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카슈카르를 떠나 타슈쿠르칸을 향해 갑니다.

 

중국의 카슈카르를 출발하여 중간에 1박하고 파키스탄의 소스트에 이르기 까지의 긴 길을 달리는 국제버스를 미리 예매해 두었습니다. 출발시간은 오후 1시인데 정오인 12시까지 터미널로 오라네요. Reporting time이 이르기도 하지, 한 편으로 생각하면서도 미리 터미널에 도착해 왼편 자리를 맡아 앉아가야 한다는 족보가 생각나 꾸역꾸역 12시에 맞춰 터미널에 도착합니다.

 

그간 카슈카르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파키스탄인들이 여기 다 모여있네요. 게다가 나름 일찍 도착했건만 자리가 없습니다. 아니, 자세히 살펴보니 맨 뒤에, 그래도 왼쪽으로 두 자리가 비어 있네요. 도로사정을 감안해 볼 때 맨 뒤에 앉기는 썩 내키지 않지만 자리가 그것 밖에 없으니 따로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30명 정도 타는 작은 미니버스는 복도까지 보따리 장사 아저씨들 짐으로 꽉꽉 들어차 있습니다. 김원장이 버스 내부를 살피다 아무래도 우리 배낭을 버스 지붕 위로 올려야겠다며 나갑니다.  

 

짐을 싣고 우리 자리에 앉으니 버스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떠나는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들이 눈물 바다를 이루고 있습니다. 얼굴 생김새로 미루어보아 파키스탄인들로 보이네요. 이제 오늘 떠나면 언제나 다시 만나 보려나... 말은 안 통해도 그들의 아쉬움이 절로 느껴집니다.

 

차는 12시 30분에 떠납니다. 승객들이 다 탔는지, 그냥 시간도 안 되었는데 출발해 버립니다. 터미널 출구까지 뛰어나온 배웅객들이 눈물을 흘리며 손을 열심히 흔들어 댑니다. 저한테 흔드는 것도 아닌데 저도 흔들어 봅니다.^^

 

그러나 그렇게 달리던 차가 곧 선 곳은 카슈카르 시내 외곽의 주유소였습니다. 그래, 기름 넣고 가야지. 우리나라 버스들이 운행 중 승객을 태운 채 주유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어째 제가 다니는 나라들은 운송수단에 탔다하면 주유소부터 갑니다. 주유를 마치고 이제는 진짜 타슈쿠르칸을 향해 출발~

 

그러나 곧이어 버스가 다시 선 곳은 한 허름한 카센터였습니다. 이번엔 왜 섰나 했더니 차 바퀴를 수리하려는 모양이더군요. 5분이면 되겠지, 했는데 차는 좀처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낑낑 내려서 살펴보니 단순 수리가 아니라 완전 교체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앞 바퀴 둘 다를요. 진작 좀 바꿀 것이지.

 

교환시 워낙의 바퀴를 살펴보니 허걱, 완벽하게 마모되어 홈이라고는 아련한 흔적만 남은 바퀴들입니다. 저런 바퀴로 지금껏 달려왔단 말인가? 아니면 이 길은 한 번만 왕복해도 저렇게 되나? 여러 불안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결국 차는 1시가 넘어서 재출발합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해서 1시 출발을 대충 맞췄네요.

 

 

이 버스에 백인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딱 1명입니다. 의외로 이 구간을 넘는 백인 여행객들이 안 보이네요. 사진에 머리칼만 슬쩍 나온 이 남자는 커플 여행객인데 함께 온 여인네는 아무리 봐도 인도인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중국말을 어설프나마 제법 구사하네요. 중국으로 유학 온 유럽에 사는 인도인(?)과 휴가를 맞아 그녀를 찾아 온 유럽의 남자친구가 아닐까, 드라마를 또 한 편 써봅니다. 그러나저러나 둘 다 매우 엉덩이가 커서 우리보단 앞자리지만 그들도 꽤나 좌석이 불편해 보입니다. ^^;  

 

 

베이징 시간으로 오후 1시에 출발한다고는 했지만, 신장 시간으로는 그게 오전 11시인지라, 1시간 30분 남짓 달리던 차는 점심을 먹기 위해 작은 마을에 차를 세웁니다. 그래봐야 운전사 이외 몇 명만 식사를 할 뿐, 다른 사람들은 싸 온 음식을 먹거나 주변에 선 작은 장에서 과일로 요기를 합니다.

 

 

 

 

 

 

 

 

자동차와 달구지가 함께 달리는 곳.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면서도 조화스러운 이 곳에서 30분 이상을 기다리면서 다른 승객들이 말하는 양을 귀를 세워 가만히 들어 봅니다. 일본 남성이 하나, 중국인 커플이 세 쌍, 그리고 우리 한국인 커플이 한 쌍, 그 백인과 인도인 커플이 한 쌍, 나머지는 모두 파키스탄인이거나 위구르인들입니다. 신원파악 끝.

 

차는 다시 타슈쿠르칸을 향해 출발합니다. 가끔씩 시동이 꺼지긴 하지만 그럭저럭 포장이 잘 되어있는 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한 검문소에서 내렸던 운전사가 다시 차에 올라타더니 뭐라뭐라 설명을 합니다. 잠시 승객들 사이에 소요가 이는가 싶더니 어라, 운전사가 차를 휙, 돌려 버립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주변에 앉은 이들과는 말이 전혀 안 통하고 앞쪽에 앉아있는 외국인들의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봐서는 뭔가 일이 나긴 난 모양인데... 일단 다른 사람들이 더 이상 반항(?)하지 않으니 우리로서도 별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이 버스가 어디까지 가려나... 지켜볼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 버스가 근 3시간을 다시 달려 저희를 내려놓은 곳은,

 

바로 카슈카르의 국제버스터미널이었습니다. 흑.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온 것입니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판국인지 알 길이 없어 아까 영어를 구사하던 중국인에게 다가가 묻습니다.

