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소르, 신혼부부와부슬부슬 비 내리는 귀곡산장 분위기의 우티를 미련 없이 떠나기로 하고 짐을 다시 꾸린다. 비만 오지 않았어도 좀 더 알찬 구경을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비록 남지만, 장마철이기 때문에 찾아오는 관광객이 뜸해 그만큼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여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는 장점 또한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다. 코다이카날에서 우티로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묵고 있는 숙소에다 마이소르(Mysore)행 일반 버스가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관광객용 버스 예약을 부탁해 놓고는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이 곳에서 역시 공부를 하고 있다는 한국 유학생들을 떠올려 본다. 부디 그들이 인도식 영어만을 배우고 돌아가지는 말아야 할텐데… 그 놈의 영어가 대체 뭔지.

 

오전 8시 30분 픽업을 약속한 버스가 9시가 넘어가도록 나타나지 않아도, 이미 코다이카날에서 한 번 겪었던 일이라 느긋하게 기다린다. 아니나다를까 9시 10분이 막 지나는 순간, 털털거리는 버스 엔진 소리가 숙소 아래에서부터 들려온다. 버스 위로 우리 짐을 대충 올려 싣고 우티의 또 다른 호텔을 향해 출발하는 모양 역시 코다이카날과 같다(짐은 최종 손님까지 모두 태우고서야 꽁꽁 묶이게 된다).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우티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그러나 행정구역 상으로는 타밀 나두 주에서 카르나타카(Karnataka) 주(州)로 바뀌는, 왕궁의 도시 마이소르. 지금은 비록 옛 영화를 잃은 채 카르나타카 주 남쪽 끝을 차지하고 있는 소도시에 지나지 않지만, 불과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이소르 소 왕국의 수도로서 그 지방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우티를 벗어나려면 일단 산부터 내려가야 하는데, 무려 서른 여섯번에 달하는, 180도 회전에 가까운 고갯길을 꼬불꼬불, 승객을 가득 태운 우리 차는 잘도 내려간다. 차 안에서 정신 없이 왔다리갔다리하는 몸의 중심을 잡느라 손잡이를 잡은 손아귀에 힘이 꽈악~ 들어가긴 하지만, 오래간만에 선인들의 유적이 남아있는 관광지를 찾아간다는 생각에 또 다른 새로운 설레임이 든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오빠의 외침에 그만 정신이 번쩍!


“야, 야, 저것 봐. 사슴이다!”


오빠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엥? 정말 사슴이다. 그것도 한 두 마리가 아니다. 게 중에는 제법 멋진 뿔을 길게 기른 놈들도 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람? 아무리 깊은 산 속이라도 그렇지. 알고 보니 우리를 태운 차가 무두말라이 야생동물 보호구역(Mudumalai Wildlife Sanctuary)을 한참 통과하는 중이라고 한다. 오호, 그렇군. 인도 정부가 늘어나는 인구의 여파에 견디지 못하고 차츰차츰 사라져가는 동식물 보호에 열심이라고 하더니만…

 

차가 타밀 나두 주의 무두말라이 야생동물 보호구역을 벗어나는 듯 싶더니 연달은 안내판이 우리가 지금부터 달리게 되는 지역이 이번에는 카르나타카 주의 반디푸르 국립 공원(Bandipur National Park)임을 알려준다. 두 주가 맞닿아있는 경계 부근이 이런 식으로 모두 보호되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나 달렸을까? 이번에는 내가 앉아 있는 쪽 창을 통해 저 아래로 흐르는 작은 개울가에서 커다란 코끼리가 코로 물을 마시고 있는 광경이 보인다. 이런, 맙소사.


“오빠, 오빠, 저것 좀 봐. 코끼리야!”


나의 호들갑에 뒤에 앉아있던 프랑스 꼬마 아이도 눈치를 챘는지 덩달아 소리를 질러댄다. 이게 웬 공짜 사파리냐? 아까 표지판에 코뿔소도, 호랑이도 그려져 있었는데 그렇담 그런 동물도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후 오빠와 내가 눈이 얼얼하도록 밖을 응시하며 달려왔건만 마이소르에 이르기까지 결국 한 마리의 동물도 보지 못했다(꿈도 야무진 우리 둘 -_-). 대신 마이소르의 따뜻하고 쾌적한 날씨가 우티에서 쓰라린 나날을 보내야만 했던 우리 맘에 쏙 들어 기쁘다. 얼른 숙소에 짐을 풀고, 마이소르 관광의 중심이 되는 왕궁으로 발길을 옮긴다. 멀리에서 보기에도 화려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는 마하라자(maharaja) 궁전은 한 발짝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위엄과 아름다움이 가일층 더해지더니 결국 우리의 탄성을 자아내고 만다. 인도에서도 꽤 쳐주는(?) 왕의 궁전이었다고 하더니만, 정말 ‘왕’ 한 번 해 먹을 만 하다. 관람을 위해 지그재그로 쳐 놓은 줄을 따라 맨발로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사뿐사뿐 걸으면서 환상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천장 아래 샹들리에가 우아하게 늘어진 커다란 홀에 들어서려니, 마치 언젠가 와 본적이 있는 것 같은 착각(혹 전생에? ^^;)에 사로 잡히고 만다. 1897년 화재로 인해 이전 궁전이 소실된 이후 영국인 건축가에 다시 디자인, 1912년 재건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하니, 아마도 그 모양새가 눈에 익은 탓인가 보다.

