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맞춰 나타나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칼같이 오셨더군요. 저희를 오늘 당신이 살고 있는 근처 마을로 안내하실 아저씨가요.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한국이요.

남한이요, 북한이요?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 그 한복판이라 할 수 있는 터미널 근방에서도 지나가는 우리 귓전에 대고 치나, 치나(China)해대는 그들이기에 역시 우간다에는 아직 동양인 여행객들이 많이 오지 않는구나, 생각했던 저였는데 캄팔라 역시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먹을 수 있답니다. 대단한 중국인들이죠? - 캄팔라도 아닌, 진자에서도 꽤 떨어진 이 작은 마을의 아저씨가 제게 남한이냐, 북한이냐를 묻고 있네요.

 

남한이요. 북한 사람들은 여행 못 해요.

아니어요. 북한 사람들 여기 자주 와요.

 

알고 보니 북한 정부에서 진자의 풍부한 수자원을 개발,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다나요? 우간다가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란 말을 제가 했던가요?

 

, 그럼 <다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를 해 보도록 하지요.

 

 

저 분이 저희 둘을 마을로 안내한 아저씨입니다. 보통의 흑인들이 실제 나이에 비해 늙어 보이는 것에 비해 이 분은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분입니다. 캄팔라에서 공부하는 대학생 아들부터 아직 말도 잘 하지 못하는 어린 아들까지 부양하는 한 집안의 가장이죠. 캄팔라에서 공부하는 큰 아들의 비싼 학비를 걱정하는, 한국의 여느 아빠의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저희에게 우간다의 정치, 경제부터 시작해서 이 마을에서 주로 재배하는 농작물에 이르기까지 유창한 영어로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십니다. 우간다가 이처럼 자연이 만들어내는 풍광이 아름답고 자원이 풍부한데도 못 사는 외적 이유를 서구 열강의 오랜 식민지배에서 찾으면서, 따로이 아프리카 자체 내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진단내리십니다.

 

첫째, 아프리카 대륙에는 나라가 너무 많다

둘째, 그 나라가 같은 부족으로 이루어져있지 않다

세째, 그 부족들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저씨의 말이 깊은 사고에서 나온 듯 합니다. 아저씨의 말씀대로 다른 대륙에 비교하면 나랏수가 많은 편입니다. 특히 북아메리카 대륙과 비교선상에 놓고 보면 그 차이가 현격합니다. 또한 다른 나라들이 산과 강, 호수 등의 자연조건을 각 나라간의 경계로 삼는 것과는 달리 이들의 그것에는 일직선이 많습니다. 이는 당연 헤아려보지 않아도 식민지 시대의 산물이겠지요. 그들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타인의 편의에 의한, 안타까운 직선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민족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스와힐리어가 사용되지만, 보통은 유럽의 어느 나라로부터 피지배 국가가 되었느냐에 따라 영어, 불어, 벨기에어 등의 언어을 공용어로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긴 입으로 말해지는 스와힐리어조차 문자를 따로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활자화할 때에는 영어의 음가를 빌려 사용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저는 이번에 동아프리카를 다녀와 영어로도 충분했지만, 불어권인 서아프리카에서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안내를 맡으신 아저씨의 이 말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내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앉아있었을 뿐더러, 저 3가지 원인 때문에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지금에도, 각 국가들이 융합되어 하나의 힘을 내기 힘들다는 아저씨의 한탄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 하고 다시 마을 안으로 떠나보도록 하지요.

 

 

이 곳은 마을 어귀에 있는 한 식당입니다. 마을을 한 바퀴 크게 돌고나서 이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되었습니다(프로그램 비용 - 1인당 3불 - 에 점심 한 끼까지 포함됩니다). 사진에 제대로 나오지 않은 저 아주머니가 주방장이자 주인 아주머니입니다. 나중에 밥 먹을때야 알게 되었는데 우리의 안내를 맡은 아저씨의 부인이시더군요. 아저씨의 귀여운 작전(?)으로 인해 안팎으로 저희를 꽁꽁 묶으셨습니다.

