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 트랙킹은 말 그대로 야생 침팬지가 남긴 흔적을 찾아다니며 실제로 야생 침팬지와 조우하기까지에 이르는, 다시 말해 딱히 정해진 시간이라고는 없는, 다소 익숙하지 않은 프로그램입니다. 침팬지 역시 한낮에는 활동빈도가 떨어지는지라 캠프 사이트에서 싸주는 도시락을 이틀째 들고 다니며 동트기 전부터 서두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희가 침팬지를 만나는데까지 걸린 시간은 두 시간 가량입니다. 아래와 같이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길도 제대로 나있지 않은, 생긴지 엄청 오래되었다는 열대 우림 속을 두 시간 가량 헤매어서야 겨우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만한 일은, 저희의 방문일 바로 전 날 이 곳을 방문했던 팀은 편도 4시간을 넘게 걸어서야 침팬지를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_-;

 

 

프로그램은 우선 침팬지 트랙킹 가이드가 보호구역 입구에 저희를 모아놓고 숲에 대한 일반적인 안내와 트랙킹시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조용히 다닐 것이 되겠지요. 주의사항을 다 듣고 일렬로 서서 끝을 알 수 없는 숲 속으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이 지역의 습도가 우간다에서도 높은 편에 속하는지라 다들 말라리아 걱정에 긴 팔, 긴 바지, 긴 양말까지 챙겨입고 모기퇴치 스프레이를 뿌리네, 하면서 부산하더니, 출발을 하자마자 약조를 잊지 않은 듯 모두들 하나같이 입을 꾹 다뭅니다.

 

시야는 좌우의 숲은 말할 것도 없고 길이라 부를 수 있는 방향으로도 약 10m 정도나 될까, 매우 어둡습니다. 우간다에서도 알아주는 조류 관찰지이기도 하다더니 음산한 가운데 알 수 없는 온갖 새소리만 들려옵니다. 가이드는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만 듣고도 이 새는 무슨 새, 이 새는 무슨 새 목소리를 낮게 깔아 조용히 설명해 주는군요. 보이질 않으니 알 수가 있나요. 아니, 본다한들 열대 지방의 각양각색의 새들이 제게는 익숙할리 만무했겠지요. 이름부터 낯선걸요. 

 

 

숲 속에는 다양한 수종이 한데 얽혀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엄청난 크기의 마호가니 나무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처음에는 헨델과 그레텔처럼 숲 속의 작은 길을 기억하려고 애쓰면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오른쪽, 왼쪽, 4시 방향, 직진, 작은 시내를 건너고, 커다란 마호가니 나무를 끼고 돌아 다시 11시 방향, 왼쪽, 직진, 뿌리가 길을 가로지르는 나무를 통과하여, 다시 오른쪽... 이쯤되면 제가 대체 숲의 어드메쯤에 와 있는지, 입구가 어느 방향인지 당췌 알 길이 없습니다. 가이드 놓치면 끝장이다 - 물론 열 명쯤 되는 인원이 가이드 하나를 잃어버릴 일은 없겠지만 - 혹여라도 놓치면 무조건 한 방향으로 나아가 숲을 벗어나야겠다, 쓸데없는 상상을 절로 불러일으키게끔 숲은 깊고도 깊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가이드가 어제 침팬지를 발견한 지점에 이르릅니다. 그리고는 뒤돌아 서서 모두를 향해 손가락을 세워 입에 갖다댑니다. 쉿-

 

보통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된다네요. 가장 최근에 침팬지가 발견된 지점까지 일단 간 뒤에 정지, 그리고 모두들 귀를 쫑긋 세우고 침팬지가 소리를 낼 때까지 -_-; 기다린답니다.

 

5분, 10분... 시간이 지날수록 어설프게 둘러 서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근처 커다란 나무 뿌리에 걸터앉기 시작합니다. 버스럭거리며 숲을 걸을 때보다 모두들 가만히 앉아 쉬고 있으려니 숲 속에서 더욱 더 다양하고 큰 소리들이 귀를 울려옵니다. 시각이 사라진 뒤에 오는 청각의 예민함이 섬찟하리만큼 생생해짐을 느낍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삐리링 뾰로롱 삐릿삐릿 소리들 사이에 다소 날카로운, 옥타브가 꽤 높은, 비명 소리같은 것이 들려옵니다. 가이드의 목소리가 다소 밝아지면서 저 소리가 바로 침팬지가 내는 소리라고 합니다. 저 소리가 동물원에서 두꺼운 쇠창살 사이로 손을 내밀어 아이들이 먹는 과자 부스러기를 받아먹는 침팬지의 울음소리라니... 곧이어 몇 마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내는 듯한 울부짖음이 다시 조용한 숲의 적막을 깨뜨립니다.

