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낮에는 PC방에 들러 검색 창에 ‘Aeroflot 사고율’을 쳐 넣었다. 우리가 타고 갈 항공편이 바로 잦은 추락 사고로 그 이름을 떨치고 있는 러시아 항공편 ‘Aeroflot’가 아니던가. 타 항공사에 비해 가격이 많이 저렴하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워낙 악명이 자자하여 여행사조차 ‘Aeroflot 가격은 이렇구요, 타 항공사 가격은 이래요.’하면서 동시에 소개해온 터라 은근히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오빠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에 돈 몇 푼이 중요한 게 아니니 돈을 좀 더 지불하고서라도 서유럽 국적을 단 항공편을 이용하자고 했었지만, 만약 우리가 카자흐스탄으로 갔더라면 우즈베키스탄 항공을 이용해야 하는데, 설마하니 러시아 항공기가 우즈베키스탄 항공기보다 못하랴~ 하는 나의 주장에 일단 목소리를 낮춘 터였다. 하지만 출발 시간이 가까워져올수록 큰소리 탕탕 쳐온 나 역시 슬그머니 불안해지면서 결국 조사나 해보자~하는 심정으로 PC방에 들르게 된 것이다. 몇 군데 시도를 해 보았지만 불행히도 사고율은 알 수 없었고, 결국 우리는 ‘러시아라는 나라가 워낙 세계의 관심을 끌어왔으니 그만큼 알려지게 된 것이지, 우리가 제대로 이름조차 모르는 다른 나라의 항공편들 역시 사고를 내지 않았을까? 러시아보다 못산다는 인도의 항공기도 아무 문제없이 이용했었는데, 뭐’하며 위안을 삼아야만 했다.

 

우리에게 항공권을 판매했던 여행사 직원은 자그마치 출발 4시간 전에 공항에 가야 한다고 우리에게 몇 번이고 확인시켰었다. 우리 비행기의 출발 시간은 새벽 1시 50분. 델리 공항에 밤새도록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더니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공항은 완전 불야성을 방불케 한다. 짐 검색을 당하느라 흩트려진 가방을 대충 동여매고 Aeroflot 창구를 찾아가니 이미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서양인이 반, 인도인이 반이다. 일단 서양인들이 저렇게 많이 보이는 데에 안심, 생각보다 항공기를 이용하는 인도인들이 많음에 놀란다. 하긴 10억 인구의 1%만 상류층이라고 해도 자그마치 천만 명에 달할 테니 그들이 저렇듯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공항을 누비고 다니는 것이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다. 비록 우리가 방금 떠나온 파하르 간지 시장 한 복판의 모습과는 천지 차이가 날지언정.   

 

비행기에 문제라도 생긴 것인지 다른 항공사 창구의 줄은 팍팍 줄어들고 있는데, 우리 창구 직원들은 무전기를 들고 부산하게 쏘다니기만 할 뿐 창구 업무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뻔히 보이는 우리 앞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새치기를 감행하는 인도인들 덕에 당연 꼬불꼬불 앞뒤로 길어지는 우리 줄을 보면서 다시 슬슬 불안해진다. 혹 오늘 항공편이 취소라도 되어 이대로 다시 델리 시내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줄 선지 2시간이 다 되어서야 다행히 창구가 열린다. 좌석표를 받고 드디어 인도 출국 도장을 꽝! 몰디브를 오갈 때에는 Indian Airline을 이용했던 터라 창구에서 꼬리표를 달아 짐을 부치고도 출국 심사 후에 짐을 제대로 비행기에 싣는지를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해야만 하는 우스꽝스러운 절차를 거쳐야 했는데, Aeroflot는 그런 절차가 없는 것도 한층 마음을 놓이게 한다.

