뭄바이, 인디안게이트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사실 인도에 눈독을 들인 나라는 영국 뿐만이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래 전인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에 상륙한 이래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그리고 프랑스 등 수 많은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탐욕의 침을 흘리며 어떻게 한 번 인도의 피를 빨아볼까 노심초사 해왔던 것이다. 그 중 영국은 인도에 가장 최근까지 남아있었던 나라로 뭄바이는 그 전까지는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다가 포르투갈의 왕녀가 영국으로 시집오면서 혼수로 가지고 온 섬들이다. 그 후 자연스레 영국, 특히 동인도회사의 인도 경영의 근거지가 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급격히 발전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란 그 시대 양식의 성채, 은행을 포함하여 상업적인 용도로 지어진 건물들, 조폐국, 영국인들의 숙소, 항만 등을 말하는데, 그래서인지 뭄바이의 건물들은 지극히 영국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화려한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역 앞을 자연스레 누비는 빨간 색의 이층 버스를 포함해서. 그래서인지 거리를 걷고 있노라면 마치 유럽의 여느 거리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고 만다.

 

지도를 보면 마름모꼴 모양의 인도 대륙에서 서해안 중간 지점쯤에 위치해 있는 뭄바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뭄바이의 지리적 요건 덕분에 지금까지도 북쪽에 치우쳐 박혀있는 수도 델리를 제치고 가장 서구화되기 쉬웠을 것이라는 게 짐작이 간다. 인도 제 1의 뭄바이 항구에는 커다란 선박들이 다양한 물건을 수출입하느라 끊이지를 않고, 국제선 항공편도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고 많은 데에 놀라게 된다. 시내를 걸으면 맥도날드를 비롯, 우리에게도 익숙한 다국적 회사들의 간판이 쉽게 눈에 뜨이고(Citibank ATM에 뜨는 한국어라니!), 릭샤가 한 대도 없는 고층건물 가득한 거리에 - 대신 그 자리를 검은색으로 일괄되게 칠해진 수 많은 택시들이 차지하고 있다 - 사리를 걸치지 않은 여인들이 자연스레 활보하고 있다. 인도에서 사리 대신 치마와 티셔츠를 입은 여인을 보는 것도 처음인 것 같은데, 아예 민 소매 티에 핫팬츠를 입고 조깅을 하는 파마 머리의 아줌마와 조금은 은밀한 장소이긴 하지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서로 붙어 앉아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모습이라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인도의 또 다른 모습을 여기, 뭄바이에서 만난다.

 

타지마할호텔, 뭄바이피서를 왔다 싶을 정도로 북인도에 비하여 시원한 뭄바이의 기후는 아마도 뭄바이가 마주 대하고 있는 아라비아해 덕분일 것이다. 아라비아해에서 끊임 없이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더위에 지친 우리를 절로 기분 좋게 만드는데, 근사하게 지어진 타지 마할 호텔이 이런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 1903년에 지어진 호텔이라니 자그마치 100살이나 된 셈인데 구관은 지금 바라보아도 다른 현대식 건물이 따라오기 힘든 훌륭한 디자인인지라 이 지역을 설명할 때 중심이 되는 이유를 알 만하다. 이 호텔을 세운 사람은 당시 인도 최대의 부호로 뭄바이의 유럽 호텔에 들어가려다가 단지 ‘백인’이 아닌 ‘현지인’이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은 뒤에 화가 나서 아예 본인이 호텔을 짓기로 결심을 했다는데 그러고 보면 그 당시에는 돈으로 안 되는 일도 있었나 보다.^^; 덕분에 ‘아시아의 별’이라는 칭호가 잘 어울리는 아주 멋진 호텔이 탄생하게 되었지만…

 

영자 신문에는 크리켓 - 나는 그저 야구와 비슷해 보이는 이 스포츠의 룰을 전혀 모른다 - 경기와 그 선수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가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영화를 만들어내는 나라가 인도라더니 거리에는 볼리우드(Bollywood = 뭄바이의 옛 이름 Bombay + Hollywood)라는 애칭답게 인도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들이 즐비하다.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꼭 극장에서가 아니더라도 필연적으로 인도 영화와 마주치게 되는데 뭐랄까, 일반적으로 서민들이 즐겨보는 해피앤딩의 영화에는 로맨스와 폭력, 그리고 음악과 춤이 빠지지 않고 적당히 버무려져 있다고나 할까? 나 역시 말은 한 마디도 못 알아들어도 중간에 끼어 든 사람에게 지금까지의 줄거리를 대략 설명해 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인, 어찌 보면 결말이 뻔한 이야기인데도 그들은 정말 열심히, 마치 본인이 극 중 주인공이라도 되는 것 인양 빠져들어 영화를 본다.

