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하면 생각나는 것들, 지구가 정지해 있는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고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 즉흥 환상곡을 작곡한 음악의 시인 쇼팽, 두 번이나 노벨상을 받은 바 있는 퀴리 부인, 다소 소련의 속이 들여다보이는 바르샤바 조약, 폴란드의 자유 노조를 이끌었던 레흐 바웬사, 대우 폴란드 공장, 그리고 폴란드인의 살아있는 자랑, 456년 만에 처음으로 선출된 비(非)이탈리아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이외에도 폴란드에 관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제 2차 세계대전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탱크를 가지고 노는 남성들의 경우에는 그 전쟁사가 훤하겠지만, 폭력을 싫어하는 여성들을 위해 잠시 그 발발 초기로 되돌아가보자. 때는 1939년, 연전에 오스트리아를 손쉽게 점령한 경험이 있는 독일의 히틀러는 바로 옆에 널따랗게 펼쳐진 나라, 폴란드에 침을 흘리기 시작한다. 당시 폴란드는 독일이 공격해올 경우를 대비하여 프랑스, 영국과 손을 잡고 있었지만, 이미 핏발이 선 히틀러에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중에 넣고 싶은 나라였었나 보다. 지도를 보면 폴란드는 동쪽으로 강대국인 소련과 인접해 있는데, 이를 염두에 둔 히틀러는 미리 소련과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으면서 폴란드 점령 후 폴란드 영토의 1/3에 해당하는 서부를 독일이 갖고 나머지 2/3에 해당하는 동부를 소련에게 주겠다며 땅 따먹기 문서에 사인하도록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히틀러는 그토록 바라던 폴란드 공격 명령을 내려,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45분에 폴란드는 독일에게 침공을 당하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연합국, 프랑스와 영국이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내리며 맞대응 함으로써 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이고.

 

당시 프랑스와 영국, 폴란드를 모두 합쳐 독일이라는 한 나라와 비교해보면, 산업 자원이나 인구면에서는 당연히 양적으로 우세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독일은 질적으로 훨씬 우세한 보병사단(전쟁터에서 걸어 다니며 싸우는 군인들)과 기갑사단(장갑차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작전 능력과 복합적인 무장체계를 갖춘 육군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 탱크와 소총, 각종 대포, 토목 건축, 정비 등을 각각 맡은 부대가 한데 모여 이루어진 사단이라 생각하면 될 듯)으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세계 최고를 내세우는 공군을 보유하고 있었던 터였다. 이런 독일의 침공으로 전쟁은 시작되고, 폴란드는 100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육군을 동원하여 막아보려 애를 쓰지만 얼마 가지도 못하고 무참히도 짓밟히고 만다. 침공이 있은 지 보름 정도 만에 이미 폴란드의 방어 체제는 완전히 무너졌고 부대는 뿔뿔이 흩어져, 고립된 부대마다 소규모로 분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의 주민들은 죽음의 위협과 싸우며 9월 28일까지 독일군에 대한 저항을 계속했지만, 민간인이라고 해서 봐주는 법이 없었던 독일은 바르샤바에 비 오듯 포탄을 퍼부어 인구의 2/3와 도시의 80%를 깡그리 소멸시켰다. 마지막까지 남은 폴란드 육군들 역시 10월 5일까지 독일군에 저항했지만, 결국 총 70만 명이 포로로 잡히고, 약 8만 명은 국경을 넘어 중립국으로 탈출해야만 했다.

 

지금 바르샤바의 시내에서 그 때의 흔적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산산이 부서진 돌 무더기만 가득한 흑백 사진에서 지금의 아름다운 파스텔톤 건물을 겹쳐 상상하는 것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폴란드인들은 처참했던 과거를 극복하고 훌륭히 재기했다. 왕궁과 동상, 심지어 퀴리 부인의 생가까지 완벽히 복원해 낸 16세기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가득한 구시가를 걷노라면, 정말 500년 전으로 돌아와 있는 것만 같다. 불과 50여 년에 지나지 않은 건물들인데도… 그만큼 폴란드인들이 끊임 없이 노력해 왔음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다. 6년 전, 이 곳에 다녀갔던 오빠 역시 바르샤바 시내의 발전된 모습에 어리둥절해 한다. 이런 버스가 아니었는데, 이런 상점은 없었는데, 하면서. 그러다 결국 ‘이런 사람들이 아니었는데…’에 이른다. 오빠의 이전 기억 속에 있는 폴란드인들의 표정이나 옷차림, 심지어 그들의 체형까지 지금과는 조금씩 다른 모양이다. 오빠는 무엇보다도 밝아진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그만큼 기분이 좋아진단다. 

