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 나잡아봐라우리나라의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귀에 익지 않은 도시일지도 모르지만, 서양인들에게 있어 특별히 널리 알려진 인도의 도시가 있다면 아마도 이 곳 고아일 것이다. 1510년, 포르투갈 함대에 의하여 점령된 이후로 오랜 세월에 걸쳐 포르투갈의, 네덜란드의, 그리고 영국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이 곳 고아에는 그 때의 유적과 그들이 남긴 종교, 그리고 아직까지 변하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터에 유럽인들이 자국에서 이 고아의 작은 공항까지 직접 전세기를 띄워 찾아올 정도라고 하니까. 하지만 정말 그것뿐일까? 자국과는 멀리 떨어진 머나먼 이국 땅에 옛 선조들이 남긴 자취가 진하게 남아 있다는 단지 그 이유 하나로?

 

이제는 많이 떠나버렸다지만, 이 곳 고아는 히피(Hippie)들의 집결지였다. 히피, 흔히 우리는 히피라는 단어에서 길게 길러 제멋대로 풀어헤친, 혹은 예쁘게(?) 땋은 장발과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그리고 커다란 목걸이를 찬 남성과 입은 듯 만 듯 아슬아슬한 미니 스커트에 아무렇게나 샌들을 구겨 신은 여성을 떠올린다. 이런 현상은 당시 그들의 파격적이면서도 어느 정도 정형화된 외양에서 비롯된 것일 텐데, 아마도 기성 생활에 뿌리 깊게 배어 있는 보수성을 극도로 혐오하는 그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톰 행크스가 주연했던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에서도 잠시 엿볼 수 있듯이, 1960년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생겨난 ‘히피’는 기존의 사회적 통념이나 문명이 만들어낸 여러 제도, 가치관 따위를 모두 비판, 부정하고 자연으로의 귀의를 주장하며 그야말로 완전한 자유를 추구했던 젊은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처음에는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에 따라 애국이라는 미명 아래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내몰았던 정부에 대항하면서, 역시 당시 골이 깊었던 흑백 간의 인종 갈등을 타파하고자 하는 한 도시의 움직임에 불과했었으나, 점차 미국의 여러 다른 대도시로 퍼져 나가고 이후 프랑스나 영국의 젊은이들에게도 그 사상이 전파되어 20세기의 대표적인 청년 문화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고아그러나 항상 처음의 마음가짐을 유지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가. 인간성 회복을 외치며 반전주의를 표명하던 히피들은 주로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공동체 생활을 하였는데,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기울게 되었다. 무분별한 남녀관계, 절제할 줄 모르는 술과 마약 등으로 그들은 점차 허무주의에 빠져버렸고, 그들이 그토록 부정하고 뜯어 고쳐보고자 했던 사회와는 점점 멀어진 채 그저 자기 탐닉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현재 우리가 ‘히피’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유도 본래의 취지와는 다분히 멀어진 그들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수중에 가진 돈 한 푼 없는 히피들은 자연 물가가 싼 곳을 찾아, 그리고 원하는 만큼의 마약을 손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세계 이곳 저곳을 누비게 되었고 그러다가 그들의 구미에 딱 맞는 바로 이 곳, 고아를 찾아낸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법으로 금지가 되어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아의 해변은 태어난 그대로 자연과 합일되고자 하는 나체의 히피들이 해변을 누볐다고 한다. 낮에는 벌거벗고 해수욕이나 야자수 아래에서의 선탠을 즐기다가, 달 뜨는 밤에 벌이는 그들만의 마약 파티. 이에 대한 환상적인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원조 히피, 진짜 히피, 정통 히피, 초보 히피, 아류 히피, 한물간 히피 모두 가리지 않고 전 세계 방방 곡곡에서 모여 들었겠다.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인도의 한 구석, 작은 해변가에 바글거리며 그들만의 세상을 찾아 누리고자 했던 히피들을? 그리고 그런 전설을 따라 아직까지 고아로 모여드는 여행자들을?
 
