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메가를 떠나 키수무(Kisumu)를 향해 가던 길에 잠깐 차가 정거장에 선 사이, 창문도 잘 안 열리는 차창 밖으로 돈을 얼른 주거니 받거니 하고 구입한 일명 깨볼. -> 내가 붙인 이름 ^^

 

간식거리가 마땅치 않은 이 곳 사람들이 만들어낸 우리네 깨강정의 변형이라 보면 맞겠다. 먹고 난 뒤 입 주변에 깨알이 다다닥 붙는 것까지 똑같은, 고소함이 120% 농축된 과자. 저 알알이 박힌 땅콩이라니. 개 당 우리 돈 50원. 냠냠.

 

카카메가에서 뜨거운 샤워의 필요성을 절감했기에 케냐의 제 3의 도시라 할 수 있는 키수무로 오면서는, 필히 중급의 편안한 숙소를 골라야 함을 신랑에게 열심히 숙지시켰다. (짠돌이) 신랑도 어느 정도 수긍하는 눈치. ㅋㅋ 드디어 키수무에 도착, 보무도 당당하게 가이드북에 중급이라 나와있는 한 호텔 이름을 대고 보다보다에 올라탔는데, 흠, 보다보다가 내려준 곳은 얼핏 보기에도 음메, 기가 죽는 -_-; 으리으리한 호텔.

 

알고보니 리모델링을 해서 겉모양도 속가격도 한참 올린 모양이다. 처음 들어갈 때는 외양에 기가 죽어 서로의 옷차림을 다시 한 번 훑게끔 만들더니, 이 방 저 방을 구경하는데는 옆에서 아직 묻지도 않은 1박 가격을 불러가며 다시금 기를 죽인다. 그들의 다소 거만스러워 보이는 - 너희가 여기 묵을 수준이나 되겠어? - 표정을 보고 있노라니 짜증도 난다. 에이, 여기 안 묵어. 사실 <못 묵어>가 아니었을까.

 

대안으로 선택한 저예산급 숙소는 분명 고향으로 온 듯한 편안함은 있었지만, 저녁엔 소란함으로, 새벽엔 음식냄새로 우리의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졸졸 나와도 분명 따뜻한 샤워라 부를 수는 있는 걸? 기회가 왔을 때 밀린 속옷 뿐만 아니라, 몸도 충분히 세탁해둔다.  

 

다음 날 워낙의 목표는 이 나라의 수도 나이로비. 버스는 시간 맞춰 떠난다는 고급으로 미리 예매를 해두었건만, 약속시간 1시간이 넘도록 출발을 안 한다. 출발시간 30분 전에 나와있으라고 해 놓고는. 터미널에서 매연 흠뻑 마셔가며 2시간 정도 기다리고 나서야 나이로비로 덜덜거리며 향하는 버스. 신랑이 이 대목에서 짜증을 안 내면 신랑이 아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그 짜증은 멀미로 변한다.

 

결국 우리가 나이로비까지 갈 체력을 버스에서 모두 소진해버리고 중간에 내려버린 곳이 바로 이 곳, 나이바샤. 나이로비는 앞으로도 근 100 km 정도 남았다.   

 

 

나이바샤 호수의 이름난 배낭족 숙소, Fisherman's camp(워낙 이 동네가 버스 정류장이랄 것이 따로 있진 않지만 그래도 이 곳을 찾는데는 어려움이 전혀 없다. 일단은 나이로비를 향햐던 고속도로변에 내렸지만 그 곳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버스를 잡아타는 것도 어렵지 않고, 다시 시내에서 나이바샤 호수로 떠나는 봉고 버스를 탈 때부터 "Fisherman's camp요~" 하면 다 알아서 내려주기 때문이다). 나이바샤는 도시 그 자체로는 그다지 매력이 없지만(도시라 부르기에 조금은 미안한 작은 마을 수준), 그 곳에서 약 30분 가량 버스를 타고 외곽으로 달리면 커다란 나이바샤 호수가 나오고, 그 호수라면 이야기가 확 달라진다. Great rift valley에 떡하니 가로놓여 있는 이 호수가 조류 관찰지로 워낙 이름난 곳이기 때문.

 

사진은 워낙에 묵으려고 찾아갔던 Fisherman's camp의 반다(banda). 겉보기는 그럴싸한데 내부는 우중충하기 짝이 없다. 거미줄이 곳곳에, 쌓인 먼지. 뭐 카카메가의 그것과 비교하여 볼 때 내부 수준은 크게 나을 것이 없다. 가격은 물론 다른 숙소에 비해 저렴한 편이지만, 신랑이 멀미를 하면서 여기까지 오느라 몸이 많이 피곤한 상태라...  

 

 

결국 근처의 중급 숙소에서 자기로 했다. 키수무에서의 중급 숙소 도전에의 실패 경험도 있었고, 그 숙소에 방이 있는지, 없는지, 가격은 적당한지 등을 알아보기 위해 일단 짐을 부려두고 몸 상태가 안 좋은 신랑이 짐을 지키고, 옆 숙소까지는 다소 팔팔한 내가 다녀오기로 했다. 중급의 숙소에서 다소 말이 안 통해 - 내가 넘 영어를 잘 알아듣는 척을 한 것인지 -_-; 말을 엄청 빨리 해대는 프론트 언니 때문에 - 시간을 지체해서 오래 기다리느라 한껏 궁금해했을 신랑을 위해 열심히 신랑에게로 뛰어오고 있는 내가 사진에 찍혔다.

