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주인 아저씨께 물어보니 외국인은 더 이상 트럭을 타고 파키스탄으로 넘어갈 수 없답니다. 결국 원래의 국제버스를 타고 파키스탄으로 넘어가기로 합니다. 좌석 여부를 알아보니 보통은 국제버스를 타고 타슈쿠르칸까지만 오는 사람들도 꽤 되기 때문에 일찍 매표를 해 둔다면 별 문제 없을 거라고 하네요. 그 말을 믿고 숙소에서 짐을 다 싸들고 타슈쿠르칸 출입국 사무소로 걸어가는 길입니다.

 

KKH, 우리는 보통 이 길을 Karakoram Highway라고 부르지만, 중국측에서는 보통 중파공로라고 부른답니다. 근데 표지판의 저 글자는 무슨 글자죠?

 

생각보다 우리처럼 중국 타슈쿠르칸-파키스탄 소스트 구간의 표를 구하는 사람이 많아서 몸싸움(?) 끝에 겨우 차표는 구했지만, 출입국 관리소에서 여권 심사를 하는데 장장 3시간 반이나 걸렸습니다. 하루에 이 국경을 넘어가는 공공 버스는 단 2대 뿐이지만, 이런저런 트럭 운전사들도 섞여있고 이 버스 승객들과 트럭 짐들까지 모두 심사한 뒤에 한꺼번에 출발시키므로 일찍 통과한다고 해도 어차피 승차장에서 기다리긴 매한가지입니다.

 

어쨌거나 승객 모두 통과! 이제 파키스탄을 향해 차는 시동을 겁니다.

 

타슈쿠르칸이 중국측 마지막 도시이고, 이 곳에서 출입국 심사가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실제 중국과 파키스탄 사이의 국경은 이 곳이 아닙니다. 이 곳에서도 4시간을 달려야 국경을 이루는 쿤제랍 패스(Khunjerab Pass)가 나오니까요. 마찬가지로 쿤제랍 패스를 넘었다고 바로 파키스탄 소스트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소스트 역시 쿤제랍 패스에서 3시간 이상 달려야 도착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달리는 구간은 일종의 커다란 비무장 지대랄까요.

 

타슈쿠르칸 출입국 사무소에서 공안이 한 명 차에 동승합니다. 이 공안은 쿤제랍 패스 직전까지 차에 동승하면서 혹시 누가 중간에 내리진 않는지, 아니면 반대로 누가 올라타진 않는지 등을 감독하는 역할을 합니다(근데 이 놈이 차 안에서 담배를 피워댑니다. 다른 애들은 아무도 안 피우는데..) 이와는 달리, 파키스탄측은 널럴합니다. 공안이 차에서 내리고, 차가 쿤제랍 패스를 넘어 파키스탄 영토로 들어오면, 차안에 타고 있던 파키스탄인들 표정부터가 밝아집니다. 이제부터 우리 땅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네요 ^^

 

어쨌거나 차는 타슈쿠르칸을 뒤로 하고 열심히 달립니다. 해발 3,400m를 넘어서자 눈보라가 일기 시작합니다. 7월 중순인데, 앞이 잘 안 보이는 눈보라입니다. 

 

노래를 부릅니다.

 

"눈보라가 휘나알리이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그 와중에도 인간은 살아있기에, 요의는 없앨 수 없기에 ^^; 차는 가끔 멈춰섭니다. 파키스탄인들도 인도인들처럼 앉아서 소변을 보는군요 *^^* 사람들이 와르르 용변을 보고 다시 차에 올라타면 공안은 머릿수 세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꼭 돼지 엄마가 아기 돼지들 머릿수 세듯이... 

 

 

 

 

 

쿤제랍 패스는 그 높이가 자그마치 4,800m에 이릅니다. 모두들 타슈쿠르칸에서 1박 이상 한데다가 대부분 이 구간을 자주 오가는 사람들이고, 버스 또한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르기 때문에 생각보다 고산증세를 호소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러나 눈보라길에서 조금 가파른 오르막을 오를라치면 버스는 힘에 부쳐하고, 그럴 때면 승객들은 모두들 하차하여 따로이 언덕을 걸어올라가야 합니다. 고산은 고산인지라 걸으려니 좀 숨이 찹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파키스탄 길기트행 버스가 저희가 탄 파키스탄 소스트행 버스와 사이좋게 달립니다. 그리고 드.디.어. 버스가 쿤제랍 패스 꼭대기에 다다릅니다. 보이는 듯 마는 듯 허술하나마 철조망을 설치하여 이 곳이 중국과 파키스탄의 국경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눈 세상이네요. 차는 쿤제랍 패스를 넘어 이제부턴 꼬불꼬불한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합니다. 자, 파키스탄으로 넘어왔으니 시계도 이젠 3시간 다시 뒤로 돌려야죠?  