 

이런 저런 구경에 지친 몸을 이끌고 옥상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좋다는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항상 그렇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사람들 오가는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그저 평온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정작 그 속으로 뛰어들어 보면 절대 그렇지 않은 것을. 그 안에는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서민들의 수 많은 애환과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까지 모두 함께 끓고 있다. 식사 후 다시 그 용광로 속으로 들어선다. 마침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마차 한 대가 보인다. 평상시에는 일반인들이 릭샤처럼 이용하는 저렴한 일반 대중 교통 수단의 하나이지만, 간만에 궁다운 궁을 봐서인가? 왠지 오늘만큼은 신데렐라 호박 마차 이상으로 운치 있게 느껴진다. 한 번 타 보자.

 

현실로 다시 돌아오는 데에는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당연히 변변한 계단 하나 없는 마차에 올라타는 것도 장난이 아니거니와 마부 아저씨 발 밑에는 말에게 먹일 풀이 썩는 냄새를 풍기며 널려있고, 우리까지 모두 셋을 태운 말은 오직 앞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안대를 한 채 힘겹게 헉헉 한 발씩 내딛는다. 거리에는 릭샤, 자가용, 버스, 트럭 할 것 없이 어두운 밤, 원활한 교통 흐름을 마비시키는 우리 마차를 향해 마구 경적을 울려대어 귀가 찢어질 지경인데 어디에서 대포 한 잔 걸치셨는지, 우리 마부 아저씨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말 엉덩이에 매서운 채찍질만을 가할 뿐이다. 정신이 말짱한 오빠는 몇 번이나 날 뻔하는 사고 위험에 안절부절 못하고(마부 아저씨와 나란히 앉은 오빠와는 달리 나는 뒤를 보고 앉아 갔기에 그런 위험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힘에 부쳐 하는 말에게 미안한 감을 느껴 편치가 않다. 마차든, 자동차든 역시 음주 운전은 위험해…마이소르 , 왕궁

 

마차에서 내려 이제 다시 한숨 돌릴 기회를 되찾은 말을 바라보면서, 낮에 봤던 사슴 떼와 코끼리, 그리고 거리가 온통 내 집인양 휘젓고 다니는 인도의 소들을 떠올린다. 같은 동물이면서도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동물. 동물들도 사람들도 모두 평등하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기만 한 것일까…

 

Tip


교통 : 우티 - 마이소르 / Private Tourist Bus(마찬가지로 우티를 출발, 마이소르를 지나 방갈로르까지 운행) / 4시간(오전 9시 10분 출발, 오후 1시 10분 도착) / 1인당 100루피 / 코다이카날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티의 온 숙소를 돌면서 손님들을 태우고 가기 때문에 pickup도 약속보다 40분이 늦은 9시 10분에야 가능했고 9시 50분에야 본격적으로 우티 탈출을 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간단한 점심 식사까지 했으니 곧장 달려온다면 아마 3시간 정도면 될 것이다


숙소 : Hotel Dasaprakash / 천장의 fan과 욕실(비누와 수건 제공, 오전 4시~11시 사이 온수 사용 가능)이 딸린 더블룸이 275루피(10% 세금 별도) / Check out 24시간제 / 우티에서 타고 온 버스가 우리를 내려준 곳은 마이소르의 Hardinge Circle 근방에 있는 Hotel Roopa 앞이었다. 마이소르 시내는 그다지 크지 않아 웬만한 곳은 다 걸어 다닐 수 있으므로 일단 ‘Gandhi Square’를 물어 찾아가자(15분 소요). 우리 숙소가 위치한 Gandhi Square는 아름다운 자연의 색깔이 가득하여 사진 작가들이 많이 찾는 청과물 시장(Devaraja Market)과도 가깝고, 식당도 많아 이모저모로 편리한 곳이다 / 채식주의자 전용 식당(Akshaya restaurant), 맛있는 아이스크림 가게, 여행사 등등 앞 마당에 모두 들어와 있는 우리 숙소에는 다양한 종류(싱글일 경우 155~360루피, 더블일 경우 325~675루피)의 방이 구비되어 있다. Check in을 할 때에 Room tariff를 보여줄텐데, 꼭 한 번 물어보자. 여기 소개된 방보다 더 저렴한 방은 없냐고. 실제 325루피의 더블룸이나 그렇게 해서 우리가 구한 275루피의 방이나 별 차이가 없다 


식당 : Pizza Corner / 상기 Hotel Roopa 옆의 피자 전문점. 오래간만에 제 맛을 내는 피자 한 판 먹고 싶다면…마이소르, 왕궁


관광 : Mysore Palace / 1인당 입장료 15루피, 신발 보관료 켤레 당 0.5루피 / 왕궁은 마이소르의 중심이다. 사방으로 문이 나 있지만 입장이 가능한 곳은 오직 남문 뿐. 왕궁 내부로는 사진기 반입이 불가능하며 남문을 통과하자마자 바로 오른편에 위치한 곳에서 무료 보관을 해 준다(하지만 왕궁 외부를 찍는 것은 얼마든지 문제 없음)
          마차 / 마이소르 시내 한 바퀴에 50루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