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파트나에서 바라나시로 올 때 4시간 남짓 만에 땀에 포옥 젖어 커다란 물 두 통을 비우고도 탈진했던 쓰라린 기억이 있다. 사르나트에서 만난 많은 “젊은” 여행자들은 바라나시에서 델리로, 혹은 캘커타로 기차의 2nd Sleeper를 이용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잘도 대륙을 종횡무진 하던데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이 젊은 ‘홍길동’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여곡절 끝에 사르나트에서 정한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뭄바이였는데, 물론 두 도시간 거리도 상당하거니와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인도 철도의 현 상황을 고려해볼 때 “늙은”(?) ‘고길동’인 우리가 2nd Sleeper로 24시간이 넘어간다는 기차 여행을 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미리 예매를 해 둔 표는 에어컨 시설이 되어있다는 3층짜리 침대 칸(3 Tier)이었다. 에어컨, 그 단어가 이토록 우리를 설레게 할 줄이야… 우리가 어릴 적 부르던 노래(?) 중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물론 다들 아시죠?). 그 노래의 중간 소절쯤에 ‘길~면 기차’하는 부분이 지극히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정말 엄청나게 긴 기차의 거의 맨 앞 부분에 우리가 타야 할 칸이 있는 까닭에 땀을 뻘뻘 흘리며 플랫폼을 한참이나 걸어야 했지만, 우리의 그런 투덜거림은 해당 객실의 문을 여는 순간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 이 차가운 바람. 온 몸의 땀구멍이 좁아지는 느낌!

 

객차 내는 이미 냉방이 잘 되어 있었고, 바닥도 깨끗했고, 창문은 통 유리로 이전의 쇠창살은 찾아볼 수 없었다. 3층으로 이루어진 침대 중 우리가 배정 받은 침대는 꼭대기층과 중간층이었는데 꼭대기층은 언제든 침대로 쓸 수 있게끔 펼쳐진 상태였고, 중간층은 낮 시간 동안 맨 아래층에서 승객들이 앉아갈 수 있도록 벽으로 접혀 올려진 상태였다. 그래, 바로 이거야. 우리는 물을 만난 물고기마냥 신이 나서 침대를 팔락팔락 오르내렸다. 물론 다른 승객들이 하나 둘씩 객차에 몸을 실으면서 우리 장난도 멈출 수 밖에 없었지만…

 

그런데 가만 있자, 올라타는 사람들의 모양새부터가 지금껏 우리가 길거리에서 보아왔던 사람들의 행색과는 완전히 다르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위아래 다 잘 차려 입었고, 여자들 역시 사리로 가려진 부분 이외에는 발가락까지 귀금속을 칭칭 감아 둘렀다(어쩜 사리로 가려진 부분에도 둘렀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그들의 피부색이란, 물론 기본색(?)이야 바탕에 깔려있지만, 보통 사람들보다 현저히 하얗다. 이 사람들이 야외에서 일을 안 하기 때문에 안 탄 것인지, 아니면 알려진 대로 오랜 세월 동안 상위 카스트끼리만 이루어진 결혼 탓에 한 나라에서도 조금씩 다른 혈통이 따로 존재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들이 우리가 그간 만나왔던 다른 이들에 비하여 경제적으로 훨씬 나은 위치에 있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겠다. 하물며 행색이 꼬질꼬질한 우리들을 쓰윽~ 훑어보면서 보내는 그들의 동정 섞인 눈길이라니…

 

열차가 역을 뒤로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승무원이 등장하여 승객들에게 모포와 베개 따위를 나누어 주기 시작한다. 아닌 게 아니라 에어컨도 빵빵한데 더불어 틀어놓은 선풍기 바람에 오히려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고상한 객차 내 분위기에 우리는 지금 나누어주는 침구가 무료일까 아닐까를 물어보지도 못하고 남들처럼 일단 그냥 받아 든다.


“오빠, 이거 이렇게 받았다가 나중에 내릴 때 돈 엄청 내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글쎄… 에잇, 까짓 거 내고 말지, 뭐. 그렇다고 우리만 침낭을 꺼내 쓰기에도 좀 그렇잖아.”  


