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다녀오신 분들껜 추억으로, 아직 안 가보신 분들께는 카리마바드에 대한 感을 잡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다음 세 장은 훈자 밸리로 그 놈이 그 놈인데, 도무지 어떤 놈이 제일 나은지 내 눈으로는 알 수가 없어서 머리를 쥐어뜯다 가장 편한 방법을 쓰기로 한다. 세 장 다 붙이는 것. 크크크.

 

 

 

 

밥 잘 먹고 아침 산책을 나갔다. 방향은 Ultar Meadow.

 

같은 방향인, 그러나 훨씬 이전에 위치한 Baltit Fort를 지나다가 타슈쿠르칸에서 만났던 한국인 커플을 다시 만나다.

 

"어디 가셔요?"

"울타르요. 그쪽은요?"

"저희는 그냥 산책해요 ^^"

 

사실 나는 울타르 가는 길이 험하다 들었던 터라 울타르로는 선뜻 나서지질 않았는데, 그들의 가는 양을 바라보자니 좀 걱정이 된다. 특히나 고무 밑창의 단화를 신고 비닐 봉다리에 물 한 통 달랑 넣고 올라가는 그 용기에는 그만 손을 들고 싶다(나이를 먹어갈수록 몸만 사리게 되니, 원~).

 

"저기.. 그 신발로 괜찮겠어요?"

"괜찮아요. 이러고 지금껏 잘 다녔어요"

 

더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무사귀환을 바라는 수 밖에.

 

"조심해서 잘 다녀오셔요"

 

이럴 땐 같은 한국인이라는게 오히려 좀 부담스럽다. 실제 해 줄 수 있는 건 기원 밖에 없지만 그 밖의 무언가를 더 해줘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 이 피끓는 동포애.. 그러나 어쩌랴.. 그들의 젊음을 믿어보는 수 밖에 ^^ 

 

 

울타르 가는 길에 만난 아주머님. 울타르는 수로를 따라 왼편 방향으로 틀어지는 길을 따라 직진이다. 그러나 아주머님은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는 급경사길을 따라 계곡을 건너 반대편 언덕으로 올라가신다. 그 곳엔 무엇이 있을까? 뭘 해오시려고 광주리를 이고 가시는 걸까? 단화보다도 못한 신발을 신고 나라면 몇 번을 미끄러질 것만 같은 길을 나는 듯 사라져 버리시던.

 

 

 

Baltit Fort. 카리마바드를 찾는 사람들이면 십중 팔구 방문을 하는. 그러나 우리는 십중 한 둘이기에 바로 아래 턱밑까지만 가고 돌아나왔다. 비싼 입장료 때문이었다고 말 못 해..

 

그래놓고 자위한다. 역시 멀리서 바라보는 포트가 더 멋있어, 하고. 

 

 

 

 

수로를 따라 평탄한 길을 걷다보면 이제 본격적으로 울타르로 올라가는 길이다. 아직 이른 아침이지만 햇볕 가득한 길을 따라 걷다보면 그다지 추운 줄 모른다. 그러나 이 계곡 입구에 서면, 금새 주변이 서늘해지고 팔뚝의 털들이 빳빳하게 서는 것을 순식간에 느끼게 된다. 골짜기 끝 어디선가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저 멀리 울타르 빙하가 길고 깊게 내쉬는 찬 호흡.

 

골은 매우 깊어보인다. 따로이 잘 닦여진 길도 눈길이 닿는 곳까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무섭다. 나는 이런 길이 싫다. 앞서간 한국인 일행이 오르며 미끄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지점에 이르자 서로 마지막 손인사를 흔들고 우리는 온 길을 되돌아 짚는다.

