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에 있어 첫 사파리 - 여기서는 '게임 드라이브'라 부르지만 - 를 하는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사파리를 떠나기 전에 잠깐 캠프 사이트 밖을 산책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캠프 사이트를 가리키는 표지판을 지나 밖으로 나오자마자 다소 썰렁한 풍경이 저희를 맞이합니다. 그나마 밤에는 동물이 다닌다고 함부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지라 아직은 좀 쌀쌀한 새벽 냄새가 나더라도 일찍부터 쏘다니게 되네요.  

 

 

머치손 국립공원 내에서의 사파리는 강 건너편, 북쪽 지대에서 진행됩니다. 캠프 사이트는 레스토랑에서 나일강이 어슴푸레 보일 정도로 강 남쪽 가까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고로 사파리를 하려는 모든 사람들은 나일강을 건너야합니다. 사진의 장소는 그 선착장입니다. 저희 캠프 사이트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묵는 모든 관광객들이 이른 아침부터 사파리를 위해 하나 둘씩 속속 모여 듭니다. 동물들이 해 뜰녘, 해 질녘에 많이 활동한다니 그 시간에 맞춰 동물들 구경을 하기 위해 저희 일행 뿐만 아니라 모두들 서두른 모습입니다. 아프리카에서도 역시 인도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데요, 아마도 잘 사는 축에 속하는 그들이겠지만 이렇게 어린 아들까지 데리고 사파리를 하는 모습이 부럽네요.

 

선착장에는 커다란 지구본이 있습니다. 우리가 떠나 온 한국이 어디 있나, 우리가 지나 온 두바이는 어디 있나, 우리가 서 있는 우간다는 어디 있나 찾아 한 화면에 들어가도록 지구본을 힘있게 돌려봅니다. 우와, 진짜 멀리도 왔네요 ^^ 동그란 지구본은 정말 매력적인 물건이죠? 지구본 앞에서 우리 모두 하나가 됩니다. 모델인 인도인, 찍고 있는 한국인, 저와 함께 온 미국인과 아일랜드인, 그리고 우리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우간다인 스태프들까지...

 

We are the world!

 

 

드디어 나일강 너머로 찬란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해가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밤바야~ 아프리카 초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드디어 도강을 했습니다. 어설픈 배를 이용하여 저렇게 사파리용 차들을 실어 나릅니다. 카페리의 원형이군요. 슬리퍼를 질질 끌고 바지는 추리닝에 수염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저희 부부 생각으론 영국인으로 보이는, 다른 일행의 일원이 눈에 띕니다. 슬리퍼, 추리닝에 사파리라... 저는 왜 그럴 생각을 안 했을까요? 

 

그럼,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동물들 구경을 잠시 하시죠.

 

 

 

 

 

이 대목에서 잠시 멈춰야겠네요. 보시는 것처럼 초원에 길입네, 하고 나 있는 길답지 않은 길로만 차를 운행할 수 있습니다.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좌우로 앞뒤로 동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우와, 우와, 저게 뭐야? 우리가 궁금해 할 때마다 출발 직전 올라탄 사파리 가이드 아저씨의 설명이 줄줄줄 이어집니다. 설명을 열심히 들어도 비슷한 종류의 동물들을 하나하나씩 구분해내고 암수까지 파악하는 일은 하루 이틀에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파리 차량들이 줄줄이 일렬로 서서 저런 붉은 흙길을 달리기 때문에 저희 일행은 운전사 아저씨를 다그칩니다.

 

"서둘러요, 서둘러요, 우리 차가 1등으로 가야해요" 

 

1등으로 달리면 좋은 점이, 우선은 앞 차에서 일으키는 먼지를 안 먹어서 좋고요, 둘째로는 이처럼 차를 피해 달아나는 동물들을 제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초식동물의 경우에 그렇다는 이야기고요, 이처럼 사자는, 아예 차가 다니는 길에 떡, 하니 앉아서 비키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저희 차가 이 암사자를 피해서 길 아닌 길로, 초원 위로 덜커덩거리며 올라서야했지요. 가히 백수의 왕, 사자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카메라 줌 기능이 형편없다는게 이토록 안타까울 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다음은 몇 차례의 아프리카 사파리 중에 가장 제 관심을 끌고 사랑을 받았던 기린입니다. 동물원 우리 안에서만 봤던 기린이 이토록 우아할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전주 동물원에 잠시 놀러간 적이 있습니다. 사파리 이후에 첫 방문하는 동물원이라서인지 그 감회가 남다르더군요. 그 곳에서 역시 기린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잠시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울타리 안에 갖힌, 그래서 더욱 슬퍼보이던, 기린 사진 3장을 보여드릴께요. 전주 동물원 내의 기린은,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더군요. 과자와, 그것을 제공하는 관광객들에게 이미 "길들어져" 버린 듯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야생에서 만난 기린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동물입니다. 저희가 한 걸음 다가가면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가면 두 걸음 피할 줄 아는 영리한 동물이랍니다.

 

 

 

 

코끼리 또한 흥미를 유발하는 동물입니다.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라는 게 진짜더군요. ^^;  넋을 놓고 코끼리 아저씨가 자유자재로 코를 놀려 먹이가 되는 나무를 감싸쥐고 잎을 쫘르륵~ 훑어 입으로 가져가는 광경을 바라봅니다.

