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는, 특히 델리에는 한국인 여행자들이 참 많다. 아마도 델리가 여행자들이 들고나는 곳 중 하나라서인지 모르겠다만, 최근 4개월 남짓 다녔던 어떤 도시들보다도 한국인들이 많다. 파키스탄과의 국경이 막히면서 본의 아니게 델리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진 우리는, 거리에 나다니는 한국인들이 너무 많음에 우선 놀랐고 - 아마 현재 델리를 찾은 수많은 국적의 여행자들 가운데 단일 국가로서 최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 또한 그 얼굴들이 매일매일 바뀌고 있다는 데에 두 번 놀랐다.

 

그간 다른 나라 여행을 다니면서 만났던 외국인 여행자들 중에는 단연 일본인들의 수가 돋보였고, 국적 분간이 쉽지 않은 백인들 중에서는 이스라엘인들이 가장 수위를 차지해왔다. 이번을 제외하고 한국인들을 가장 많이 만났던 곳은 95년 여름 방학 때 여행했던 서유럽으로, 파리나 로마, 런던 등지에서는 1부터 차례대로 100까지 세는 동안 꼭 한 명 이상의 한국인 여행자들을 만나곤 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때의 기억을 능가하는 수의 한국인 여행자들이 델리 파하르 간지의 메인 바자르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예전에는 어딜 가나 ‘곤니찌와~’ 일본인들에게 하는 인사를 먼저 들었고, 요즘에서야 눈썰미가 좋은 관광지의 상인들에게서 어설픈 ‘안녕하셔요’나마 종종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숙소 밖을 한 발짝만 나서도 ‘안녕하셔요~ 어디 가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오히려 ‘곤니찌와’ 소리 듣기가 힘들 정도이니, 그 많던 일본인들은 대체 다 어디로 간 걸까?

 

처음에는 ‘괌’의 경우와 마찬가지인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동남아의 리조트들이 떠오르면서 우리나라 신혼 부부들에게도 이제는 신혼 여행지로서의 매력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는 괌. 일본의 경우, 이미 한참 전에 신혼 부부들의 발길이 끊겼고 이제는 어린 학생들이 아예 배를 타고 단체 여행 삼아 괌에 간다고 들었다(일본의 국민 1인당 GNP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워낙 자국 내 물가가 비싼지라 국민 자체 생활 수준은 소득에 비해 그리 높은 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으니, 그 돈 가지고 차라리 해외 여행을 하는 편이 훨씬 풍족할지도 모른다. 일본 신문 지상에는 남극이나 북극을 가는 단체 여행 상품이 나올 정도라고 하니까). 그래, 인도도 그런 경우인가 보다. 이미 많이들 왔다 가서 이제는 인도에 안 오는 모양이야~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일본인들이 인도에 안 오는 이유는 그게 아닌 것 같다. 다른 유럽인들에 비해 미국인들이 상대적으로 해외 여행을 가지 않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일본인들 역시 현 정세 하에서의 자국민에 대한 안위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전쟁설이 불거진 이후로 인도를 찾는 일본인들의 발걸음이 더욱 뜸해졌다는 이야기이다(물론 요즘 꽤 시끄러운 일본의 경제난도 한 몫 거들겠지만).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어떠한가? 외국인 여행자 하나가 현재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 분쟁으로 인해 한참 뜨거운 감자로 일컬어지는 북서부의 ‘잠무 카슈미르’ 지역에 갔더니, 그 곳에 있는 여행자들의 대부분이 한국인들이었다고 해서 놀랐던 적이 있다. 물론 생각만큼 위험하지는 않은 지역이겠지만, 얼마 전에도 총격으로 인해 현지인들 여러 명이 사망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티벳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머무르고 있는 ‘다름살라’에 다녀오신 분을 만났는데, 눈이 녹는 여름에만 해발 5,000m에 달하는 산을 넘어갈 수 있다는 (다름살라 발) ‘라다크’ 행 버스에 한국인들만 15명이 넘게 탔더란다. 그것도 여성이 더 많이. 그야말로 대단한 한국인들이다.

 

숙소를 벗어나는 골목 입구에 갖은 잡화를 판매하며 우리가 오갈 때마다 ‘안녕하셔요’를 외치는 아저씨가 있다. 이 아저씨가 한 번은 내게 담배를 살 것을 청했다. 한국 여성들이 즐겨 피우는 담배라면서. 하긴 우리가 만난 많은 한국 여성 여행자들이 인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긴 했다. 그러고 보니 마이소르를 들렀을 때가 떠오른다. 네팔에서부터 내내 들어왔던 ‘마리화나 안 하실라우?’ 이 말을 마이소르에서도 ‘곤니찌와’ 이후에 곧장 들을 수 있었다.

 

“저희는 한국인이고요, 일본인들이나 마리화나를 하지, 한국인들은 마리화나 안 해요.”
“아, 한국인들이어요? 한국인들이 안 하긴요, 한국인들한테도 많이 팔았어요.”
그 말의 진위 여부를 떠나 무척이나 기분이 상했던 기억.