 

Fisherman's camp는 호수가에 바로 붙어 인접해 있는데다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자체 부지가 매우 넓으며 반다 뿐만 아니라 텐트치고 숙박도 가능하다. 그리고 또한 그런 여러 잇점 때문에 트럭킹(trucking)하는 단체 인원이 잘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고로 다소 소란스러울 수도 있단 이야기. 아프리카 트럭킹에 대해 이후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오려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반대하고 싶다. 내 개인 성격의 문제이련가.

 

 

 

보는 것처럼 부지 내를 저런 황새가 그냥 제 집인양 어슬렁어슬렁 돌아댕긴다. 우리 사진기가 후져서 줌 기능이 형편없는지라 그 실제 크기를 짐작하기 힘드리라. 대략 1m 정도 넘는 큰 황새들인데... 대머리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기를 물어다준다는 황새 생각이 오버랩된다. 내가 슬슬 가까이가도 내 존재가 그다지 위협이 안 되는 모양이다. 그저 펄쩍, 펄쩍. 몇 발짝씩 앞서는 게 전부다. 좀 날아봐라. 네가 새라면.

 

황새 말고도 이름모를 새들이 참 많이도 날아다닌다. Fisherman's camp내 카페를 찾아가 야외 테이블에 앉아 쥬스를 한 잔 마셨다. 어김없이 날아오는 작은, 손바닥 위에 서너마리는 너끈히 올릴만한 빨강, 노랑, 파랑새. 테이블 옆에서 뾰로롱 거리며 콩고물을 기다린다. 조금은 비현실적인 색깔의 새들을 보고 있으려니 새삼 여기가 진짜 아프리카로구나, 싶다. 

 

아, 그러고보니 물총새도 봤다. 실제로 내 눈 앞에서 날고 있는, 거의 공중에 서있다 싶은 모습의 물총새는 생각보다 많이 작았다. 날갯짓은 TV를 통해 보던대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공중 부양한 채로 고개를 적당한 각도로 숙인채 물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 쏜살같이 물 속으로 다이빙! 그리고 물고기를 낚아채 물고 다시 공기 중으로 탈출! 그 모든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이루어진다. 멋진 놈.

 

 

올해로 서른 넷이 된 나. 사진의 표정은 34살이 아니라 3.4살 못지 않다. 나이는 어디로 먹었나. 어쩔 수 없이 그간 별 필요성을 못 느끼던 모자이크 처리를.

 

Fisherman's camp에는 안 좋은 숙소만 있는 줄 알았더니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메인이라 할 수 있는 호수가쪽 숙소를 등지고 돌아서서 작은 차로를 건너 맞은 편의 언덕을 오르면 그 곳에도 이 곳 소속 반다들이 몇 채 더 있다. 그 중 한 고급 반다는 울타리에(보통의 반다에는 울타리가 없다. 경계가 없으니 모두 다 내 땅 ^^) 심지어 개까지 빌려주는 모양이다. 우리가 다가감을 느낀 개들이 한참 전부터 짖어제끼더니, 정작 내가 울타리로 다가서서 철조물 사이로 손을 내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침을 질질 흘리며 내 손을 적신다. ㅎㅎ 정에 굶주린 자식들. 그런 내 모습을 울타리 너머 저 깊히 통유리로 처리된 거실의 소파에 앉은 나이 지긋한 백인 부부가 푸근하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안에는 페치카도 있을까?

 

그 다음 반다에는 수영장까지 있더라. 그 정도면 반다가 아니라 빌라다. 리조트급.  

 

 

높지도, 그렇다고 아주 낮지도 않은 언덕에 오르니 저멀리 보이는 호수 너머로 벌써 해가 지고 있다. 지금 보니 바지 상태가 아주 열악하다. 울 엄니가 보시면 혀를 차시겠네. -_-; 매번 신경 좀 쓰고 다니라고 하시는 분인데. 근데 나는 저게 좋다. 편하다.

 

 

다소 우스꽝스럽게 생긴 저 나무의 정식 명칭은 아마도 Euphorbia ingens가 아닌가 싶다. 수없이 갈라져나가는 가지 속에 유액이 풍부하다고 한다. 바오밥 나무와 더불어 아프리카에서 자주 눈에 뜨이는 나무 중 하나이다. 그나마 마음이 편해지는 저렴한 반다(남의 집)에서 제 집인양 앉아있다. 다음에는 호숫가의 반다도 좋지만 언덕 위의 반다도 고려해 봐야겠다.

 

몇 장 사진 찍고 언덕 위를 뱅글뱅글 돌며 놀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해가 져버려서 내려올 때는 약간 고달펐다. 다행히 카카메가에서 고장나 버린 랜턴을 키수무에서 새로이 공수했기 때문에 - 그것도 엄청난 크기의 made in china로(왜 이 동네엔 작은 랜턴이 없는가!)  - 평소보다 덜 미끄러지고 내려올 수 있었다. 바지가 이미 더러운데 좀 더 더러워진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참고 지도 http://www.webkenya.com/eng/safari/gif_map.php?tags02=naiva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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