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복잡한 사연을 어디에서부터 이야기해야 하나. 그래, 우선 그저께 이야기부터 해 보자.

 

그러니까 때는 바야흐로 그저께 아침, 그 전날 늦게까지 앞으로의 여정에 대하여 고민을 하던 우리들은 일단 파키스탄과 이란을 제외시키기로 했다. 앞서 밝혔듯이 파키스탄으로 들어가려면 우선 비자가 필요한데 현재 인도에서는 비자를 받을 길이 없거니와, 설령 비자를 받아낸다고 하더라도 아랍을 거쳐 먼 길을 돌아 입국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란은 좀 경우가 다른데, 워낙에는 비자 받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운 나라로 유명하여 여행을 떠나오기 전부터 현지 사정에 따라 인도에서 받는 것이 유리한지, 아니면 파키스탄에서 받는 것이 유리한지를 파악한 뒤에 시도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소문과는 달리 불과 며칠 전, 인도의 이란 대사관에서 단 하루 만에 이란 비자를, 그것도 일주일짜리 경유 비자가 아닌 한 달짜리 관광 비자를 얻어낸 분이 있었던지라 비자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을 듯 싶었다. 우리에게 문제가 된 것은 바로 날씨였는데, 40도 이상으로 푹푹 쪄대고 있을 살인적인 열기에 더해 이란 내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칭칭 둘러야만 하는 헤잡(아시죠? 언제나 스카프와 검은 차도르를 입고 다니는 이란 여인네들의 정숙한 복장)이라니! 게다가 파키스탄을 관통하지 않는 이상, 이란 역시 비행기를 타고 입국을 해야 하는데, 비행기가 뜨고 내릴 도시, 테헤란이 이란의 북부에 위치해 있는지라 관광지를 들리려면 다시 파키스탄쪽을 향해 여행했다가 돌아와야만 하는 비효율적 계획을 세울 수 밖에 없다. 이래저래 막혀버린 파키스탄이 우리의 여정을 사정 없이 망가뜨리고 있는 셈.
 
지도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오빠의 입에서 나온 나라는 바로 ‘카자흐스탄’이었다. 파키스탄과 이란의 대안으로 등장하기엔 예상을 깨는 조금 황당한 국가명이긴 했지만, 오빠의 설명을 들으니 일단 카자흐스탄은 중앙 아시아에서 제일 큰 나라이고  - 중앙 아시아가 조금 생소하다면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들을 떠올려 보자. 우리의 본래 목적지였던 파키‘스탄’ 위로 한동안 떠들썩했던 아프가니‘스탄’이 있는데, 그 북쪽으로 이어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그리고 카자흐‘스탄’ 등을 일컬어 중앙 아시아라고 한다 -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그 분위기를 느끼기에 가장 적합하며,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내륙 속 바다, 카스피해와 그 크기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아랄해를 볼 수 있는 나라인데다가 결정적으로 자그마치 10만 명이 넘는 우리 교민, 고려인이 살고 있단다. 그래? 그렇다면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카자흐스탄으로, 그리고 터키로 가자!
 
우선 PC방으로 가서 카자흐스탄 입국에 필요한 비자 정보에 대해 알아 보았다. 교민이 많이 산다고는 하지만 비자 취득은, 게다가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와 같이 제 3국에서의 비자 취득은 아무래도 결코 만만한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카자흐스탄 나름대로는 작년부터 관광 산업 개발 및 이미지 제고를 위하여 우리나라 국민들이 지정된 15개의 카자흐스탄 여행사의 초청을 통해 입국을 하게 되면 공항에서 비자를 주도록 했다는데, 어쨌든 여전히 그 놈의 ‘초청장’이 문제가 된다. 까짓 것, 한 번 받아보지, 뭐. 우리는 15개의 여행사 중에서 11개 여행사의 e-mail 주소를 알아낸 뒤, 우리 사정을 여차 저차 알리는 글을 아주 정중하게 작성하여 보낸다. 비록 그 중 8군데는 주소를 찾을 수 없다며 금방 되돌아 왔지만…

 

일단 초청장 문제는 덮어두고, 이번에는 항공권을 사러 나선다. 델리에 항공권 한 장 팔아버리고는 밤새 날아버리는 여행사가 워낙 많다길래, 우선 여행 안내 책자에서 믿을만한 곳이라 소개한 근처의 한 여행사1)를 찾아갔다.