 

 

그 식당 부엌을 잠시 들어가 보았습니다. 음, 바닥재하며 가스레인지가 훌륭합니다. 다만 벽 마감이 좀 허술하군요. ^^ 보기에는 저래도 끼니때에는 근방 숙소의 직원들이 많이 찾아와 먹는 곳이랍니다.

 

 

안 되는 영어로 아저씨의 유창한 설명을 따라가자니 고생이 참 많았습니다. ^^; 아저씨가 자상하시게도 이 마을 사람들의 주식이 무엇인지, 부식이 무엇인지, 그 농작물들은 다 어떻게 재배되는지 등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시는 중입니다. 저도 이름은 아는 식물이 대부분인데 실제로 심어져 자라는 모습을 보니 생소한 점이 많더군요. 같은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작물이라고 해도 기후가 다른 아프리카라 조금씩 다른 모양을 띄고 있는 점도 한 몫 했을테고, 영어로 이해하려니 머릿속에서 와글와글~ 어려웠던 점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밖에도 집은 어떻게 짓는지, 그 집 구성원들은 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설명을 들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_-;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너른 집 마당에 자식이 결혼을 하면 그 자식을 위해 새로 작은 집을 지어준다는 것. 그래서 한 울타리 안에 몇 채씩 집이 들어앉아 이루어진 흙집들이 많았습니다. 

 

 

마을을 돌다 만난 잭 후르츠 행상 아저씨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자전거를 개조하여 커다란 잭 후르츠를 몇 개씩 싣고 마을을 돌아 다닙니다. 저희가 그 모습을 신기해하니까 안내 아저씨가 저희를 위해 잭후르츠를 사주십니다. 얼마만큼요? 우리 돈 100원 어치요 ^^ 저렇게 잘라서 팔거든요. 세계에서 제일 큰 과일로 알려진 잭 후르츠. 그 이름값을 하는만큼 동남아에서 종종 만나도 감히 사먹을 엄두도 못냈던 과일인데 이렇게 조각으로 먹을 수 있다니 즐겁습니다(혹시 동남아에서도 가능한 옵션일런지 모르겠군요). 100원 어치라고 해도 우리 셋이 먹을 만큼 잘라 줍니다. 맛은, 달달한 것이, 생김새와는 다르게 아주 좋더군요. 그러고보니 마을 길 바닥에 흩어진 잭 후르츠의 흔적이 종종 눈에 뜨입니다. 역시 먹어봐야, 겪어봐야 눈에 새로이 들어오네요.

 

제가 맛있어하니 한국에는 잭 후르츠가 안 자라냐고 묻습니다. 예, 안 자라요. 그러니 아저씨가 웃으며 얼른 제게 하나의 제안을 합니다. 이 동네에서 자라는 잭 후르츠를 제게만 독점 공급해줄테니 한국에서 판매를 하라고요. 그래서 둘 다 부자가 되자고 말입니다. 재치가 넘치는 아저씹니다.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흔히 우리가 지금껏 생각해온 아프리카다운, 그러나 실제로는 접하기 쉽지 않은 모습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모습을 보고 고아원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저씨말로는 고아원이 아니고 유치원이라 정정을 하시더군요. 물론 이들이 고아인 것은 사실이지만, 아프리카에서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친척의 품으로 맡겨지기 때문에 낮동안에는 이렇게 시설에 있다가 수업이 끝나면 근방 친척집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저희가 후진국이라 부르는 나라일수록 오히려 친족간의, 이웃간의 정이 따뜻하고 끈끈한 것을 보면, 과연 어느 나라가 후진국이라 불리워야하고, 어느 나라가 선진국이라 불리워져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운동장에 흩어져 놀고있던 아이들이 갑자기 나타난 노란 색의 인간들에게 보시는 것처럼 엄청난 관심과 에너지를 쏟아부었습니다. 그래봐야 딱 두 마디를 저희에게 메아리치도록 소리질러 대더군요. 하나는 인디안, 또 하나는 잠보.