 

초우파티해변저녁이면 초우파티(Chowpatty) 해변에 삼삼오오 몰려드는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모래사장을 뒤덮은 쓰레기들과는 대조적인 밝고 여유로운 모습을 엿볼 수 있고, 제방을 따라 등불이 들어오는 밤에는 이 해변과 잇닿아 활처럼 구부러진 해안 도로가 왜 ‘여왕의 목걸이’라고 불리워지는지 짐작이 간다. 우리가 묵는 숙소에서는 밤에 맥주도 마시지 않고 춤도 안 추러 가는 우리를 아주 의아하게 생각하는데…(인도에서 밤 문화가 가장 활성화 되어 있는 도시가 뭄바이란다) 비록 가보지는 못했지만 아시아 최대의 홍등가와 도시로 모여드는 엄청난 빈민들이 형성한 인도 최대의 빈민가까지 뭄바이의 현재 모습을 이루고 있다고 볼 때, 글쎄,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끼리 섞여 묘한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다고 표현을 하면 될는지…

 

인디안게이트또 하나 뭄바이의 상징이자 오후가 되면 시민들이 발길을 옮기는 장소가 바로 파리의 개선문을 연상시키는 ‘Gateway of India’이다. 밤이 되면 멋진 조명을 받아 한층 그 위엄을 더하는 이 문 역시 1911년, 영국왕 부부의 인도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그리고 이후 영국에서 오는 VIP들의 환영식장으로 쓰기 위해 건축된 것이라 하니 뭄바이 시내의 다른 여러 건물들과 더불어 식민 시대의 잔재임이 틀림 없다. 이 맞은 편으로는 말을 탄 시바지(Shivaji)의 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가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인물 중의 하나임을 떠올려 볼 때 조금은 아이러니칼 하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지금 Gateway of India와 창을 든 시바지 사이에 조성된 작은 공원에 모여들어 정담을 나누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과거에 대해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괜시리 세종로에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생각나는 날이다.  
   
Tip

관광 : Harbour Cruising / 배 / 30분 / 1인당 30루피 + 배 2층으로 올라가고 싶으면 1인당 5루피를 더 내야 함 / Gateway of India 바로 앞에서 타고 내린다(Elephanta 섬으로 가는 배편도 이 곳에 있다)
       Chowpatty beach / 시내 버스(103, 106, 107, 123번) / 30분 / 1인당 5루피 / Gateway of India와 우리 숙소가 놓여 있는 PJ Ramchandani Marg길과 평행하게 시내쪽으로 놓인 찻길인 Colaba Causeway에 숙소를 기준으로 반대편에 버스 정거장이 있다. 각 버스마다 서는 정거장이 조금씩 떨어져 있으니 주의해서 탈 것. 우리는 2층 버스를 타보고 싶어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상기 버스 중에는 2층 버스가 없는 듯 싶다. 버스를 타면 작은 양철 박스를 맨 차장이 알아서 돈을 받으러 오는데 이때 나누어 주는 승차권을 내릴 때까지 지니고 있도록. 가끔 경찰(?)이 올라타 검사를 한다.

PC방 : Access Infotech / 시간당 30루피 / 한글이 깔려있고, 속도가 빠르다 / 숙소를 기준으로 해변을 뒤로 하고 시내쪽으로 걷다 보면 마찬가지로 Colaba Causeway를 만날 것이다. 건너지 말고 좌측으로 틀어 길을 따라 오르다 작은 왼쪽 골목 내에 위치 

식당 : Cafe Churchill / 맛있는 steak를 먹을 수 있는 곳(와, 소고기다!) / 상류층 현지인들마저 가세해 자리가 항상 만원이다 / 상기 PC방 바로 못 미쳐 위치     

* 오늘 숙소에서 벌어진 작은 해프닝 : 평소 우리는 매일마다 그 전날 밤의 숙박비를 치루어 왔는데 오늘도 마찬가지로 어제의 숙박비를 치루기 위해 400루피를 내면서 거스름돈 50루피를 기다렸다. 그러나 종업원 말이 내가 본인에게 준 돈은 300루피였다며 50루피를 더 달라는 것이 아닌가? 분명 100루피 짜리 4장을 세서 건네 주었거늘… 그럴 때에는 목소리 근엄하게 깔고 단호하고 분명하게 따지자. 생각보다 순순히 물러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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