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에 왔으니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시작해야겠죠? 오늘의 트레킹은 일명 인디애나 존스 다리 트레킹이라 불리는 Two Suspension Bridges Walk랍니다.

 

보통은 트레킹 시작점까지 차량을 이용하여 트레킹을 하고 도착점에서 걸어 돌아오거나 혹은 반대로 시작점까지 걸어 트레킹을 마치고 도착점에서 차량을 이용하여 돌아오는 방법을 권합니다. 물론 트레킹을 마치고도 체력에 여유가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갔다 걸어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가이드가 필요하다, 필요없다 말이 많지만, 없이도 많은 분들이 결국 무사히(?)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정보를 믿고, 저희도 둘이서만 단독 트레킹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처음 가보는 곳에 대한 묘한 설레임과 두려움을 복합적으로 맘에 담은 채 숙소를 나섰습니다. 처음 저희 계획은 출발 지점까지 차량을 타고 가서 트레킹을 한 후, 돌아올 때는 트레킹 코스보다 평탄할 KKH를 걸어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것이었는데요, 김원장이 저렇게 숙소 앞에 앉아 남쪽 방향으로 지나가는 차량을 기다리는데 근 20분이 지나도록 차가 안 오더군요. 그래서 결국 출발 지점까지 우선 걷고 이후 돌아올 때 차를 타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하였습니다(김원장 뒤로 아침 8시가 넘어가도록 전혀 열 기미가 안 보이는 작은 수퍼가 보입니다. 해 뜨면 일어나 일하고, 해 지면 들어가 자는 이 곳 현지인들의 생활과 비교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숙소에서 남쪽을 향해 달리는 KKH입니다. 어제 갔던 파수 빙하 방향이기도 하지요. 구름이 생각이라도 하고 그런 것처럼 산을 모양내어 덮고 있습니다. 지난 경험으로 미루어 볼때 저 구름의 라인 즈음이 해발 4,000m쯤 되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제가 찬 공기를 가르며 KKH를 따라 걷고 있습니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버전입니다.

 

KKH의 길기트(Gilgit) 북쪽으로는 진짜 차가 별로 안 다닙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건설한 도로치고 이용률은 너무 저조한 듯. 

 

아침 일찍 길을 나선 몇 현지인들이 있어 인사를 주고 받습니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혹은 환하게 웃어주는 그들의 반응에 발걸음이 좀 더 가벼워집니다.

 

 

어제 올랐던 파수 빙하가 저 골짜기 사이에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이 빙하를 지나 등장하는 커다란 오른쪽 굽이 끝이 바로 이번 트레킹의 시작점입니다.  

 

 

또 눈을 감았는데 찍었군요. 김원장은 너무 사진을 대충 찍어준다니까요 -_-;

 

 

김원장이 서 있는 이 지점에서 KKH로부터 바닥으로의 하강이 시작됩니다. KKH는 산 중턱을 쳐내어 만들었기 때문에 산 발치에 있는 마을로 가려면 보통 내리막길을 따라 꽤 내려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지점에서 산 발치에 있는 Yashvandan이라는 마을로 가려면 경사가 제법 있는 미끄러운 자갈 길을 내려가야 하지요.

 

파수 빙하 아래로 Welcome to Pasu라고 쓰여진 글자가 보입니다. KKH상의 여러 마을이 저렇게 마을 입구에 하얀 돌로(아니면 돌에 하얀 페인트를 칠했거나 -> 실제 가까이에서 확인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게 좀 더 유력한 제 가설입니다 ^^;) 엄청나게 큰 글씨를 만들어 써 놓은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어떻게 저 높이까지 올라가 저 돌들을 배열했을까 싶게 아찔합니다.  

 

Yashvandan 마을로 일단 내려가면 마을 외곽 오른편으로 형성된 작은 언덕배기를 몇 번이고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합니다. 마지막이다 싶은 작은 언덕을 내려가면 결국 강 바닥에 이르릅니다. 강변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맞겠네요.

 

 

강변을 걷고 있는 김원장의 모습입니다. 언덕과는 다르게 길이 따로이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발자국이 드문드문 보여 그 발자국을 따르기로 합니다. 문제는 이 지역이 워낙 건조한 곳이라 이 발자국들이 대체 언제 형성된 것이냐 하는 불확실성에서 오는 두려움이죠.

 

어쨌거나 그 발자국들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 순간 이번엔 다시 제법 높은 곳에 난 절벽길로 올라가야 합니다. 거의 네 발을 이용하여 그 길로 기어 오릅니다 -_-;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괴로운데요.