 

 

잘 갖춰입은 서양인 커플이 두 어쌍 지나가고, 그 뒤를 일본 할아버지들 몇이 중무장을 한 채 현지 가이드를 앞세워 당당히 걸어오고 있다. 저 나이에 이 곳을 오다니... 하긴 패키지로 깃발 들고 똑같은 색깔의 모자를 쓰고 카리마바드에 오는 사람들은 아직껏 일본인 뿐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의 경제력에, 그리고 분명 한참을 앞서 나가고 있는 여행 인프라만 벌써 몇 번을 부러워했는지...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식당에서 바라본 Altit 마을. 우리 계획은 오늘 이 마을을 지나 Eagle's Nest에 갈 예정이다. 독수리 둥지, 이글 네스트... 이름은 이쁘다. 막상 실체를 상상해보면 두렵지만.

 

이글 네스트 트레킹까지는 지프도 다닐 수 있는 길이 놓여져 있다고 했으니 울타르에 비하면 껌일 것 같다. 천천히 길을 떠난다.

 

카리마바드에서 작은 언덕을 하나 넘어 커다랗게 굽이지는 길을 지나 높은 계곡 위에 걸쳐진 듯 놓인 다리를 건너 푹 익은 살구들이 여기저기 떨어진 길을 따라 알티트 마을로, 그리고 그 알티트 마을 삼거리를 지나면 본격적인 이글 네스트를 향한 길고 긴 오르막이 펼쳐진다.

 

이 오르막 초반에 그늘에서 놀이를 즐기고 있는 현지인들을 몇 만난다. 무슨 놀이일까... 차가 거의 안 다니는 이 길. 길 한 가운데 작은 구멍을 파고 마찬가지로 그 구멍 지름의 기준이 되었을, 가벼운 때림에도 통통 튕겨 나가는 플라스틱 공을, 손으로 깎아낸 나무채로 조준, 굴려 넣는... 그렇다. 골프와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다. 일정 거리에서 최소타로 홀에 공을 넣는 자가 승리를 하는 룰까지 골프와 같다.     

 

 

한참을 지켜보는데 친절한 훈자 사람들이 이런 우리를 가만둘 리 없다.

 

"한 번 해 봐요~"

 

김원장이 채를 건네 받고,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골프를 치기 시작했다. 흠..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에서 골프라는 것 좀 해 보고 올 것을 ^^; 

 

 

김원장 역시 들어갈 것 같은 샷이 홀을 스치는 불운을 겪는다. Par가 몇인 코스인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4타만에 성공 ^^ 김원장의 마지막 타에 경쟁자의 개념도 모두 사라지고 다함께 기뻐해 주신다.이런 정겨운 분위기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이글 네스트로 출발! 

 

 

 

누군가 카리마바드 최고의 경치는 이글 네스트로 오르는 길에 바라본 훈자 계곡이라고 했다. 그 사람, 혹시 이 지점에서 바라본 게 아니었을까?

 

훈자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인터넷 검색을 하면 많이도 잡힐 것이다. 일단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장수 마을이라는 이야기가 일등일 것이고, 다음에는 이 사람들의 얼굴이 유럽인의 그것과 닮았다는, 알렉산더 운운 하는 이야기가 이등일 것 같다. 그럼 삼등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들의 친절함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훈자 사람들의 친절함을, 훈자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등 공신으로 꼽고 싶다. 이 사람들, 진짜 대책없이 친절하다. -_-;

 

숙소에서 나중에 아무 때나 돈을 내라거나(중국은 보증금도 받는데 -_-;), 가고자 하는 곳까지 빙 둘러 데려다주는 히치는 기본이고 맛있는 과일을 좀 사려고 해도 덤으로 이만큼씩 더 집어주고, 가게에서 큰 돈을 내니 지금은 거스름돈이 없다며 일단 물건은 다 가져가고 돈은 내일 다시 지불하란다. 대체 나를 언제 봤다고... 내가 다시 안 들리면 어떻게 하려고... 한 번은 모자를 사러갔는데 원하는 스타일의 모자가 없었다. 우리네 같으면 다른 가게를 권하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이 동네는 가게를 우리에게 맡기고 주인이 뛰어 나간다. 헉헉 거리며 돌아온 그의 손에는 내가 말한 스타일의 모자가 들려있다. 분명 동네 가게를 다 뒤져서 가지고 온 것. 상술이라고? 그런 것 구분 못하기엔 내가 너무 때가 탔다.

