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메가에서는 두 번에 걸쳐 트레킹을 했습니다. 저희 가이드를 맡은 유니스의 표현에 의하면 카카메가 트레킹에는 크게 short 와 long 이 있습니다. 다시 이 두 카테고리가 새끼를 치고요. 저희는 short 한 개, long 한 개(트레킹을 '개'로 세려니 좀 이상하네요)를 했습니다.

 

 

도착한 첫날, 1박 2일의 짧은 여정으로 카카메가를 방문했기 때문에 짐을 숙소에 던져놓기가 무섭게 short trekking을 하기로 합니다. 명색이 트레킹인데 카카메가에서는 따로이 몸을 옮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숙소에서 몇 발짝 걸어나가기만 하면, 트레킹이 시작됩니다. short trekking은 숙소 뒷 편의 무성한 숲 속으로 사람 하나 지나다닐법한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부터 그냥 자연스레 트레킹이 됩니다. 그야말로 자연 그 자체죠. ^^ 

 

숙소 뒷 편의 작은 길의 초입에서는 몰랐는데 어느 정도 유니스 꽁무니를 따라 숲으로 깊히 들어가니 생각보다 작은 샛길이 사방팔방으로 많이 나있습니다. 우간다 침팬지 트랙킹을 할때처럼 혹 유니스를 잃어버리면 어느 방향으로 직진을 해야하나, 잠시 생존 본능 레이다를 돌려봅니다. 음... 또 감이 망가집니다.  

 

유니스는 저희와 함께 걸어가면서 이런 저런 나무와 각종 식물들에 대해 설명을 해 줍니다. 이 나무는 뭐고, 어디에 쓰고, 어떻게 번식하고, 수령은 어떻게 되고... 끝이 안 보이도록 키가 큰 나무도 있고, 몇 명이 둘러 안아도 뱃살을 너끈히 드러낼 두꺼운 나무도 있습니다. 다만 제 머리 속의 8 bit 컴퓨터가 번역기를 한 번 돌리고 나면 메모리가 사라지는 놀라운 기능을 갖고 있는지라 -_-; 그 이름과 사연을 다 나열할 수 없네요. 

 

하나 기억나는 것은 수많은 민간요법에 쓰이는 약초들 중에 목이 아플 때 현지인들이 약 대용으로 쓰는 풀에 대한 것인데요, 유니스에게 신랑의 직업이 목 아픈 환자들을 전문으로 보는 것이라 이야기를 안 했기 때문에 유니스의 장황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권유에 따라 잎을 따서 잘근잘근 씹어봅니다. 처음에는 씁쓰름한 맛이 나는가 싶었는데 놀랍게도 연이어 입안 가득 민트향이 퍼지네요. 꼭 목캔디를 빨아먹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우리 이거 왕창 따가야겠다. 환자들 오면 약 대신 이 잎을 씹으라고 하는거야."

 

저는 항상 엉뚱한 제안으로 신랑의 실소를 공짜로 삽니다.

 

 

이쯤에서 유니스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 개인 가이드를 대동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니스는 그 여러 명의 가이드 중에서도 단연 기억에 남습니다. 위에서도 밝혔듯 제 엄청난(?) 기억력에도 불구하고, 유니스라는 이름 자체를 아직껏 기억하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겠지요. 우선 유니스는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여자입니다.

 

그간, 비단 아프리카 뿐만 아니라, 제가 만났던 가이드 모두가 남자였기 때문에, 저와 동성인 유니스는 제게 특별한 존재일 수 밖에 없었죠. 그 점은 유니스에게도 다른 이유로 마찬가지였습니다. 왜냐면, 유니스에게 우리는, 살아 평생 처음 만난 한국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유니스는, (우리가 만난 다른 여러 아프리카인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이 어디에 붙어있는 나라인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일본은 알아 - 일본 학자들이 학술상의 이유로 카카메가에 들린 적이 있답니다 - 제 설명으로 인해 일본 옆에 있는 나라로 스스로 셋팅을 시킨 모양입니다. 그 외에도 유니스가 한국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에는, 한국인은 그럼 어떤 언어를 쓰느냐가 있습니다. 한국인? 물론 한국어를 쓴단다. 그럼 일본어와 다른가? 그럼~ 많이 다르단다.

