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은 끝이 없어 이러다 올해를 훌쩍 넘기겠구나, 하는 자책에 서둘러 사진과 짧은 문장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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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피 폭포(Sipi falls)는 우간다 관광 안내 책자 겉표지를 장식할 만큼, 우간다에서는 아름답기가 첫째로 손꼽히는 폭포입니다.

 

 

캠프 사이트(Camp site)인 'The Crow's Nest'에서 바라본 시피 폭포의 전경입니다. 저희는 음발레(Mbale)에서 묵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멋진 이름을 가진 이 캠프 사이트에서 잘 생각이 없었습니다. 당일치기로 이 곳에 와서 눈 앞에 펼쳐지는 시피 폭포 전망을 바라보며, 아, 이 곳에서 하룻밤을 보낼 것을... 잠시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이 제 1 폭포입니다. 막상 이 곳에 와 보니 폭포가 세 개가 있더라고요.

 

이 캠프 사이트에서 폭포 트레킹을 안내해 줄 가이드를 구할 수 있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에 우선 이 곳부터 들러본 것인데(하지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마을 청년들이 서로 자신을 가이드로 쓰라며 호객합니다) 폭포 트레킹 뿐만 아니라 그 밖의 근교 트레킹을 종류별로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 중 3개의 폭포를 모두 묶는 트레킹을 선택 하였는데(8 Km, 약 4시간 소요), 가이드 비용으로 1인당 3달러 정도 들었습니다.


 

메인(main)인 첫번째 폭포로 가는 길입니다. 이 곳은 음발레에서 북쪽으로 55 Km 가량 떨어진 Mt. Elgon(4,321m)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지라 지대가 꽤 높은 편입니다. 일단 폭포로 가려니 내리막길부터 나타나네요. 앞서 가는 분이 저희 가이드가 되어주신 분입니다. 가까이에 폭포가 있는지라 대기 중 습도가 높아 제대로 포장되어 있지 않은 길이 매우 미끄러워 안 그래도 중심을 잘 못 잡는 제가 쩔쩔매며 내려가는 중입니다(김원장은 왜 이런 다소 민망한 사진을 찍었는지 -_-;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민망한 사진은 계속 이어집니다).

 

 

저는 맨 몸으로도 비틀거리는데 부끄럽게도 저만한 콩짐을 짊어진 아이가 그 길을 성큼성큼 걸어올라오고 있더군요. 정말이지 이럴 땐 제가 한심해집니다. 이 아이는 그래도 신발을 신고 있지만, 이 길에서 만난 대부분의 아이들은 보통 저만한 짐들은 보통으로 들고 이고 나르며 일하고 있었는데 글쎄, 모두들 신발이 없더군요. 맨 발로 다니다 뾰족한 것에 찔리는 일이 없기를 바랄 수 밖에요. 

 

 

어느새 한 편으로 전망이 뻥! 뚫렸습니다. 시원합니다. 저 멀리 산 중턱을 개간한 흔적이 보이네요. 어디나 사람이 사는 곳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나 봅니다. 좁은 길을 따라 계속 폭포를 향해 걷고 있습니다. 캠프 사이트에서 바라볼 때는 그다지 멀지 않아보였는데 역시나 제 발로 걸으려니 거리가 제법 길게 느껴집니다.


 

 

막상 폭포 앞에 서니 물방울이 너무 많이 튀어서 사진이 제대로 안 나왔습니다. 이렇게 적당히 떨어져야 그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주는 폭포가 조금 얄미워지려고 하네요. 역시나 찾아가는 길에서 엿볼 수 있듯이 폭포 역시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잠시 폭포 아래 서서 아름다운 폭포의 모습을 감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폭포 꼭대기에서 웬 사람이 로프를 타고 내려옵니다. 아, 저 은발의 백인 아저씨가 저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알고 보니 맨 꼭대기 위에서 현지인들이 이 로프를 힘들게 붙들고 아저씨의 고상한 레저(?)를 위해 줄을 내리고 있습니다. 가격이... 얼마였더라. 꽤 되던데... 하여간 이 곳에서도 돈만 내면 우간다 최고의 백미라는 시피 폭포를 바로 옆에서, 그것도 물 줄기에 흠뻑 젖으며 즐길 수 있더군요. 다른 나라같으면 이런 행위는 아마도 불법이겠지만, 그런 행위를 규제할 법조차 정비되어 있지 않은 나라인가 봅니다. 저러다 위의 사람들이 힘에 부쳐 저 줄을 놓아버린다거나, 줄이 노후되어 끊어진다거나 하면 어쩌죠?

 

 

 

결국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보기 좋게 미끄러졌습니다. -_-; 길이 푹신한 탓에 다치지는 않았지만 엉덩이에 엄청난 진흙이 묻었군요. 털긴 했는데... 엉덩이의 크기가 압박이 되지만, 그래도 이 사진을 올릴랍니다. ^^; 오르막길은 그나마 미끄러지지 않으니 다행입니다.

