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고롱고로는 제게 아주 아주 특별한 곳입니다. 4년 전에 자그마치 3년 반에 걸친 세계일주를 계획할 당시, 발음도 안 되는 수많은 세계 여러 도시나 명소들의 이름 중 <응고롱고로>만큼 뇌리에 팍팍 꽂히며 각인되는 이름도 없었기 때문입니다(처음 응고롱고로를 발음할 때의 그 버벅거림이라니 -_-;). 

 

4년 전, 계획했던 9개월 간의 1차 여행이 그리스에서 여권을 털림으로써 6개월로 조기 종결이 되었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응고롱고로는 못 다 이룬 저의 꿈을 대변하는, 주로 김원장을 마구 쪼아댈 때 쓰이는(대체 우린 언제나 응고롱고로를 가 볼 수 있는거야? 엉? 따위로), 개인적으로는 수많은 별칭으로 발음하는 혀를 즐겁게 했던(응고롱고로를 앙가랑가라, 혹은 엉거렁거러, 웅구룽구루 등으로 바꿔 부른다던지 하는 다소 유치한 ^^;) 대표 단어이자 장소가 바로 응고롱고로였습니다.  

 

응고롱고로를 가는 차 안에서 내내 김원장에게 몇 번이고 물었지요.

 

"우리 진짜 응고롱고로에 가고 있는 중이야? 지금? 진짜?"

 

그렇게 응고롱고로는 간절히 바래오던 꿈의 실현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쉽게 말해 응고롱고로 자연보호구역은 우리 백두산 천지처럼 커다란 분화구입니다. 분화구니까 분화구 내에는 고인 물도 있겠지요. 그 전체 면적이 제주도의 8배라나 어쨌다나 여하간 무지무지 큰 분화구입니다. 그 깊이도 상당해서 이 곳에 사는 대부분의 동물들은 이 곳 분화구 밖으로는 못 나오고(안 나오고?) 평생을 이 곳에서 나서 살다 죽는다고 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도 우물이 무지 컸으면 나올 생각을 안 했을라나요? 

 

 

 

응고롱고로 분화구를 내려다보고 있는 저와 김원장입니다. 응고롱고로에 가려면 분화구 밖에서 분화구를 기어올라, 분화구 가장자리에 섰다가, 분화구 안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물론 다행히도 차로요 ^^; 내려가는 길은 비포장의 급경사. 4륜 구동 차가 아니면 못 내려간답니다.

 

가장자리에 서있으려니 바람이 무진장 붑니다. 아, 정녕 이 곳이 앙가랑가라란 말이냐. 아니, 응고롱고로랬지 -_-;

 

 

이 동네에는 마사이족이 삽니다. 멀리서 봐도 몸에 두른 저 빨간색천 때문에 얼른 눈에 뜨입니다. 방목하러 나가는 마사이족들이랍니다. 방목하는 가축들이 공격받을 때를 대비하여 - 진짜 사자랑 직접 싸우려는지는 몰라도 - 막대기를 하나 들고 댕깁니다. 과연 막대기 하나로 될까요?

 

재미있는 건, 응고롱고로 내에서는 허가된 구역 이외엔 사람들이 차에서 내리지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저 마사이들은 저희가 차 안에서 목을 길게 빼고 동물들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 그냥 차 옆을 쓰윽 걸어서 지나갑니다. -_-; 그럼 저들을 사람으로 안 친단 말입니까? 어쨌든 이 곳은, 이 곳에 사는 동물들과 공유하는, 저들의 땅이 틀림없습니다.  

 

 

 

분화구 바깥의 주변 풍경입니다. 사진으로 보니 티벳스럽기도 합니다(실제로는 티벳이 훨씬 더 황량하지만) 이 왼편 길로 쭈욱가면 세렝게티가 나온답니다. 저희는 여기서 오른쪽으로 턴, 응고롱고로 안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여기 저기 마사이들의 가축들이 떼를 지어 다니고,

 

 

응고롱고로 바닥 중심부를 향해 작게 난 비탈길로 비틀비틀 힘겹게 내려가는 사파리 차량도 보입니다.

