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흑, 또 날아갔다. -_-; 한 번 날아가고 나면 절대 다시 쓰기 싫은데.. 우짤꼬.. 힝, 그냥 초간단버전으로 쓸란다.

 

 

루트번 마지막 날의 여정은 맥켄지 헛에서 얼랜드 폭포(Earland falls)를 거쳐 그린스톤 트랙(Greenstone track)과 케이플스 트랙(Caples track)의 갈림길이기도 한 허던 헛(Howden hut)을 지나 디바이드에 이르는 길.

 

출발점인 맥켄지 헛/호수는 보는 것처럼 고도상 움푹 들어간 곳에 위치해 있다. 하긴 그러니 물도 고여 호수가 되었겠지만. 출발하고는 잠시 오르막길을 올라야 하지만 고개를 하나 넘으면서부터는 완만하게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다시 그림상 움푹 들어간 지대에 위치해 있는 허던 헛에서부터 다시 오르막을 밟아 작은 언덕을 넘으면 드디어 전 여정의 마지막 지점인 디바이드에 이르게 된다.

 

 

표지판에 따르면 맥켄지 헛에서 허던 헛까지는 3시간, 디바이드는 그 곳에서 한 시간이 더 소요되어 총 4시간이 걸린다고. 우리는 트램핑을 마친 후 디바이드에서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버스를 잡아타고 일명 뉴질랜드 여행의 정점이라는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를 하기로 미리 예약을 해 둔터라 디바이드에 오후 1시까지 도착해야 했다. 지금껏 표지판의 안내와 얼추 비슷하게 주파해내긴 했지만 요번마저 딱 저 4시간에 도착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닌가? 결국 우리는 조금 서둘러 출발하기로 한다. 안전빵 전략.

 

 

 

아침 메뉴로는 지난 파키스탄 여행시 잘 먹은 바 있던 즉석 김치국밥. 점심 역시 미리 도시락으로 마련해놓고. 빠진 것 없는지 재차 확인. 맥켄지 헛을 떠나기 전에 앞서 다시 한 번 돌아다 봐주고. 아쉬워라. 하지만 언제고 다시 이 동네로 돌아오게 되리라.

 

 

일찍부터 일어나 부지런을 떤 탓에 오늘은 최상위 출발팀에 속한 듯 하다. 아직 대기는 습기를 채 뱉아내지 못한 채 우리를 맞이하고.

 

 

마치 오늘 이 길을 걷는 생명체라고는 내가 처음인 듯한. 아니 이 세상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로 돌아가 걷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트램핑을 한다. 이런 느낌, 의외로 참 괜찮네.

 

 

그렇게 고요와 적막으로 가득찬 원시 생태계 속을 걷다 문득 올빼미를 발견하다. 이렇게 커다란 야생 올빼미라니. 이 놈은 우릴 보고도 도망갈 줄 모른다. 오히려 고개를 15도씩 양쪽으로 갸우뚱거리며 우리를 호기심있게 바라보는 자식. 오호, 요 놈이 사람 무서운 줄을 모르네. 하긴 이런 곳에서 살고 있는 올빼미라면 당연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평생 살다 가겠지. 얼마나 복 받은 일인지.

 

아참, 잊지 말아야지. 근사한 이 놈을 사진에 담아야겠다. 찰칵.

 

 

문제는 적목이었다. 원래 적목이란 신체의 기본적인 생리 반응, 즉 빛에 노출되었을 때 동공의 확장 및 수축에 의해 발생한다. 다시 말해 빛이 밝으면 동공은 작아지고, 어두우면 동공은 커진다. 밤에 보는 고양이는 이쁜데 낮에 보는 고양이는 섬찟하지 않은가. 

 

어쨌거나 그래서 플래시가 터지면 빛이 동공을 통과, 망막 뒤의 혈관에서 빛이 반사된다. 이 빛이 흩어진 붉은 점의 형태로 카메라에 찍히는 것이 바로 토끼눈 현상인 것이다. 

 

<그림 협찬 : 경원대 물리학과>

 

흠. 그렇다면 요즘 똑딱이 디카에도 달려있는 적목 방지 버튼을 이용해보자. 앞서 말했듯 미리 여러 번의 가짜 플래시를 터뜨려주면, 동공은 미리 닫히기 마련. 그 이후 진짜 플래시를 터뜨려 사진을 찍으면 적목 현상이 줄어든다.

 

그러나!

