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카리마바드에서 라카포시 베이스캠프 트레킹(Rakaposhi Basecamp trekking)의 전초 기지가 되는 미나핀으로 이동하는 날입니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멀베리 호텔 2층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프렌치 토스트 50루피, 달걀 후라이 35루피, 그냥 토스트 25루피, 잼 25루피, 버터 30루피, 차 25루피, 총 190루피(우리 돈 3,000원 가량)를 지불했습니다.

 

식사 후 주인 아저씨와 또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라, 어제의 그 사장님이 아니네요"

"우리는 형제랍니다"

"어쩐지 너무 많이 닮으셨어요~"

 

이렇게 말문이 트인 우리의 대화는 어느덧 아저씨네 집안 이야기로까지 이어집니다. 멀베리 호텔과 길기트의 또 다른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형제말고도, 아저씨에게는 여자 형제들이 4명이나 더 있다고 합니다. 이 자매들은 현재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남자 형제인 이들에게 남은 가족에 대한 부양 의무가 있나 봅니다. 현재 주인 아저씨는 어머님께 매달 5인 가족의 생활비로 20,000루피(우리 돈 32만원)씩이나 보내드리고 있는데 9.11 이후 파키스탄 관광업에 불어닥친 엄청난 타격으로 인해 너무 힘들다고 하시네요. 게다가 여동생들 결혼 시키려면 돈이 많이 든다면서...(아닌게 아니라 보내드릴 돈만 대충 계산을 해봐도 하루에 700루피를 벌어야 하는데, 저희가 이 호텔의 제일 좋은 방에서 하루를 묵고 세 끼를 다 먹는다 하여도 겨우 1,300루피 안팎일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 호텔이 투숙객이 거의 없다는 것과 그나마 있는 투숙객들이 도미토리를 이용한다는 것, 그리고 삼시 세끼를 이 집에서 해결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_-;)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결혼할 때 파키스탄의 여성들은 각종 장신구들을 우리네 혼수마냥 해간다고 합니다. 그게 다 이런 오빠들 등골에서 나오는 거였군요.

 

한국으로 돌아가서 멀베리 호텔 선전 많이 해달라, 물론 기꺼이 그러겠다, 하고 다소 우울한 대화를 마무리 짓습니다. 제 소개로 다녀오신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얼마 전 보노소년님도 그 곳에 묵으셨다니 기쁩니다. 카리마바드에 가시는 분들, 조금 더 여유가 있으시다면 멀베리 호텔도 관심 리스트에 올려주시길 바랍니다. 

 

카리마바드의 이름난 배낭족 숙소에서는 당일치기 라카포시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주선합니다. 이 경우, 희망하는 사람들을 모아 아침 일찍 한 차에 실어 미나핀의 디란 게스트하우스(Diran guesthouse)까지 나릅니다. 트레커들은 당일치기로 베이스캠프까지 올랐다가 내려와 기다리고 있는 차를 타고 다시 카리마바드로 돌아오는 일정을 치뤄냅니다.

 

그 당일치기 코스가 엄청 힘들다는 소문이 떠도는데, 이젠 일반 배낭족들과는 나이 차가 좀 나는지라 ^^; 그들의 페이스를 방해할 이유가 전혀 없으므로, 쳐지는 노인 둘은 -_-; 돈이 좀 더 들더라도 우리끼리만 트레킹을 해보기로 합니다. 

 

카리마바드에서 미나핀까지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1. 카리마바드의 제로 포인트에서 가니쉬(Ganish)나 알리아바드(Aliabad)로 가는 스즈끼(Suzuki)를 탑니다(스즈끼에 자리가 있다면 카리마바드 길가를 지나가는 스즈끼에도 탈 수 있겠지요).

 

2. 가니쉬나 알리아바드에서 길기트(Gilgit) 방향, 즉 남쪽으로 달리는 미니버스를 잡아 탑니다.

 

3. 이 버스가 KKH를 따라 달리다가 커다란 다리를 하나 건너게 됩니다. 그럼 내릴 곳이 다가온 겁니다. 운전기사분께 미나핀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앞에서 세워달라고 합니다.

