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우간다 여행 루트를 떠올려 봅니다.


엔테베 -> 캄팔라 -> 진자 -> 캄팔라 -> 마신디 -> 머치손 국립 공원 -> 마신디 -> 캄팔라 -> 음발레 -> 시피 폭포 -> 음발레 -> 토로로



 

이번 여행을 하면서는 일부러 기록을 전혀 남기지 않았지만, 아직도 우간다에 도착했던 첫 날의 기억은 생생합니다. 국제 공항은 매우 낡았고, 입국 심사대에 앉아있는 흑인은 무서울 만큼 정말 새까맸습니다. 입국 심사대 앞에는 전산화 작업을 위해 현재 컴퓨터를 준비 중이니 수속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다소 퉁명스러운 안내문이 A4 용지에 흑백으로 인쇄되어 붙어있었습니다.

 

그래도 버마 국제 공항보다는 낫잖아.

 

비교가 나쁜 습관임에도 불구하고 제 머리속에는 버마의 그것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입국 수속을 밟는 동시에 비자를 받아 드니 단수 비자입니다(1인당 US $30). 어, 르완다에 다녀오려면 복수 비자가 필요한데 험상궂은 직원에게 복수는 안 되느냐고 고개를 들이밀며 묻습니다.

 

공항에선 안 됩니다.

 

인상도 안 좋으신 분께서 냉랭하기도 하시지. -_-; 어쨌든 드디어 우간다에, 아프리카 대륙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감개무량한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막연하게 그러나 한편으론 또한 당연하게, 제가 밟게 될 아프리카 대륙의 첫 나라는 이집트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간다라니요. 우간다라는 이름 자체는 너무나 익숙해도 막상 이번 여행을 준비하기 전까진 정확히 아프리카 대륙의 어디에 붙어있는 나라인지 알지도 못했던 곳입니다. 

 

입국 심사대를 무사히 통과해서 그렇게 이런저런 감상에 젖다보니 이런, 수화물을 찾을 차례라는 걸 잊고 있었군요. 또 한 번 머릿속에서 선입견이 부르릉, 시동을 겁니다. 여기는 아프리카, 그 중에서도 우간다는 최빈국에 속하는 만큼 어쩌면 가방이 제대로 도착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요. 하지만 그 기우는 오래지 않아 싸악, 사라집니다. 간만에 이것저것 꾸역꾸역 챙겨 넣은 통통한 저희 배낭이 곧 모습을 드러냈으니까요. 얼른 배낭에서 긴 팔 티셔츠와 긴 바지를 꺼내 갈아 입습니다. 이 동네, 말라리아 위험 지역이라잖습니까.

 

항공기가 착륙한 시간은 오후 8시 45분. 입국장은 안팎으로 까맣습니다. 안에는 어리버리한 저희를 어떻게든 엮어보려는 까만 삐끼들이, 휑하니 뚫린 바깥은 조명등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까만 하늘이, 있는 그대로 자연스레 드러납니다. 가이드북을 보니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로 가라고 되어있네요. 어느새 저희를 빙그레 둘러싼 운전사들에게 조심스레 묻습니다.

 

Entebbe Flight Motel까지 얼마죠?

10,000 우간다 실링(ush)이요.

 

, 아무리 물가가 상승했기로 택시 한 대 빌리는데 3000 ush이면 된다고 나와있는 가이드북의 3배를 부르다니요. 얼른 한 발짝 물러나서 공항내 information center로 갑니다. 마찬가지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흑인이 제게 묻습니다.

 

May I help you?

 

듣던 중 반가운 말이네요. 저희가 가고자 했던 모텔을 가리키자 직원은 요즘 UN 행사로 인해 엔테베의 숙박업소 사정이 좋지 않다며 확인 겸 예약 차 전화를 해 보겠다고 합니다. 수화기를 들고 우간다어로 뭐라뭐라하더니 저희가 원하는 곳은 이미 다 차서 방이 없다네요.

 

그럼 여기는요?

 

또 하나의 저렴한 모텔을 가리키며 묻습니다. 직원은 친절하게도 전화를 또 넣어줍니다. 그러나 역시나 답변은 No,군요. 난감해하는 저희에게 직원이 저희 예산보다는 비싸지만 오늘 방이 비어있는 숙소를 하나 소개시켜 줍니다. 그래, 방이 없다는데 어쩌냐. 직원은 친절히 전화로 미리 예약을 해 주고 택시까지 소개시켜 줍니다. 알려준 택시비는 기사 아저씨와 직접 네고를 할 때보다도 다소 비싸지만 모텔까지의 거리를 짐작할 수도 없으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숙소는 택시 비용에 비해 공항에서 터무니없이 가까웠습니다. 음, 혹시 그럼 information center에서 뭔가 수작을 부린 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다보니 짜고 치는 고스톱판에 끼게 된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의심도 잠시, 드디어 아프리카 대륙을 밟았다는 기쁨에, 무사히 첫 숙소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독특한 양식으로 지어진, 방마다 아프리카 각 나라의 이름이 붙여진(저희는 2층 잠비아방에 묵었습니다) 숙소에의 호기심에, 모기장에 구멍은 안 났는지 살펴보는 부산함에 어느새 첫 날 밤은 깊어만 갑니다. 흑인들을 많이 만난 것 말고는 그래도 아직은 아프리카에 왔다는 실감이 안 납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제가 아프리카에 와 있다는 걸 채 눈도 뜨기 전에 알게 됩니다. 귓전에서 재잘거리며 떠드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새소리에 잠을 깼거든요. 창문을 열어 젖히면서 대체 이런 이상하고 엄청난(?) 소리를 누가 내는 건지 찾아보지만 저 멀리 나무 위에 검은 무리 새들의 형체가 제대로 잘 보이진 않습니다. 그저 마찬가지로 눈을 뜬 김원장과 마주보고 웃을 수 밖에요.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저 새 소리에 신기함으로 감응하기는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아침 식사는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공손한 목소리를 내는 아저씨의 서빙으로 진행됩니다(그래서 영어로 주문하는데 더 헤맵니다 -_-;). 새하얗고 잘 다려진 셔츠를 입은 흑인 아저씨의 능숙한 몸놀림이 제게는 분명 처음인데도 어디선가 본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랑데부 아마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류의 시대극 영화들을 통해 저도 모르는 사이 이상한 고정관념을 지니게 된 것 같습니다. 흑인의 시중을 받는 백인의 모습은 자연스럽고, 백인의 시중을 받는 흑인의 모습은 부자연스러운, 반갑지 않은 관념이 제게도 박혀 있나 봅니다.

 

이 여행이 끝날 때쯤에는 좀 더 세상을 공평하게 바라보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간다 여행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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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테베의 숙소>

 

방이 없다는 이야기에 조급한 마음으로 공항 직원이 소개해 준 아무 숙소에나 간 건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Lonely Planet에도 나오는 Sophie's Motel이었습니다(조식 포함 1박에 45 USD. 비싸죠? 평소 하던대로 깎아달라고 했는데 안 깎아 주데요 -_-;). 비싼만큼 방은 좋습니다(저희가 평소 애용하는 급보다 한 단계 위인 중급이랍니다 ^^;).

 

Plot 3/5 Alice Reef road

P.O. box 730

Entebbe

 

tel 041-321370 / 320885

Email sophies@one2netmail.co.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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