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근무지에 화분이 7개가 있습니다. 6개는 2002년 말 근무지 오픈 당시 여기저기서 선물로 받은 것이고, 하나는 작년, 어느 장날, 점심을 먹은 뒤 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다가 직접 구입한 것입니다. 제가 워낙 무지하다보니 선물 받은 것 중에 행운목 말고는 이름을 제대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또한 저희가 2000원을 주고 산 풀조차 이름을 모릅니다. 다만 그 생김새에 따라 저희끼리 그냥 '개구리 발바닥'이라고 불렀습니다. 

 

처음엔 제 손바닥 반만 했던 개구리 발바닥은, 역시나 돈을 주고 사온 탓인지 저희의 관심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아,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서 금방 새 화분으로 옮겨 심어야 했습니다. 그리고도 무섭게 잘 자라 어느새 지금은 제 팔뚝만큼 자랐습니다. 그런데 이번 한 달간 아프리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이런, 시들시들, 그만 죽어 있습니다. 그동안 너무 고맙게도 푸릇푸릇 잘 자라 주다보니 직원들이 거기까지 신경 쓰는 것을 잊은 모양입니다. 마음도 아프고 무엇보다 개구리 발바닥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미안하다, 미안해.

 

요며칠 소낙비가 간간히 내리길래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심정으로 개구리 발바닥을 밖에 내어놓으면서 오갈때마다 미안하다, 미안해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렇게 잊는 둥 마는 둥 3일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개구리 발바닥이 어제 오늘 다시 살아났습니다. 말라 비틀어져 시들거리던 줄기는 다시 탱탱히 물이 오르고, 힘없던 이파리들은 다 떨궈내 버린 채 다시 그 선연한 초록으로 저희를 반깁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장하고 기특하고 고마운지 모릅니다. 주인이라지만 이름도 몰라 우스꽝스러운 호칭으로 놀려댔는데도 저희를 용서하기로 한 모양입니다. 다시금 기회를 주기로 한 모양입니다. 개구리 발바닥, 이 이쁜 것(근데 대체 얘의 이름은 뭘까요?) 같으니라구.

 

아프리카 여행 후유증 한 번 호되게 겪습니다.

 


 

그러고보니 캄팔라에서 진자를 갈 때에도 요즘처럼 비가 흩뿌렸습니다. 우기가 아닌데 비가 온다며 현지인들도 의아히 여기더군요. 기상이변은 전세계적 문제임이 틀림 없습니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환경에 대한 관심도 커져 갑니다. 한국도 요즘에 비오는 양을 보고 있으려니 장마철이 아니라 우기 같습니다. 요 며칠은 꼭 스콜 같기도 합니다.

 


 

진자는 캄팔라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우간다 제 2의 도시입니다. 제 2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서울, 부산의 그것과 비교해선 안 됩니다. 캄팔라도 캄팔라지만, 진자는 캄팔라보다도 훨씬 작습니다. 시내의 규모도 크지 않아 금방 이 곳의 끝에서 저 곳의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물론 걸어서 가기엔 다소 무리가 있고요, 보다보다가 제 발이 되어 줍니다.

 

진자 시내에서 자전거 보다보다를 타고 한 래프팅 업체(Nile River Explorers)를 찾아갑니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백인 여성이 저희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저의 영어 실력을 고려하지 않고 재잘재잘 떠들어 대는 여인의 말을 가만히 듣자하니 가격이 상당합니다(http://www.raftafrica.com/).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저렇게 비싸게 가격을 책정한 데에는 다 그들만의 이유가 있겠지만 저희 예산을 한참 빗나가는지라 머뭇거릴 수 밖에 없습니다. 뭐, 여기만 래프팅 하냐? 근데 저 백인 여자는 왜 여기까지 와 있지? 돈이 되는 곳이면 어디라도 와서 일하나? 저희는 진자 시내를 떠나 좀 더 깊숙히, 아예 나일강 래프팅의 출발지로 찾아 들어가보기로 합니다.  