 

 

앗, 그러니 바로 문제의 다리 1이 한 눈에 잘 보입니다. 제 느낌으론 한참 온 것 같은데 가이드북에 의하면 Yashvandan에서 겨우 1 Km 정도 떨어져 있다네요. 흑.

 

 

 

왜 인디애나 존스 다리인지 아시겠죠? 영화 <인디애나 존스 2>를 보시면 마지막에 해리슨 포드가 현수교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장면이 있지요. 이 다리가 마치 영화 속의 그 다리 같다고 해서 일명 인디애나 존스 다리랍니다. 물론 여기서 촬영한 것은 아니고요 ^^; (그런 소문이 돌긴 하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길어 보이는 다리 앞에 서려니 잠깐 제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옵션의 부족. 건너야죠, 뭐. -_-; 그래서 건너기 시작합니다.

 

 

너무 긴장을 해서 건너오고 나서야 왼손바닥에서 피가 살짝 비치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리를 건너면서 손으로 잡았던 철사에 긁힌 모양입니다. 제 뒤를 따라 다리를 건너온 김원장 왈, 군대에서 유격훈련 받는 거랑 비슷하다고 하네요. 저는 유격훈련을 해 본적이 없어서 ^^;

 

나무 받침의 간격은 대부분 제 다리로도 무리가 없으나, ^^; 두꺼운 철사를 몇 줄씩 꼬아 만든 손잡이는 중간에 제 팔에 닿지 않게끔 넓게 벌어지는 부분이 있어 잠시 당황을 하기도 했었죠.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양 손 사용을 못 하고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려하는 한 손을 놓은 채 단 한 손으로만 잡고 건너야 했다는 ^^;

 

나중에야 알았는데 김원장은 제가 긴장할까봐 뒤에서 계속 말을 걸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이 와중에 집중 안 되게 김원장이 왜 떠드나, 했었는데 말이죠. 혹 저보다 본인이 더 긴장한 게 아닐까요? ㅎㅎㅎ

 

 

어쨌거나 큰 일 안 터뜨리고 길고 긴 다리를 무사히 건넜습니다. 이제야 숨 돌리며 다리 사진을 찍을 생각이 다 나네요. 참 길죠? 제가 이 다리를 건넜다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털퍼덕 주저앉아 자축하며 쉬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아저씨 한 분이 나타납니다. 어, 어, 어 하는 사이에 후다닥 다리를 건너와 버리십니다. 역시 현지인이군요. 넋 놓고 아저씨가 예술적으로 건너는 모습을, 그냥 한 손만 걸치는 듯 잡은 채, 우리처럼 한 발 먼저 옮기고 또 다른 한 발을 같은 칸에 옮기는 방식이 아닌, 한 발씩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아저씨가 다 건너오시자 절로 우리는 박수를 칩니다. 아저씨, 멋져요~

 

아저씨는 Yashnavdan 마을 건너편인 이 곳에서 머무르신다고 합니다. 영어를 거의 못 하셔서 왜 여기 머무시는지는 잘 ^^;

 

다리를 건너면 다시 급경사길을 잠시 올라야 합니다. 그리고 나면 넓은 오르막 평원이 펼쳐집니다.

 

 

제가 아저씨와 함께 보이는 듯 안 보이는 듯 싶은 길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이후 곧 아저씨는 왼쪽으로, 저희는 오른쪽으로 가야했는데 아저씨께서 왼편으로 같이 가서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계속 저희를 붙드십니다. 그런데 아직 갈 길이 멀어서 어디인지도 모르는 아저씨 집까지 따라 가기가 곤란한지라 사양하였습니다. 아저씨의 그 서운해하시는 표정이란. 그리고 우리가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손을 흔드시던 그 모습이란.

 

 

 

이 넓은 오르막 평원의 끝까지 올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오른쪽으로 질러 나아가면 깊은 낭떠러지를 만납니다. 산사태 토사가 쌓여있는, 그 끝까지 오른 뒤에야 오른쪽으로 넘어가는 작은 고개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김원장이 그 고개를 넘고 있습니다. 고개를 넘어서니 Ghulkin Glacier쪽의 또 다른 멋진 풍경이 저희 부부를 사로 잡습니다. 절경이 따로 없네요. 

 

 

 

고개를 넘으면 이후부터는 다시 평탄한 내리막길이 펼쳐집니다.

