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상점비록 어제 인도 최남단인 카냐쿠마리에 발을 딛는 데에는 실패하고 말았지만, 이제 슬슬 북으로 올라갈 시간이다. 아무리 델리의 온도가 며칠째 섭씨 43도를 고수하고 있다고 하여도 이젠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오늘부터 북상을 시작, 델리에 이르렀을 때쯤 그 더위가 한풀 꺾여있기 만을 바라는 수 밖에…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고 트리반드룸으로 가기 위해 배낭을 들쳐 멘다. 숙소 아저씨 말로는 오늘 우리가 목적지로 삼은 콜람(Kollam, 혹은 Quilon이라고도 불림)까지 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번째는 아침 일찍 운행하는 콜람행 직행 버스를 타고 여기 코발람에서 직접 가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일단 트리반드룸까지 간 뒤에 수시로 있는 콜람까지의 버스로 다시 갈아타는 방법이다. 그간의 생활 리듬상 새벽부터 일어나 설치는 데에는 조금 무리가 따르는 우리인지라 후자를 선택하여 느긋하게 콜람까지 가기로 했다. 뭐, 어차피 그리 먼 거리도 아니니까.

 

코발람 해변에서 트리반드룸으로 가기는 매우 쉽다. 버스도 자주 있고, 호객하는 오토 릭샤(비록 편도 90루피를 부르긴 하지만)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로로 대충 창턱을 만든 두 개의 쇠창살을 제외하고는 뻥 뚫려있는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마구 들어오는 버스에 올라탔다. 비록 우기(雨期)여서 맑은 바닷물에 몸을 담그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등 뒤로 멀어지는 아라비아해와 그만큼 친절했던 코발람 해변의 사람들과의 이별이 아쉽게 느껴진다. 오늘부터 슬슬 내륙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해변으로 나와 ‘고아(Goa)’에 이를 때까지 바다와는 당분간 안녕이다.

 

트리반드룸에 있는 콜람행 버스 터미널은 콜람 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사방 팔방 여러 곳을 목적지로 삼는 버스들이 오고 가는 장소이기 때문에 매우 번잡스럽다. 게다가 마치 어린아이들이 해 놓은 낙서처럼 보이는 글자들 사이에서 영어를 발견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게 중 인상이 좋아보이는 아저씨 하나를 붙들고 콜람행 버스는 몇 번 플랫폼에서 타야 하는지 물어본다. 3번? OK. 3번 플랫폼에 이르러 서 있는 버스 운전사 아저씨에게 다시 묻는다. “이 버스, 콜람 가나요?” 불행히도 아저씨의 발음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도리도리 하는 나에게 아저씨가 가리키는 손 끝, 거기에는 ‘Enquiry’라 쓰여진 창구가 있다. 기차역 뿐만이 아니라 버스 터미널에도 ‘무엇이든 물어보셔요’ 코너가 있나 보다. “저희는 버스 타고 콜람에 가고 싶은데요, 어디에서 타야 하나요?” 유리벽 너머 동그란 안경을 끼고 있던 할아버지가 안경알 위로 눈을 치켜 뜨며 대답하신다. “낮 시간에는 운행 안 하고 이따가 오후 5시 이후에나 다시 운행하니 그 때 3번 플랫폼에서 타요.” 엥? 숙소 아저씨말로는 엄청 수시로 운행한다고 했는데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야? 시계는 이제 마악 12시를 넘어서고 있다.

 

황당한 와중에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일단 어디 좀 앉아야지, 였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잘못된 정보를 주었다며 숙소 아저씨를 향해 투덜대던 오빠는 앉으라는 내 말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하더니 갑자기 아하! 깨달음의 일갈을 지른다. “야, 빨리 일어나. 우리 ‘기차’타고 가자.” 오호라,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데 하나의 머리보다는 두 개의 머리가 낫군.

 

터미널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한 기차역에는 항상 그렇듯이 사람이 복작복작 많다. 기차로 1시간 남짓의 거리 밖에 안 되니까 2등석 일반 좌석을 한 번 타보자. 그러나 표를 파는 아저씨가 우리 얼굴을 보더니 외국인에 대한 안전상의 이유로 2등석 일반 좌석을 줄 수 없다고 한다. 타도 우리가 타는데 무슨 상관이람, 이 역시 친절인지, 상술인지 알 수가 없네. 거스름돈과 함께 아저씨가 우리에게 건네준 표만으로는 대체 언제 출발하는 열차인지, 객차 등급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다시 ‘Enquiry’ 창구 문을 두드려 보니 2시 30분 열차라고 친절히 일러준다. 마찬가지로 아직 시간이 남아 돌아가긴 하지만, 그래도 버스에 비하면야… 커피나 한 잔 하면서 기다리지, 뭐. 이젠 몇 시간 기다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오죽하면 30시간이 넘는 기차를 타면서 ‘이제 겨우 6시간만 더 가면 돼. 슬슬 내릴 준비나 하자’ 소리가 오빠에게서 절로 나왔을까.

