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al Tour를 했습니다. 제목은 투어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거창한 관광지를 보는 건 아니고, 아루샤 근방의 작은 마을을 방문하여, 그들의 사는 모습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는 프로그램입니다. 사실 우리가 아프리카라고 하면 그 자체로 오지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파리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은 찾는 곳대로 이미 많이 물들었고, 일반 시민들이 많이 사는 큰 도시는 세상 어디나 비슷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런 모습이 아닌, 막연하게 상상해 온 그들의 모습을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느껴보고자 하는 욕심에 찾아나선 프로그램입니다.

 

이 곳은 아루샤에서 북쪽으로 7 Km 정도 떨어진 Ng'iresi 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입니다. 이름이 이쁘죠? 응이레시. 이 동네는 Ng처럼 'N+자음', 'M+자음'으로 시작하는 지명도 이름도 아주 많습니다. 응땡땡, 은땡땡, 음땡땡 따위죠. 처음엔 눈에도 입에도 안 익었는데, 어느 순간 발음을 제법 자연스레 잘 하고 있는 본인을 발견하게 됩니다. ^^; 

 

 

이런 프로그램은 다행히(?) 찾는 관광객들이 거의 없습니다. 저희 부부를 위해 가이드가 하나 붙고, 그 뒤의 검은 바지를 입은 청년은, 이 마을의 청년으로, 앞으로 가이드를 하기 위해 이번 기회에 일을 배우고 싶다고 하여 따라 붙었습니다. 이렇게 총 4명이죠. 그 청년마저 안 따라붙었으면 달랑 셋이서 이 마을을 휘젓고 다녔겠죠?

 

 

 

 

 

응이레시 마을의 모습입니다. 응이레시 마을은 와-아루샤(Wa-arusha) 부족이 살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입니다. 와-아루샤족은 우리가 잘 아는 마사이족의 한 갈래로 마사이족이 목축에 의존하여 초원을 떠도는 생활을 하는 반면, 이들은 농경으로 정착 생활을 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곳, 응이레시 마을은 아프리카의 부족들이 어떻게 정착 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지를 가까이에서 엿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줍니다. 응이레시 마을은 메루 산 자락에 위치해 있는지라 전체적으로 경사가 좀 있는 편입니다. 차를 한 대 대절해서 들어왔는데 대로를 벗어나 나타나는 오르막길부터는 내내 비포장입니다. 생각보다 상당히 올라온 터라 아루샤 시내에 있을 때보다 훨씬 쌀쌀합니다.

 

 

아줌마, 멋있으시네요. ^^ 와-아루샤 부족의 전통의상인지, 와-아루샤족을 소개하는 사진 속의 아주머님도 이렇게 입고 계시더라고요.

 

 

요것들은 넘 이쁘고요.

 

 

 

이 곳에 와 있으면, 자칫 지나치기 쉬운, 아프리카의 현 상황을 다시 조우할 수 있습니다. 제반 시설의 부재를 떠나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 저 맨 발의 아이들... 그래도 잠보~하고 손을 흔들면 여지없이 함박 웃으며 기뻐하는 아이들...

 

 

쌀쌀하던 차에 갑자기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합니다. 우쩔까나... 이 상황에서 우리의 마을 청년, 빛을 발합니다. 잠깐만요, 하고 휘리릭 사라지더니 어느 집에선가 우산을 빌려가지고 우리에게 얼른 가져다 줍니다. 비가 오니 우리부터 생각해주는 마음, 또 선뜻 우리를 위해 분명 당신 집에도 몇 개 없을 우산을 빌려주는 동네 분들의 마음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

 

제 배경이 된 가이드의 뒷 모습을 보니 그와 얽힌 사연이 하나 생각납니다.

 

아시다시피 제 영어 실력이 얄팍한지라, 누가 영어로 말을 걸면 그냥 끄덕거리기나 하지, 뭐라 대화를 열심히 나누진 못합니다. 그런데 이 인간, 제가 그런 걸 잘 모릅니다. 내내 저보고 질문 좀 하랍니다.

 

"질문 할 거 없는데?"

"그럼 내가 질문한다!" -_-;

 

 

메루산 자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주위에 산재해 있는 예쁜 폭포들을 마을 투어 중에 보여줍니다.  

 

 

현지인들이 말라이아에 걸리면 이 식물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저렇게 가운데 순을 똑, 따면 줄기 한 가운데에서 하얀 액체를 흘려보냅니다. 그 액체가 약이 된다네요. 키니네 성분이라나, 뭐라나... 키니네가 더 이상 말라리아에 효능을 보이지 않는다고 얼핏 들은 것도 같은데요.