 

인디안~ 잠보~ 인디안~ 잠보~ 잠보~ 인디안~ 잠보~ 잠보~ 잠보~

 

아이들이 우리를 인디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한국인을, 아니 동양인을 인도인과 구분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언뜻 생각하기엔 이해가 안 갔는데 - 한중일도 아니고 북동아시아인과 서남아시아인을 구분 못한다는 것이 좀 황당해서 - 뭐, 아직 어린 아이들이겠다, 외부 세계에 그만큼 노출도 안되어있겠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졸지에 인디안이 되어서, 이 아이들이 돌림노래로 부르는 잠보에 맞추어 같이 잠보와 안녕(꿋꿋하게도 한국말을 ^^;)을 외치며 손을 흔들어대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눈 속에 자그마한 점이 되도록 잠보를 외치던 아이들, 지금 다시 사진으로 보아도 아름다운 아이들입니다. 

 

Village walking중에 들어간 한 집에서는 저보다도 10년은 어려보이는 며느리가 코딱지만한 아이 둘을 데리고 집을 보고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저희를 보고 좋아서 잠보, 하며 안기더군요. 아이들을 한껏 쓰다듬고 손을 잡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나중에도 절대로 손을 놓지 않으려고 해서 아저씨로부터 혼쭐이 난 뒤에야 겨우 떼어놓고 나올 수 있어 마음이 아렸던 적이 있습니다.

 

 

 

꼬불꼬불 마을길을 따라 걷다가 만난 또 다른 가정입니다. 이들은 서로 만나면 아주 길고 긴~ 인사를 나누는데요. 억양이 거의 노래와 흡사합니다. 서로 눈도 안 마주치고 인사말을 주고 받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그 긴 인삿말이 이들에겐 아주 익숙한, 생활습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용은 물어보지 않았지만 대략 너 잘 있었냐, 너의 부모님은 잘 계시냐, 너의 자식들도 잘 계시냐, 근방에 별일은 없냐, 하는 일은 다 잘 되냐, 등등이 아닐까요? 이런 인삿말들을 서로 한 구절씩 번갈아 노래를 부르듯 인사를 나누기 때문에 길을 걷다가 양 방향에서 걸어오던 사람들이 마주 보일때부터 시작해서, 스쳐 지나가면서, 이미 서로 뒤통수를 마주댄 형국인데도 입에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인삿말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재미난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집 식구들과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저씨가 한 구절 부르면, 아주머니 셋이 정해진 레퍼토리인양 똑같이 합창을 한다는 점이죠. 그 길고도 아름다운 음색이 마치 요들송 후렴구같습니다. 요르레이호~

 

한참의 인삿말이 끝나고 서계신 아주머니가 저희를 보며 뭐라뭐라 하십니다. 아저씨가 웃으며 대답하시네요. "뭘 물으셨어요?" "당신이 남자냐고 묻네요." -_-;

 

아프리카 여성들의 머리칼이 살을 파고들어갈만큼 강한 곱슬이라는 것은 들어보셨죠? 그래서 그들은 웬만한 멋쟁이가 아니면 노소를 불문하고 대부분 아주 짧은 스포츠형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습니다. 뒷모습만으로는 저 분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 수 없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구분 못하고 헤맬 일이 거의 없습니다. 왜냐, 여성분들은 100이면 99, 치마를 입고 있거든요.

 

아프리카 온다고 머리를 짧게 자른 제가, 바지까지 입고 있으니 미모가 한 풀 꺾이는 건 감수해야겠죠? ㅎㅎㅎ

    

 

이 두 분은 모녀 사이입니다. 저희의 연식이 한참 딸리는 디지털카메라만으로도 한참을 신기해 하던 이 모녀가 결국 사진을 찍어달라 요청하십니다. 포즈를 취해달라 아저씨를 통해 말을 전달하니 앵글 속에 잡힌 이 모녀의 모습을 좀 보셔요.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저희의 눈에는 다소 건방진 따님의 모습이 잡힙니다(지금 다시 보니 카리스마 넘치는 따님이군요). 그래도 그 동네에서는 먹히는 행동인 듯 ^^; 저희가 찍은 사진을 다시 보여드리니 아주 좋아하십니다. 이거, 현상해서 보내드려야 하는 건 아닌지...