 

나는 여성의 흡연을 반대하진 않지만, 한국 내에서 보다 지금 인도에서 만나는 여성 흡연자들을 대하는 심정이 편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워낙 골초라기 보담, 남들 눈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타국에서 그 동안 밀렸던 담배와 앞으로 피우게 될 담배까지 모조리 몰아 피우는 듯, 안타깝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이라면 또 모를까, 불행히도 인도 역시 술과 담배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이상으로 그리 너그러운 편이 못 된다. 그런 인도인들에게 우리나라 여성들이 혹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으로 비칠까 하는 걱정이 생기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하물며 마리화나 따위의 마약류에 대해서라면 어떤 심정이랴.

 

이국을 여행하는 일은 분명 멋진 일이다. 나의 마음이 들뜨는 만큼, 타인에 대한 경계가 느슨해지기 마련. 인도라는 저물가 환경이 우리를 더욱 호기롭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는 어떻게든 가장 저렴하게만 여행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배낭 여행자들이(묘하게도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낯선 장소에서 같은 한국인 여행자를 처음 만나게 되면 보통 “어디에 묵고 계셔요?”가 처음 질문이 된다. 숙소를 밝히면 열에 여덟은 곧 이렇게 묻는다. “거기 싸요? 얼마 주셨어요?”) 밤마다 뻑적지근한 술 파티를 벌이는 아이러니한 광경을 종종 보게 된다. 그들이 그렇게 아껴온 경비를 단번에 써가면서…

 

짧게나마 인도에 머물렀다 출국을 눈앞에 둔 지금, 배낭이든 단체 관광이든 여행에 있어 인도는 정말 매력적인 나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오죽하면 다른 나라들은 사절한 채 매년 인도만을 찾는 골수 여행자들이 있을까. 우리는 지금 그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가까이의 오빠조차 다음 기회에는 다른 어디가 아닌 인도로 오겠다고 할 정도니까). 우리가 이렇게 인도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만큼, 인도인들에게도 ‘한국인’은 인도를 아끼고 사랑하는 국민으로 인식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향유(가진 것을 즐기는 것)’가 ‘향락(관능적 쾌락)’으로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지 않을까…

 

Tip  

 

한국 식당 : 숙소를 기준으로 설명해 보면,


1. 숙소를 나서서 Main Bazar가 있는 오른쪽으로 나서면, 골목 입구에 ‘소누(Sonu)의 닭집’이 저녁마다 들어선다.
2. 골목을 나서서 오른쪽으로 가다 보면 작은 사거리를 만나는데, 이 사거리에서 오른쪽의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조그마한 터가 생기면서 좌측 구석에 있는 Hotel Navrang을 찾을 수 있다. 이 호텔 옥상에 일명 ‘옥상’이라 불리우는 한국인 직영(?)의 식당이 있다. 식당이라 부르기엔 뭔가 부족하고, 식당이 아니라고 말하기엔 뭔가 넘쳐 나는 공간
3. 상기 사거리에서 직진을 하면 오른편으로 Grand Sindh Cafe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김치 하우스’란 이름이 더 익숙한 곳. ‘Lonely Planet’에 소개된 집이라 항상 한 두 명의 외국인이 앉아있기도 하다. 백반, 김치찌개, 김치 수제비, 김치 만두 등, 김치가 들어가는 음식이 주메뉴
4. 상기 사거리에서 왼편의 큰 골목을 따라 100여 m를 가면 왼쪽에 Golden cafe가 있다. 한국 음식이라고는 오직 신라면뿐이지만, 어떤 때에는 모든 좌석이 한국인들로 점령되어 버리기도 하는 인기 만점의 식당. 스테이크나 수프 따위가 맛있다
5. 파하르 간지 지역 이외에 대사관 밀집 지역인 Chanakyapuri에 있는 Ashok Hotel내에는 으리으리한 한국 음식점 ‘금강’이 있다. 찾느라고 엄청 헤맸지만, 오후 7시 이후에나 영업을 한다고 하는데다가 그 가격이 절대 만만치 않아(각종 찌개류 350루피, 냉면 400루피) 그냥 돌아섰다

대사관 : Chanakyapuri에는 한국 대사관, 파키스탄 대사관, 우즈베키스탄 대사관(Tel. 467-0774~5) 등 대부분의 대사관이(파하르 간지에서 릭샤로 40~50루피 거리), Connaught Place 근방에는 이란 대사관과 키르기스스탄 대사관(Tel. 410-8008) 등이(릭샤로 15~20루피) 있다. 참고로 카자흐스탄 대사관은 Vasant Vihar의 Old Palme Marg.에 위치(Tel. 614-4779/7983)

 

Citibank ATM : Cozy Travels이 있는 Connaught Place의 N block에서 A block 방향으로 Outer circle에(Palika Bazaar 맞은편) 있는 Citibank 내에 여러 대가 있으며, 파하르 간지에서는 뉴델리역 구내로 가는 것이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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