 

잘 시간이 지난 터라 대기실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눈이 감겨오는데 순간 등장하는 러시아 승무원들에 눈이 번쩍 뜨인다. 아, 이제부터는 슬라브족들로부터 서빙을 받겠구나, 또 다른 세상으로 간다~하면서 즐거워하고 있는데 우리 옆에 나란히 앉은 그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담배를 피워대기 시작한다. 지금껏 승무원들과 함께 같은 대기실에서 비행기를 기다린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비행기 내에서는 흡연을 엄격히 금지시키는 그들이 흡연실도 아닌 일반 대기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조금은 아이러니칼하게 느껴진다. 공항 입구에서 한 번, 짐 검색대에서 한 번, 그리고 출국 심사. 그 출국 심사 후 한 번, 대기실로 들어가면서 한 번, 대기실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또 한 차례 짐 검색을 하면서 한 번, 대기실을 나설 때 한 번, 몇 발짝 걸어가 항공기로 들어가는 복도 통로 입구에서 한 번, 그리고 복도 끝, 항공기에 올라타기 직전에 또 한 번 표를 검사 당하고서야 출발 시간에 겨우 맞추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엄청나게 큰 비행기에(사각에 가까운 캐빈의 디자인으로 인해 그래보이는지도 모르겠다) 한 자리 남김없이 승객들이 꽉 차고, 자, 이제는 떠날 시간. 비행기는 떠날 듯 말 듯하더니 계속 출발을 연기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양해의 방송이다. 비행기가 뜨기를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비행기가 움직이는 흔들림에 눈을 떠 시계를 보았더니 새벽 3시 10분. 자그마치 1시간하고도 20분이나 지연된 출발이다. 게다가 이륙 후 얼마되지도 않아 그 시간에 승객들을 흔들어 깨워가며 식사를 하란다.

 

제대로 잠을 못 이룬 탓에 착륙 안내 방송이 나오는데도 눈이 아려서 잘 뜨지를 못하겠다. 그래도 창 밖으로 보이는 저 아래가 모스크바라는데… 예상 외로 손꼽을 만큼의 러시아인들을 제외하고는 모스크바에서 모두 비행기를 갈아타고 유럽 각지로 흩어지는 승객들이다. 역시나 여기에서조차 앞으로 쑤셔 드는 인도인들 때문에 짜증이 나려는데 승객 중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우리의 여권과 항공권을 받아 든 벽안의 모스크바 공항 직원이 우리에게 건네는 “안녕하셔요~” 한 마디에 기분이 좋아진다. 언제고 다시 꼭 러시아에 오리라. 물론 그 때에는 ‘환승대’가 아닌 ‘입국 심사대’로 가야지.

 

늦게 출발, 늦게 도착한 덕에 폴란드 바르샤바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줄었다. 진열된 물품만으로는 여기가 모스크바인지, 서울인지 도무지 분간키 어려운 면세점을 한 바퀴 구경하고 나니 어느새 다음 비행기 출발 시간. 훨씬 수속 절차가 줄어든 대기실에는 사업차 폴란드로 가시는 한국인 두 분의 모습이 보인다. 환승대까지 함께 했던 그 많던 인도인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제는 온통 백인 일색. 비행기는 사뿐히 모스크바를 이륙, 1시간 45분의 비행을 마치고 바르샤바에 무사히 착륙한다. 그 순간, 내 옆에 앉아 유난히도 부들부들 떨면서 손잡이를 꽉 잡고 있던 아가씨를 비롯, 비행기 내에 기쁨에 찬 승객들의 박수가 울려 퍼진다. 그때서야 아, 맞아. 이게 Aeroflot였지… 우리는 잠시 잊고 있었는데 그간 비행기를 타면서 처음 겪는 자발적인 승객들의 박수 세례에 순간 당황한다. 비행 중 난기류를 통과한 것도 아니고, 착륙도 아주 훌륭했는데 말이다. 비행기를 울리는 이 박수 소리를 기장이 꼭 들어야 할 텐데~ 하면서 트랩을 밟았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지는 폴란드에 작은 감격을 맛본다.

