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 스쿠터두 밤을 흔들리는 기차에서 자고 여명이 밝아오는 오늘 아침,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델리에 도착을 했다. 이른 새벽, 인도라는 거대한 나라의 수도로 찾아 드는 우리를 맞아준 것은 50m 가량의 간격으로 물통 하나씩을 손에 쥔 채 큰 일 보기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선로변에 나와 쭈그리고 앉아 한창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물이 가득한 병을 들고 걸어가는 사람들은 아직 일을 보지 못한 채 일을 치룰 장소를 물색하러 나가는 사람들이고, 물이 빈 병을 들고 걸어가는, 저 발걸음도 가벼운 사람들은 일을 끝낸 사람들이다. 우리는 기차 안에 타고 있었던 덕에 그들과 마주봐야 하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는데, 오빠의 말에 의하면 그야말로 ‘스펙터클(spectacle)’하단다. ^^;

 

마치 바라나시에 다시 온 것처럼, 역에서 내리자마자 수많은 호객꾼들이 달라붙고 길거리는 온통 냄새 나는 쓰레기 투성이다. 마치 남인도와 북인도가 서로 다른 나라라도 되는 것마냥 어쩜 이렇게 다른 모습을 한 채 한 나라안에 공존할 수 있는지. 외국인이랍시고 터무니 없는 가격을 요구해대는 릭샤 아저씨들을 뿌리치고 선지불(Prepaid) 창구로 가서 우리가 내정한 숙소 근처까지의 요금을 지불하고는 해당 영수증을 받는다. 그러나 그 요금으로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한결같이 입을 모아 말하는 데에는 슬슬 짜증이 난다. 보다 못한 내가 다시 창구로 가서 따지니 얼른 가장 앞 줄에 서 있던, 진작에 우리의 승차를 거부했던 오토 릭샤를 대령 시킨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우리를 태우게 된 아저씨, 결코 기분이 좋을 리 없지. 그러길래 좋은 말할 때 가자니까.

 

델리는 여전히 후끈하다. 이곳에도 얼마 전 비가 내리긴 했는지 40도를 윗돌던 더위는 한풀 꺾여 어제는 최고 기온이 37도에 불과했다고 한다(뭐, 어쨌든 체온보다 높기는 마찬가지다). 아스팔트 위를 시끄럽게 내달리는 오토 릭샤 내로 들어오는 열기가 아침부터 심상치 않은 것을 보니 오늘도 그 기세가 등등하겠다. 시원했던 고아가 벌써 그리워지긴 하지만, 그래도 델리에는 우리의 갈망을 식혀줄 한국 음식이 있으니까…

 

방을 잡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한식으로 아침 식사를 배불리 마친 뒤 우리의 다음 방문국인 파키스탄으로 갈 준비를 하기로 한다. 원래 파키스탄은 비자가 필요 없는 나라 중 하나였는데 9.11 테러 이후 비자 협정이 바뀌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도 비자를 요구하기 시작했다(소문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파키스탄인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부당한 차별 대우에 대응한 강경 조치라고도 하는데). 비자를 받으려면 델리에 있는 대한민국 대사관을 방문, 우선 추천서를 받은 뒤 파키스탄 대사관으로 찾아가야 하며, 비자를 받은 뒤에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유일한 육로 출입국 경로가 되는 ‘암리차르’로 가야 한다. 하지만 벌써 한참 전부터 여러 언론에 오르내리듯, 요즘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양 국 모두 경쟁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 여차하면 핵전쟁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까닭에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이들간의 화해를 위한답시고 왔다갔다하는 모양인데, 이미 종교 분쟁으로, 그리고 국경선 분쟁으로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양 국간의 간극을 짧은 시간 내 메우기는 다소 요원해 보인다. 그래서 인도의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자연 요즘 양 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느냐가 화제에 오르곤 하는데, 이에 따라 우리가 고아에서 접한 가장 최근 소식에 의하면 얼마 전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이 폐쇄되었다고 하는데… 설마, 그럴리가.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곧잘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정보도 마치 사실인양 떠돌아다니는 법, 우리는 직접 한 번 알아보기로 했다.