 

 

 

화면 구석에 잡힌 김원장의 손가락이 좀 거슬리기는 하지만 ^^; 빛도 막 반사되어 화면이 고르진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 새소리도 좀 들리고 하는, 트레킹 중 잡은 유일한 360도 화면이기에 잠시 소개해 봅니다. 화면상엔 저렇게 나왔지만 진짜 멋진 곳이거든요 ^^

  

 

내려오는 길에 점심을 먹었습니다. 비행기에서 슬쩍한, 이미 딱딱하게 굳어버린 약식을 김원장이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점심을 먹은 뒤 다시 두 번째 다리를 향해 나아갑니다. 이 내리막 평원 아랫 부분에는 Zarabad라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먼저 이 곳을 여행한 여행자들의 글로는 Zarabad를 관통해야 한다는데 마을 입구에서 마을 안으로의 진입을 시도해 보지만 도무지 길이 없습니다. 결국 길처럼 보이는 길을 따라 마을 아래까지 내려간 뒤 마을을 관통하는 길을 찾아보기로 합니다.

 

 

흑, 그런데 실수였습니다. 분명 길이라고 생각하고 내리막길을 따라 걸었는데 어느 순간,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낭떠러지를 턱, 하니 만났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낭떠러지를 따라 왼쪽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그 쪽으로는 길이 전혀 없지만 마을쪽으로로 돌아가려면 그 편이 지름길 같습니다. 엄청난 풀밭을 헤매어 이제 100m 정도면 마을에 곧 닿을 것만 같았던 순간, 또 한 번 엄청난 낭떠러지가 제 앞으로 펼쳐지면서 발길을 가로 막습니다. 이런...

 

결국 저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합니다. 점심을 먹었던 지점까지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기로 합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마음은 슬슬 두려워집니다. 마을 주변엔 밭이 있어 이 마을에 사람이 산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지만, 도무지 그 이상의 직접적인 흔적이 보이질 않습니다. 

 

어느 정도 되돌아 오르다 이쯤이면 괜찮을 것 같은 지점에서 다시 관통 시도를 하기로 합니다. 이번엔 밭들을 가로지르는 길입니다. 처음엔 무성한 밭 사이로 난 고랑을 따라 걷다가 발이 갑자기 빠져서 놀라기를 몇 번 한 뒤로는, 최대한 수확물을 건드리지 않는 방향으로, 결국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돌담 위를 택합니다.   

 

이럴 땐 정말이지, 가이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_-;

 

 

몇 마지기(?)의 밭을 헤쳐 지나고 뚫고 지나, 결국 마을 안길로 진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마을에서 다시 두 번째 다리로 나아가는 길을 묻기 위해 집집마다 기웃거려 봅니다.

 

"계셔요~?"

 

꼭 유령들이 사는 마을이라도 되는 양, 너무나도 조용한 마을입니다. 여기저기 머리를 들이밀어 보지만 결국 아무도 못 만납니다. 어쩔 수 없이 방향만 대충 가늠한 채 다시 걸음을 옮깁니다.

 

 

다행히 마을을 벗어나자 저를 괴롭혔던 낭떠러지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길이 맞는게야~ 기쁨이 절로 납니다.

 

 

마을의 한 길과 이어져있는 절벽길을 따라 계속 걸으면,

 

 

 

 

드디어 두 번째 다리를 만나게 됩니다. 두 번째 다리는 첫번째 그것보다 더 깁니다 -_-; 게다가 다리가 나란히 두 개가 놓여져 있는데, 예전 다리는 중간중간 끊어져 있는 터라 더욱 간담을 서늘케 하는데 한 몫 합니다. 잠시 내가 왜 아까 첫 다리를 건너와 이번 다리를 다시 건너가야 하는가, 차라리 처음부터 포기하는 건데, 하는 말도 안 되는 후회를 해 봅니다. -_-; (그렇다고 다시 온 길을 돌아갈 수도 없고.. 진퇴양난이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건너본 몸, ^^; 첫번째 보다 훨씬 과감하게 건너봅니다. 문제는 1/3 지점쯤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반대편에서 이 트레킹 구간 중 참으로 만나기 힘든 "인간" 두 명이 나타났다는 것이죠. 멀리서 보기에는 외국인인지, 현지인인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저희가 다리를 비틀거리며 건너는 중임을 뻔히 바라보고도 한 조각 머뭇거림없이 반대편에서 다리를 건너오는 것을 보니, 현지인임이 틀림없습니다 -_-; 으윽, 다가오지 말란 말이야! 