 

 

 

사파리 가이드 분이 어느새 저희의 마음을 읽고 동물의 흔적이 뜸한 곳에 잠시 차를 멈춰 세워 주셨습니다.

 

"너무 멀리 가진 마시고 이 근처에서 잠시 쉽시다"

 

신난다고 다들 흩어지고 누군가는 용변을 보러 풀 숲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흠, 저러다 야생 동물이라도 만나면... 저는 그들이 바쁜 사이, 연출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저 차가 저희가 타고 다니는 사파리용 차량이고요, 저렇게 뚜껑을 열어 사방팔방으로 빙그러이 둘러 서서 언제 어디서 나타날 지 모르는 동물들을 찾고 열심히 바라봅니다. 쌍안경 가져가기를 정말 잘했죠?

 

모든 것이 그렇듯이 모두들 사파리 초장에는 동물이 나타날 때마다 그 동물이 초식 동물인지, 육식 동물인지 가리지 않고 마냥 좋아라, 합니다. 그러나 눈 앞을 지나가는 동물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파리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초식 동물보다는 육식 동물을, 작은 동물보다는 큰 동물을, 그리고 처음 출현하는 동물일수록 저희의 관심을 삽니다. 흠, 다 같은 동물인데 누구는 이쁨을 받고 누구는 그새 천덕꾸러기가 되네요 ^^;

 

누군가 사파리는 인간이 야생 동물을 구경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야생 동물에게 인간을 구경시키러 가는 것이라더니, 그 말이 정말 맞는 것도 같습니다.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동물들 속에, 차 속에 숨어서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육식 동물의 공격에 대비한답시고 총까지 들고는 사파리 구경을 다니는 일이 이런 저런 생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결국 저들을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모아 놓고, 보존이네 뭐네 하게 된 건 다 인간 때문이 아니던가요?

 

사파리를 하면서 공존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봅니다.   

 

숙소에서 잠시 쉬고 식사를 마친 뒤 오후 일정인 보트 크루즈에 몸을 맡깁니다. 보트는 2층으로 생각보다 아주 그럴싸합니다. 머치손 폭포를 향해 출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내내 강변으로 여러 동물들이 보입니다.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보시다시피 하마군요. 원래 하마는 야행성 동물인데, 이 곳 머치손의 하마들은 낮에 활동을 잘 하기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가끔은 바로 배 옆에서도 그들의 귀여운 콧구멍을 볼 수 있습니다. 하마 다음으로 많은 것은 입 큰 악어고요, 윗 사진에선 물을 마시러 나온 코끼리도 볼 수 있네요. 모든 동물들이 물을 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에 강변만 잘 관찰해도 온갖 조류부터 - 새들의 영어 이름을 공부 좀 해 올 것을 그랬나봐요 - 꽤나 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배를 타고 하는 또 하나의 사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애착이 많이 가는 사진입니다. 어느 유럽인 가족 3대가 젖먹이 아이를 데리고 보트에 올랐습니다. 처음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번갈아 애를 봤지만 아이가 자꾸 칭얼거리고 힘들어하자 이번에는 젊은 아빠가 아이를 넘겨 받습니다. 아빠가 열심히 아기를 달래보았지만 아기는 여전히 울어댈 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할머니나 할아버지, 아이 아버지까지 아이보다는 사실 모두 바깥 광경에 정신이 다소 팔린 듯한 모습입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탄 보트 안에서 결국 아빠만큼이나 젊은 엄마가 하얀 젖가슴을 드러내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기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잠시 젖을 물고 조용해진 아이가 배가 불러오는지, 잠이 오는지 이젠 젖도 안 물고 떼를 씁니다. 그래서 결국 이 배의 한 스태프가 아이를 넘겨 받고 흥겹게 놀아줍니다. 처음에는 낯선 얼굴에 잠시 놀라는 듯 하더니 이내 방긋거리며 잘 놉니다. 이 순간만큼은 흑인도 백인도 구분 없는, 또 하나의 세상이 열립니다.

 

그러나저러나, 우리나라의 젊은 부모라면 아이 때문에 감히 아프리카를 여행할 생각은 안 했을텐데... 저만 해도 황열병 예방 접종, 말라리아약 복용을 하고도 긴 팔, 긴 바지 옷에 양말까지 쉽게 벗지 못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아프리카 여행 중에 아이를 대동하고 나선 백인 부모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평생 동물을 가장 사랑하는 나이에 이른 아이들에게 직접 사파리를 체험시켜 주는 것 만큼 좋은 교육은 없을 것이란데 생각에 미치니, 그 모습이 다소 걱정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부럽습니다.   

 

 

배는 어느덧 머치손 폭포의 발치에 다다릅니다. 물살의 세기와 깊이 때문에 더 이상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손에 잡힐 듯 머치손 폭포가 눈에 보이지 않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크게 울부짖고 있습니다. 머치손 폭포의 사나운 울부짖음은 나일강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노랫소리로 바뀌어 우리 곁을 잔잔히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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