 

처음에 우리가 시도한 방법은 파키스탄 대사관으로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내가 두 번, 그리고 오빠가 다시 한 번. 영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가 총 3번의 통화 끝에 내린 결론은 ‘전화의 감이 너무 멀다’였다. ^^; 고로 우리는 직접 찾아가 보기로 하고 먼저 한국 대사관에 들러 추천서를 받은 뒤, 그리 먼 곳에 떨어져 있지 않은 파키스탄 대사관을 찾았다. 우리가 아는 ‘Embassy’라는 단어 대신 ‘High Commission’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었기에 다소 헤매기는 했지만, 여하간 중무장을 한 군인들에 둘러싸인 파키스탄 대사관을 찾아 굳게 닫힌 철문을 두드렸다. 예상 외로 문은 쉽게 열렸고, 한 대사관 직원과 얼굴을 직접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파키스탄에 가고 싶은 한국인들인데요. 요즘 비자를 받을 수 있나요?”
“비자를 내어줄 수 없네요. 인도와의 육로 국경이 폐쇄되었습니다.”


혹시나 했건만,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우리의 기대를 산산이 무너뜨리는 소리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비자를 발급 받아 파키스탄으로 갈 수 있나요? 비행기를 타고 들어가면요?”
“현재 이곳에서는 비자 발급이 불가능하므로, 정 가고 싶다면 한국 대사관에서 파키스탄 비자를 받으셔요. 만약 한국에서 비자를 받는다면, 인도에서 제 3국을 거쳐 파키스탄으로 항공 입국을 할 수 있습니다. 파키스탄과 인도 간을 운행하던 직항 노선마저 취소되었거든요.”

 

결국 우리는 파키스탄 비자가 잘 처리되면 그 다음 이란 비자까지 발급 받기 위해 한국 대사관에서 받았던 두 장의 추천서를 그냥 들고 숙소로 힘없이 돌아와야만 했다. 이대로 파키스탄 입국을 포기해야만 하는 건지, 그렇다고 이란 비자만을 받아낸 뒤 비행기를 타고 곧장 이란으로 가자니 지금 같은 무더위에 무모하게 날아드는 불나방 꼴이 될 듯 싶고. 그럼 우리 여권만을 한국으로 보내 파키스탄 비자를 한 번 시도해 봐? 그러나 안전하게 비자 취득을 할 수 있다는 확신도 서지않거니와, 여전히 아랍 국가 따위의 제 3국을 경유하여 입국을 해야 한다는 경제적 부담이 남는데… 누가 막힌 길 좀 시원하게 안 뚫어 주려나?

 

오빠는 지금 지도를 펴놓고 목하 고민 중이다.

 

Tip


교통 : 고아 깔란굿 - 빠나지 버스 터미널 / Local bus / 1시간(갈 때에 비하여 좀 막혔다) / 1인당 7루피 / 숙소 바로 앞에서 지나가는 빠나지행 버스를 잡아탈 수 있다. 종점이 바로 터미널
          빠나지 버스 터미널 -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 현지인들은 이를 줄여서 Vasco라고만 말한다) / Non-stop bus / 40분 / 1인당 15루피 / 빠나지 버스 터미널은 승객들이 이용하기 쉽도록 구역별로 정리를 잘해두었다
          고아 바스코 다 가마 - 델리(델리 중심부에서 약간 떨어진 H. Nizamuddin역) / 기차(Goa Express) / 40시간 55분 (8월 5일 오후 1시 40분 승차, 8월 7일 오전 6시 35분 하차) / 예약비 모두 포함 1인당 1455루피(3A) / 바스코 다 가마 버스 종점에서 역까지의 거리는 한 블록 정도로 매우 가깝다


숙소 : Hotel the Spot / 천장의 fan과 에어 쿨러(Air cooler), 한국 위성 방송이 나오는 TV와 욕실이 딸린 깨끗한 더블룸이 250루피 / 우리가 내린 H. Nizamuddin역에서 배낭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파하르 간지(Pahar Ganj)까지는 선지불 오토 릭샤의 경우 40루피로 갈 수 있다. 선지불 오토 릭샤가 75루피라며 60루피로 싸게 해 줄 테니 본인의 오토 릭샤를 타라는 말을 절대 믿지 말도록. 뉴 델리(New Delhi) 역을 등지고 파하르 간지의 메인 바자르(Main Bazaar) 골목으로 300m쯤 들어오다 오른쪽으로 난 작은 골목의 입구(입구에 뚫린 남자 화장실이 있다)에 Smyle Inn 간판이 보이면 고 속으로 골인, 걷다 보면 왼쪽으로 숙소가 보인다 / 가격은 다른 숙소에 비해 50루피 정도 비싸지만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근방에서 가장 깨끗하며, 별 도움이 안 된다 하더라도 fan과 함께 있는 에어 쿨러가 든든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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