여태 양반 기질이 남아있는 대한민국인들은 그 놈의 체면 때문에 못내 찝찝한 침구를 그냥 사용하기로 한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우리와 함께 좌석을 차지한 부부가 영자 신문과 잡지를 보는 게 지겨워졌는지 부인이 가지고 있던 유명 브랜드의 핸드백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 든다. 뭔가 하니 다름 아닌 트럼프. 네팔인들이 길거리 바닥에 판을 그려놓고 주사위 놀이 따위를 하는 것은 본 적이 있지만, 인도에 와서는 인도인들이 모여 무언가 ‘놀이’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마도 그래서 알게 모르게 그들이 더욱 곤궁하다고 느꼈겠지만, 여기에서 트럼프를 가지고 ‘노는’ 인도인들을 만나게 될 줄이야… 나도 그 방법을 모르는 카드 놀이를 자연스레 즐기는 그들의 모습에서 인도의 또 다른 얼굴을 본다.

 

우리 옆 줄로 위 아래 두 층짜리 침대의 아래층을 차지한 잘생긴 젊은이 역시 ‘있어 보이는’ 아버지의 배웅을 받으며 혼자 여행이라도 가는 모양인데, 유명 브랜드의 청바지 위에 받혀 입은 또 다른 유명 브랜드의 하얀 티가 마치 한국에서 보는 여느 젊은이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침대에 기대어 벨 한 번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계속 만지작거리며(쯧쯧, 인도 내에서는 자유 연애가 힘들다더니 ^^;)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모습은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모습이지 않나 싶다. 비록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헤드폰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일반 카세트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폼은 꼭 mp3쯤 되어 보였는데 ^^;)…

 

더욱 알 수 없는 일은 승무원이 식사 주문을 받으러 올 때에도 서로 영어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처음 보는 승객끼리도 영어를 사용하며, 심지어 우리와 함께 자리를 공유한 트럼프 부부마저도 서로 영어와 힌디어를 섞어 사용한다는 사실이다(우리보고 본인들 대화를 들어보라고 그러는 것은 분명 아닐텐데). 이 정도쯤 되면 단순히 나라가 넓어 나뉘어진 주별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오빠가 한 마디 한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전라도 사람과 경상도 사람이 서로 말이 안 통해 그럴 때마다 영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해 봐.”


정말 생각만 해도 까마득하군. 

 

어떤 의미에서든 인도는 정말 “넓은” 나라이다.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여러 세상이 절대 섞이지 않은 채 공존하고 있다.               

 

덧붙임 : 다행히도(?) 나누어주었던 침구는 공짜였다 ^^;
  
Tip


교통 : 녹야원 - 바라나시 기차역 / 오토 릭샤 / 30분 / 55루피(50루피로도 충분한 것 같았지만 단골 릭샤 아저씨가 그렇게 우기길래)
          바라나시 - 뭄바이 기차역(CST 혹은 VT라 불리우는) / 기차(3 Tier A/C) / 27시간 15분(오전 11시 30분 출발, 익일 오후 2시 45분 도착) / 1인당 1178루피(약 3만원 정도)
         뭄바이 기차역 - Gateway of India / 택시 / 20분 / 19루피(Meter제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택시가 구 meter기를 달고 있어 택시 내에 환산표가 따로이 비치되어 있다)


* 드디어 뭄바이 기차역의 구내 서점에서 ‘Trains at a glance’라는 철도 노선 안내 책자를 구입했다(25루피). 인도의 복잡한 철도 노선을 찾기 쉽게 정리해 두었으며, 출발 시간과 거리별 요금, 각 열차 당 보유 객차의 종류에 이르기까지 알고자 하는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 

숙소 : Hotel Prosser’s / 천장에 fan은 있으나 옆 방과는 천장까지 닿지도 않는 합판으로 대충 벽을 만든 2인실이 1박 350루피(원래는 400루피라는데) / 화장실과 욕실은 공동 사용 / Gateway of India에서 해안을 따라 남서쪽으로 200m 정도 걸으면 바로 오른쪽으로 위치 

 

* 워낙 뭄바이는 배낭족들에게 살인적인 물가로 유명세를 떨치는 곳이다(상기 숙소 역시 뭄바이에서도 배낭 여행자들이 모인다는 Colaba 지역의 숙소인데도 가격 수준이 상당하다). 숙소의 질에 비해 가격이 비싸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이럴 때에는 우리나라를 한 번 떠올려 보자. 돈을 지불하는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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