 

폴란드, 바르샤바대학감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비록 오빠가 예전에 한 번 와 본 곳이라 하여도 현재 우리가 가진 폴란드 여행 정보는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서둘러 여행자를 위한 안내소부터 찾아야 했다. 지금은 8월, 가장 성수기라 할 수 있는 시기를 막 지나고 있는 터라 바르샤바내 숙소 구하기가 절대 만만치 않을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리저리 전화를 넣어보던 안내소 아줌마는 우리가 원하는 ‘구시가지와 가까우면서도 가장 저렴한 축에 드는’ 숙소는 다 차고, 오직 유스 호스텔만이 남아 있는데 그나마 오후 4시 이후에나 체크인이 가능하단다. 그거라도 놓치면 큰일이다 싶어 우선 예약해줄 것을 부탁하고 그 유스 호스텔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확인한다. ‘먼저 옆 상점에서 표를 사되 배낭에 대한 표까지 사는 것도 잊지 말고 공항 밖으로 여차 저차 나가 시내로 들어가는 몇 번 버스(Autobus)를 타고 어쩌구저쩌구 정거장에서 내리면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라는 아줌마의 설명은 지극히 간단한데, 막상 그 절차를 수행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우리 수중에는 폴란드 화폐가 한 푼도 없고, 게다가 폴란드 말조차 한 마디 할 줄 모르니 ATM 찾아 대충 환율 계산해서 돈 찾으랴, 아직 어색한 화폐로 우리와 짐에 대한 버스 승차권을 헤매가며 구입하랴 정신이 없다. 아, 버스를 어디에서 타라고 했더라? 이미 안내소 앞은 길게 늘어선 관광객들로 인해 복작복작거린다. 에라, 그냥 나가보자.

 

폴란드, 인어상공항 밖은 완전 다른 세상이다. 정말 날씨 좋고, 정말 깨끗하고, 정말 조용하다. 비행기로 8시간, 이렇게도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 하긴 그간 중국이니, 티벳이니, 네팔이니, 인도 등지에서 시간을 보내온 탓에 완전 범 아시아인으로서 폭 젖어 살아왔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정말 유럽 대륙에 발을 디딘 것이다. 경적 소리 한 번 없이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정거장에 나타나서 우아하게 앞, 중간, 뒷문으로 승객들을 태우고 흔들림 조차 없이 나는 듯 시내로 들어가는 Volvo 버스와, 스스로 표를 구매한 뒤 스스로 개찰하는 승객들이라니… 한동안 부정확과 무질서, 소음과 매연이란 단어에 익숙해져 있었던 우리로서는 이 모든 환경에 어리버리할 수 밖에 없다. 아, 이럴 땐 진짜 릭샤가 짱인데…

 

폴란드, 바르샤바, 구시가지광장다행히 숙소에 짐부터 일단 맡기고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바르샤바 구시가지(Stare Miasto) 탐사에 나서면서부터 슬슬 리듬을 찾기 시작한다. 파스텔 톤의 아름다운 건물들과 자유분방한 사람들의 복장, 피부색이 다른 우리에게 보내는 호기심의 눈길은 찾아보기 힘들고 어디에서나 거리낌 없이 찐~하게 펼쳐지는 애정 표현, 어느 거리에서나 소고기로 만든 햄버거와 핫도그가 - 소고기로 만든 음식은 인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 팔리고, 두 대를 연결한 듯 아주 길다란 버스와 시가 전차(Tramwaj)가 시내 한 복판을 가로지르고 있는 데다가, 곳곳에 널려있는 초록빛 공원과 벤치들, 그리고 우리가 길을 건널 시늉만 해도 멈추어서는 차들. 이 모든 것이 유럽에 와 있음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그래 유럽, 아시아와는 확연히 다른 또 하나의 세계, 이렇게 갑자기 우리에게 닥친 커다란 변화가 진짜 즐겁다.  