 

이 곳이 아닌 다른 어떤 곳에서도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이 뭉텅이로 몰려서 사는 곳을 보지 못했다. 너무 불공평하다. 이런 사람들은 좀 흩어져 살아서 친절을 전염시켜야 하는데...(이란이나 시리아 사람들은 더 친절하다는데.. 상상이 안 된다) 

 

또 하나, 여행자들에게 있어 이들의 장점은, 여성들까지도, 사진 찍고 싶어하는 마음을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이루어낸다는 것. 파키스탄의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볼 때, 외간 남성이 나타나면 얼굴을 가리거나 몸을 피하는 그들과는 달리, 훈자 지역의 여성들은 얼굴을 가리지도 않고 오히려 사진을 찍어달라 요구하기도 한다.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애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른과는 달리 아이들은 막상 찍어주겠다고 하면 이렇게 빳빳하게 긴장을 ^^ 귀엽다.

 

위의 빨간 옷을 입은 11살 먹은 여자 아이가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자기네 집에 들렀다 가라고 계속 몸으로 조른다. 서두를 것도 없는 길, 당연히 우리는 아이네 집을 방문한다. 그런데 집 안에 들어서자 웬 갓난 아기가 강보에 싸여 나무로 만든 투박한 요람에 누워있다. 

 

 

태어난지 한 달 되었다는 이 여자 아기의 엄마는 21살이란다. 언뜻 보기에는 31살 정도로 보이지만.

 

그럼 저 11살짜리 아이는 누구인가? 아기 엄마도 11살 짜리 계집아이를 가리키며 자기 딸이 아니라고 한다. 조카인가? 설마 남의 집에 우리를 데려왔을라구 ^^; 그 깊은 속을 알 길이 없다.

 

나쁜 마가 끼이지 말라고, 아기의 눈 주위를 검댕이로 칠하여 아기 팬더처럼 만들어 놓았다. 안 그래도 이따만한 눈이 더욱 깊고 커보인다. 아주 더운 날씨는 아니지만 한 낮에 은근히 경사가 심한 오르막을 계속 오르자니 땀이 나던 차였는데, 아기는 추울세라 몇 겹인지도 모르게 꽁꽁 싸두었다. 저리 두면 땀띠가 나지 않을까? 그리고는 별로 칭얼대지도 않는데 요람을 정신없이 흔들어 대는 아기 엄마. '흔들린 아이 증후군'이 생각난다 -_-; 말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다. 다들 이렇게 커오지 않았겠는가?

 

즐겁게 놀다 이별을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얼마를 걷자 이번에는 동네 아이들이 뭔가를 손에 쥐고 우리를 향해 한 목소리로 요란하게 소리를 질러댄다.

 

"벌~드! 벌~드!"

 

벌드가 대체 뭐란 말인가? 아항! Bird, 바로 새였다. 우리가 /버드/라고 발음하는 그 것. ^^; 한 아이가 작은 새를 잡은 것이다. 그리고 그걸 외국인인 우리에게 내심 자랑하고 싶었던 거였다. 김원장에게 새를 잡아보라 건네주는 아이, 그리고 그걸 조심스럽게 쥐어보는 김원장, 나 죽는다 싶었던 작은 새가 벌레먹던 힘을 다해 얼른 김원장 손을 쫀다. 아얏, 피를 보는 김원장. ㅋ 

 

 

아이들은 우리를 좀처럼 가만 놓아두지 않는다. 모두들 집에 들렀다 가라 우리를 초대한다. 미안. 우리는 갈 길이 멀단다. 한참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던 중, 저 아랫마을에서 또 한 아이가 옆의 잿빛 돌집을 가리키며 홈~ 홈~(혹시 컴~이었을까? 어쨌거나)을 울부짖고 있다.

 

"Later! Later!"