 

"저 쪽이여요."

 

가이드의 지시에 우리는 이제 길 아닌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제 키보다 조금 더 높은 덩굴 숲을 마구 헤치며 그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덩굴은 꽤나 굵고 탄력성이 뛰어나 앞 사람과 거리가 어설프게 벌어지면 매섭게 날아와 저를 때립니다. 아야.

 

제 키가 팀원 중에서도 제일 꼴찌인지라 남들은 손으로 잘도 휘저으며 길을 만들어 뚫고 지나가는데 저는 고스란히 얼굴에 맞네요. 흑흑.

 

얼마나 지났을까. 팀원들이 다닥다닥 붙어 겨우 설만한 공간이 되는 지점에 이르러서 가이드는 저희를 멈춰 세웁니다. 침팬지의 소리가 끊어졌다나요 -_-; 그리고 다시 기다림이 시작됩니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서야, 드디어 침팬지와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침팬지는 아주 높다란 나무 꼭대기에 있었습니다. 수많은 나뭇잎들 사이로 갈라져 꽂히는 눈부신 햇살 속에 세 마리가 보였는데,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싸우고 있었거든요. 동물원 창살 속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있거나 매달거나 설치해 준 철제물에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만 보아왔던 그들이 너무나도 높다란 나무 꼭대기에서 서로 시끄럽게 악을 써가며 설치고 있는 모습이, 눈을 못 뜰 정도로 강렬한 햇살 줄기와 그들이 일으키는 소란에 못 이기고 떨어져 나가는 나뭇잎들과 섞여 약간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함께 온 팀 중에 독일어를 사용하는 남녀 커플이 있었는데, 저로서는 뚫고 지나가기에도 버거운 덩굴 숲을, 엄청난 방송 장비까지 들쳐메고 운반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모 방송국에서 나왔는지 방송용 카메라를 비롯, 각종 장비를 설치하느라 분주하더니 바로 촬영에 들어갑니다. 그에 비하면 화소수가 유행에 한참 뒤떨어진 디지털 카메라(200만 화소대)를 가지고 있는 저희로서는 그저 쌍안경에만 의지하여 침팬지 무리들을 바라볼 수 밖에요. 무게가 꽤 나가보이는, 두꺼운 나뭇가지가 휭~하니 휠 정도로 덩치가 그럴싸한 놈들인데도, 나무에서 나무로, 잘도 날아다닙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애쓴 시간에 비해 정작 만나는 시간은 짧았습니다. 30분 정도 그들을 아래에서 바라만 보다 그들이 먼저 우리를 두고 떠나고, 이제는 저희들도 가이드가 안내하는 빠른 지름길을 찾아 숲을 질러 숲을 벗어나는 길을 찾습니다. 그러다 결국 날카로운 가시를 지니고 있는 이름모를 가지에 찔려 피를 보고 맙니다. 이거 혹시 독이 들어있는 가시는 아니겠지? ^^; 

 

이 곳으로 정신없이 찾아 들어온지라, 나가는 길을 찾아내는 가이드의 혜안이 놀랍습니다. 저 멀리 숲의 끝을 알리는, 환한 빛 덩어리가 보입니다.

  

 

머치손을 떠나 다시 캄팔라로 돌아오는 차 안, 나른한 졸음에들 겨워 재잘거리는 수다 소리도 모두 멈춰버린 어드메쯤, 갑자기 차가 속도를 줄입니다. 창 밖을 내다보자 한 무리의 소가 작은 소년의 회초리 인도 하에 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소라서인지, 얘네들은 가축임이 분명한데도 흔히 보아오던 소가 아니네요. 이런 소들을 기르다가 저 날카로운 뿔에 받히는 일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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