 

 

 

3시간 남짓 한참을 즐겁게 마을 한 바퀴를 돌고 보니 어느덧 끼니 때가 되어 처음 시작점의 식당으로 모두 함께 왔습니다. 오른쪽 하얀 덩어리가 바로 유명한 우갈리, 동아프리카의 주식으로 우리의 밥과 같습니다. 우갈리는 옥수수 가루를 빻아 익힌 것이라고 하네요. 보기에는 꼭 백설기 사촌인데 만지면 사르르 아주 곱게 부서지는 것이 떡이나 밥보다 훨씬 어설픈 조직입니다. 당연히 손으로 먹는데 일단 한 웅큼 집어 조물탕조물탕해서 단단히 만든 후에야 먹습니다.

 

우갈리 옆의 노리끼리한 것은 바나나로 만든 마토케.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바나나와는 달리 초록색 껍질의 다소 큰 바나나를 삶거나 쪄서 우갈리와 더불어 주식으로 삼습니다. 우리가 흔히 먹는 노란 바나나처럼 달지 않고 감자마냥 밍밍합니다. 과일용과는 아예 다른 바나나라네요.

 

왼쪽은 땅콩수프입니다. 우갈리나 바나나를 찍어 먹습니다. 그럼 우리의 국과 짝이 맞겠군요. 맛은, 기대하지 않은 만큼의 딱 그런 맛입니다. 짜고 매운 음식을 상식하는 한국인에게는 좀 무미건조하다고 해야하나요? 오히려 우리가 외국인이라 입맛에 안 맞을까봐 아저씨가 일부러 안 주문해주신 생선요리가 더 입에 맞더군요. 마주보고 앉아 먹는 분의 메뉴를 슬쩍 훔쳐보고 나중에 부탁 드린 생선요리랍니다. 사진엔 없지만 짭쪼름한 것이 딱 우리네 생선조림과 호형호제하겠더라고요(그러고보니 외국인이라고 포크까지 따로 챙겨주신 게 보이네요. 사실 저희는 손으로도 잘 먹는데요 ^^).

 

이렇게 village walking은 끝이 났습니다. 아줌마, 잘 먹었습니다. 아저씨, 감사합니다를 외치면서. 아저씨도 인삿말을 잊지 않으십니다. 잭 후르츠 무역, 잊지 말아요~ ^^

 

참, village walking 중에 아저씨가 궁금하신 것이 있다면서 제게 물으셨습니다. 한국에도 말라리아가 있냐고. 저희는 거의 없다고 말씀 드렸죠. 아저씨는 어떻게 해야 말라리아를 퇴치할 수 있는지 알려달라고 합니다. 저희는 상식 선에서 말라리아는 모기가 매개체이므로 모기의 유충인 장구벌레가 살 수 없도록 이렇게 곳곳에 있는 웅덩이부터 메꾸어 나가시라 대답하였습니다. 사실 이렇게 답하면서도 이건 누구나 아는건데, 하면서 좀 뻘쭘했었죠. 그런데 아저씨 눈이 휘둥그레지며 너무 신기해 합니다. 그러면 모기의 수를 줄일 수 있냐면서.

 

아저씨 말로는 그런 실생활에 꼭 필요한 유익한 정보(?)를 나라에서 알려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설마, 진짜일까요? 어쩌면 나라에서 정보를 제공하지만 조직 내 루트 상의 문제점으로 인해 이렇게 하부 조직까지, 개개인에게까지 그런 정보가 안 내려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네요. 말라리아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어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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