 

손짓으로 갔다 올께~ 하는 몸짓을 취해 보이지만 꽤나 멀리 떨어진 거리라 잘 전해졌을런지 모르겠다. 이글 네스트는 아직도 먼 것일까... 헥헥헥.

 

드디어 이글 네스트 바로 전 마을에까지 도착했다. 마침 이 마을 보수 공사를 벌이던 마을 청장년들이 갑자기 나타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인사를 건넨다.

 

하나 특이한 것은 아프리카 사람들은 우리에게 인사를 할 때 열이면 아홉이 이렇게 인사를 한다.

 

"Jambo(혹은 무중구~), How are you?"

 

그런데 파키스탄인들은 열이면 아홉이 이렇게 인사를 한다.

 

"앗살람 알레이쿰(혹은 Hello), Where are you going?"

 

이걸 봐도 딱 우리나라 스타일이란 말야..

 

 

오른편의 할아버지, 김원장에게 쓰고 있는 안경을 내놓으란다. 얼결에 반 장님이 된 김원장. 할아버지는 김원장의 안경을 써보더니 어지럽다는 듯 휘청하신다. 하지만 그래도 이 모습을 찍어 달라신다. 김원장이 안 보이는 눈으로 더듬거리며 찍은 사진. 확인해 보시고 좋아라~하시는 할아버지 ^^ 지금껏 만나온 이 동네 아이들의 old version 그대로이다.

 

이글 네스트에 도착했다. 근사한 호텔과 레스토랑이 있다. 밥 먹다 말고 레스토랑에서 만난 아이들과 또 한 장.

 

"어디서 왔니?"

"카리마바드에서요~"

"거기서? 왜?"

"놀러요~"

 

하긴 우리도 놀러왔다. 말똥만 굴러가도 웃는 나이가 있다던데(하긴 난 지금도 말똥이 굴러가면 웃길 것 같다. 근데 당최 말똥을 볼 기회가 있어야지) 얘네들도 마찬가지이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내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사이좋게 돌림웃음을 터뜨리던.

 

 

이글 네스트에서 바라본 훈자 계곡의 전망. 호텔 주인 아저씨의 말대로 세계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호텔 중 하나임에 틀림 없다. 내 장담한다. 파키스탄을 자주 찾는 우리나라 어떤 여행자의 글에서 신혼 여행을 이글 네스트로 오겠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직접 느껴보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분, 새색시와 여기까지 오다가 힘든 여정 때문에 부부싸움 하는건 아닐까 몰라 ^^; 아무래도 신혼 여행만큼은 바닷가가 낫지 않을까요? ^^ 

 

 

 

이글 네스트에서 다시 카리마바드를 향해 내려가는 길. 지치긴 했지만 이젠 내리막길. 얼마간 힘빠진 다리로도 털퍽털퍽 나름 잘 걷고 있는데, 웬 남자 아이 둘이 다가와 아는 체를 한다. 벌써 수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약간은 지친 터. 대충 인사만 하고 지나치려고 하는데, 이 아이, 뭔가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다.

 

아하, 알고보니 이 아이가 아까 이글 네스트를 오르는 길에 내가 Later~를 외쳤던, 내게 약속을 받았던 바로 그 아이였던 것이다. 그래, 그래, 너라면 또 너네 집에 가야지~

 

익숙한 일인 듯 외국인인 우리가 들어서자 아이 엄마는 특별한 인사도 없이 길고 긴 스카프만 샤르르~ 휘날리며 뒷모습만 보여주고 얼른 사라져 버린다. 엄마랑도 놀고 싶은데...

 

아이들이랑 몇 마디 나누며 대화를 시도해 본다. 두 남자아이가 안 닮아서 동네 친구 사이인 줄 알았더니 11살, 9살 먹은 형제란다. 막내는 5살 먹은 여자 아이고. 내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닮았다고 주장했던 큰 아이와 나머지 두 아이는 닮은 듯 안 닮았다.