 

첫번째 시피 폭포 구경을 마친 뒤 상류에 있는 두번째 폭포로 가기 위해 다시 오르막길을 헉헉거리며 걷는 중입니다. 내려갈 땐 잘 몰랐는데 경사도 심하고 오르는 길이도 상당합니다. 습도가 높아서인지 금방 숨이 턱까지 차오릅니다. 체력 탓일까요?


 

 

여전히 어딜가나 스타 ^^;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언뜻 바라보아선 주변에 아무도 안 보이는데 어디에들 있었는지 아이들이 부리나케 나타나서 잠보를 외칩니다. 잠보~ 잠보~ 잠보~ 잠보~ 이제 저도 제법 여유있게 손을 흔들어대고 있군요.


 

 

두번째 폭포가 보입니다. 잠깐 (차도 거의 안 다니는) 찻길을 이용합니다.


 

 

너다섯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자기 몸무게에 버금갈 만큼의 나무를 들고 갑니다. 이 아이의 몇 십미터 앞에는 또한 그만큼 버거워 보이는 나뭇짐를 짊어진 누나와 엄마가 가고 있습니다. 나무가 얼마나 무거운지 몇 초 간격으로 손을 바꿔가며 나무를 들고 갑니다. 우리 가이드는 아무런 흔들림없이 아이를 지나칩니다. 그런데 저랑 김원장은 차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그리고 이 아이의 맨발이 다시 눈에 밟힙니다. 


  

 

두번째 폭포는 그 길이의 중간쯤 되는 곳에서 이처럼 폭포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폭포의 안에는 꽤나 넓다란 동굴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눈치 빠른 누군가가 어설프나마 탁자와 의자를 가져다 두었습니다. 아주 더운 한 여름에라도, 절대 해결이 안 될 것만 같은 큰 걱정이 있어도, 이 속에 들어와 바깥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덥지도 괴롭지도 않을 것만 같습니다. 돗자리 깔고 잠시라도 눈을 붙이고 싶은 순간입니다.


 

 

폭포 안에서 나와 또 다시 미끄러지는 길을 돌아 올라가면 이처럼 두 번째 폭포의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습니다. 귓전을 울리는 시피 폭포의 물소리는 담을 수 없지만 이 곳에서 바라보는 전경만큼은 다시 봐도 멋진 장관입니다.


 

 

두 번째 폭포를 떠나 또 한참을 걸으면 상류의 세 번째 폭포가 보입니다. 세 번째 폭포 밑둥 근방은 아주 미끄러운데다가 물줄기가 너무 세서 다른 두 폭포만큼 가까이 가서 보지는 못했습니다. 돌아서서 내려올 땐 또 한 번 크게 휘청, 했습니다. 다행히 넘어지진 않았지만요(결국 김원장이 제 가방을 빼앗아 대신 매줍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아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 건 절대 아닙니다. -_-;

 

 

세 개의 폭포를 모두 구경하고 다시 캠프 사이트로 돌아오는 길에 농가 몇 곳을 들렀습니다(대략 사진처럼 생긴 집들이 멀찌감치 떨어져 한 채씩 있습니다). 한 번은 김원장이 화장실을 가겠다고 해서 근처의 아무 집에나 들렀는데요. 다녀온 김원장의 말에 의하면 얼기설기 벽을 대충 치고 - 맘만 먹으면 다 보이는 - 맨 땅에 작은 직사각형의 구멍을 제법 깊게 파 둔 것이 전부라고 하네요.


중국 여행시 루구후에서 민박을 할 때 그 곳도 만만치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심지어 그 곳은 엄청난 냄새를 풍겨대는 돼지와 마주 보고 볼 일을 봐야 했습니다). 이 곳도 마찬가지로 전기도 변변한 상하수도 시설도 없는 곳이니 아주 작은 창상에도 쉽게 감염이 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사진 속의 열매는 커피랍니다. 상상 속의, 우리가 흔히 부르는 커피색과는 달리 아주 예쁘죠? 우간다 곳곳에서 커피 재배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냥 바라보아서는 마치 여러가지 상큼달콤한 과일맛이 나는 초컬릿 같네요.


 

 

우간다식 전통 막걸리랍니다. 옥수수로 빚었다네요. 부유물이 너무 많긴하지만 어쨌든 술이라는데 제가 그런 하찮은 단점을 가릴 처지가 아니죠 ^^ 얼른 얻어 먹습니다. 그러나 맛은 역시 우리의 막걸리가 낫습니다. 이 술은 다소 김빠진 막걸리 맛이 납니다. 달달하기도 덜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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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와 시피 폭포 트레킹을 다시 떠올리자면 우습게도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이미지는 폭포가 아닙니다. 바로 바나나 트럭입니다.

 

저희가 시피 폭포를 찾은 날이 일요일이어서, 음발레에서 첫 차를 타고 나왔기에 이 곳으로 오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다시 음발레로 돌아가는 데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나마 있는 차 편이 일요일이라 줄어드는데다 그 차 시간마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었지요.

