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가파르밧 루팔 트레킹의 출발점이 되는 타라싱 마을의 게스트하우스입니다. 제대로 들어앉은 덕에 끝내주는 병풍을 두르고 있네요. 이 정도 되는 마당이라면 어두컴컴한 식당보다 적어도 백만 스물 두배는 좋습니다. 아침을 주문하고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는 김원장이 보입니다. 

 

 

저희가 묵었던 방 문 앞에서 제가 이를 닦고 있습니다. 이제 낭가파르밧으로 떠날 준비를 해야죠. 데오사이 평원에서는 우리의 운전사였던 Sadiq이 낭가파르밧에서는 가이드 역할을 해주기로 하였습니다. 스카르두에서부터 빌려왔으나 정작 데오사이에서는 펼쳐보지도 못했던 우리 텐트와 매트리스, 이외 1박 2일간 우리가 먹을 개인 식량, 그리고 가이드인 Sadiq과 포터가 쓰게 될 텐트와 매트리스 등을 추가로 빌려 주욱~ 늘어놓고 숙소 주인 아저씨가 구하러 간 저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져가야 할 짐의 무게로 포터의 고용 인원수가 책정되거든요.

 

무게를 재어보니 저희의 모든 짐이 포터 한 명이 질 수 있는 최대 25 Kg를 살짝 넘는지라 포터를 두 명 고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포터 두 명이라.. 그럼 차라리 당나귀가 나을 것 같습니다. 당나귀 한 마리를 빌리는 가격은 포터 두 명의 임금과 맞먹습니다. 당나귀 한 마리가 50 Kg까지 짐을 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대신 당나귀를 부리는 당나귀 주인 아저씨까지 덤으로(?) 따라오기 때문에 저희는 같은 비용에 인력을 한 명 더 고용한 셈이 됩니다.

 

 

출발 5분 전~ 빌린 당나귀에 우리의 모든 짐을 싣고 있습니다. 포터 두 명 대신, 즉 장정 두 명의 몫을 대신할 당나귀치고는 참으로 작고 귀여운 놈이 왔습니다. 당나귀 한 마리에 5명이 붙어 있네요. 왼쪽부터 우리 가이드인 Sadiq, 구경 나온 동네 아저씨(저를 뚫어져라~쳐다보던 ^^;), 우리와 여정을 함께 할 당나귀 주인 아저씨(영어를 전혀 못 하심), 또 동네 아저씨, 그리고 접니다.

 

타라싱은 낭가파르밧 루팔 트레킹이 시작되는 곳이긴 하지만, 그 명성(?)에 비해 매우 작은 마을입니다. 그나마 하루에 한 편이라도 KKH와 연결되는 정기 교통편이 있는 Astor까지 나가려면 우선 차량부터 수배하여 덜커덩거리는 비포장도로를, 그것도 한참이나 달려나가야 합니다. 그런 곳이니만큼 마침 아침 조회(?)를 위해 운동장에 나온 여러 남학생들이 저희 일행을 보고 정신 못차리는 것도 살짝 이해가 됩니다. 덧붙여 수업중인 여학생들이 제 손인사에 답하느라 소란스러워지는 것도 은근 기쁩니다. 선생님, 조회를 방해해서, 수업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귀중품과 작은 물통, 휴대용 접이식 방석(?) 등을 챙겨넣은 김원장이 타라싱 마을을 떠나고 있습니다. 김원장 정면으로 보이는 회갈색의 제법 높은 언덕을 하나 넘으면서부터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됩니다. 그 언덕 뒤로, 하얀 눈과 구름으로 모자를 쓴 저 멋진 산들이 바로 낭가파르밧 산군이라 생각하니 가슴 한 구석부터 뿌듯해져옴을 느낍니다. 저~기 앞서서 먼저 가고 있는 우리 당나귀와 주인 아저씨가 작게 보이네요. 베이스캠프로 떠나기 전에, 당신 집에서 먹을 것을 챙겨와야 한다며 서둘러 집으로 가시는 중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그 언덕을 오르다 뒤를 돌아 타라싱 마을을 한 장 찍었습니다. 이 언덕은 제가 싫어하는, 미끄러지는 길입니다. 제법 가파른 자갈길이죠. 처음엔 이 언덕 뒤로 어떤 트레킹이 펼쳐질지 몰라, 이 언덕을 오르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죠.

