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도 느꼈던 일이지만, 새벽은 항상 새들의 힘으로 여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부산한 새들의 노랫소리로 낭가파르밧의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따뜻한 밀크티와 달콤한 쿠키로 몸을 깨우는 김원장입니다.

 

간밤엔 바닥이 조금 배겨 불편했을 뿐, 잘 잤습니다. 새벽녘 요란한 새 소리에 절로 잠이 깨니 30m 가량 떨어진 가이드와 포터의 텐트에서는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우리 두고 도망은 안 간 모양입니다 ^^;

 

해가 천.천.히. 한껏 천.천.히. 움터옵니다. 조금씩 조금씩 낭가파르밧이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오 이런, 어제의 낭가파르밧도 멋지기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싶었는데, 아침의 청명함 속에 바라본 낭가파르밧은 그야말로 말을 잊게 만듭니다.

 

 

저요? 이를 닦으면서도 낭가파르밧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 중입니다(이런 사진은 왜 찍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는 심보는 뭔지 ^^;).

 

 


자, 이제는 다시 타라싱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짐을 싸고 텐트도 철거하고, 우리의 천방지축 덩키를 다시 붙잡아 꾸린 짐을 올립니다. 우선 덩키의 등에 낡은 담요를 몇 장 접어 올리고, 이 위에 100% 손으로 만들었음이 분명한 멋진 안장을 올리고 다시 이 안장 위에 여러 짐들을 양쪽 균형이 맞도록 잘 조정하여 올립니다. 이 와중에도 틈만 나면 열심히 먹어대는 덩키 ^^   

 

 

낭가파르밧을 두고 가는 발걸음이 차마 안 떨어집니다. 다시 올 기회가 있겠지요. 아암, 그럼요. 분명 다시 올 수 있을 겝니다. 그 때도 낭가파르밧이 이 모습 그대로 저를 맞아주겠지요. 

 

 

돌아올 때 다시 들르게 된 루팔 마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저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배불리 먹은 아침이 제대로 소화가 안 되어 일행의 맨 뒤로 처져 천천히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마을에서 한 무리의 여자 아이들과 마주쳤습니다. 아이들의 손짓에 따라 그들과 함께 마을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10살 안팎으로 보이는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모여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네요. 특별히 세제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바위에 빨랫감을 반복적으로 치대고 물에 헹구고를 반복하면서 빨래를 합니다. 살짝 냇물에 손을 담궈보니, 앗 차차, 역시나 매우 찹니다. 온 집안 식구들의 빨래를 들고 나온 듯 빨랫감은 수두룩하니 쌓여있는데 저 빨래 다 하다간 저 벌개진 손으로도 모자라 다 터버리고 말겠네요. 아니, 이미 터져있겠지요. 물에 불어 잠시 안 보이는 것일 뿐.

 

저를 쳐다보며 뭐라 뭐라 말을 주고 받으며 히히덕거리던 아이들 중 하나가 씻고 있던 무를 하나 건넸습니다. 마침 소화가 안 되던 참이라 기꺼이 무를 받아 들었습니다. 한국이나 파키스탄이나 무 맛은 같네요 ^^ 쌉싸름한 무를 몇 입 베어물고 있는데 아이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입을 모아가며 손짓발짓으로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는데 제가 도통 못 알아 듣겠네요. 결국 보다 못한 한 아이가 제 무를 다시 가져가더니 앞니로 무껍질을 일일이 토끼처럼 갈아 다시 내어줍니다. 이런, 껍질을 벗기고 먹으란 소리였군요 ^^;

 

아이의 침이 잔뜩 발린, 그러나 그만큼의 정성과 애정이 발린 무를 다시 고맙게 받아들고 자리를 떠납니다. 안녕~ 안녕~ 따라오던 제가 사라지자 다시 되돌아 다가오던 김원장이 웬 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떠보입니다.

 

무를 먹으며 길을 걷다 이번엔 혼자 너른 밭을 매고 있던 또 다른 여자 아이를 만납니다. 이번 아이는 그나마 몇 마디 영어를 할 줄 알아서 간단하나마 대화가 가능합니다.

