬가지로 전체 여정에 있어 가장 급경사 오르막 구간이기도 합니다. 조금 긴장이 되네요.

 

 

출발 직전의 모습입니다. 해리스 새들까지는 2시간, 오늘 밤 묵을 맥켄지 헛까지는 5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안내하고 있습니다(역시나 오늘도 헐~렁한 일정입니다). 저희보다 일찍 준비하고 떠난 팀들도 몇 있지만 어제의 일정에 노곤했는지 아직껏 꿈나라인 팀들도 있어 대략 중간쯤의 순위로 해리스 새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김원장도 해리스 새들을 향해 몇 발짝 걷지도 않은채 다시 한 번 뒤를 돌아 루트번 밸리와 루트번 폴 헛을 바라다 봅니다. 이제 이 곳을 떠나면 언제 다시 이 곳에 돌아올 수 있을까요? 기약이 없는 만큼 마음에 깊히 새겨둡니다. 김원장의 모습에서 어쩐지 미련이 남아 보이네요. 그럼 우리 다시 올까요? ㅎㅎㅎ

 

 

루트번 폭포 옆의 잘 다듬어지지 않는 바윗길을 지그재그로 통과하여,

 

 

루트번 폭포가 시작되는 곳까지 올라왔습니다(갈림길이 거의 없기도 하지만 트램핑 중간 중간 눈에 확 뜨이는 밝은 주황색 막대기가 꽂혀 있어 올바른 길을 안내합니다). 이 곳부터 한 동안은 완만한 오르막길로 그다지 힘이 소요되는 구간은 아닙니다만, 눈 앞에 펼쳐지는 장관이 마음을 빼앗아 버립니다. 제 촬영 실력이래봐야 별 볼일 없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함께 즐겨보시죠.

 

 

 

 

<동영상을 찍고 있는 와중에 지나치는 다른 트레커들의 발소리가 다가왔다 사라지는..>

 

 

 

 

그야말로 영화 <반지의 제왕>에나 나올 법한 절경입니다. 약속된 휘파람이라도 나지막이 불면 골짜기 너머에서 백마 군단이 엄청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눈이 부시도록 하얀 갈기를 휘날리며 달려올 것만 같습니다.

 

반지의 제왕이란 영화는 김원장이 몇 번이고 거절 않고 방영되기만 하면 채널을 고정시키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원작이 저희의 연애 시절과 관련하여 얽힌 추억을 담고 있기 때문에 저 역시 각별하게 느껴지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트램핑하면서도 그 때 그 시절, 생각 많이 했네요. *^^*

 

 

 

 

 

 

 

산장 정리가 벌써 대충 끝난 것일까요? 홀로 빠르게 다가오는 트레커의 얼굴을 바라 보니 바로 산장지기 존입니다.  

 

 

 

잠시 쉬고 있던 작은 다리 위에서 결국 존과 만났습니다. 참, 전 날 저녁 존이 헛 티켓(hut ticket)을 수거하면서 각 나라에서 이 곳을 찾아온 모두와 몇 마디씩 개인적으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제가 했던 실수를 밝혀보지요.

 

- 어디에서 왔어요?

- 한국에서 왔어요.

- 오, 한국에서도 산에 자주 가세요?

-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갑니다.

- 거기서 뭘 하세요?

- 에... 뭐 놀고 먹고 마시고 그러지요.

- 엥? 놀고 먹고 마시는게 직업인가요?

 

알고보니 저는 거기를 산으로 생각했고, 존은 한국을 뜻했던 거였지요. 한바탕 멋쩍은 웃음이 오간 뒤 이후 존은 산장에서 왔다갔다하는 우리와 만날 때마다 어이~ 놀고 먹는 부부~라는 식으로 아는 척을 하여 저희를 웃게 만들었습니다. 영어를 잘 하면 이런 실수도 안 할 뿐더러 좀 더 심도 깊은 대화가 가능했을텐데 말이지요. -_-;

 

존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산 너머 맥켄지 헛으로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짧은 대화 끝에 성큼 성큼 무서운 속도로 사라져 버리는 존. 역시 산 사람답네요.

 

 

 

 

존과 헤어진 이후 지점부터 다시 경사가 심해지는 오르막길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주변 경관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저희를 맞이합니다.

 

 

  

 

 

 

저희 뒤로 띄엄띄엄 뒤따르는 트레커들의 모습이 한 두 명씩 보이고,

 

 

저희보다 먼저 출발하여 경치좋은 곳에서 한 박자 쉬어가는 트레커들도 만납니다.

 

 

 

루트번 폭포의 원류가 되는 해리스 호수 모습이 살짝 보이네요. 이제 해리스 새들도 멀지 않았다는 신호겠지요?

 

 

 

 

 

 

 

 

해리스 호수를 오른편에 끼고 크게 좌측으로 도니,

 

 

드디어 해리스 새들의 쉘터 모습이 보입니다.

 

 

여기까지 2시간, 안내해 준 그 시간에 딱 도착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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