 

short trekking을 떠나기 전, 유니스가 우리에게 카카메가의 개괄에 대해 설명할 때, 저희의 표정을 보고, 아무래도 얘네들은 일본인이 아닌 것 같은데... 라 여겼다고 털어놓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그간 여러 일본 학자들과 일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야의 전문가들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설명을 도통 알아듣는 듯한 표정이 아니었다고 하네요. -_-; 그런데 저희가 설명을 듣는 태도가 뭔가를 알아듣는 듯한 표정 ^^; 이었기에, 일본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답니다. 저야 뭐, 이 살아있는 표정연기가 고맙죠. 역시 여행을 하면 할수록 경륜도 무시 못합니다. ㅎㅎㅎ 이제 어디 가도 밥은 안 굶겠죠.

 

 

어두운 숲 속을 유니스 꽁무니만 졸레졸레 따라 다니다가 갑자기 눈부신 햇살을 내리받으며 탁 마주친 엄청난 크기의 차밭입니다. 카카메가가 원시열대우림보존지역이란 말씀은 드렸죠? 하지만 이 곳에서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온 주민들에겐 그저 먹고 살아야하는 삶의 터전일 뿐이죠. 케냐 정부가 아무리 법 운운 해보았자 이들은 먹고 살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고 숲을 훼손시킬 수 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결국 숲을 위해, 그리고 이들을 위해 그 대안으로 차밭을 조성하게 되었고, 마을 주민들은 이 차밭을 통해 일자리와 안정된 수입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죠. 실제로 카카메가 주변 차밭에서 마을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차를 따고 커다란 자루를 채우고 무게를 재고 수매를 하는 모습을 수이 볼 수 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찻잎들이 그만큼이나 기특합니다(그래도 숲 속 길을 걷다보면 몰래몰래 나무를 해가는 주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

 

또한 short trekking에서는 훼손된 숲이 다시 스스로 복구해과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실제 심하게 훼손된 지역으로 가서 그 지역이 어떻게 복원되고 있는지, 주변의 자연환경을 비교 확인해 보는 것이죠. 몇 시간이면 간단히 이루어지는 훼손에 비해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그래도 숲은 깊은 침전의 시간을 지낸 뒤 가장자리부터 안쪽으로, 여러 이름모를 풀들로부터 시작하여 관목, 아교목, 교목 등을 거쳐 천천히 천천히 잃었던 제 모습을 찾아갑니다. 현장을 보고 나니 산 교육이 따로 없다고 작은 나뭇가지 하나 범상치 않네요.

 

 

깊고 푸른 밤이 지나고(카카메가에서의 이 밤에 대해 추후 이야기를 다시 할 기회가 있기를!), long trekking을 하기로 한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햇살도 따뜻하고, 공기는 적당한 습기와 재잘거리는 새소리를 한껏 머금고 있네요. 뭐 가끔, 원숭이가 뜻을 알 수 없는 톤 높은 소리로 울부짖기도 합니다만.

 

오전 일찍 시작하여 오후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기 전에 끝나는, 4~5시간 가량의 프로그램입니다. 숙소에서 약 5 Km 정도 떨어진 Lirhanda Hill 까지 다녀오는 것이 그 내용인데요, 유니스가 안내(?)해 준대로 수풀을 헤치며 걷다보면 많은 종류의 원숭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아무리 긴꼬리 원숭이라고 해도 다 그 놈이 그 놈 같은데, 유니스는 꼬리 색깔이나 모양만 쓰윽~ 보고도 그 긴 학술명을 -_-; 다 줄줄 읊어댑니다. 왜 monkey를 그냥 monkey라고 안 부르는 겁니까!

 

 

언덕 위에 올라 장관으로 펼쳐진 카카메가 숲을 조망 중입니다. 신랑은 카메라를 의식한 듯 잠깐 돌아보는데 이에 전혀 개의치 않는 덩치좋은 유니스가 보이네요. 저는 역시나 미끄러지며 올라다니는데, 유니스는 맞지도 않는 작은 신발을 신고(발살이 삐져나오는 신발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그것도 굽이 다 닳아빠진 구두를 신고 이런 길을 날아댕깁니다. 창피해라.

 

아침부터 유니스가 랜턴을 챙기라고 했는데 하필 카카메가에 도착하자마자 불이 안 들어옵니다. 건전지 살 곳을 물으니 당연히 없답니다. 랜턴을 빌릴만한 곳은 있느냐 물으니 역시나 당연히 없답니다. 어쩔 수 없지, 뭐. 유니스의 체념한 듯한 표정을 이해하지 못하고(날이 밝았는데 왜 랜턴이 필요하다는 건지, 아니면 그 만큼 울창한 숲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인지...) 트레킹을 따라 나섰는데, 이 언덕을 얼마간 오르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산 허리에, <박쥐 동굴>이 있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동굴 입구까지 저희를 데리고 간 유니스가 입구에서 다시금 묻습니다.