 

덕분에 저희는 안 그래도 출렁거리는 다리에서 중심을 잡느라 땀을 뺍니다. 중간 즈음에서 만나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맞추어보니 역시나 파키스탄 젊은이들이네요. 전혀 안녕한 상태가 아니지만, 안녕하다 서로 인사를 주고 받습니다. -_-; 그리고 또한 순식간에 우리를 스쳐 지나쳐 건너가는 사람들... 저도 이 곳에서 태어나 매일같이 이 다리를 건너면서 살았으면 이 다리쯤, 눈감고도 건널 수 있었겠죠? 그들이 부럽습니다.

 

 

마찬가지로 무사히 건너온 뒤에야 뒤를 돌아보고 사진을 찍을 여유가 생깁니다. 참 길기도 하죠? 저~ 다리 끝으로 절벽길을 지그재그 모양으로 쳐 내어 만든, 제가 조심스레 살살 걸어 내려온 계단길이 보입니다.

 

 

다 건너왔으니 하는 말인데, 보기보단 튼튼한 다리입니다. ^^; 혹 발을 헛디뎌도 옆으로 몸이 기울어 옆으로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강 아래로, 즉 수직으로 빠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_-; 흘러가는 강물의 색이 좀 더 평범한 색이었다면 그 깊이나 가늠해볼 수 있었을텐데, 이 동네 물색이 워낙 남다른지라 떨어졌을 때의 다음 단계가 상상이 안 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요.

 

 

다리를 건너면 다시 KKH 아래 있는 마을을 만납니다. 이 마을 이름은 Hussaini 입니다. Yashvandan 처럼 Hussaini에서도 KKH에 오르려면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을 좀 올라줘야 합니다.

 

오르는 길에 마을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너무 이쁘죠? 제 다리는 이제 풀려서 후들거리고 있습니다. 

 

 

Hussaini 마을 위의 KKH에서 30분을 기다려서 숙소까지 작은 트럭 한 대를 히치했습니다. 이미 차 안에는 사람들이 꽉 차 있었기에 저희는 얼른 짐칸에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자임을 안 승객들이 없는 자리를 서로 낑겨 만들어 저보고 안에 타라고 합니다. 김원장은 물론 그대로 짐칸이고요 ^^

 

이렇게 이슬람 지역에서 여성임을 존중받아 좋을 때가 있습니다 ^^ 막상 차 안에 들어가니, 동양 여성 한 분이 이미 히치를 한 상태입니다. 어설픈 영어로 서로의 국적을 물으니, 이런, 한국분이네요 ^^

 

차 안의 다른 승객들도 또 Korean이야? 하면서 놀랍니다. 파키스탄 KKH에 코리안이 넘쳐나는 이 다소 황당스러움 ^^ 그 분은 이제 소스트로 가서 중국으로 쿤제랍 패스를 넘어가실 예정이라고 합니다. 저희와 반대 방향으로 여행하시는 중이죠.

 

"저희가 그 길로 넘어왔는데 지금 산사태가 나서 차가 못 다녀요"

"안 그래도 그 소식 들었는데 길 뚫릴 때까지 소스트에서 기다려 보려고요" 

 

승객들은 Korean 말고 English로 대화하라고 우리를 다그칩니다. ^^ KKH상에는 차가 별로 안 다니는 대신 히치가 너무 쉽습니다. 무슬림들의 친절함까지 더해져 히치가 너무나 즐거운 경험이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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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을 마친 후 파수에서 카리마바드(Karimabad, 훈자)로 떠났습니다. 훈자는 KKH상의, 아니 파키스탄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관광 명소입니다. 숙소를 잡고 카리마바드 시내를 설렁설렁 걸어봅니다.

 

어디선가 저희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카리마바드 최고의 호텔에서 웬 남성들이 저희를 불러대고 있습니다. 왜? 뭐? 사진 좀 같이 찍자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사진을 함께 찍어줍니다. 이 놈의 미모는 전세계적으로 먹히는군요 ^^; (그러나 사진상으로는 오히려 제가 원해서 끌고와 억지로 사진 찍힌 사람들처럼 나왔습니다 -_-; 그러길래 긴장하지 말라니깐)

 

 