 

아스토르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는 16살의 그녀는 현재 집안 일을 도우러 고향인 루팔에 와 있다고 합니다. 루팔에서 아스토르까지 가려면 빨라도 30분은 걸어 타라싱에 도착한 뒤에 차로 2시간은 더 가야할텐데... 형제가 7남매나 되는데 집이 너무 가난하여 본인은 공부를 계속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고 하네요(이 곳도 아들부터 밀어주는 경향이 강하죠). 제 손을 잡아보고 자신의 거친 손을 들어 보여주는데... 그녀보다 나이를 배는 더 먹은 제 손이 오히려 더 곱네요 -_-;

 

그렇지만 그녀가 제게 그런 본인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돈을 요구했을 때에는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 미안해, 난 지금 돈이 없어. 트레킹 중이거든

- 그럼 무슨 돈으로 여기까지 왔어?

- 어.. 그 돈은 지금 남편이 가지고 있지. 남편은 먼저 갔어

- 남편을 불러와. 그런 다음 주면 되잖아?

 

구구절절 틀린 말은 없었지만, 그녀의 그런 요구가 파키스탄에선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러웠습니다. 사실 파키스탄, 그것도 루팔 같은 시골에서의 생활이 절대 넉넉할 리 없지만, 제가 지금껏 이 나라에서 만나온 사람들은 그런 요구를 직접적으로 한 적이 없었거든요.

 

 

무거워진 마음을 안은 채 다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아침 8시쯤 낭가파르밧 헤르리코퍼 베이스캠프를 출발, 쉬다 놀다 하면서 천천히 내려왔는데 숙소 앞 마당에 도착한 뒤 시각을 확인하니 11시 30분이네요. 상황이 이러니 오늘 다시 길기트까지 돌아가도 충분할 듯 싶습니다(당나귀 주인 아저씨와 헤어지면서 그간 고생한 우리 덩키에게 맛있는 것 많이 먹이라고 덩키 몫으로 따로 100루피의 팁을 줬습니다. 다음에 다시 오면 아저씨의 노래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길기트->타라싱까지 지프 한 대의 가격은 3,000루피라고 들었는데, 타라싱->길기트는 수요자에 비해 공급자가 많지 않아 자그마치 5,000루피를 부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타고 나가지 않으면 당장 타라싱에서 가동이 유일한 지프 주인인 Sadiq은 언제 또 올 지 모르는 손님을 세월아 네월아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숙소로 돌아오는 트레킹 중 만난 외국인은 모두 3명뿐(그들은 스페인에서 온 한 팀이었습니다). 요즘 같은 성수기에 어제 저희 둘을 포함하여 전부 6명, 오늘은 단 3명만이 낭가파르밧을 찾았다면, 길기트나 데오사이 평원을 거쳐 가족이 있는 스카르두까지 돌아가야 하는 Sadiq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 노릇일 겁니다.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으려면 협상을 하는 수 밖에요. 결국 4,000루피(64,000원)에 합의를 보고 길기트로 출발합니다.  

 

 

가는 길은 무척이나 터프합니다. 타라싱에 올 때는 밤이었던지라 안 보여서 무서웠을거라 생각했던 길이, 백주대낮에 달려도 무섭기는 마찬가지더군요. 주유소에 잠시 들러 기름을 넣고 갑니다. 역시나 돌아가는 길에도 몇 번의 검문을 거쳐야 합니다.

 

 

타라싱에서 아스토르, 다시 자글롯을 거쳐 길기트에 이르는데에는 총 5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12시 30분 출발, 6시 도착). 날이 더운지라 뒷 좌석으로 마구 불어드는 바람에 얼굴이 벌겋게 익어 올랐습니다. 아침에 트레킹을 한 탓인지 하는 일 없이 길기트까지 차만 타고 왔는데도 꽤나 힘이 드네요. Sadiq은 우리가 원하는대로 전에 묵었던 Mir's lodge에 내려줍니다. 이 곳에서 스카르두를 출발, 데오사이를 함께 달리고 같이 낭가파르밧 트레킹을 하면서 그동안 정이 많이 든 Sadiq과도 기약 없는 안녕입니다. 우리와 헤어진 Sadiq은 다시 스카르두로 떠나는 손님을 찾아 보겠지요. 손님을 찾는 대로 스카르두의 가족 품으로 돌아갈 겁니다. 그의 두 아들에게 줄 선물을 한아름 사가지고요.

 

Mir's lodge

 

주소 : Domyal Link Rd, Gilgit

전화 : (05811) 52875, 52885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TV와 fan, 전화가 설치된 1층의 트리플룸에 1박 900루피를 주고 묵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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