 

 

다시 봐도 멋지군요. 위에서 볼 때는 동물들이 하나도 안 보입니다. 그래도 미리부터 실망하진 마셔요 ^^

 

 

응고롱고로 분화구를 향해 내려가는 입구 초입에 마사이족이 모여 사는 부락이 있습니다. 저희 차가 도착하자 마사이들이 부락 입구에 줄줄이 서서 환영의 노래(?)를 부릅니다. 여기가 무슨 신혼 여행 오는 리조트도 아니고 ^^; 말을 들어보니 얼마간의 돈을 지불하면 부락 내부를 구경도 시켜주고, 사진도 함께 찍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구하는 돈이 꽤나 큽니다. -_-; 우리 팀의 아일랜드 아저씨가 네고를 해보지만 짤없습니다. 우리끼리 회의를 해 봅니다. 돈 내고 볼래? 그냥 갈래?

 

중론은 저 마사이는 우리가 원하는 그 마사이가 아니다, 로 납니다. 돈을 밝히는 마사이, 비록 그들의 몸은 아직 도시가 아닌 이 곳에 살고 있지만, 이미 마음은 다른 마사이들처럼 이 곳을 떠났는지도 모릅니다.

 

한동안의 실갱이 끝에 우리 팀 모두가 그렇게 내고는 안 보고 만다,로 결론을 내린 것을 알게 되자 이들은 우르르, 건성으로 부르던 노래를 멈추고 부락 안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썰렁하네요~

 

자, 그럼 응고롱고로로 가던 길을 마저 가야죠? 내리막길 들어갑니다~

 

 

 

본격적인 사파리에 앞서 달리던 차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도록 짬을 줍니다. 당연히 응고롱고로 한 가운데에 인간이 사용할 만한 인공 화장실은 없겠죠? 사파리 중에는 차에서 내릴수도 없으니 급하면 요강이라도 들고 타야 할랑가요?

 

 

팀의 유일한 여인네인 저는 이럴 때 좀 불편합니다. 화장실은 한 개인데, 주르륵 줄 서서 볼 일을 봐야할 때, 게다가 그 화장실이 거의 중국의 그 수준일 때는 불편을 넘어서 좀 우울합니다. 남자들은 화장실이 영 아니다 싶으면 바로 제게 등만 돌리면 되는 것을... 그래도 대한민국의 장한 아줌마, 꿋꿋이 볼 일을 보고 화장실을 나서고 있습니다.  

 

 

바람 열라 붑니다. 제 모습이 많이 웃깁니다. 푸하하.

 

마치 바지처럼 보이는 치마 아래 슬쩍 드러난 회색빛 옷은 내복이라는 -_-; 

 

 

 

 

 

마누라는 저런 꼴을 하고 있는데, 김원장은 멋스럽게 나왔네요. 흑.

 

 

뽀오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방목 중인 가축들이 지나갑니다. 마사이, 미워!

 

 

 

저희와 쌍안경을 나눠 사용하면서 친해진, 지금은 이름도 기억 안나는 -_-; 아이가 차 위에 올라가 있네요. 아이 아버지는 아프리카로 사파리 오면서 왜 쌍안경도 안 챙겨서 오셨을까나... 

 

 

잘 안 보이지만, 저게 바로 쟈칼입니다. 디카 줌이 2.5배에서 딱! 이라 ^^; 대신 쌍안경으로 보면, 날카로운 눈매의 쟈칼을 엿보실 수 있습니다. 사냥 준비 완료! 이제 먹을거리만 지나가면 되는데 말이쥐...

 

 

Beauty and the Beast~ 미녀와 야수 만화영화 주제곡을 내리 흥얼거립니다. 뷰티를 뷰리~라고 애써 굴리며 발음해주는 센스도 잊지 않습니다. ^^; 만화영화의 비스트가 정말 이 누우(Nu)와 무척 닮았습니다. 누우는 일명 Wild Beast 라지요. 조심성이 넘쳐 흐르는 쟈칼과는 달리 이 누우들은 가까이에 있는 엄청난 수의 동료들을 믿어서인지 보다 느긋합니다. 뭉치면 산다!

 

 

얼굴이 심하게 깁니다. 흰 갈기가 비스트도 떠올리지만, 이문세 아찌도 문득 생각나게 만듭니다.

 

 

 

하마가 물 속에서 떠올라 콧김을 내뿜을 때 나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여기저기서 울려퍼집니다. 일반 동물원에서는 아주 듣기 어려운 소리 되겠습니다. 꽤나 큰 소리가 납니다. 