 

4. 디란 게스트하우스 표지판이 있고 왼편으로 미나핀으로 향하는 작은 비포장 도로가 보이면 그 지점에 내립니다.

 

5. 그 도로를 따라 약 1시간을 걷습니다. -_-; (운이 좋으면 지나가는 경운기라도 히치를 ^^;) 마을도 지나고 다리도 하나 건너게 됩니다. 오른편으로 시설 좋다 소문난 디란 게스트 하우스가 보입니다.

 

위의 방법을 이용하면 시간은 좀 걸릴지언정 비용은 아주 싸게 먹힙니다. 저희는 이렇게 안 가고 아예 지프 한 대를 대절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택시를 탄 셈입니다. 

 

카리마바드에서 환전도 하고(1 USD = 59 Rp) 여기 저기를 싸돌아다니다 마침 당신 지프로 길기트에 갈 일이 있으시다는 여행사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사장님 왈, 워낙은 1,500루피/대/편도 정도 하지만, 당신이 가는 길에 조금 루트를 변경하는 셈이니 800루피/대만 내라고 했습니다(사실 제로 포인트의 old hunza inn에서는 1,000루피/대/편도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 (당연히 한 차에 타는 인원이 많아질수록 1/n 법칙에 의하여 지불하는 돈이 적어집니다)

 

이 여행사의 이름은 A&S transport service입니다. 사장님 성함은 Ainullah입니다. 히든 파라다이스 레스토랑을 바라보면 바로 오른편으로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전화방 겸 여행사가 있습니다.

 

Tel : 05821-57084, 57008 

 

약속한 시간 10분 전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사장님의 좋은 지프를 타고 우아하게 미나핀으로 갔습니다. 딱 1시간 걸려 미나핀의 디란 게스트하우스 앞 마당에 내렸습니다.      

 

 

달리는 도중에 라카포시(7,788m)봉과 디란(7,257m)봉이 보이다 안 보이다 합니다.

 

 

 

디란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마침 안 계셨습니다. 우리를 도미토리로 안내하던 직원은 우리가 트윈룸을 쓰겠다니까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방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물을 틀었더니 깨끗한 물이 나오더라고요(카리마바드의 물은 그 동네답게 회색빛이 도는 훈자의 강물이 나옵니다). 트윈룸이 1박에 얼마냐 물으니 사장님이 오셔야 한답니다. 얼마인지 알 수가 없어 이 방을 택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도미토리로 갈까 머뭇거리고 있으니 직원이 당당하게 말합니다.

 

"문제 없어요. 일단 그냥 여기 쉬고 계셔요"

 

우선 이 방을 사용하다 나중에 가격이 맘에 안 들면 옮겨도 된다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아주 훌륭한 시스템입니다. ^^; 카리마바드의 이글 네스트 호텔 직원들이 이런 점을 배워야 할 텐데요.

 

한참 퍼질러 뒹굴거리고 있는데 그 때서야 사장님이 나타났습니다.

 

"이 방은 원래 1,000루피짜리 방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손님이 너무 없으니 600루피(만원 정도)에 드리지요"

 

뭐라 요구하기도 전에 알아서 깎아주는 시스템,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좋아요~ 

 

 

디란 게스트하우스는 여러 점에서 아주 훌륭합니다. 이름은 게스트하우스지만, 동남아식으로 말하자면 호텔보다는 리조트식이라고나 할까요? 물 맑은 수영장도 있고, 잘 가꾸어진 정원에, 깨끗하고, 친절하고, 환하고, 게다가 아주 아주 조용합니다. 덕분에 완전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김원장, 관광객으로 다소 번잡스러운 카리마바드보다 조용하고 아늑한 미나핀이 훨씬 더 좋다네요. 우리 이외엔 투숙객이 아무도 없으니 진짜 오지 여행을 하는 것 같다나요? 

 

저녁은 부속 식당에서 스파게티 2인분(50루피/1인분)과 파라타 한 장(15루피), 요거트(30루피)를 주문했습니다. 스파게티는 보기와는 달리 제법 맛이 좋았습니다. 카리마바드의 스파게티보다도 맛있었거든요. 스파게티가 제가 집에서 쓰는 쟁반 같은 곳에 나와 잠시 당황을 ^^; 하긴 했지만.