“카자흐스탄으로 최대한 빨리 가고 싶은데요.”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한국이요.”
“비자 있어요? 한국인은 비자가 없으면 안 돼요.”
“비자는 알아서 받을 테니 항공편 좀 알려 주셔요.”


여행사 직원이 여기 저기 전화를 해 보는 듯 하더니 아무런 표정 없이 우리에게 대꾸한다.


“편도 구입은 불가능하고요, 왕복 항공권만 가능합니다.”
“예? 왜요?”
“규정이 그렇다네요.”
“우리는 카자흐스탄에 갔다가 터키로 갈 건데요, 그럼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왕복 항공권을 안 사도 되지 않나요? 대신 터키로 가는 항공권을 보여주면 되잖아요.”
“델리에서 카자흐스탄에 가려면 우즈베키스탄을 거쳐 가야만 하는데 이곳에서는 오직 델리와 카자흐스탄 간만 발권이 가능할 뿐, 카자흐스탄과 터키간 발권은 불가능합니다.”
“그럼 인도에서 터키로는 어떻게 가나요?”
“마찬가지로 우즈베키스탄을 거쳐서 가는 것이 가장 저렴합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왕복 항공권이나 터키에서 또 제 3국으로 나간다는 증명이 될 항공권이 필요합니다.”
“이란은요?”
“이란도 마찬가지고요.”
“아는 사람이 편도 항공권을 사 가지고 들어 갔는데요?”
“잠깐만요.  - 옆 사람과 뭐라 중얼중얼 - 아, 예. 그러네요. 이란만 가능합니다.”


뭔 놈의 규정인지는 모르지만, 말도 안 된다. 여행사가 뭐 여기 하나 밖에 없냐? 다른 곳에 가면 되지. 우리는 돌아서서 맞은 편, 저렴한 항공권 판매로 알려진 다른 여행사2)를 들어가 본다. 똑같은 순서로 말이 오가던 중, 여행사 아저씨는 우리에게 카자흐스탄 비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비자나 받고 다시 오라면서 마찬가지로 한국인이면 꼭 구입해야 한다는 왕복 항공권 이야기를 꺼낸다.


“아니, 우리는 인도인도 아닌데 왜 왕복 항공권을 사요? 터키의 경우, 한국인은 비자도 필요 없어요.” - 짜증이 난 오빠,
“인도가 한국보다 더 센 나라라는 걸 몰라요? 우리도, 한국인도, 심지어 일본인도 인도에서 다른 나라에 가려면 모두 왕복 항공권을 사야 해요.” - 발끈하는 아저씨.

 

오빠의 말이 인도를 무시하는 것처럼 들렸던 모양이다. 쩝, 게다가 이 여행사에서는 이란조차 왕복 항공권을 사야 한다고 하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숙소 바로 건너편 여행사3)를 찾아가 본다. 마찬가지로 어딘가에 전화를 얼마간 해 본 뒤에 입을 맞춘 듯이 하는 말, 왕복 항공권. 그나마 그것도 인도 비자가 복수일 경우에만 다시 인도로 들어올 수 있으니 가능한 이야기라나? 정 편도를 사고 싶으면 네팔이나 태국으로 가서 사거나, 아니면 이란으로 가란다.