 

 

그런데 작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알고보니 쿤제랍 패스 부근에서부터 김원장이 고산증을 다시 겪고 있었네요. 어제는 두통이더니, 오늘은 복통입니다. 복통이라..

 

"차 세워?"

"조금만 더 참아보고"

 

이렇게 1시간 30분 가량을 옆에서 낑낑댑니다. 그새 눈보라는 비바람으로 바뀝니다. 창밖에 펼쳐지는 경치가 절경인데 김원장은 그 경치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안타깝네요 ^^;

 

다행히 차가 Dih에 서면서 쿤제랍 국립공원 입장료를 걷습니다. 김원장, 얼른 해결하고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돌아옵니다. 그러길래 진작 차를 세우던지 할 것이지...

 

그리고 차는 다시 달립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시 끼익~ 섭니다. 어라, 왜 이런데요? 뭔 일이래요?

 

바로 앞에 산사태가 났답니다. 차에서 몇 명이 내려 산사태 지점을 살펴 보고 돌아옵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지나가기 어려워 보여요"

 

곧이어 다시 우르릉쾅쾅 돌 무너지는 소리가 납니다.

 

"완전히 막혔어요~ 못 가요, 못 가"

 

보통의 경우, 이렇게 산사태가 나고 길이 막히면 소스트에서 차량이 산사태 반대 지점까지 올라온다고 합니다. 그러면 승객들이 산사태 지점을 걸어서 넘고, 다시 소스트에서 올라온 차를 잡아타고 가는 거지요. 

 

"여기서 소스트까지는 얼마나 남았어요?" 누군가 던진 질문에,

"2 Km요~" 다른 누군가 대답합니다.

"아니야, 5 Km는 돼" 또 다른 누군가가 정정합니다.

"무슨 소리야~ 10 Km도 넘어~ 12 Km쯤 될 껄?" 점점 멀어집니다. -_-;

 

누구 말이 맞는지 모릅니다. 어쨌거나 소스트까지 거의 다 온 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 소스트에서 올라올 차만 기다리면 되지요, 뭐.

 

그런데... 반대편에서 영 소식이 없습니다. 이렇게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 본 건지 어쨌는지, 다시 차로 뛰어 들어와 소리 지릅니다.

 

"오늘은 소스트에서 보낼 차가 전혀 없데~"

 

흠냐... 그럼 어쩌라고... 그 말을 들은 운전사는 차 시동을 아예 꺼버리네요.

 

우리 부부는 차 맨 뒷좌석에 앉아있었습니다. 바로 앞에는 캐나다에서 온 커플이 있었죠. 캐나다 남자애가 저희한테 묻습니다.

 

"소스트까지 걸어 안 갈래?"

"헉, 여기서 거기가 몇 Km인 줄 알고.. 만약 12 Km가 넘으면 어떡해? 게다가 밖엔 지금 비도 오잖아. 날은 어두워지고 있다고..."

 

제 말에 캐나다 커플도 동의하는 눈치. 말이 그렇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 초행길을, 길 상황이나 좋으면 몰라, 게다가 이 비바람을 뚫고.. 말도 안 됩니다.  

 

답변은 자신있게 했지만 저희 역시 어쨌거나 이렇게 이 차 안에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소스트에서 올 차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날도 어두워지고 추워지는데다가 배까지 고파온다는 것이지요(이 차는 점심을 먹기 위해 정차하지 않습니다 -_-;) 저희는 그나마 아침도 먹었고, 비상식량도 빵빵하게 준비해 온 터라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 걱정이 안 됩니다만, 바로 앞의 캐나다 커플은 그게 아닌가 봅니다. 가방에서 중국산 컵라면을 하나 꺼내더니 어디 뜨거운 물 얻을 곳이 없는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고 다닙니다. 참 답답한 중생들일세.. 이 산 속에서 어찌 끓는 물을 얻겠다고..