 

이 놈에게는 도무지 그런 일이 일어나질 않는다. 왜일까? 왜 올빼미는 빛을 봐도 동공이 축소되지 않는걸까? 야행성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 놈이 밝은 곳으로 나와준다거나 - 가만있자, 방금 올빼미는 야행성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 각도를 달리 잡아본다거나 - 기억나시는지? 얘는 머리가 180도 돌아간다. 내가 어디로 움직이든 고개를 돌려 빤히 나를 바라본다 - 하는 다른 방법을 써 먹을 수도 없다. 

 

결국 그의 멋진 노란 바탕에 깜장 둥근 눈을 여러분께는 보여드릴 수 없다는 이야기.  

 

 

참, 우리가 이 놈을 넋을 잃고 관찰하는 동안, 뒤따르고 있었던 다른 부부팀이 우리를 따라 잡았다. 그들에게 올빼미를 보라고 알려줬더니 순간 놀라와하던 그 둘 사이 갑자기 쏟아지는 꼬부랑 울랄라 불어. 오, 이들은 불어권에서 왔구나. 그러더니 남편이 자신의 배낭에서 꺼내든 것은 커다란 DSLR, 부인이 자신의 배낭에서 꺼내든 것은 디지탈 캠코더였다. 알라딘의 램프같은 커다란 배낭.  

 

 

 

 

 

이 날의 트램핑도 대략 중반까지는 홀리포드 강이 흐르는 계곡을 오른편에 두고 걷게 된다.

 

 

 

드디어 저 멀리 얼랜드 폭포가 보이길 시작하고. 

 

- 오빠, 얼랜드 폭포말야, Earland라고 쓰니까 얼랜드가 아니고 이어랜드아냐?

 

김원장은 Ear를 보는 사람이라 내가 꺼낸 썰렁한 한 마디.

 

 

 

얼랜드 폭포는 루트번 트랙 안내 소책자의 앞면을 장식하는 폭포이다. 고로 내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루트번을 대표하는 아름다움을 지녔으리라 상상해 주시길.

 

 

 

 

 

 

허든 헛까지 3시간, 표지판이 알려준 시간과 딱 맞아 떨어지고.

 

 

허든 헛에서 점심을 까먹기로 했다. 허든 헛의 벤치에 앉아 흰 쌀밥에 바삭바삭 김을 싸먹는다. 허든 헛은 어째 맥켄지 헛보다도 좀 노후된 듯한. 대신 지대가 낮은 탓인지 해가 떠올라준 탓인지 따땃한 분위기만큼은 최고다. 이 곳엔 벙크룸 하나에 28개의 침대가 있다. 캠핑은 불가. 그러고 보니 루트번 플랫 헛 앞에는 루트번 강이, 루트번 폴 헛 앞에는 루트번 폭포가, 맥켄지 헛 앞에는 맥켄지 호수가, 허든 헛 앞에는 허든 호수가 있다. 모두 물을 구하기 쉽도록 지어진 것일까?

 

 

이제 한 시간만 더 가면 루트번 트램핑이 끝난다고 하니 시원한 마음보다 섭섭한 마음이 더 크다. 이미 이 때도 여행 전 기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루트번 트램핑이 이번 뉴질랜드 여행의 백미일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던 탓일까?

 

 

마지막 고개를 넘으려니 디바이드에서 방금 전에 출발한 가이드팀이 와르르 올라오기 시작한다. 어머, 이 팀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둘이나 있다. 트램핑 중 처음보는 어린이들이다(공식적으로는 10살 이하 어린아이들에겐 권유하지 않고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나라 초등학생 이상이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코스이다. 나를 봐라 ~ ^^; 고로 이 곳에서 내가 못 만나봐서 그렇지, 실제로는 아이들이 꽤 올라올 것 같다). 비상용 호루라기를 재미용으로 불며 오르는 것을 보니 역시 아이는 아이. 그래서 이쁘고. 앞으로 내가 가야할 몇 십분이 아마도 그들에겐 반대로 가파른 오르막이었는지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나머지 어른들은 모두들 헉헉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앞에 펼쳐질 2박 3일이, 마치 나는 안 겪은 것 마냥 다시 부러워지는 순간.

 

그들이 힘겹게 올라왔을 오르막을, 나는 너무나 빠르게 내려간다. 오오 이런, 울창한 나무 숲 뒤로 차소리가 간간히 들리기 시작한다. 이제 문명 세계로 다시 돌아가는구나.

 

 

그렇게 루트번 트램핑이 끝났다. 내게 잊지 못할 기억만을 남긴 채.

 

(뭐야. 다소 흘러간 유행가스럽지 않은가.)

 

@ 루트번 트램핑 예약

 

http://booking.doc.govt.nz/nvb/?servicegroup=rbn

 

상기 사이트에 접속하면 원하는 날짜의 각 헛/캠프사이트에 몇 개의 자리가 남아있는지를 확인하고 예약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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