 

실망만을 안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여행사마다 서로 갈팡질팡 다른 대답에 결정을 못 내린 채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어제 낮, 카자흐스탄의 한 여행사로부터 기나긴 답장을 받았는데 내용인즉 우리 신변에 대한 제반 사항을 비롯, 카자흐스탄에 정확히 얼마나 머무를 것인지와 그 여정을 보내고, 1인당 20불의 수수료를 지정된 계좌로 송금하면, 자그마치 8~10일 후에 그 놈의 ‘초청장’을 발급하여 fax로 보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래, 수속도 복잡하거니와 이렇게나 오래 기다려서, 그것도 틀림없이 돌아오는 한 장은 버리고 말 왕복 항공권으로 들어가야 할 바엔 차라리 이란으로 가련다. 여기 저기 알아보니 이란행 항공편 역시 직항이 없는 관계로 중동의 여러 나라들을 거쳐서 들어가는 방법 밖에는 없으며, 게 중 사우디아라비아 옆 페르시아만의 작은 섬 ‘바레인’만이 공항에서 즉시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나라라고 한다. 그렇담 바레인에나 잠시 머물렀다 이란으로 들어가는 수 밖에… 양 국 모두 45도를 오르내리고 있는 요즘이지만, 이젠 더워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터키도 아직 덥겠지만, 그나마 시원할 테니 재빨리 터키로, 그리고 그리스로 도망가는 수 밖에.

 

이란 비자를 신청하는데 있어 여자는 머리를 한 올도 남기지 않고 모두 가린 채 찍은 사진이 필요하다. 이번 기회에 아예 정숙한 이슬람교도 복장을 한 벌 마련, 이란에서 내내 입고 다닐 생각으로 한 한국 식당을 찾았다. 이슬람 여성들을 위한 복장은 델리의 어디에서 구입하는 것이 좋은지, 사진은 어디에서 찍는 것이 저렴하고 신속한지 등을 알아보기 위해서. 주인 아저씨에게 이런 저런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면서 궁금했던 질문들을 물으니 기막혀 하시는 아저씨 왈,


“아니, 그 말들을 다 믿었어요? 인도에서는 아무도 믿으면 안 돼요. 편도 항공권을 안 파는 데가 어디 있어요? 아마 왕복 항공권을 파는 편이 이문이 더 남아 그럴 거여요. 다시 한 번 알아보셔요. 이번에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시고요.”
엥? 인도에서는 아무도 믿지 말라고?

 

감사의 인사와 함께 식당을 나서는데 마침 식당 아래 바로 여행사4)가 있다. 밑져야 본전이니 한 번 들어가 물어나 보자 했는데 특별히 별다르게 행동하지 않았는데도 당연 이란이나 터키를 비롯, 유럽을 향한 편도 항공권이 가능하단다. 단, 영국의 런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벨기에의 브뤼셀에 한해서. 오라, 어쨌든 유럽이 가능하다 이거지? 그렇다면 아예 유럽으로 날라? 내친 김에 옆 여행사5)도 들어가 본다. 어라, 이 집도 유럽까지 편도가 된다네. 대신 이번에는 영국의 런던,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만이 가능하단다. 그래, 그렇다면 유럽으로 가자. 가만있자, 러시아로 들어가 동유럽을 거쳐 그리스로 내려올 수 있다면 정말 좋을텐데, 이거야 원, 비자 문제가 걸리네. 그렇다면 가만있자… 동유럽에서 비자가 필요 없으면서 가장 북쪽에 있는 나라는… 오호, 폴란드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조금만 더 발품을 팔면 폴란드 바르샤바까지 갈 수 있는 항공권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유럽 내 국가간 교통비가 워낙 비싸니까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등에서 내려 시간 소요하면서 폴란드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여기에서 조금 더 주더라도 곧장 가는 편이 나을 거야. 우리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결국 폴란드행 항공권을 판매하는 믿을만한 여행사6)를 찾아낼 수 있었다. 다만 가격이 좀 세다는 것만 제외하면. 그렇다면 이제는 저렴한 티켓을 한 번 노려봐? 역시나 막 문을 닫으려는 한 여행사7)에서 1인당 600루피(우리 돈 15,000원 정도) 이상 저렴한 항공권을 찾아냈다(이 여행사 아저씨 왈, “여기저기 다녀보다 이리로 온 거지요? 다른 여행사들에게서 계속 전화가 왔었어요.”).