 

그러고보니 세계 어디를 가나 여행자들이 모이는 식당엔 스파게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식당엔 스파게티는 있을지언정 저희를 제외한 외국인도, 심지어 현지인도 하나도 없습니다(직원은 서빙 이후 다시 주방으로 사라져 버린지라). 아주 아주 조용한 곳이라니까요 ^^ 

 

 

게스트하우스 입구에 방명록이 있습니다. 한글도 있는데 혼자 라카포시 베이스캠프 트레킹에 나섰다 길을 잘 못 들어 죽었다 살아나신 분이 계시더군요. 그 글 말고도 주로 당일치기했다가 엄청 나게 고생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그 중에서도 '개고생'이라는 표현이 팍팍 와닿습니다 ^^;).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던지 - 저희 역시 가이드 없이 둘이서만 트레킹을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에 - 김원장이 잠시 길도 확인할 겸 예비 트레킹을 해보자고 합니다.

 

어설픈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라카포시 트레킹 초반을 밟아보는데, 숙소를 나선지 5분도 안 되어 첫 번째 갈림길을 만납니다. 여기서 직진이냐, 아니면 지도에 나온대로 우회전이냐를 놓고 둘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데 때마침 할아버님 한 분이 지나가시네요.

 

라카포시! 라카포시! 타가파리(Tagaphari)! 타가파리! (아래 박상욱님께서 밝히셨듯 타가파리는 라카포시 베이스캠프로 쓰이는 방목지를 가리키는 현지어입니다)

 

저희의 바디랭귀지를 이해하신 할아버님, 가던 길 돌아 따라오라는 시늉을 하십니다(답은 직진이었습니다 ^^). 그렇게 길을 안내하기 시작하신 할아버님, 저희가 이제 되었다, 그만 돌아가시라 할 때까지 길을 안내해 주시네요 ^^; 

 

할아버님과 헤어진 뒤 외길을 따라 한참 걷다보니 이번엔 살구를 말리는 몇 아주머님들을 만나게 됩니다.

 

아주머니 : (산쪽을 가리키며) @#$%^&*?

우리 : (마찬가지로 산쪽을 가리키며) Yes, yes, 타가파리!

아주머니 : (손을 냅다 휘저으며) @#$%^&*! (고개를 약간 눕히고 두 손을 모아 아랫쪽 턱 밑에 대며) @#$%^& (다시 태양을 가리키며 손을 한 바퀴 크게 돌리시며) @#$%^&*

우리 : (고개를 끄덕이며) Yes, yes. (산 아래로 손가락을 뻗었다 다시 숙소쪽을 향해 손가락을 옮기고 자는 시늉을 하며) tonight, sleep here, tomorrow, go there!

아주머니 : (말은 전혀 모르시지만 어쨌거나 이해를 하신 듯 흡족한 표정으로 머리에 이고 있던 광주리를 내려 살구를 잔뜩 내밀며) @#$%^&~

우리 : 아이고~ 땡큐! 슈크리아~ 슈크리아~

 

지금 시간은 이미 너무 늦었으니 산에 오르면 큰 일 난다는 말씀이신 듯 ^^; 너무 신기하게도 서로의 말 한 마디 몰라도 뜻은 잘 통한다니까요~

 

결국 저희는 숙소부터 그마나 평지라고 할 수 있는 다리 앞까지 내일의 코스를 미리 확인합니다. 갑자기 밀려드는 엄청난 빙하천의 냉기! 옷깃을 여미며 다리 앞에 서니 다리를 건넌 뒤의 야트막한 오르막에 이어 어마어마한 지그재그 오르막길이 드높은 하늘과 맞닿아 있습니다. 헉. 저 끝이 정녕 어디란 말이당가...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제 머릿속은 심히 복잡해집니다. 심지어 슬슬 두렵기까지 합니다.

 

'김원장에게 어떤 핑계를 대야 내일 저길 안 올라가고 그냥 길기트로 빠질 수 있을까...'  

 

김원장은 이런 제 속도 모르고 앞서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룰루랄라 걸어 갑니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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