 

제 시간에 맞춰 - 누가 인도 열차가 지각생이라 했는지 모르지만, 지금껏 우리가 탔던 열차들은 정시 출발, 정시 도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시간 약속에 있어서 만큼은 훌륭했다 - 열차가 도착하는 순간, 우리에게 ‘안전’ 운운하며 표를 건네주었던 아저씨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굳이 어느 객차가 2등석 일반 좌석칸인지 알려주지 않아도, 멀리에서 봐도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로 인해 나머지 사람들이 아슬아슬 매달려 오는 저 객차가 틀림 없다. 열차가 역에 서니 우리나라 출근시간 지하철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내리고자 하는 사람들과 올라타고자 하는 사람들로 인해 일대는 아수라장이 된다. 자리는커녕, 짐을 멘 채로 중심을 잡고 과연 문에 제대로나 매달릴 수 있을까 싶은데, 아무리 살펴봐도 불가능할 것만 같다. 마찬가지로 다른 승하차구를 살펴보던 오빠 역시 혹 껴서 탄다고 해도 제때 못 내리거나, 저 혼돈 속에서 배낭의 온전함을 기대하는 것은 바보짓이란다(틀림없이 이번에는 단순히 꿰매는 것으로 보수가 안 될 것 같다). 열차가 트리반드룸 역에 잠시 정차해 있는 동안, 수 많은 생각이 오고 가던 우리는 결국 차액을 조금 더 내고서라도 2등석 침대칸을 타고 가기로 한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시 열차는 트리반드룸 역을 떠나고, 침대칸에 마주 보고 앉아 승차 시간은 1시간에 불과하니 어쩌면 검표에 안 걸릴지도 몰라~ 하는 기대를 나누며 서로 즐거워 할랑 말랑 하는데 내 맞은 편 저쪽 끝에서 제복을 입은 승무원이 짜잔~ 등장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직원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이 인도 철도청이라고 했던가. 부지런하기도 하지.

 

“오빠, 떴다.”

 

해당 차액만 지불하면 문제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그 놈의 양심이 무엇이길래, 오빠는 뒤를 돌아다 보지도 못하고 나는 괜시리 눈을 안 마주치기 위해 창 밖만 쳐다본다. 검표원 아저씨가 한 칸 한 칸 검표를 하면서 우리쪽으로 다가올 때마다 딱 고만큼씩 점점 가슴이 쿵쿵 뛰어 오는 것이 마치 실기 시험 보기 직전의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데, 우습게도 바르르 떨면서 표를 내민 내 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표를 받아 든 아저씨는 잠깐 훑어보는 듯 하더니 역시나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되돌려준다. 이게 대체 뭐야, 우리 표가 2등석 침대칸용이었단 말인가!

 

콜람, 백워터우리가 콜람에 온 이유는 케랄라(Kerala) 주(州) 관광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콜람과 알레피(Alleppey, 혹은 Alappuzha라고도 불림)간 ‘수로 유람(일명 Backwater cruise)’을 하기 위해서 이다. 케랄라 주의 셀 수 없이 많은 크고 작은 강들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서 생성해낸 길고 복잡한 해안선과 이로 인해 만들어진 운하와 호수를 보다 자유롭게 왕래하기 위해 만들어진 배들을 타고 여유롭게 주변 풍경을 감상하면서 즐기는 수로 유람이라… 생각만 해도 제법 근사하지 않은가!

 

선착장 근처에 숙소를 잡자마자 배편부터 알아보러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12월에서 3월에 이르는 성수기때에는 1인당 150루피에 매일 운행할 뿐만 콜람, 백워터, 중국식그물아니라 100루피로 학생 할인까지 해준다는데(우리에게는 국제학생증이 있다 ^^;), 비수기인 요즘에는 최소 10명이 모여야 - 그것도 1인당 400루피씩이나 내고! - 유람선을 띄운단다. 오늘까지 신청을 해 놓고 세월아 네월아~ 머릿수가 차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외국인은 두 명으로 우리까지 하면 네 명이 되는 셈인데, 내일 서너 명이 더 온다는 소식이 있으니 잘하면 내일 오전, 1인당 500루피씩 지불하고 출발할 수 있을 거란다.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이런데 어쩔래, 예약할래, 말래? 식으로 나오는 여행사 직원에게 우리 역시 생각해보고 알려주겠다 식으로 대답하곤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아무리 이 동네의 하이라이트라도 그 가격을 지불하면서까지 배를 타고 싶지는 않다. 어쩌나, 아쉬운 마음에 야자수 울창한 선착장을 그저 거닐어 보기로 했다. 날도 저물어 가겠다, 텅 비어 있을 거라 생각했던 선착장에는 예상 외로 사람들이 띄엄띄엄 모여 있다. 행색으로 봐서는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 같은데… 혹 저 건물 앞의 판에 쓰여져 있는 숫자들이 배 시간표? 오빠가 직접 물어 확인해 보니, 콜람 근교에 강을 끼고 형성된 작은 마을들로 가는 배편 역시 이 자리에서 운행된다고 한다. 마침 사람들이 하나 둘 올라타고 있는 배는 30분 후쯤 떠날 구하난다푸람(Guhanandapuram)행.

