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블린에서 자코파네(Zakopane)를 가려면 대부분 크라코프(Krakow)를 경유하게 된다. 어제부터 그 크라코프에는 요한 바오로 2세(Johannes Paulus II, 영어로는 John Paul II)가 3박 4일의 일정으로 와 계시다(요한 바오로 2세가 폴란드 태생이라는 것은 얼마 전 이미 밝힌 바 있다). 교황이 된 이후 첫 방문지로 모국 폴란드를 찾은 이래, 이번이 통산 8번째 방문이라고 한다. 물론 폴란드인의 자그마치 95%에 달하는 수가 로마 가톨릭 교도이기도 하지만, 의심할 여지 없이 교황의 방문에 대한 폴란드 국민의 열광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수백만에 달하는 순례자들이 크라코프로, 오직 교황을 만나 뵙겠다는 일념 아래 폴란드 방방곡곡에서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교황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바티칸에 들렸을 때 혹 교황을 볼 수 있을까 주변을 헤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입장이 다르다.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을 비롯, 엄청나게 많은 수의 신도들이 우리가 가야만 하는 크라코프로 가는 버스에, 그리고 이 기간 동안 특별히 증편까지 된 기차에 몸을 싣고 있는 것이다. TV의 한 채널도 교황의 행적으로 완전히 점령 당했다. 루블린 숙소 TV를 통해 엿본 폴란드인들의 표정에서 충분히 그들의 열기와 감격이 느껴지는데, 교황 환영식이 열리는 공항 앞 광장에는 제대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모인 사람들이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를 아끼지 않는다.

 

교황은 1920년 생이다. 우리 나이로 올해 여든 셋. 오래간만에 화면을 통해 접하는 그에게서 깊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그가 교황이 된 해가 1978년이었던가. 내가 73년 생이니까 내 기억 속에 교황이란 존재는 오직 그 하나일 뿐이다. 내 비록 가톨릭 신자는 아니더라도 그의 모습에서 항상 넘쳐나는 ‘인자함’을 엿보았었는데, 이제는 보좌 신부 없이는 제대로 서지도 못하거니와 끊임 없이 손발을 떨면서 띄엄띄엄 한 문장 한 문장씩 힘들게 읽어나가는 그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그는 456년 만에 처음으로 선출된, 이탈리아계가 아닌 역사상 최초의 폴란드인 교황이다. 크라코프에서 멀지 않은 바도비세라는 마을에서 태어나 크라코프의 한 대학교에서 폴란드 문학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학업을 중단하고 어울리지 않게도 화학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을 하기도 했다. 1942년,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4년 뒤인 1946년, 결국 사제 임명을 받는다. 우리가 묵었던 루블린과 크라코프 대학교의 철학 교수이기도 했던 그는 1964년, 크라쿠프의 대주교가 되었으며, 1967년 추기경에 임명되었다. 폴란드에서 태어났지만 이탈리아에서도 공부한 적이 있는 그는 폴란드어와 이탈리아어를 비롯 라틴어, 영어, 불어, 독어, 서반아어 등을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교황이라고 한다. 나 역시 교황이 우리나라에 왔었던 때를 기억한다. 

 

루블린에서 크라코프를 향해 가는 길, 우리가 탄 버스에도 물론 신부님께서 동승하셨다. 버스 운전사 아저씨 역시 심한 잡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내 교황의 연설을 실시간으로 들려주는 라디오 채널에 주파수를 맞추어 크게도 틀어놓았다. 승객들이 앉아있는 좌석 여기저기에서 때때로 성호를 긋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맨 앞자리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우리를 향해 비틀비틀 흔들리는 버스 안을 걸어 오신다. 도대체 왜? 할머니의 손에는 새하얀 남방이 - 폴란드 전통 의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 한 벌 들려 있다. 뭐라 뭐라 우리를 향해 빛나는 얼굴로 몇 마디 말씀을 하시던 할머니, 차례로 우리 양 볼에 입을 맞추시고는 그 상의를 선물로 주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신다. 얼떨결에 내 무릎에 놓이게 된 하얀 남방 한 벌.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지? 교황의 넘쳐나는 사랑이 이 덜컹거리는 버스 안까지 전이가 된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답례로 우리도 뭔가를 드리고 싶은데 마땅한 것이 없다. 이럴 때를 대비해 한국 고유의 기념품을 준비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1981년, 현 교황에 대한 암살 기도가 있었다. 그가 로마 가톨릭 교회와 그의 조국 폴란드의 자유노조에 대해 노골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에 이를 맘에 안 들어 하는 무리가 암살 음모를 꾸몄던 것이었다나 뭐 그랬다. 이런 사실에서 살짝 엿볼 수 있듯 보수 성향을 띄고 있어 낙태나 피임기구 사용, 이혼, 수녀님의 성직 임명 등을 금지했던 그였지만, 민주주의와 가난한 나라들을 옹호하기도 했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된 그가 처음 폴란드를 찾았을 때에도 시민들은 지금과 같은 열광적인 모습으로 그를 맞이했다고 한다. 부디 그가 앞으로도 오래도록 건강하여, 폴란드인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 가톨릭 신도들에게 많은 기쁨을 가져다 주었으면 좋겠다. 언제나처럼……
 
Tip


교통 : 루블린 - 크라코프 / PKS 버스(국영) / 4시간 30분(281 Km) / 1인당 18즐로티(40%의 학생 할인가)
          크라코프 - 자코파네 / 사설 버스 / 2시간 15분 / 1인당 9즐로티(폴란드 학생만 할인이 된다나?) / 루블린에서 타고 온 버스는 크라코프 기차역 맞은편의 터미널에 선다. 기차역 쪽으로 길을 건너 대략 30분 간격으로 있는 자코파네행 버스를 탈 수 있다(터미널 쪽에서 타는 자코파네행 미니버스는 비싸다)


* 루블린에서 자코파네를 가는 버스편은 하루 두 차례가 운행된다(오전 7시 10분 발 16시 착(크라코프 경유), 오전 8시 30분 발 18시 15분 착). 우리는 버스 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다고 판단, 일단 크라코프로 간 뒤 차를 갈아타는 방법을 취하기로 했다(루블린에서 크라코프로 가는 버스편은 오전 7시 10분 발 13시 31분 착, 오전 10시 발 14시 50분 착, 오후 12시 30분 발 19시 31분 착 등이 있는데 우리는 이 중 10시에 출발하는 미니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렸으나 막상 해당 플랫폼에 나타난 것은 국영 버스였다. 미니 버스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면, 국영 버스는 학생 할인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숙소 : 자코파네가 가까워짐에 따라 창 밖으로 ‘민박(noclegi나 pokoje. 혹은 독일어 zimmer frei)’ 간판을 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나는 처음 대체 ‘noclegi’가 어디길래 저 많은 사람들이 히치를 바라는걸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 역시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접근해 온 할머니를 따라 버스 정류장 바로 뒤에 위치한 한 민박집에 자리를 잡았다 / 1인당 35즐로티 / TV 구비, 욕실과 화장실은 층별로 공동 사용 / 자코파네 민박집의 경우 성수기에 3일 이상 숙박하지 않을 시에는 방을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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