사진을 찍고나니 이번엔 저희를 호텔로 초대하겠답니다. 5분만 놀다가라고 하길래 옆에 신랑도 있겠다, 그러자 해서 최고급 호텔 구경도 할 겸, 그들의 방에 놀러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왔다고 어지럽혔던 호텔 방을 부산히 치우고 음료수를 꺼내오고 난리들 났습니다. 알고보니 라호르 근처의 유명 대학에서 MBA를 공부하고 있는 파키스탄의 재원들이었습니다. 이 곳으로 90명 정도가 버스 두 대를 대절해서 수학여행 같은 걸 왔더라고요. 외국인인 저희가 이 5명이 묵는 방에 초대된 것을 알고는 다른 방 친구들이 엄청나게 몰려와 구경을 했다는...(결국 먼저 저희를 선점한 5명이 그들을 쫓아내기는 했지만) 다소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나 뭐라나 ^^;

 

이들이 제게 묻습니다.

 

"(똘망똘망하게 바라보며) 결혼 했어요?"

"예, 했어요. 저 남자가 남편이여요"

 

흐흐, 그 실망하는 눈빛들이라니. 그럼 우리가 설마 남친/여친 사이일라구?

 

"그럼 몇 살이어요?"

"저는 34살이고 남편은 40살이지요"

"예? 정말요? 우리 또래인 20대인 줄 알았어요. 남편분은 29살쯤?"

 

진짜인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저희를 10살 정도 어리게 봅니다. 반대로 저희는 그들을 실제 나이보다 훨씬 든 것으로 생각했고요. 알고보니 제 뒤로 서 있는 회색 자켓을 걸친 다소 느끼한 남자가 25살, 그 아래 제 옆에 앉은 콧수염의 남자가 24살, 제 옆으로 앉은 듬직한 젊은이가 불과 21살, 그 옆으로 브래드피트를 닮은 남자가 24살, 서 있는 남자도 24살이더군요 -_-; 모두들 아직 미혼이고요.

 

"여자 친구 있어요?"

 

제 질문에 21살의 제일 어린 총각만 손을 듭니다(그것도 둘이라며 -_-; 다른 친구들은 그이가 바람둥이라며 놀리네요). 법적으로는 18살부터 결혼할 수 있지만 대부분 24~25살에 이르러서야 결혼을 한다고 합니다. 연애 결혼도 가능은 하지만 아직은 부모님의 반대가 심한 편이고, 대부분 정혼을 통해 결혼하게 된다고 합니다. 저희가 연애 결혼을 했는지, 중매 결혼을 했는지 묻고 연애라고 답하니 다들 온 몸으로 부러워 합니다. 아무리 이 사회의 특성이 그렇다고는 하지만 한창 좋은 나이의 그들이 자유 연애를 못 하고 있다는 게 안타깝네요. 

 

처음엔 다소 의심을 못 풀고 이들이 대접하는 콜라 한 컵도 제대로 못 마셨지만(냉장고에는 몰래 들여 온 술도 있더군요. 젊음이란, 참) 어느새 긴장을 풀어버리고 그들와의 대화를 즐기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파키스탄을, 본인들을 찾아 준 손님이라며 저녁까지 접대하겠다고 했지만 그건 왠지 절대 내키지 않는 일이네요. 우리가 그들을 위해 저녁을 사면 샀지, 아무리 우리가 외국인이래도 아직 어린 학생들의 용돈(?)을 그렇게 사용하게 할 순 없죠(한국적 사고 방식과 파키스탄의 사고 방식의 충돌입니다 ^^). 호텔 입구까지 모두들 나와 배웅을 해주며 너무도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그들을 두고, e-mail 주소를 교환한 끝에 결국 어렵게 헤어짐의 인사를 나눴습니다.

 

<이후 연락을 나누어보니 그 사이 25살의 느끼남은 어느새 MBA를 취득했더군요. 진짜 축하해줄 일입니다. 그가 원하는 좋은 직장을 꼭 얼른 구하기를 바랍니다>

 

 

저녁 식사를 한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서 하고 있는데 이번엔 다른 방 친구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와 합석을 청합니다. 아까 호텔방에서 자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를 봤다면서. 마찬가지로 밥 먹다말고 모델이 되어 여러 남학생 -_-; 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혀줍니다(즐거운 경험입니다. 제가 어디서 이런 대접을 받아보겠습니까?). 이들과 대화를 나누던 도중, 한 학생이 제게 물었습니다.

 

"종교가 뭐여요?"

"저는 종교가 없어요"

"예? 뭐라고요? 종교가 없다고요?

종교없이 이 (풍진)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죠?"   

 

파키스탄의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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