 

 

말도 안 통하는 데 뭐가 그리 편안했는지, 집 안에 가구라고는 낡아빠진 고물 라디오만 있을 뿐이었는데도 역시나 아이들은 그 따위에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그 라디오를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 얼마 후 부엌에서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에 큰 아이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며 들고 온 것은 염소 젖으로 만든 수제 요거트. 염소 젖을 발효시킨 것 이외에는 아무런 첨가물이 들어있지 않은, 시큼털털이 120% 발현된 맛이었다. 감사합니다~

 

더 이상 영어 단어가 떨어진 아이에게 디지털 카메라로 그간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한참 헤벨레~보고 있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호들갑스럽게 반가워하며 소리를 지른다. 뭔데? 아하, 아까 오는 길에 만났던 11살 짜리 여자 아이, 나를 아기가 있는 집으로 이끌었던 그 여자 아이를 자기가 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후 나오는 아이들마다 내게 이름을 가르쳐 준다. 얘 이름은 뭐고 몇 살이고, 쟤 이름은 또 뭐고 몇 살이고... 그러다 잘 생각이 안나는지 어느 아이 얼굴을 놓고는 애꿎은 자기 머리만 칠 뿐이다. 그 동네랑 이 동네랑은 거리가 상당한데 거기까지 진출해서 서로 어울려 노는 모양이다. 하긴 우리도 어릴 적,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행동반경이 훨씬 넓지 않았던가...

 

디카 사용법을 대충 알려주고 우리를 찍어보라고 했다. 언제 찍었는지 타이밍을 완전히 놓친 우리 둘의 벙찐 모습. ㅋㅋ 그나마 둘이 찍은 사진이 귀한터라.

 

 

엄마가 꼭꼭 숨어버린지라 부엌에 대고 크게 소리 한 번 지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 하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하지만 아직도 귀여운 장애물들이 곳곳에 포진해있다. 밟으면 까르르 터지는 이쁜 지뢰들.

 

 

아래 여자아이는 이제껏 뛰어놀고 있다가 사진기를 든 우리를 보더니 잠시 기다리란다. 옷을 다시 제대로 추켜 입고 뒤집어 쓰고 몸가짐을 바로 하고 앉더니 처박아 두었던 노트를 꺼내어 공부하는 척 ^^; 한다. 이제 됐단다. 찍으란다. 그래서 찍었다.  

 

 

다시 알티트 마을 삼거리에 이르렀다. 이젠 완전히 지쳐서 이 삼거리에서 카리마바드까지는 차가 다니기도 한다니 그 차를 타기 위해 기다릴겸 아무데나 걸터 앉았다. 잠시 후 한 아저씨가 나타나 또 아는 척을 한다. 흑, 이젠 좀 힘들다. 그런데 아저씨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아까 우리와 함께 골프를 했던 아저씨란다. 우리가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 앞을 지나는 것을 보고 얼른 뛰어나와 따라오신 것. 어이구, 이런 실례가 있나. 우리는 못 알아봤는데...

 

"가게 구경가도 돼요?"

"그럼요. 하지만 한국의 가게들은 크고 환하고 좋을텐데 내 가게는 작고 어둡고 물건들도 좋지 않아요"

 

훈자에는 살구와 감자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며 보잘 것 없음을 쑥스러워 하시던 아저씨 가게에 막상 가보니 작고 어둡고 물건들이 좋지 않다는 건 아저씨가 우리 관점을 지레 짐작하고 말씀하신거였다. 아담하고 따뜻하고 정감있는 아저씨 가게는 뭐든지 개별 판매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밴드도 한 개씩, 쌀도 한 되씩, 샴푸도 1회용 한 개씩, 왕눈깔사탕도 한 개씩, 물을 끓일 때 넣는 티백도 한 포씩, 면도칼도 한 개씩, 세제도 소포장 하나가 판매 가능하다. 동네 사람들은 각기 다른 물건을 사러 와서는 한 개씩, 두 개씩 사들고 총총 왔던 길로 사라진다. 나도 그 분위기에 편승, 밴드 5개, 크라운 산도 삘이 나는 망고맛 샌드 2개, 1회용 샴푸 2개, 샴푸처럼 생겼지만 로션이라는, 얼굴에 바르면 피부가 부드러워진다는 1회용 로션도 한 개, 작은 치약도 하나 산다.