 

 

굳이 이들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비탈진 곳을 경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무차별적인 자연의 훼손으로 산사태를 겪고, 계속되는 동일 작물의 경작으로 오히려 수획량이 급감하는 등의 시행착오를 겪은 탓인지 이들도 이제는 자연과 공생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리하여 수획량을 늘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인간승리의 현장을 걷고 있습니다. ^^  

 

 

물론 아직도 이들의 전통적인 가옥 형태인 보마(Boma/소똥으로 지은 집)에서 사는 와-아루샤족도 있지만 응이레시 마을 주민의 대부분은 나무로 만든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들 중 몇은 돌로 만든 집에서 살고 싶어 하는데 돌로 집 짓는 일이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합니다.

 

 

 

살짝 엿본 나무집이고요.

 

 

아프리카는 여기저기 핀 꽃들도 범상치 않죠?

 

 

보시는 것처럼 비탈진 논을 계획적으로 경작해 두었습니다. 줌으로 당겨보면,

 

 

빨간 치마를 입은 아주머님 한 분이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다.

 

마을과 폭포 구경을 한 바퀴 돌고와서는 마을 회관(?)에서 지역 여성회가 차려주는 점심을 먹게 됩니다. 간단한 부페식 식단은 전통적인 아프리카 음식과 서양식이 메인으로 의외로 맛이 꽤 좋습니다(모두 두 그릇씩 뚝딱 ^^;). 알고보니 스웨덴과 네덜란드 대사관의 요리 담당이셨다네요.

 

식사 후에는 1975년에 세워진 응이레시 초등학교를 방문했습니다. 기다리던 순서죠. 짜잔~

 

 

 

아이들이 낯선 이방인을 호기심과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교복을 입고 다니기 때문에 이렇게 단체로 모여 있으면 오히려 더 이쁩니다.

 

 

 

현재 응이레시 초등학교에는 900명 가량의 학생들과 교장선생님을 포함, 총 14분의 선생님이 계십니다. 학생 수에 비하여 교실의 수나 그 수준은 한참 뒤떨어집니다. 그러나 세상 어디나 그렇듯 아이들은 밝게 미소 지을 줄 압니다.

 

 

교무실에 들렀습니다. 교무실도 열악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교무실 칠판에 쓰여있는, 분명 영어이되 도무지 알 수 없는 글귀를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우리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가계부 같은 지출 내역이라네요. 설탕 몇 킬로에 얼마, 우유 몇 통 얼마, 식용유 얼마, 성냥 얼마... 뭐 이런 내용이라고 합니다. 급식 담당 선생님의 글일까요?

 

한 선생님의 책상 위에 있는 낡아빠진 교과서 중 한 권을 집어 듭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는 영어 교과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수준이... 허걱, 상당합니다. ^^; 이거 진짜 초등학생용 맞아? 아~ 아프리카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 마구 부러워집니다.

 

 

 

 

 

이 중 마침 수업 중인 한 반을 참관하기로 하였습니다. 오늘처럼 흐린 날은 많이 추운지 교실에서도 두터운 가죽 잠바를 입고 수업을 하시던 여선생님께서 반갑게 저희를 맞아주십니다.

 

 

저희가 뒤에 서 있으니 수업이 잘 안 됩니다. ^^; 어수선한 가운데 선생님께서 뭐라뭐라 하시자 수업 중이던 아이들이 갑자기 모두 벌떡 일어섭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 저희에게 낭랑한 목소리로 입을 맞춰 인사를 합니다.

 

"Good afternoon, Madam. Good afternoon, Sir"

 

이 즈음에서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딱 두 번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힌 적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첫번째 뭉클함은 바로 여기서였습니다. 교실도, 칠판도, 책상도, 걸상도, 교과서도, 노트도, 필통도, 아니 그 무엇도 제대로 갖추어있지 않은 이 곳에서, 아이들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제게 인사를 건냈을때, 철저히 무방비였던 제 마음은 한 순간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아마도 이런 감정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의 김혜자님과, <지구 밖으로 행군하라>의 한비야님이 느꼈던 그 무엇과 게 중 흡사하지 않을까 감히 짐작해 볼 따름입니다.   

 

이 곳에서는 1불만 있으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2권의 교과서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5불만 있으면 공부하는 책상을 만드는데 쓰이는 나무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10불만 있으면 이 아이들로 하여금 본인들이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어떻게 생겼는지 지도를 사서 보여줄 수 있습니다.

