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현재 우리에겐 지갑이 없다. 한국에서 어엿하게 직장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생활했던 때에는 서로 각자의 지갑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행을 다니는데 지갑이라는 물건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웠다. 한국을 떠난 이후 평소에는 여권을 비롯, 신용카드 한 장과 현금 카드 두 장, 비상용 현금을 복대에 넣어 옷 속 깊이 허리에 차고, 주머니 속에는 약간의 현금을, 그것도 단위가 큼지막한 지폐는 오빠가, 딸랑딸랑 소리를 내는 작은 동전들은 내 바지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녔다.

 

각설하고, 요새 우리는 있지도 않은 ‘지갑’이 안 열리는 신드롬에 시달리고 있다. 다름아닌 아시아와 유럽의 물가 차이 때문. 다시 말해 우리가 지금껏 여행했던 중국, 티벳, 네팔, 인도 등의 물가에 비해 이곳 유럽의 그것은 너무나도 높다. 처음 여행 계획을 짤 때, 어쩌다 보니 한 달에 100만원 가량의 예산으로도 우리 둘의 생활이 가능한 나라들이 우리 루트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던 지라, 얼떨결에 유럽 땅을 밟고 있는 지금, 차를 탈 때마다, 숙소를 잡을 때마다, 식사를 할 때마다, 자질구레한 물건 하나 살 때마다 끊임 없이 숫자 계산을 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미 여정 첫 나라였던 중국에서 계산기 기능을 하던 전자수첩이 망가진지라 각자의 머릿속 자판을 두드린 후 나오는 숫자가 가끔 불일치 되는 경우도 있지만, 여하간 우리의 최근 방문지, 인도보다 엄청 비싸다는 데에는 200% 서로 동의한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 중에서도 게 중 못 산다는 동유럽이 이럴진대, 과연 서유럽의 물가는 현재 어느 정도나 될까? 그간 너무 저렴하게만 여행해 온 탓인지 폴란드에 도착하자마자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물가에 적응하는데 아마도 꽤 시간이 걸리겠지. 참고로 폴란드의 숙소는 우리나라의 그것에 비해 같거나 약간 비싼 것도 같고, 교통편에 드는 비용은 비슷하거나 약간 저렴하다. 다행히 식사비는 우리나라에 비해 많이 저렴한 편이라 우리가 폴란드 여행 계획을 세우는 데에도 이들 물가가 자연스레 반영이 된다. 숙소는 가장 저렴한 곳으로, 이동 횟수는 되도록 줄이면서도 효율적으로, 대신 식사에는 아끼지 말고. 다시 말해 낮에는 많이 걷고, 밤에는 많이 먹는 생활이다. ^^;  

 

자모스츠, 시청, 르네상스양식오늘은 폴란드 동부 자모스츠주의 주도이자 바둑판 무늬처럼 잘 설계된 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 유산이기도 한 자모스츠(Zamosc)에 다녀왔다. 원래 계획으로는 자모스츠에서도 하룻밤 숙박을 할 예정이었으나 루블린의 숙소가 워낙 맘에 들었던 데다가 자모스츠에서 다음 방문지인 자코파네로 이동하기에는 용이하지 않은 반면 루블린에서는 다소 편리한지라 당일치기 여정으로 변경을 했다. 이런 변경에 있어 물론 경비도 고려하여야만 했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기로 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리는 이미 유럽에 발을 디뎠고, 끊임 없이 해대는 경비 계산이 정신 건강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에(그러나 유럽 내에서는 막강한 효력을 발휘하는 일명, ‘마법의 학생증’을 까먹고 숙소에다 두고 나오는 바람에 결국 아픔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부모님께서 힘들게 보태주신 돈으로 유럽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여! 동유럽의 물가가 서유럽 물가의 반 밖에 안 된다고 펑펑 써대지 말지어다. 그 돈이면 인도에서는 여러 명의 굶주린 사람들이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으니…

 

Tip


교통 : 루블린 - 자모스츠 / Minibus / 1시간 20분 / 1인당 9.5즐로티 / 대략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미니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고 빠르다. 버스 터미널에서 보다 안쪽으로 자모스츠행 미니버스 승차장이 있으며 기사 아저씨에게 직접 해당 금액을 지불하면 된다. 자모스츠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버스 터미널이 보이는데 이를 끼고 오른쪽으로(삼성 간판이 보이는 쪽) 돌면 시내 버스 정거장이 있다. 관광의 핵심인 구시가지까지는 0번 버스(진짜 0번 버스가 온다!)를 타고 가다가 오른쪽 창문으로 성벽이 보일 때 내려 성벽 너머 구시가지로 들어가면 된다(학생증을 안 가지고 나온 탓에 일반 가격인 1.5즐로티). 0번 말고도 다른 버스가 운행할지 모르니 정거장 바로 뒤의 버스표를 파는 가판대 아저씨께 여쭈어 보자. 영어는 못하시지만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도록 알려 주실 것이다. 단, 0번을 타고 터미널로 돌아올 때에는 창 밖으로 서 있는 버스들이 많이 보이면 내려야 한다. 그 곳이 바로 터미널 근처인데 오가는 경유지가 다르기 때문에 눈에 익지 않을 것이다. 우리같이 멍하게 타고 있으면 기점까지 가야 하는데, 다행히도 버스는 금방 재출발을 하며, 바로 다음 정거장이 처음에 탔던 터미널 앞이다.

 

관광 : Rotunda / 무료 입장 / 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형무소로 사용하던 곳으로 구시가지 중앙인 Rynek Wielki의 남측 중앙에 나 있는 Moranda 길을 따라 성벽 아래로 난 작은 길을 통과, 기차 길을 건너 지속해서 10분 정도 걸으면 정면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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