 

"잠깐만 기다려볼래요? 살구 말린 게 있는데 주고 싶어요"

 

생판 모르는 우리에게 가게를 맡기고 말릴 새도 없이 집으로 뛰어가시는 아저씨, 10분 정도 지나 말린 살구와 생전 처음 보는 또 다른 말린 과일(알고 보니 이게 멀베리 Mulberry)을 한 봉다리 가득 싸가지고 나타나셨다. 허걱, 이렇게나 많이.

 

아무리 사양해도 우리가 당신의 손님이라며 극구 우리에게 말린 과일을 안겨주셨다. 이런 아저씨와 기념 사진 한 장 안 박을 수 없지. 사진을 확인한 뒤 아저씨의 소감 한 마디,

 

"우와~ 내 가게가 실제보다 훨씬 환하고 좋게 나왔네요~"

 

이렇게 그냥 떠날 수 없어 뭔가를 보답하고 싶어하는 우리에게 정 그렇다면 나중에 이 사진을 한 장 보내달라신다.

 

"그래요. 그럼요. 그렇게 할께요. 그런데 저희가 파키스탄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가면 7월 말이라 빨리 보내드려도 8월 중순이나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전혀 문제 안 돼요. 언제든지 보내주기만 하면 돼요. 받으면 가게에 걸어놓을게요" 

 

그러면서 꼼꼼히 적어주시는 아저씨의 주소.

 

Rahmat Karim s/o Taifoor Shah

Village : Altit

Mohala : Sultan Abad

PO : Karim Abad

Tehsil : Ali Abad

District : Gilgit

Northern Areas of Pakistan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소. 주소를 쭈욱 읽다보니 이상한 단어가 눈에 잡힌다.

 

"s/o가 뭐여요?"

"이 동네는 따로 주소도 없고 워낙 같은 이름들이 많아서 그냥 Rahmat Karim이라고 받는 사람 이름만 쓰면 우편물이 제대로 도착하질 않아요. 꼭 누구의 아들 누구라고 해야만 하죠. 제 경우 Taifoor Shah씨의 아들(Son Of) Rahmat Karim이라고 해야 와요"

 

그렇다. s/o는 Son Of의 약자였던 것. 그렇담 이 동네 우편집배원은 동네 사람들 이름을 대를 거쳐 알겠네 ^^ 우리나라도 그렇게 굴러간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상계동의 홍길동씨 아들 홍금보군, 편지왔어요~

 

 

사족으로, 귀국 후 이 사진을 액자에 걸기 좋게끔 커다랗게 현상까지 해놓고도 파키스탄의 우편체제를 못 미더워하여 발송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차에 세계일주 카페 http://cafe.daum.net/owtm를 통해 곧 파키스탄으로 여행을 떠나실 예정이라는 아이디 보노소년님과 연락이 닿았다(http://blog.naver.com/mufflie). 이를 인연으로 보노소년님께서 기꺼이 직접 우편집배원이 되겠다 약속해 주신 바, 지금쯤 우리 Rahmat 아저씨는, 나의 얼기설기 기억력을 총 동원한 약도에 그려진 대로 가게를 찾아가실 보노소년님을 통해 위의 사진을 받아보셨을 것으로 사료된다. 내가 만약 언제고 다시 카리마바드를 가게 된다면, 그 때는 팔할이 아저씨 덕이지 않을까?

 

그런데 하긴, 계속 아저씨라 부르기엔, 그의 나이가 나와 큰 차이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

 

사족 2, 이 날 늦은 밤, 카리마바드 거리를 쏘다니다 울타르에 갔다온 한국인 커플을 다시 만나다.

 

"우와,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걱정 많이 했는데... 울타르는 어떠셨어요?"

"아이고,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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