 

"가는 길에 산사태가 났데. 하지만 난 운전사 말을 믿지 않아. 아까 우리 차가 계속 시동이 꺼지는 거 봤지? 분명 차 상태가 안 좋아서 못 넘어가는 거야. 그저 길 핑계를 대는 것 뿐이라고"

 

오호, 이 일을 어쩐다... 하고 있는데 뒤에 서 있던 김원장이 다가와 한 마디를 던집니다.

 

"야, 큰일났다. 우리 배낭, 차 지붕 위에 실어두었는데, 차가 어디론가 사라졌어"

 

허거덩.

 

다른 배낭 여행객들은 모두 각자의 배낭을 들고 탔건만, 늦게 탔던 저희는 배낭을 차 지붕 위로 올렸는데... 그게 문제였던 겁니다. 어쩌겠습니까? 귀중품이 들은 작은 가방은 들고 있으니 혹 가방을 모두 분실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의연히 대처하기로, 즉 여행은 계속 하기로 합니다. ^^

 

"그럼 너는 대합실에서 상황 파악을 해 봐. 나는 일단 하차장에서 버스를 다시 찾아볼께"

 

김원장은 한 마디 던지고 승강장으로 나르듯 사라집니다.

 

홀로 남은 저는 다른 승객들이 어떻게 대처를 하는지 지켜볼 따름입니다. 어차피 영어도 딸리고 -_-; 매표소의 직원과 나눌 중국어는 더더욱 난감하니까요. 누군가는 그냥 총총 사라지고, 누군가는 매표구에서 씨름 중입니다. 다행히 말을 시켰던 중국인 커플과 일본인 여행객 하나가 한 팀이 되어 제게 제안을 하나 합니다.

 

"매표소에 알아보니 내일 아침 일찍 우리가 탔던 버스가 다시 출발을 한데. 하지만 난 그 버스를 믿을 수 없어. 게다가 너무 불편하고 비싸기까지 하잖아. 차라리 다른 차편을 알아보지 않을래? 너희 둘까지 하면 우리 모두 5명이니까 타슈쿠르칸까지 트럭을 한 대 빌릴 수도 있어. 그리고 타슈쿠르칸에서 다시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는 트럭을 찾으면 비용도 훨씬 덜 들거야"

"그럼 오늘 표는 어떻게 하고?"

"환불하자"

 

자연재해인만큼 환불을 안 해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표를 들이밀고 더듬더듬 설명을 하니 환불을 해 줍니다. 순순히 환불을 해 주는 걸 보니 자연재해가 아니라 진짜 우리 버스의 정비 문제였을까요?

 

그러나저러나 이 문제를 혼자 결정할 순 없습니다. 김원장을 찾아봐야죠.

 

그런데,

 

승강장에 김원장이 없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습니다. 터미널 밖으로 나가 근방 거리를 헤맵니다. 그러나 김원장이 보이질 않습니다. 아니, 이 인간이 대체 어디를 간 거야?

 

처음에는 다소 황당하고 말없이 사라진 김원장에게 화가 났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슬슬 불안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화장실에 갔다 빠졌나,

교통 사고를 당했나,

아니면 납치를 당했나...

 

우리가 묵었던 숙소로 돌아가 기다려볼까...

아니면 공안이나 대사관에 연락을 해 봐야하나...

이젠 여행이고 뭐고 다 끝났네...

 

제가 반 사색이 되어 터미널을 빙글빙글 돌며 김원장을 찾는 동안, 제 사정을 알고 중국인 커플과 일본인도 함께 김원장을 찾기에 나섭니다.

 

"걱정하지마, 곧 돌아오겠지"

 

물론 어디 잡혀간게 아니라면 곧 돌아오겠죠. 그리고도 얼마간을 더 찾아 헤매다 이젠 지쳐서 복잡한 마음으로 대합실에 덩그러니 기대어 서 있는데 어디선가 김원장이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어라, 김원장이 우리 배낭 두 개를 이고 지고 나타났습니다.

 

"뭐야~ 어디 갔었어? 말을 하고 가야지. 종알종알~"

 

옆에서 중국인 여성도 한 마디 거듭니다.

 

"다음부터는 와이프를 혼자 두고 가지 마. 와이프가 거의 쇼크 상태잖아~"

 

알고보니 김원장이 승강장에서 우리 차가 다시 되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우왕좌왕하고 있는 동안, 누군가 지프에서 내려 본인이 우리 차가 있는 곳을 알고 있으니 가방 찾는 걸 도와 주겠다고 했답니다. 김원장이 시동을 걸고 있는 그 차에 올라타면서 순간 제게 이야기를 안 했다는 걸 알았지만 금방 돌아올 것으로 예상했기에 그냥 떠났다네요. 하지만 막상 올라탄 차는 꽤나 한참 달렸고 김원장을 내려준 곳은 역시나 카센타였다고 합니다. 차에 문제가 있긴 있었던 거지요.

 

아~ 무전기를 들고 다니던지 해야지,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네요.

 

어쨌든 함께 기다려준 그들에 대한 예의로라도, 오늘 다같이 함께 묵고 내일 트럭을 구해서 타슈쿠르칸으로 넘어가기로 합의를 봅니다. 진짜 기나긴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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