 


 

부자갈리 폭포는 그 낙차가 위아래로 크진 않지만 그 넓이가 좌우로 매우 커서 나름대로 멋진 폭포입니다. 이 폭포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왜 이 곳에서 래프팅을 하는지 절로 알게 됩니다. 풍부한 수량으로 인한 빠른 물줄기, 멋진 주변 경관, 세계에서 제일 길다는 나일강의 발원지라는 명목상의 근사함 등등... 진자 시내와는 좀 떨어진 이 곳으로 보다 편하게 찾아 가려면 오토바이 보다보다를 타는 편이 낫습니다. 저희는 자전거 보다보다를 타고 오토바이 보다보다가 많이 모여있는 정거장으로 갑니다. 외국인이 자전거에 실려오는 모습을 멀찌감치에서부터 눈여겨보던 오토바이 보다보다 아저씨들이 서로 저희를 태우기 위해 몸싸움을 벌입니다. 이럴 때마다 좀 난감하죠. 저희 나름대로 인상이 좋은 아저씨 둘을 택해 요금을 흥정하고 자전거 뒷좌석에서 내려 이번엔 오토바이 뒷좌석에 올라탑니다. 우르르, 아쉬워하며 물러가는 딱지 맞은 오토바이 보다보다 아저씨들. 그런데 이번엔 저희를 태운 오토바이 보다보다 아저씨들이 저희를 여기까지 태우고 온 자전거 보다보다 청년들에게 돈을 좀 건네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여기서도 저희를 두고 커미션이 오가네요 ^^;

 

그렇게 한참 먼지 뽀얗게 일어나는 흙길을 열심히 손 흔들며 - 저희를 볼 때마다 아이들이 '잠보'를 외치며 손을 흔들어 대는 터라 거의 스타 기분입니다 ^^; - 달리고 또 달리다보면 어느새 부자갈리 폭포에 이릅니다. 웅장한 폭포 물소리는 들리는데 처음엔 폭포가 보이지 않아서 어딜까, 어딜까 했었는데 아저씨가 내려준 곳에 서서 몇 발짝 물소리 나는 쪽으로 나가서니, 우와! 이렇게 숨막히는 광경이 펼쳐질 줄이야.

 

부자갈리 폭포가 제일 잘 보이는 지점에 Speke Resort가 있고 예서 마찬가지로 래프팅을 주관합니다(Equator Rafts Uganda). 가격은 전 업체보다 훨씬 합리적이라 마음에 듭니다(가격이 싸야만 합리적이란 생각이 드니 문제죠 -_-;). 내일 래프팅 먼저 알아보니 인원 수가 모자라 저희 둘만으로는 arrange 해 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럼 며칠 후로 예약을 하죠, 급할 것도 없는걸요. Okay? Okay.

 

내일 당장 래프팅은 못하지만 Speke Resort의 위치가 너무 좋아 여기서 하룻밤 자기로 합니다(Spekeresort@bujagalifalls.com). 리조트라 이름 붙여져 있긴 하지만 수준은 흔히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리조트와 한참이나 거리가 있습니다. 마침 아프리카 전통 가옥인 반다(Banda)가 몇 개 비어 있군요. 반다에서 꼭 한 번 자보고 싶었는데 잘 되었습니다.  

 



 

몇 개의 반다 중 제가 택한 일명 '6번 반다'입니다(1박 US 15불). 6번으로 하겠어요, 하니 침대 시트를 갈아줄 언니 둘을 보내 줍니다(윗 사진의 머리 짧은 언니가 바로 그 언니입니다 ^^;). 보시는 것처럼 벽은 간단하게 마감되어 있습니다. 외부건 내부건 아무 장식이 없는 건 물론입니다. 지붕은 비오면 그 소리가 딱 좋을 양철이고요, 바닥은 그냥 흙바닥입니다. 안에는 단촐하게 싱글 침대 2개와 무언가를 올려놓기엔 다소 부족한 탁상이 하나 있을 뿐입니다. 어설프나마 가느다란 철사로 이루어진 철망이 겹창문에 설치가 되어 있네요. 창문도 문도 아귀가 잘 맞지 않습니다. 모기장 역시 숭숭 구멍이 뚫려 있군요. 하지만 방안에서 바라보는 부자갈리 폭포는 그 약간의 부족함을 모두 상쇄시키고도 이따만큼 남습니다.  

 

 

 

 

 


 

손에 잡힐 듯 바라보이는 부자갈리 폭포는 서로의 목소리를 높여야 대화가 가능할 만한 톤으로 우리의 귓전에서 웅장하게 울려댑니다. 밤새 이 소리를 들으며 잘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행복감으로 뿌듯해집니다. 이렇게 view가 좋아도 되는거야? 저희는 기쁨에 젖어 낄낄거립니다. '가거지 가운데 가장 좋은 곳을 계거(溪居)라 하고 강거(江居)를 그 다음으로 보며, 해거(海居)는 가장 환경이 열악한 곳으로 평가'한 이중환의 택리지 이야기를 나누며 폭거(瀑居)도 끝내준다, 하면서 히히덕거립니다.  

 

아, 또 비가 내립니다. 개구리 발바닥을 내어 놓으러 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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