 

"랜턴 없는데 들어갈래?"

"없어도 들어갈 수는 있어?"

"물론이지"

 

나중에 그 물론이, 그녀에게만 물론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_-;

 

환한 동굴 밖과는 달리 동굴 안은 입구부터 그 총 길이를 가늠할 수 없을만큼 어두컴컴하고 한 발짝 한 발짝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밝음은 그만큼 뒤로 물러섭니다. 폭도 제가 양 팔을 쫙 벌릴만큼 여유를 두지 않았습니다.

 

"조심해. 미끄러워"

 

아닌게 아니라 바닥이 무척이나 미끄럽습니다. 발 밑으로 무언가 철퍽철퍽거리는 것이 웅덩이가 곳곳에 있는 모양입니다. 유니스는 미끄럽다고 주의를 주면서도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안 보이는 동굴을 앞장서서 잘도 들어갑니다. 아무리 유니스의 발자국을 따라잡으려고 하지만 결국 야맹증에 시달리다 풍덩, 물 웅덩이에 발을 담그고 맙니다. 으... 다 젖었어.

 

이왕 버린 몸, 이제는 발 아래 물 웅덩이는 신경을 끄기로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미끈덕거리는 바닥에 중심을 잘 못 잡습니다. 중심을 잡기 위해 동굴 벽면에 손을 대어봅니다. 역시나 기분 나쁜 축축한 미끈거림이 손바닥에 와 닿습니다.

 

'이게 뭐지? 별거 아닐거야. 원효대사를 떠올려야해. 일체유심조라 했거늘...'

 

저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니스가 한 마디를 날려 저의 평정심을 순식간에 와장창 뒤엎습니다.

 

"여기 박쥐 똥이 많아"

 

그 말에 좌절하던 어느 순간, 소름끼치는 소리가 제 귓전을 빠르게 스치며 지나갑니다. 으윽,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후드득 날갯짓 소리가 양 귀를 빠르게 울립니다. 이쯤되면 큰 소리로 엄마를 절로 찾게 됩니다. 꺄아악~

 

설상가상으로 제 소리에 놀란 나머지 박쥐들이 우르르~ 우리 일행을 스쳐 지나 날아갑니다. 저는 거의 미치기 일보직전입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상상에 의한 공포가 보이는 실제(이 부분에선 실재?를 써야 맞을랑가요?)에 의한 공포보다 더 크다는 것을. 결국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가 아닐까요.

 

여하튼 저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유니스와 신랑을 닥달하여 돌아나옵니다. 뒤돌아서니 까마득히 멀리보이는 입구의 햇살...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모르게 간담이 서늘해진채로 다시 햇살을 맞으니 아, 이렇게 좋을 수가.

 

지금 와 다시 생각해보니 당시 진짜 두려움을 겪었던 존재는 제가 아니라 박쥐들이었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얼마나들 놀랐을까요... ㅎㅎㅎ  

 

 

언덕의 정상에 올랐다 다시 내려오는 길입니다. 저 드넓게 펼쳐진 숲 속의, 이름도 붙일 수 없는 길을 따라 언제고 꼭 the longest trekking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합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이들의 성별을 구분하는 일은 이제 식은 죽 먹기라고 할 수 있죠. 치마를 입었으니 아가씨들입니다. 아니, 아가씨라 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의 이들은, 우리로 따지면 교복을 입고 한참 학교에서 공부할 나이일텐데, 책가방 대신 자신들의 키를 훌쩍 넘는, 거의 두 배에 육박하는 나뭇짐을 해들고, 도무지 근방에 마을이라곤 보이지를 않는데 도대체 어디까지 이고 지고 걸어 가야하는건지 감이 오질 않습니다. 앗, 그러고보니 저 나무들을 어디서 해 온거죠? -_-; 보통은 어두컴컴한 숲 속에서나 개나리 봇짐처럼 나무를 해가는 이들을 만났었는데, 저들은 훤한 대낮에 대로(?)변에 떡하니 나타나있으니 하는 말입니다.