 

'또 이런 길이네.. 속았다, 속았어.. 라카포시만큼 낭가파르밧도 힘들겠구나..'

 

결론부터 밝히자면,

 

아니었습니다. 이 언덕만 넘으면 다음부터는 그야말로 껌 ^^;인 트레킹이었죠. 라카포시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완만한 트레킹 루트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초행인 제가 그런 걸 미리 알 수 있어야죠. 아무리 여행사에서, 숙소에서 완만하다고 말해줘도, 그게 철저히 그들 기준에서 말해준 것이기 때문에 유달리 산에서 버벅거리는 제가 그들 말을 수이 믿을 수 없었거든요. 라카포시에서의 경험만 없었어도 그들의 조언을 고맙게 잘 받아들였을텐데... 

 

 

초록의 타라싱을 뒤로 하고 언덕을 오르면, 이번엔 빙하가 눈 아래 펼쳐집니다.

 

 

그런데 보시는 바와 같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빙하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겨울에는 제법 그 모양을 갖추지만, 요즘 같은 여름에는 다 녹아버려 그 흔적만 남아있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빙하수가 다 말라버린, 아니 지하로 대부분 그 모습을 감춘, 빙하천의 바닥을 건너야 합니다. 저는 언덕을 넘으면 빙하가 있고, 그 빙하를 건너야 한다고 하길래, 눈 부신 얼음 위를 미끌거리며, 때로는 끝이 안 보이는 크레바스를 건너, 뭐 그런 식으로 엄살을 부리며 기어가야 할 줄로만 알았는데, 저런 척박해 보이는 바위와 돌 투성이의 커다란, 그것도 완전 말라버린 계곡이 빙하라니요...

 

어쨌거나 이번엔 다시 빙하천 바닥을 향한 내리막길입니다. 사진을 보시면 회색의 빙하천 바닥 너머로 초록색 땅이 또 보이죠? 거기가 바로 루팔(Rupal) 마을이랍니다.

 

 

빙하천 바닥을 폴짝거리며 - 직접 빙하천 바닥에 올라서니 멀리서 바라보던 것보다 훨씬 울퉁불퉁합니다 - 건너고 있는데 어디선가 딸랑딸랑 소리가 납니다. 돌아서서 이미 지나온 내리막길을 되돌아보니, 오호, 우리의 당나귀가 열심히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네요. 제가 언덕 꼭대기까지 오르도록 따라오는 것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출발이 늦어진 팀이었는데, 누가 현지인과 당나귀 아니랄까봐 어느새 제 시야에 짠, 하고 나타났습니다. 우리 당나귀 앞으로도 현지인들의 당나귀 몇 마리가 안 그래도 좁은 길, 정체를 만들면서 내려오고 있네요. Donkey jam입니다 ^^

 

 

짜잔~ 드디어 루팔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첫 언덕을 오르면서부터 헐떡거리는 저희를 위해 Sadiq이 우리 배낭을 대신 들어줬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동네 입구에서 만난 루팔 마을 할아버지의 수제 지팡이를 만지작거려보더니 그 자리에서 그 지팡이를 구입해 김원장에게 선물해 주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참 곱죠? 

 

이즈음 저는 일행 중 제일 앞서서 걷고 있었는데요, 마침 갓 태어난 새끼 염소를 한 마리 안고 길을 지나시던 루팔 마을의 한 아주머님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너무 신기해하니까 얼른 그 염소를 제게 안겨주시네요. 아직 촉촉함이 남아있는 새끼 염소를 품에 안으니 따뜻함이 몸에서 몸으로 전달되어 옵니다.