 

그리고 오늘 아침, 필요한 만큼의 돈을 찾아 항공권 구입을 위해 어제 들렸던 마지막 여행사로 릭샤를 타고 가는데, 이 릭샤 아저씨, 우리가 항공권을 사러 가는 중이라는 것을 알고 본인과 계약된 여행사8) 앞에 어영부영 슬쩍 차를 세운다. 바람같이 달려 나오는 여행사 직원, 유창한 한국말로 우리에게 자그마치 1인당 1,400루피 이상 깎아줄 테니 이곳에서 구매하라 난리 법석이다. 아이구, 저렴한 것도 좋지만 신뢰가 가지 않을 뿐더러 이제는 더 이상 여행사와 씨름하고 싶지 않다. 정말 인도에서 누구를 믿어야 하고 누구를 믿어선 안 되는지, 여태 알 길이 없다.

 

여하간 우리는 모레 밤, 공항으로 간다. 러시아 모스크바를 경유, 폴란드 바르샤바로 가기 위해서.   

 

Tip


l 델리의 여행사 정보
1. Aa Bee Travel / 파하르 간지, Main Bazar, Hare Rama Guest House 내 / 델리에서 믿을만한 몇 여행사중 하나로 안내책자에 소개되어 있으나 편도 항공권을 판매치 않음
2. Shigeta Travels / 파하르 간지, Main Bazar, Ajay Guest House 내 /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 곳. 가격이 저렴하다고 알려져 있다
3. ? / 파하르 간지, Main Bazar, Hotel Spot 바로 맞은 편 /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여행사. 숙소와 가깝다는 이유로 몇 번 들렸음 / 델리-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구간 왕복 16,150루피, 델리-런던 혹은 이스탄불 구간 왕복 23,000루피
4. Aa Bee Travel / 파하르 간지, Main Bazar, 옥상에 한국 식당이 있는 Hotel Navrang 내 / 1번 여행사와 이름이 같다. 아무래도 호텔 내에 있으니 그나마 믿을 수 있을 듯 / 델리-암스테르담 혹은 브뤼셀 구간 편도 15,800루피
5. ? / 파하르 간지, Main Bazar, Hotel Navrang에서 나오자 마자 왼편에 위치 / 델리-비엔나 구간 편도 17,750루피, 델리-프랑크푸르트 구간 편도 14,900루피 / 너무 외진 곳에 있어 김 원장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6. Hotel Namaskar / 파하르 간지, Main Bazar, Hotel Spot에서 나오자 마자 왼편에 위치한 동명의 호텔 내 reception이 여행사 역할을 겸한다 / 델리에서 믿을만한 몇 여행사중 하나로 안내책자에 소개되어 있으나 가격이 비싼 편. 델리 - 바르샤바 구간 편도 18,000루피(러시아 항공편인 Aeroflot 이용시)~21,100루피(타 항공사 이용시)
7. Cozy Travels / Connaught Place, Middle Circle, N-1, BMC House 지하 / Tel. 3311593 / Aeroflot의 총판 대리점처럼 보인다. 델리에서 믿을만한 몇 여행사중 하나로 안내책자에 소개되어 있으며 우리가 항공권을 구매한 곳 / 델리 - 바르샤바 구간 편도 17,380루피(알아본 바에 의하면 다른 곳은 최대 20,750루피까지 불렀다)
8. Capital Adventure Tours / Connaught Place, Outer Circle Nirula’s, NDMC Market, 89 / Tel. 3414896~7 / 우리나라 ‘친구따라 인도가기’인가와 연관이 있다면서 한국어로 ‘형님’하고 말을 건넨다. 가격이 매우 저렴한 편 / 델리 - 바르샤바 구간 편도 15,940루피


* 참고로 이란의 경우, Connaught Place에서 가장 저렴한 편도 항공권이 14,100루피 정도 한다. 이란을 비롯, 상기 목적지들로 저렴하게 가려면 대부분 모스크바나 중동 등을 경유하게 되며 항공권 구입시 모든 기타 비용(공항세)까지 포함된 것인지를 확인한 후에 구매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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