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게이트 국립공원을 다녀와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뻗어 낮잠을 자다가 일어났더니 어느덧 오후 4시가 다 되어가더군요. -_-; 내일이면 이 곳을 떠나야하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그렇게 허겁지겁 찾게 된 곳이 아래 지도의 초승달섬(Crescent island)입니다. 섬 자체의 모양이 초승달스럽죠?

 

섬이기 때문에 배를 타고 가야하는데요, 정기 배편이 없기 때문에 초승달섬을 가려면 일단 건너편의 최고급 리조트, Lake Naivasha Country Club으로 가야합니다. 저희는 non guest기 때문에 입구에서 소액의 입장료(?)까지 내야합니다. 그리고 들어선 L.N.C.C은 아프리카내에 있지만 아프리카가 아닙니다. 드넓은 부지, 잘 가꾸어진 잔디 정원, 고급스러운 반다, 멋진 로비, 그리고 번쩍번쩍 빛나는 화장실까지... 레스토랑 밖으로 펼쳐놓은 파라솔 밑 테이블엔 삼삼오오 외국인들이 모여 한 낮의 즐거운 수다를 나누고 있습니다. 엇, 동양인들도 보이는데... 일본말을 쓰고 있군요.  

 

이 곳 프론트데스크에서 초승달섬을 가겠다고 하면 사공(?)이 딸린 자체 소유의 모터 달린 배를 빌려줍니다(왕복 비용 3000 Ksh/한 대). 돌아올 픽업 시간까지 알려주고(저희는 늦게 가서 초승달섬 문 닫는 시간인 오후 6시에 데리러 오라고 했습니다) 영수증 받고(이 리조트는 나이로비의 Block Hotel 계열사이기 때문에 Block Hotel 영수증을 받습니다) 호수쪽 제티로 나아가 구명조끼를 입으면 드디어 초승달섬으로 출발합니다.

 

 

결과적으로 늦게 갔기 때문에 더 좋았습니다. 그 넓다면 넓은 초승달섬에 관광객이라고는 딱 저희 둘뿐이었거든요.

 

초승달섬에는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육식동물이 살고 있지 않습니다. 고로 진정한 초식동물들만의 땅(낙원?)이 되겠습니다. 헬스게이트 국립공원처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진 않았지만, 초식동물 밖에 없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간단한 워킹(walking) 사파리를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초승달 섬의 오후 햇살이 마치 영화에서나 보듯 따사로운 레이저빔을 사방팔방으로 발사하고 있습니다. 피슝피슝~

 

 

초승달섬은 섬 자체의 고도도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야트막한 커다란 언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호숫가변으로는 나무도 제법 있지만 언덕 위로 올라갈수록 엄폐물이 적어져서 바람이 좀 붑니다.

 

 

 

이건 비밀인데, 초승달섬에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서, 물론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얼룩말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재미있는 시간'이란 어디까지나 저희,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본 표현입니다. 밝히건데, 얼룩말들은 절대 재미가 없었을 겁니다. -_-; 아무리 육식동물이 없다지만, 초식동물로서의 본능이 살아있는 얼룩말들인지라 오빠가 가까이 뛰어가면 반대방향으로 우르르, 이번엔 반대방향에서 얼룩말떼를 몰면 또 원래의 방향으로 우르르, 도망갑니다. 저는 그 양이 재미나서 오빠보고 이리 몰아봐라, 저리 몰아봐라 말로 얼룩말떼를 몰아봅니다. 얼룩말들은 이렇습니다. 오빠가 슬금슬금 다가오는 양을 안 보는 듯 눈치 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러 눈에는 안 보이는 그들만의 위험 거리에 이르면 한 마리가 먼저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이어서 마치 촘촘히 잘 세운 도미노처럼 서로의 움직임에 서로들 놀라 순식간에 한 몸이 되어 우르르 뛰어 도망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지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한가로이 다시 풀을 뜯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어느새 오빠가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로 다가섭니다. 그리고 그걸 또 한 마리의 얼룩말이 알아챕니다. 그리고 앞서의 행동이 반복됩니다. 얼룩말의 네 발마다 폴폴 먼지를 일으키며 우르르~

 

이 장면이 제가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가장 자유로왔다고 느꼈던 순간이자,

자연이랑 하나가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어렴풋이 느끼며 한없이 행복해했던 순간이자,

온 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얼룩말과 함께 서너살 먹은 아이처럼 철없이 뛰어다니는 신랑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순간입니다.

 

 

 

 

초승달섬은 나이바샤 호숫가의 여러 곳 중에서도 알아주는 조류 관찰 장소 중 하나입니다(초승달섬에 도착한 뒤 신랑이 쌍안경을 눈에서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호숫가나 나무 꼭대기 뿐만 아니라 저런 잔디밭을 걷다보면 덤불이 무성히 우거진 곳들이 꽤 있는데 그런 곳에도 꼭 참새만한 새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저희가 다가가면 덤불에서 나와 아주 짧은, 제 발걸음으로 한 세 발빡 정도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저희를 그 덤불 바깥 방향으로 울음 소리를 내며 유인합니다. 제가 한 발짝 그 새에게 다가서면 꼭 그 한 발짝 만큼의 거리를 두고 뛰어 납니다. 제가 두 발짝 만큼 다가서면 요란스레 울면서 다시 두 발짝 만큼 뒤로 날아가 다시 섭니다. 아마도 그 덤불에 보이진 않지만 그 새의 아기들이 살고 있는 모양입니다. 덤불들을 지나갈 때마다, 저희는 그럴 생각도 없거늘, 새들은 저희를 덤불에서 떼어놓느라 유인에 정신이 없습니다.

 

요즘 '니그로'라는 열대어를 기르면서도 느끼곤 하는데, 꼭 인간이 아니더라도 '엄마'란 존재는 그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 갑자기 서울에 있는 엄마가 보고 싶어지네요. 흑.   

 

 

 

 

 

한가로운 초승달섬 곳곳의 모습입니다. 이 섬에 오빠와 저, 단 둘이 저 많은 동물들을 거느리고(?) 있으려니 꼭 아담과 이브가 된 듯한 묘한 느낌에 빠져듭니다. 일종의 데자뷔 현상이라고 해야맞을랑가요? -_-; 그냥 확 이런 거추장스러운 옷 따위, 다 벗어 던져 버릴까보당 ^^;

 

 

초승달섬의 배쪽 호수변 모습입니다. 왜 초승달섬인지 온 몸으로 보여줍니다. 

 

 

섬은, 그 이름만으로 각자에게 고유한 감상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제게 있어 '섬'은, 고립감과 동시에 포근함을 주고, 웬지 무섭고 위협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여리고 가냘파보여서 언제곤 이 몸 가득 끌어안아버리고 싶은 그런 존재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아프리카 나이바샤 호수에도 섬이 있습니다. 그 섬에 다시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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