 

 

김원장이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얼른 다가왔습니다. 그러자 그 때까지 너무 좋아하는 제 모습을 옆에 서서 흐뭇하게 바라봐 주시던 아주머님, 김원장을 보고는 얼른 집 뒤로 숨으십니다. 외간 남자랑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남편한테 맞아죽기도 하는 나라가 바로 이 곳, 파키스탄이라죠. -_-;  

 

 

김원장도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제게 새끼 염소를 받아든 김원장이 목에 얼른 끼워둔 저 지팡이가 바로 Sadiq이 선물해 준 지팡이랍니다. 할아버지 손 때가 타서 반질반질하지요. ^^ 

 

아주머님께 염소를 돌려드리는 것도 당연히 여성대 여성으로 제가 해야하는 일입니다. 김원장에게 다시 염소를 받아들고, 숨어계신 아주머님께 다가가 염소를 돌려드리고 감사의 인사를 건넵니다. 자, 이제 다시 낭가파르밧을 향해 길을 떠나볼까요?

 

 

 

당나귀는 틈만 보이면 가던 길을 멈추고 먹을 것을 찾습니다. 이러다 주인 아저씨에게 무지하게 맞기도 합니다 -_-; 당나귀가 맞을 때마다 우리가 함께 윽, 윽, 거리며 아파했더니 아저씨도 조금은 무안하신가봐요. 하지만 지나가는 순박한 동네 아이들조차 자신들이 모는 당나귀가 조금이라도 길을 이탈할 때면 무섭게 다그치며 당나귀를 때립니다. 심지어 엉덩이를 발로 마구 차기도 하지요. 김원장은 어릴 때부터 저렇게 폭력에 노출되어 자라기 때문에 나중에 부인을 때리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파키스탄의 가정 폭력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하네요). 어째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

 

 

  

 

 

루팔 마을에 있는 몇 안 되는 점방 가운데 한 곳의 주인 총각입니다. 잘 생겼기도 하거니와 영어를 무척 잘해서 그동안 Sadiq과는 해소를 못했던 궁금한 것들을 음료수를 마시며 쉬는 동안 몇 가지 물어 봅니다. 대답하는 것을 들으니 이런, 똑똑하기까지 하네요. ^^ 이렇게 작은 루팔 마을에서 썩기에는 아까운 청년 같은데, 정작 본인은 이 작은 가게에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똑똑한 청년이 아니라 현명한 청년이었네요.

 

총각이 걸고 있는 저 목걸이는 이 점방에서 판매하는 물건입니다. 실제 파키스탄에서 쓰이는 화폐 그대로를 이용해 만든 목걸이로, 이 마을에서 누군가 결혼을 할 때 신랑에게 선물하는 목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목걸이가 얼마냐고 물으니 주인 총각, 가격을 모르고 있어 잠시 당황합니다. 목걸이를 들고 여기저기를 살펴보더니 구석에 작게 적어둔 숫자를 뒤늦게서야 발견하고 얼마라고 알려줍니다. 목걸이 제작에 사용된 <실제 돈의 총액 + 아주 적은 수공 임금 알파>가 그 총 가격이네요. 모양 그대로 부자가 되어 잘 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그런 뜻이라길래 슬쩍 김원장한테도 걸어주고 사진 한 방 찍어줍니다. 김원장, 잘 살게나~ ^^;

 

 

가는 길은 몹시 더웠습니다. 낭가파르밧 남측 베이스캠프에 이르는 마지막 마을이라 할 수 있는 루팔 마을을 벗어나자 그늘을 만들어 줄 큼직한 나무들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길을 걷다가 손바닥만한 그늘에 들어가 쉬고 다시 걷다가 또 그늘이 보이면 잠시 쉬고를 몇 번 반복했습니다. 경사는 완만하지만, 그래도 지대가 높아서인지 생각만큼 속도가 안 나더군요. 하지만 어차피 그다지 멀지 않은 길이라 하여 한껏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렇게 타라싱을 떠난지 약 5시간.

결국 낭가파르밧이 제게로 들어왔습니다.

 

 

 

Sadiq이 우리 둘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길래, 기왕이면 낭가파르밧을 향해 걸어가는 뒷 모습을 찍어달라 부탁했습니다. 알아들은 줄 알았는데 찍은 사진을 보니 걷다가 돌아서서 "찍었어요?" 하는 순간, 찍었네요 ^^

 

 

낭가파르밧이 보이기 시작하면, 곧 베이스캠프에 이릅니다.

 

 

 

여기가 바로,

우리가 하룻밤 묵을,

낭가파르밧 베이스캠프랍니다.

 

우하하! 멋지지 않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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