“거기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려요? 가면 돌아오는 배편도 있나요?”
“한 시간 걸려 갔다가 그 곳에서 30분 쉬고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옵니다.”
그래, 너 딱 걸렸다.

 

백워터, 중국식그물무성한 야자나무 숲을 따라 때아닌 선셋 크루즈에 나섰다. 호수인지, 강인지, 아님 바다인지 분간이 안 가는 물 위를 가르는 우리 배 안으로 바람은 산들산들 불어오고, 여느 때 같으면 신경을 거슬릴 모터 소리도 오늘만큼은 경쾌하게만 느껴진다. 배 천장 위에 올라타 방향을 잡는 아저씨는 구하난다푸람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여러 개의 작은 마을 앞 선착장에 배가 서고 다시 출발할 때마다, 아래층에서 기어를 잡고 있는 아저씨가 제 때 기어를 콜람, 중국식그물넣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딸랑딸랑, 끈으로 연결한 종을 울려댄다. 연신 외국인인 우리를 힐끔 거리며 신기해 했던 승객들 중 특히 아이들은 백이면 백, 내릴 때마다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해가 저물어감에 따라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근방의 사람들은 길다랗고 작은 배를 노 저어 타고 나와 Chinese Fishing Net라 불리우는, 그들이 설치해 둔 그물을 물 속에 넣기 위해 손놀림을 서두른다.

 

구하난다푸람에서 돌아오는 길, 어둠은 이미 물 위에 내려앉았는데 물고기들이 밝은 곳에 모여드는 습성이 있다고 했던가? 야자수 늘어진 강변에 줄을 지은 그물 위로 하나 둘씩 불이 들어오면서 마치 가로등 놓인 8차선 도로를 내지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막지 못하고 메들리로 흥얼거리는데, 저 멀리 어둠을 가르며 색색으로 빛을 내고 있는 콜람이 눈에, 그리고 물에 비친다. 
 
Tip

 

교통 : 코발람 - 트리반드룸(코발람행 버스 정류장) / Local bus / 30분 / 1인당 7루피 / Lighthouse beach에서 트리반드룸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Hawah beach를 지나 Sea View Restaurant 오른편으로 난 길을 따라 쭉 올라가 왼편으로 나타나는 작은 광장으로 가면 된다. 광장 안 쪽으로는 Kovalam Ashok Beach Resort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데 그 입구를 통과, 왼편에 위치한 관광 안내소는 무척 친절하다
          트리반드룸 코발람행 버스 정류장 - 콜람행 버스 터미널(KSRTC Long-Distance Bus Stand) / 오토 릭샤 / 5분 / 10루피 / KSRTC Bus Stand는 기차역 바로 맞은 편에 있다
          트리반드룸 - 콜람 / 기차 / 1시간 10분(오후 2시 30분 출발, 3시 40분 도착) / 1인당 39루피


숙소 : Hotel Shines / 천장의 fan과 욕실, 깔끔한 발코니가 딸린 더블룸이 200루피(새 sheet를 가져다 주는 바람에 감동!) / Check out 시간은 Check in후 24시간(24시간제 호텔) / 콜람역에서 내려 역사로 나가지 말고 철로를 횡단하여 반대편으로 나가면 대로를 만난다. 그 자리에서 릭샤를 탔는데 아저씨가 비슷한 이름의 다른 호텔로 우리를 데려다 주는 바람에 조금 돌아 숙소까지 20루피를 지불했지만, 제대로 찾아온다면 최고 15루피 이상 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이제야 릭샤에 대한 감각이 조금씩 서는 우리 ^^). 선착장과 버스 터미널, 먹을만한 식당들도 가까워 맘에 든다


관광 : 콜람 <-> 구하난다푸람 / 배(Local boat) / 편도 1시간 / 1인당 편도 5루피 / 숙소에서 나와 왼편으로 가다 만나는 첫 번째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여 쭉 내려가면 버스 터미널 바로 옆에 있는 선착장(Jetty)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구하난다푸람 이외에도 버스가 갈 수 없는 근교 강변 마을들로 배가 여러 척 다니니 현지인들과 섞이고 싶다면 도전해 볼 것

 

★ 버스 터미널과 선착장 사이에는 DTPC(District Tourism Promotion Council) center가 있어 수로 유람을 하고자 할 때 유용하게 접촉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우리가 찾아갔을 때에는 비수기라서인지 문을 닫아 어쩔 수 없이 바로 건너편의 사설 여행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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