 

 

저를 쳐다보느라 정신없지만 ^^; 어쨌든 지금은 산수 시간입니다. 마찬가지로 칠판엔 영어로 쓰여져 있지만 뜻은 알 수 없는 아프리카 단어들과 숫자가 마구 어우러져 있습니다.

 

"무어라 쓰여 있나요?"

"닭의 다리와 소의 다리를 곱하면 얼마가 되나요? 돼지 세 마리의 다리와 닭 몇 마리의 다리를 합하면 20이 되나요?"

"헉, 너무 어려운데요? -_-; 이 아이들이 몇 학년인가요?"

"8살, 2학년이요"

 

실제로 보기엔 6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작은 아이들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질문에 입을 모아 머뭇거림 없이 대답하는 모습들을 보니 똑똑한 2학년임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수업은 그만 방해하고 ^^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마침 오후 수업이 끝난 반 아이들이 모여 종례 같은 것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열심히 귀기울여 듣고 있는 아이들이 귀엽기만 합니다.

 

그.러.나.

 

종례를 마치는 휘슬이 길게 울리자,

 

 

아이들이 우르르, 언제 얌전하게 있었냐는 듯, 집을 향해 뛰기 시작합니다. 역시나 즐거운 하교길^^

 

학교의 한 끝에서는 지금도 모자란 교실을 열심히 짓고 있는 중입니다. 그 옆에 마악, 완성된 새 교실에는 이 교실이 한 일본인의 도움으로 지어졌다는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간혹 세계 여러나라에서, 특히 흔히 못 산다고 하는 나라에서 그들의 힘을 느끼곤 합니다. 네팔 곳곳에 붙어있는 일본의 도로 건설에 대한 감사라던지, 우간다의 직업 교육 학교 설립을 도운 일본 기업이라던지... 그런 사실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시기감이랄까, 질투랄까 하는 감정들은 세계 대부분의 나라를 비자 없이 통과해대는 그들과 국경에 잡혀 서 있는 제 신세를 비교하는데에 이르러 피크를 찍습니다. -_-;

 

오늘 인터넷을 뒤져보니 반갑게도 응이레시 초등학교 홈페이지가 있네요. 덕분에 지난 추억이 더욱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http://www.megaone.com/ngiresi/index.html

 

학교 방문을 마치고는 와-아루샤족의 전통 가옥인 보마를 보러 갔습니다. 위에서 말씀 드렸듯 마사이족이 주로 사는, 소똥으로 지은 전통가옥을 보마라고 부릅니다. 닝이레시 마을에도 이제는 몇 채 안 남았지만, 어쨌든 이 보마에는 현재 6명의 한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조명 시설이 전혀 없는 탓에 갑자기 어두워져서 안을 잘 들여다 볼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어둠에 눈이 조금 익숙해지자 왼편으로, 바닥보다 높게 단을 올리고 그 위에 이불(?)을 깔아 침실을 만들어 둔 것이 보입니다. 이 보마에 사는 6명의 가족은 엄마와 5명의 고만고만한 어린 자녀들로, 아버지는 얼마 전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이 방 같지도 않은, 1평도 채 안 되는 공간에서 두 명이나 세 명의 자녀들이 잠을 청한다고 합니다. 구석에 세워놓은 쌀자루가 보이네요.

 

 

집 안쪽으로는 부엌으로 쓰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냥 집 바닥에 저렇게 불을 땔만한 공간을 만들어 두고 요리를 한답니다. 얼른 보기에 이런 식으로 요리를 하면 천정이 엉망이 될 것 같아 고개를 들어 봅니다. 그러나... 역시나 너무 어두워 꼭대기가 안 보입니다.

 

 

처음의 작은 방 너머에 조금 큰 방이있습니다. 사실 방이라고 해봐야 벽도 없고, 문도 없고, 변변한 가구 하나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 방에서 나머지 식구들이 잔답니다.

 

 

 

집 내부의 오른편으로는 얼기설기 막대기 몇 개로 가로지른 동물의 축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집 내부는 커다란 원룸 형식인데 대충 대충 칸을 쳐서 한 편엔 사람이, 다른 한 편엔 동물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소리죠. 주로 염소를 키운다고 합니다. 인간을 위한 화장실은 집안에도, 집밖에도 따로 없습니다만, 동물들은 집 안팎을 가리지 않고 싸댑니다. 상상하기 힘든, 그러나 실제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주거 환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Cultural Tour... Cultural Shock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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