 

Tip


PC방 : 파하르 간지 대부분의 PC방에서는 한글이 당연 지원된다. 가격은 시간당 10~30루피로 다양


교통 : 파하르 간지 - 델리 공항 / 대절 택시 / 30분 / 150루피 / 혼자라면 모르겠지만 둘 이상이라면 택시를 타고 가자. ‘공항까지 택시 대절’을 내건 파하르 간지의 수많은 여행사들 중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식당 ‘Golden Caf eacute;’가 제일 저렴하며, 묵고있는 숙소 앞까지 정해진 시간에 칼같이 대령한다
          인도 델리 - 러시아 모스크바 / 비행기 / 6시간 15분(오전 1시 50분 이륙 예정이었으나 실제로는 3시 10분 이륙) / 기내식 2회 제공
          러시아 모스크바 - 폴란드 바르샤바(Warszawa) / 비행기 / 1시간 45분 / 물론 기내식 제공


시차 : 폴란드가 한국보다 8시간 느리다. 하지만 요즘은 Summer time제 실시로 7시간 차이가 난다

 

공항 : 출국 심사대를 거쳐 마중 나온 사람들을 지나면 한 구석에서 ‘Tourist Information’을 찾을 수 있다. 공항이든, 바르샤바 중앙역으로 입국을 하든 꼭 이곳을 찾아 들러 무료로 배부되는 시내 지도와 ‘What Where When Warszawa’, ‘Warszawa Hotels’ 책자 등을 꼭 챙기자(이외 구시가지가 시작되는 광장 입구에도 ‘Tourist Information’이 있다). 우리처럼 성수기에 도착했다면 이곳에서 숙소 안내 및 예약을 부탁할 수도 있다


환율 : 1 USD ($) = 4.2 Zloty (Zl) / 폴란드의 물가가 매우 유동적이라고 하니 현금을 환전할 시에는 환전소마다 비교해 보면서 소액씩 자주 할 것


숙소 : Bursa Szkolnictwa Artystycznego / 작은 세면대를 비롯, 피아노가 놓여 있는 조용한 3인실을 둘이 쓰라며 76즐로티(1인당 38즐로티)를 받았다 / 스릴 넘치는 엘리베이터가 있으며 화장실 및 욕실은 공동 사용 / 공항에서 예약해 준 Youth Hostel은 가격도 약간 비싼데다가(1인당 45즐로티) 남녀 별실을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었기에 숙소를 옮겼다 / 구시가지 입구에 위치한 Plac Zamkowy 광장을 마주보고 서서 높이 솟아있는 Zygmunt III Wasa 동상 왼편으로 나있는 Podwale 길을 따라 걷다 Piekarska 길과 만나는 지점을 바로 지나면 왼편으로 당 숙소의 간판을 발견할 수 있다. 대로변에서 안쪽으로 꽤 들어간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구시가지와 가까워 매우 편리하며 조용하다. 결정적으로 주인 아주머니가 영어 한 마디 못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무사히 숙박에 성공했다(ul. Miodowa 24a; 00-246 / Tel 635 41 74)


★ 참고로 상기 Youth Hostel(Szkolne Schronisko Mlodziezowe nr 2 / Tel 827 89 52)은 공항에서 175번 버스(공항에서 승차권 구입은 ‘Tourist Information’ 바로 왼편의 작은 가게에서 할 수 있으며 학생증이 있으면 원래의 2.4즐로티에서 반으로 할인된 가격인 1.2즐로티에 구입할 수 있다. 제복을 안 입은 검표원이 가장 만만하게 여기는 사냥감이 바로 배낭 여행객이라고 하니, 배낭에 대해 표를 구입하는 것도 잊지 말 것. 물론 버스 운전사 아저씨에게 약간의 수수료를 더 물면 직접 구입도 가능하다. 참고로 175번은 공항에서 출발, 바르샤바 중앙역을 비롯, Royal way라 불리우는 Rondo Charles de Gaulle ~ Krakowskie Przedmiescie 도로를 거쳐 구시가지 입구까지 운행하는 여행객용 버스라 할 수 있다)를 타고 ‘Foksal’이라는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오던 방향으로 조금만 되짚어 내려오면 대로 바로 못 미처 왼쪽으로 뻗은 ‘Smolna’길과 만나게 되는데 이 길 안쪽에 위치해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는 문을 닫지만, 건물 입구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 인터폰을 누르면 건물 꼭대기에 위치한 숙소 직원들과 연결이 되므로, 체크인 시간까지 일단 무거운 짐을 맡겨두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물론 기차역에도 수하물 보관함이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