 

찾다찾다 결국 둘은 컵라면을 뜯어 생라면을 나눠 씹습니다. -_-;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프네요. 시간이 흐르자 허기가 찾아온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씩 자신의 음식을 꺼내어 나누어 먹기 시작합니다. 저~기 앞 좌석에서 누군가 과자를 뒤로 보내면서 한 마디 합니다.

 

"어이~ 캐내디언! 이거 코리안이랑 나눠 먹어~"

"땡큐~"

 

주섬주섬 서로 먹을 것을 나누는 모습이 서바이벌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합니다. 일단 고맙다고 하고 살짝 배고파하는 덩치 큰 캐나다 커플에게 저희 몫까지 양보합니다. 옛다, 이거까지 다 너희 먹어라. 캐나다 남자애가 재차 확인하네요.

 

"Are you sure?"

 

그래, 슈어한다니 고맙다며 얼른 먹습니다. 불쌍해라. ^^; 

 

<우리 차 뒤로 늘어선 차량들>

 

소스트에서의 소식은 전무한 채 밤이 내려앉기 시작합니다. 차는 시동이 꺼진지 오래라 점점 밖의 온도를 닮아갑니다. 빗소리는 잦아들었지만, 계속 돌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자그르르르, 와그르르르 울려 퍼집니다. 김원장에게 장난을 슬쩍 걸어봅니다.

 

"아부지~ 돌 굴러와유~" -_-;

 

햇빛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자 어쨌거나 승객들은 하나 둘씩 잠에 빠져듭니다. 저희 역시 배낭에서 - 이전의 경험으로 이번에는 배낭을 꾸역꾸역 차 안에 들고 탔습니다 - 긴 팔 옷도 꺼내 껴입고, 바닥까지 손을 넣어 차 안에서 쓰리라 생각도 못 했던 침낭도 꺼냅니다. 저희의 좌석은 맨 뒷자리.. 달릴 때는 다른 좌석에 비해 승차감이 떨어지는구나, 했었는데 이렇게 멈춰서 있으니 다른 앞 좌석들에 비해 좌석 간격이 좁다는 것도 절로 알게 됩니다. 평소 열악한 환경에서도 잘 버틴다 자신해 왔던 저였는데, 오늘 밤 만큼은 쉽사리 잠이 오지 않습니다. 엎치락 뒤치락 엎치락 뒤치락 좁은 공간에서 열심히 움직여보지만 아무리 움직여봐야 편한 자세, 절대 안 나옵니다. 거의 5분 간격으로 닭 졸 듯 고개 떨어뜨리고 놀라 일어났다, 다시 다리를 이리 옮겨보고 저리 옮겨보고 무릎까지 꿇어봤다가 이리 몸을 틀었다 저리 몸을 틀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하다가, 문득 산 봉우리에 걸쳐진 달을! 저 밝은 달을 바라봅니다. 아니, 달이 눈에 그냥 날아와 박힙니다. 보름이 다가오고 있나봐요.

 

그리고 그 달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어차피 아무리 애를 써도 잘 수 없는 처지, 차라리 이게 훨씬 더 좋네요...

 

물론 좋기만 한건 아니고 작은 바램도 하나 지녀봅니다. 이렇게 코끝이 알싸하도록 추운데, 저 달이 빨리 좀 움직여서 저 봉우리 뒤로 싹, 넘어갔으면 좋겠다... 하고요. 달아, 얼른 좀 돌아봐라... 지구야, 얼른 좀 돌아봐라...

 

이 와중에 이 작은 미니 버스 가득 울리도록 시끄럽게 코를 고는 파키스탄 보따리 상인이 있습니다. 다행히 김원장이 저 소리에 괴로워하지 않고 잠을 청합니다. 하긴 지금의 우리 처지에, 지금 저 소리 따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사치에 가깝지만.

 

이렇게, 중국 출국 도장을 찍고 파키스탄 입국 도장을 찍기 전에, 중국도 파키스탄도 아니라 할 수 있는 곳에서, 아니, 이 세상 어디라고도 말할 수 없는 곳에서의 하룻밤을 지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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