 

루블린, 크라코브게이트사람들 복작거리는 바르샤바를 떠나 오래 전부터 지리상 요충지이자 무역의 중심지로 역할을 다해왔던 중소도시 루블린(Lublin)으로 몸을 살짝 빼기로 한다. 전쟁의 포화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루블린 시내는 예상대로 바르샤바에 비해 훨씬 아늑하고 조용하고 평화롭다. 하지만 이 마을 근처로도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학살장의 하나였던 ‘마이다넥 수용소(Majdanek Death Camp)’가 있어 예전의 모습을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살려낸다. 심지어 중국을 포함, 26개국에서 끌려온 24만 명이 이 곳에서 목숨을 잃었다는데 그 중 유태인이 10만 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루블린, 마이다넥수용소, 가스실해부대이런 죄없는 희생자들의 재를 무덤처럼 쌓아 올려 모아놓은 곳에서는 그 양도 양이거니와 채 타지 못한 유골이 군데군데 삐죽이 나와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저리게 한다. 게다가 가스실 옆 방의 차가운 돌 침대의 가운데 뚫려있는 구멍을 타고 질식사한 사람들의 혈액이 바닥으로 끊이지 않고 흘렀을 생각을 하니 속이 다 안 좋아지는 듯싶다. 어떻게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  

 

조만간 ‘아우슈비츠’에 찾아갈 예정이니 다시 한 번 역사의, 학살의 현장에 서게 되겠지. 수용소를 뒤돌아 나오는 내 눈 앞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아름다운 도시의 정경이 펼쳐진다. 저 절망과 고통과 폐허 속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를 재건해 낸 폴란드인들. 그들이 있기에 폴란드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Tip


바르샤바, 문화과학궁전관광 : 문화 과학 궁전(Palace of Culture   Science) / 30층 전망대 입장료 12즐로티(학생 할인 가격, 일반은 17즐로티) / 바르샤바 중앙역(Warszawa Centralna)의 바로 동쪽에 위치. 자그마치 234m의 높이에 달하니 찾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역 근처로 가는 아무 버스를 타거나 구시가지에서 슬슬 걷거나 해서 갈 수 있음


교통 : 바르샤바 - 루블린 / Polski Express 버스 / 3시간 / 1인당 34즐로티(사설 버스라서인지 학생 할인 안 됨) / 바르샤바에서 루블린으로 가려면 기차나 버스 모두 이용이 가능하지만, 루블린 기차역이 시내와 다소 떨어져 있는지라 우리는 버스를 이용했다. 버스표를 구매하고 승차하는 곳은 바르샤바 중앙역 뒷길을 이용, 문화 과학 궁전 반대편으로 걸어나가면 대로와 만나는 지점에 고가도로가 있다. 오른쪽(Holiday Inn Hotel 방면)으로 이 고가도로가 끝나는 지점(T. Chalubinskiego Rd)에 작은 매표소가 있고 이 앞에서 대략 2시간 간격으로 루블린행 버스가 출발한다. 출발 시간에 따라 약간의 가격 변동이 있다

 

숙소 : Wojewodzki Osrodek Metodyczny(왜 이 동네는 이름들이 다 이따위인지…^^;) / 지금까지 머물렀던 숙소 중에 가장 맘에 드는 전망 좋고 조용한 4층의 5인실을 둘이 쓰라며 85.6즐로티(1인당 40즐로티 + 7%의 세금 2.8즐로티)를 받았다(TV와 예쁜 탁자도 있다) / 숙소 가득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넘쳐 나며 화장실 및 욕실은 방별로 공동 사용(방과 욕실까지를 포함한 전체 문을 닫을 수 있는 설계이므로 우리만의 공간이나 마찬가지) / 루블린 버스터미널(Central Bus Terminal) 건너편에는 타원형에 가까운 광장(Plac Zamkowy)이 있는데 이 광장 안의 왼쪽 끝부분에 계단이 있다. 이 계단을 올라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따라 구시가지의 한 복판인 ‘Rynek’에 이르면 좌회전, ‘Dominican Church’에 이르기 직전, 오른쪽으로 뚫린 작은 골목 안으로 들어오면 상기 이름이 적혀 있는, 마치 닫힌 듯 보이는 철문이 왼편으로 있다. 꿋꿋이 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OK. 이 곳 역시 주인 아주머니가 영어를 못하지만 숙박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ul. Dominikanska 5 20-111 / Tel 532 92 41~2)

 

루블린, 마이다넥수용소관광 : Majdanek Death Camp / 무료 입장 / Rynek에서 버스터미널 방향 반대편으로 보이는 Krakow Gate를 통과하여 나오면 건너편으로 은행(Bank Pekao)이 보인다. 이 은행보다 좀 더 아래쪽(마주보았을 때 왼편)에 있는 정거장에서 트롤리 버스 156번이 선다. 평일과 주말에 운행하는 시간이 각각 다르니 정거장에 붙어 있는 시간표를 확인할 것. 버스를 타고 가다 오른편으로 커다란 돌덩이가 보이면 내려서 그 곳으로 가면 된다. 학생 할인된 버스 요금은 0.95즐로티이며, 돌아올 때에는 마땅히 표를 구입할 곳이 없으니 아예 왕복용으로 미리 구입해 두는 것이 좋을 듯(아니면 0.2즐로티 더 주고 운전사 아저씨에게 구입하던지)루블린, 트리니타리안탑, 위에서본전경
Trinitarian Tower / 학생가 1인당 3즐로티(일반 4즐로티) /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탑으로 Krakow Gate보다 더 남쪽으로 난 성문으로 통해 밖으로 나가자마자 왼편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중간에 작은 박물관이 있으며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루블린 시내 전경이 멋지다

 

식당 : Kawiarnia Szeroka 28 / Rynek에서 루블린 성(Castle) 혹은 버스터미널로 이르는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문밖을 나서기 직전 오른편에 위치해 있는 이 식당을 찾을 수 있다. 메뉴에 한국 빈대떡(Korean Pizza라니 맞겠지?)이 있어 놀랍고도 반가운 맘에 들어섰는데 현재 안 된다고 하여 다른 음식만 먹고 나왔다. Korean salad도 있으니 기회가 닿는다면 도전해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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