 

 

냐마초마(nyamachoma)군요. 염소고기를 꼬치에 꿰어 숯불에 구운, 이 동네에선 popular한 음식입니다. 물론 저 서빙의 형태는 그럴싸한 양식당에서 주문을 했기에 보다 깔끔해보이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더래도 이들 대부분 역시 감자튀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식단을 가지고 있답니다. 워낙의 아프리칸 사이드 메뉴는 아니었을텐데 말이죠. 냐마초마의 맛은 당연히 아주 좋습니다. ^^ 그런데 신랑은 별로 잘 안 먹더라고요. 그러고보니 그리스에서 먹었던 수블라키와도 일견 비슷해 보입니다(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수블라키는 그리스 대중적인 전통요리 중 하나입니다). 그리스를 여행할 때도 저는 수블라키가 맛이 좋아 종종 시켜먹었는데(특히 델피에서와 아테네에서의 그것은 지금도 입에 침이 고이게 합니다) 신랑은 그 때도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 뭐,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죠. 


참, 이쯤에서 카카메가에서 돌아나올 때의 작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아야겠군요. 카카메가를 오가는 길의 가장 큰 마을이라 할 수 있는 시냐루에서 저희가 자전거 보다보다로 숲까지 들어왔었죠. 이 두 자전거 보다보다 아저씨들이 저희가 되돌아갈 때에도 무척이나 저희를 태우고 싶어했었습니다(어디나 경쟁 사회인지라). 들어오는 내내 저희를 꼬시더니 결국 저희에게 그럼 다음 날 몇 시쯤 데리러 와라, 약조를 받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다음 날 약속된 시간에 못 미쳐 숙소 화장실 창문 밖으로 그들이 여지없이 그 낡은 자전거 보다보다를 끌고 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미리 와 기다리고 있는 그들이 조금은 부담스러워 서둘러 채비를 갖추고 카카메가를 뜨기로 하였습니다. 저희는 자전거에 올라타는 순간에도, 아니 자전거를 타고 한 5분쯤 달리던 그 순간에도 전혀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갑자기 맞은 편에서 한 대의 보다보다가 저희를 향해 열심히 달려오더니 끼익~하고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저희를 향해 뭐라뭐라 항의를 하네요.

 

아하, 알고보니 나중에 나타난 그 보다보다 아저씨가 전 날 우리를 태워다 준 보다보다 아저씨 중 한 분이었던 것입니다. 처음 저희가 시냐루 마을에서 무관한 두 분을 저희 맘대로 골라 탔고, 그 들 중 한 분이 개인적으로 친한 다른 분을 예정시간보다 일찍 데리고 와 저희를 태웠고, 워낙의 다른 한 분은 약속 시간에 맞춰 저희의 숙소를 향해 오던 중에 이런 황당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저희가 워낙의 두 분의 얼굴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기에 - 핑계를 대자면 서로 마주 볼 기회가 몇 분 없었기에(자전거 뒤에 실려 오느라 구멍이 숭숭 난 등판의 겉 옷은 기억이 납니다만) - 벌어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저희를 태운 보다보다 아저씨 두 분은 절대 저희를 내려놓을 기세가 아니었고, 늦게 나타난 원래의 그 분은 저희를 따라오며 빨리 옮겨타라 성화였고, 저희는 그 세 분의 서로 싸우는 소리에 기가 죽어 깨갱,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워낙의 그 분이 저희를 태우기 위해 시냐루에서 여기까지 빈 차로 달려왔다는 것이었죠. 그 길이 멀기도 멀지만, 도로 상황조차 좋지 않은지라 그 분은 오직 저희를 태워야겠다는 일념으로 종아리 근육을 힘들게 세워가며 페달을 밟아 오셨을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저희를 태운 두 분은

 

"괜찮아. 쟤가 늦게 나타났잖아. 너희는 이걸 타고 있으면 돼."

 

라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각자 한 대의 자전거 뒤에 실린 저희끼리 소리를 질러가며 나눈 대화의 결론은, 시냐루에 도착하면 늦게 온 그 분께도 응분의 보상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는데요. 한동안 투덜거리며 저희를 따라 빈 자전거를 굴리던 그 분이 어느 순간 뒤로 처지며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다른 분을 태우러 간 거라면 정말 좋겠는데요.

 

그 때는 참 제 자신이 민망스러웠습니다. 아직도 흑인의 얼굴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죄책감이 가장 컸던 것은 물론이고요(이후 더욱 열심히 그들을 구분해내려 애썼던 저입니다 -_-;). 지금까지 마음에 가장 걸리는 일 중 하나랍니다. 어떻게든 자전거를 세우고 그 분께 얼마라도 드렸어야 하는건데...

 

아무쪼록 2006년 한 해, 그 분들 모두 대박 나시기를, 그래서 오토바이 보다보다로 업그레이드하시는 한 해 되시기를, 이 자리를 빌어 다시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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