 

처음엔 저희를 꼬실려고 했던(본인들을 가이드 삼으라고) 동네 청년들과 어울려 버스 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렸지만, 말도 잘 안 통하는 그들과 할 이야기를 웬만큼 다 주고받고 나서도, 그렇게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는 좀처럼 올 생각을 안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다소 친해진(?) 청년 하나가 이 마을을 지나치는 바나나 트럭을 겨우 한 대 잡아주었습니다.

 

김원장은, 이미 앞 자리는 우리같은 처지에 놓인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고, 이미 가득찬 바나나 위로 또 한 사람이 벌써 타고 있는 짐 칸에 우리 둘을 더 싣는 것에 대해 상당한 걱정을 드러내었습니다(요금도 버스 요금을 그대로 달랍니다). 하지만 무식해서 조금은 용감한 구석이 있는 마누라의 결단에 따라 질질 끌려 어쩔 수 없이 바나나 트럭을 타기로 하였습니다. 사실 그늘 한 점 없는 버스 정류장에서 한 낮의 내리쬐는 태양볕을 얼마간이고 계속하여 온 몸으로 받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과감히 선택한 바나나 트럭이었는데 막상 몸을 올리려니 바나나가 그 작은 트럭에 참으로 많이도 실려 있더군요(이는 상상을 해보시면 알 겁니다. 바나나 운반 트럭을 널럴하게 굴릴 그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이 바나나가 우리가 흔히 먹는 과일용 바나나가 아니라 이들의 주식용 바나나였기에 일반 바나나보다 훨씬 크고도 딱딱해서 제대로 깔고 앉을 수도 없는 처지더군요(하긴 과일용 바나나였으면 제 몸무게에 다 짓이겨지고 말았겠지요. 아저씨도 사람을 안 태우려고 했을 것이고요).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마을 청년은 이 작은 마을까지 찾아준 외국인인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 자신을 너무나 뿌듯해하는 모습이었고, 저희도 기약 없이 언제까지나 이 마을에 남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바나나 트럭에 또 하나의 인간 바나나 가 되어 실렸습니다(거의 매달렸습니다).

 

시피 폭포가 위치한 이 곳 지대가 높은 편이라 트럭은 꼬불꼬불 대관령 같은 길을 열심히 돌아돌아 내려갑니다. 트럭이 급커브를 돌 때마다 저희는 밖으로 튕겨져 나가지 않기 위해, 혹은 바나나에 엉덩이가 찔리지 않도록 힘을 다해 어디든 부여잡아야 합니다. 뒤에 실린 인간 바나나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바나나 트럭은 신나게 달립니다. 얼마간을 달리다 급정거를 하기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정식 업소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구멍 가게에서, 마찬가지로 정식 기름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기름으로 트럭에 급유를 합니다. 캄보디아에서 보았던 그런 식용유병도 아니고 웬 주전자 같은 그릇에 담아서요. 기름을 다 넣더니 운전사 아저씨가 기름값을 내겠다며 저희에게 요금을 먼저 달랍니다. 요금을 먼저 주고 나면 나중에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 저희는 끝까지 도착한 뒤에 내겠다고 잠시 실랑이를 벌입니다 -_-; 결국 돈은 아저씨 주머니에서 나갑니다.

 

어설프게 그리고 위험하게 달리는 트럭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내려와 길이 반듯해지자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어디든 부여잡느라 저려오는 팔에도 조금 힘을 풀어줍니다. 살짝 고개를 드니 눈을 못 뜰 정도의 속도를 내며 트럭이 달리고 있습니다. 와, 시원합니다.

 

이것도 나름대로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 달리는 트럭 위에서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김원장이 뜯어 말립니다. 하긴 이러다 사고 나면 최소 중환자실에서 의식 없이 누워 인공 호흡기를 달아야할 것 같습니다(그래도 사진 한 장 없다는 게 좀 아쉽긴 하네요).

 

더 이상 실을 공간이 없어 보이는 트럭 짐칸인데도 도로 주변 곳곳에 퍼진 차량들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승객들을 몇 더 태웁니다. 이젠 짐 칸도 사람으로 꽉 찹니다. 학생 때 강원도 오지로 의료 봉사 갔다가 나올 때 차가 끊겨 쓰레기차의 짐 칸(쓰레기를 싣는 곳이니 쓰레기칸)에 실려 나온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쓰레기 소각장에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 나가는 차량이어서 그나마 저희를 태울 공간이 났었습니다. 그 때 선배님들과 함께 명실공히 인간 쓰레기가 되었다며 히히덕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이 바나나 트럭 위에서 그 때 생각을 다시 합니다. 둘 다 언제 다시 생각해도 미소를 만들어 주는 기억입니다.

 

제 인생에 있어 바나나 트럭에 몸이 실리는 날이 다시금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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