사실 우리도 고아를 오기 전까지는 그 전설을 익히 들어온지라 은근히 기대를 했었다. ^^; 하지만 막상 고아에 도착, 해변에 딱 섰을 때의 그 실망감이란. 비록 남인도 코발람보다 깨끗하고 모래가 곱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정도의 유명세를 탈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히피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는 휴가를 맞은 인도인 가족이나 신혼 여행을 온 젊은 부부들이 온통 그 공간을 메우고 있었기에 가끔씩 보이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오히려 반가울 정도였다. 사실 머릿속에서는 김치가 람바다를 추고 있는데 해변 구경도, 사람 구경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는 고아에 정이 갈 리가 만무,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 고아의, 고아만의 매력을 새록새록 느끼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오토바이를 빌려 직접 고아를 달려본다면 우리의 백 마디 설명보다 훨씬 생생하게 고아의 매력을 알아챌 수 있겠지만, 현실상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짧게나마 소개해 보자. 아라비아해에 면한 야자수 늘어진 백사장이야 기본으로 치고, 해변과 해변을 잇는, 마을과 마을을 잇는 작은 도로들에는 다니는 차들이 많지 않아 오토바이를 타고 즐기기에 최적이다. 끊임 없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얼굴에 와 닿는 공기가 선선하고, 남인도의 다른 어떤 곳보다도 훨씬 더 자유스러운 주민들의 분위기가 스스럼없이 우리를 감싼다. 이름만으로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수 많은 해산물들이 싱싱하게 조리 되어 식탁 위에 놓이고, 술 값도 다른 지역에 비해 싸다니 이 또한 좋은 소식으로 다가올 사람들이 많으리라. 유럽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교회들이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벼룩 시장이며, 그 옛날 포르투갈이 세웠다는 절벽 위의 요새들조차 사람들이 즐겨 찾는 관광 명소로의 새로운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래도 이런 고아에 도무지 정이 안 간다면? 그 때에는 어쩔 수 없다. 주변에 널린 이탈리아 식당에서 흘러간 팝송을 들으며 스파게티를 먹던지, 매일매일 따끈따끈하게 구워내는 빵집에 들러 다양한 종류의 빵을 열대과일 쉐이크와 함께 즐기던지, 아니면 유명 상표를 내건 피자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그저 해변만을 즐기다 돌아가는 수 밖에.

 

아직도 고아에는 그 전설을 따라 삼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오빠 역시 나중에 한 달 가량의 여유가 생긴다면 다른 어떤 곳보다도 이 곳 고아를 다시 찾아와 조용한 해변가에 위치한 집을 한 채 빌리고(고아에서는 집을 빌려준다고 내건 간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바다를 맘껏 즐기다가, 혹시라도 지겨워지면 오토바이를 한 대 빌려 지금처럼 북쪽 끝 해변부터 남쪽 끝 해변까지를 샅샅이 훑으면서 지내다 가겠다고 한다. 물론 그 때 우리가 메고 올 배낭 안에는 고추장과 된장, 김을 비롯한 마른 반찬만 잔뜩 넣어 가지고… 이런 우리는 어설픈 조선 히피쯤 되지 않을까?

 

Tip


교통 : 꼴바 - 마르가오 버스 터미널(Kadamba Bus Terminal) / 일반 버스 / 35분 / 1인당 5루피 / 마르가오 종점까지 가서 내리면 바로 터미널
        마르가오 버스 터미널 - 빠나지(Panaji, 혹은 빤짐 Panjim이라고도 불림) 버스 터미널(Kadamba Bus Stand) / 급행 버스(Non-stop) / 40분 / 1인당 15루피
        빠나지 버스 터미널 - 깔란굿(Calangute) / 일반 버스 / 35분 / 1인당 7루피

 

숙소 : Garden Court Resort / 천장의 fan과 정원이 내려다 보이는 발코니, 그리고 순간온수기가 달린 욕실이 딸린 고풍스러운 더블룸이 250루피 / 해변과 2Km 가량 떨어져 평행하게 달리던 버스가 깔란굿 해변쪽으로 좌회전을 하여 6~700m 정도 직진을 하다 보면 작은 로터리를 만나는데 그 곳에서 내리면 바로 숙소 앞이다. 만약 로터리를 놓치게 되면 종점에서 내려 다시 온 길을 되짚어 얼마간 걸어 올라오면 된다. 주인 가족이 매우 친절하며 고아 지도도 무료로 얻을 수 있음

관광 : 스쿠터 만 48시간 대여 / 300루피 / 기름 1 liter = 35루피(어제는 약간 바가지였던 모양~)

 

고아, 아구아다요새★ 오토바이 타고 북부 해변 누비기
우리가 머무르는 깔란굿 해변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깐돌림(Candolim), 신퀘림(Sinquerim) 해변이 있고 북쪽으로는 바가(Baga), 매 주 수요일 열리는 벼룩 시장으로 유명한 안주나(Anjuna), 바가토르(Vagator), 모르짐(Morjim), 만드렘(Mandrem), 아람볼(Arambol) 해변이 있다. 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남쪽으로는 신퀘림 해변을 지나 아구아다 요새(Fort Aguada)까지, 북쪽으로는 바가토르 해변을 지나 차포라 요새(Chapora Fort)까지 갔었는데, 아구아다 요새를 갈 때에는 정면이 막히는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여 산을 올라야 한다. 이 때에도 산 중턱에서 ‘Protected site’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따라가면 바다에 면한 아구아다 감옥(Aguada Jail)과 만나게 되니 산 중턱의 삼거리에서 표지판을 무시하고 오른편 길을 따라 오르자


PC방 : 우리가 들린 깔란굿의 PC방들은 모두 한글을 읽을 수만 있을 뿐, 쓸 수는 없었다. 한 시간에 50~60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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