 

 

만나기 어렵다는 코뿔소입니다. 코뿔소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여러 마리가 군집하여, 혹은 몇 마리가 협동하여, 그것도 아니면 쌍으로라도 다니지 않습니다. 저렇게 혼자 댕깁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코뿔소처럼 혼자서 가라, 보다 그럴듯한 어감이네요.

 

 

타조도 한 마리 있네요. 코뿔소도 타조도 혼자 있는 모습이 나름 멋지지만, 사자들이 사냥하는 모습도 아주 멋지지만(이거 한 번 보려고 사파리 차들이 계속 뺑뺑이 돕니다. 사자 봤어? 어딨어? 사자가 있다는 장소를 찾아 이동하고, 사자를 찾으면 기다립니다. 사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볼 때까지. 이 기다림의 미학 -_-;), 응고롱고로의 군계일학은 단연 이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우떼.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엄청난 수의 누우가 말을 잊게 만듭니다. 여기를 보아도 누우, 저기를 보아도 누우, 달리는 차를 세우고 그 앞을 가로지르는, 끝이 안 보이는 누우떼... 이런 것이었군요. 입은 있으되, 할 말이 없다는 것. 멋집니다. 환타스틱합니다. 장관이 따로 없습니다.

 

 

응고롱고로에서 유명하다는 동물들은 다 보고 - 이 곳에는 기린이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 응고롱고로를 떠나기 전에 귀퉁이에 마련된 야외 휴게소에서 요리사가 마련해 준 점심 도시락을 맛있게 얌냠 까먹습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시차를 두고 이 곳을 방문하여 점심을 먹기 때문에 이 곳엔 먹을 것이 풍부합니다. 이 곳에는 원숭이들에게, 기타 동물들에게 절대 음식을 주지 않도록 주의시키는 푯말을 붙여두었지만, 오히려 원숭이들이 겁없이 사람에게 다가와 음식을 강탈해 갑니다(이 곳에 있는 원숭이들은 그 크기가 매우 작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빠르고 날카롭게 울부짖기 때문에 다소 무섭습니다). 심지어 과일을 하늘로 던지면, 독수리 따위의 날짐승이 날아와 과일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채갑니다. -_-; 이거 원, 서커스도 아니고.

 

응고롱고로를 떠나 아루샤로 돌아오는 길. 국립공원을 한참 벗어나 이제는 자연보다 인공이 더 가까워질 무렵, 차들이 씽씽 달리는 도로에서 기린 몇 마리를 만났습니다.

 

사실 아프리카에서 몇 번에 걸친 사파리를 하면서, 말은 사파리지만, 그냥 아주아주커다란, 제가 감히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의 크기의, 그러나 결국은 '동물원'인, 그 내부에서 사파리를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여기가 아무리 '대자연'으로 묘사되는 아프리카라고 해도, 그 크기만 크다 뿐이지, 에버랜드 사파리와 다른 것은 그 크기와 동물의 수 정도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죠. 그만큼 아프리카는 '대자연'의 땅이라기 보담은, 이제는 이 곳마저 정신차려 보호해야할 대상들이 겨우 겨우 명맥을 잇고 있는, 인간의 방심이 상당수를 잠식해버린, 위급한 보호지역이라는 생각이 들던 차였습니다.  

 

그러나, 일명 사파리를 하는 공원 내부가 아닌, 차들이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멀뚱하니 서 있는, 가이드 아저씨의 말로는 공원 지역에서 여기까지 탈출해 온(울타리가 없으니 ^^; 인간의 관점에선 탈출일지 몰라도, 기린의 관점에선 간만의 고향행일 수도) 몇 마리의 기린을 만났을 때, 저는 아, 여기가 진정 대자연의 아프리카구나, 라고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기린에게 다가가 손을 뻗을 수 있는 그 곳(물론 기린들은 놀라 도망갑니다만),

달리는 버스의 차창 밖으로 나란히 내달리는 얼룩말 떼를 볼 수 있는 그 곳,

 

그 곳이 바로 아프리카입니다.

 

우리가 돌아갈.

 

 

응고롱고로... 저는 진짜 응고롱고로를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저는,

 

꿈을 이루었습니다.

 

꿈은 이루어집니다.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