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누군가 인도에서의 열차 여행이 단순한 이동 수단으로서가 아닌 그 자체로 충분히 ‘인도 여행’이 된다고 했던가. 그만큼 인도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중 교통이자, 여행자들에게 풍부한 체험을 겪을 수 있도록 해 준다는 말이겠지. 오늘 우리는 중국을 떠난 뒤 처음으로 열차를 만났다.

 

파트나 기차역의 예약 창구가 상당히 복잡하다는 소문을 들은지라 선뜻 직접 표를 예매하기가 망설여졌다. 게다가 여기는 여행 시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라는 인도가 아닌가? 살고 있는 사람이 많은 만큼 여행자들에 대한 가벼운 바가지에서 단위가 큰 사기, 좀도둑부터 유괴나 살인도 서슴지 않는 강도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끊이지 않고 시끄러운 곳, 인도. 그래서 우리는 하루 전날인 어제, 기차표 예매를 대행해 준다는 몇 군데 여행사부터 일단 들러 보기로 했다. 우리가 구입을 원했던 등급은 2nd Sleeper로 주로 배낭 여행자들이 애용한다는 2등 침대칸. 아예 여행사 문을 닫고 영업을 안 하거나, 직원이 영어를 못하거나, 오늘은 표가 매진되었으니 내일 다시 오라는 등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결국 바라나시까지는 4시간이 소요되고 2nd Sleeper의 1인당 가격은 158루피이며 지금 당장 예매가 가능하다는 여행사를 찾아냈다. 그러나 여기에 수수료조로 장 당 100루피씩을 더 받는다나? 158루피 짜리의 표에 자그마치 100루피에 달하는 수수료라니… 당연히 ‘봉’이 되기를 원치 않는 우리는 아쉬워하는 아저씨를 뒤로 하고 한 발짝 물러설 수 밖에.

 

그리고 오늘 아침, 일찍 가면 사람이 없으리라는 야무진 상상 아래 우리 스스로 역을 찾았을 때, ‘아, 이래서 웬만하면 여행사를 이용하라고 했구나’ 절로 이해가 갔다. 우선 역 입구에서부터 수많은 릭샤와 자전거, 오토바이, 자가용과 버스가 엉키고 섥혀 참기 힘든 소음과 매연을 서로 경쟁하듯 내뿜어대면서 군데군데 서 있는 교통 경찰을 무능하게 보이게 했다. 고개를 좌우로 정신 없이 돌려가며 차를 피해 겨우 전면에 보이는 역사로 들어서니 이 곳은 표를 사는 곳이 아니라, 기차를 타는 곳이라나? 다시 옆 건물로 들어가 말로만 존재 여부를 들어온 외국인 전용 창구를 찾으려는데 넘치는 사람들로 인해 도무지 눈에 뜨이지를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아예 찾기를 포기하고 그냥 현지인들과 같은 방법으로 표를 구하려고 창구마다 늘어선 줄 중에 게 중 짧아보이는 줄에 오빠와 섰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줄이 줄어들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빼꼼 내밀어 앞을 바라보니 아니나 다를까 줄을 선 것과는 상관없이 머리를 들이밀고 먼저 돈을 창구 내로 들이미는 사람이 장땡인 시스템. 흐음, 여기도 중국과 마찬가지란 말이지…

 

오빠와 나는 전략을 바꾸어 두 줄에 나누어 서 본다. 현지인들처럼 머리를 들이밀고 표를 구입하기에는 아직 우리의 내공이 딸린다고 판단한지라… 내가 선 줄이 오빠보다 조금은 빠르게 줄어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 옆을 지나가던 현지인이 나를 툭 치며 다른 쪽으로 가라는 시늉을 한다. 앗, 외국인 창구를 안내해주려나 보다 싶었는데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가보니 사리를 둘러쓴 여성 전용 창구가 오른쪽 끝 창구로 어느새 생겨났다. 마침 줄도 훨씬 짧겠다, 인도에서 여자라서 유리한 점도 있군, 하며 그 줄로 얼른 옮겨 선다. 역시 어디에서나 줄을 잘 서야…

 

혹시 몰라 오빠는 그대로 오빠 줄에 남겨두고 나 혼자 여성 전용 창구 앞의 줄에 서 있으려니 내 앞에 선 여자들이 옆에 하나씩 남자를 끼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언어는 몰라도 대충 눈치로 옆에 선 남자들이 계속해서 여자에게 구입해야 할 표에 대하여 주지를 시키는 폼이 이런 식으로 여자를 이용(?)해서 표를 구입하는 것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닌가 보다. 어떤 여자는 표를 구입해서 옆의 남자에게 건네주고 다시 내 뒤쪽으로 와서 서고는 또 다른 남자에게 돈을 받는 것이, 전문직(?) 여성인 듯도 싶고… 여하간 특권 아닌 특권을 이용해서 오빠보다 빨리 창구 앞에 섰다. 내 영어 발음도 발음이지만, 아저씨 영어도 끝내준다. 여기서 사는 것이 맞다는 건지 아닌지, 오늘 표가 있다는 건지 아닌지, 2nd Sleeper를 살 수 있다는 건지 아닌지… 서로 자기 말만을 몇 번씩 내뱉고서야 아저씨가 단말기를 두드려대기 시작하는데, 표가 인쇄되어 나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과연 우리 사이에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는지 잔뜩 긴장이 된다. 아저씨가 내게 건네준 표에서 오늘 날짜와 영문으로 쓰여진 목적지가 일단 맞는 것을 확인하고는 ‘thank you very much’하고 방긋 웃어주며 돌아섰는데, 의기양양하게 표를 쥐고 돌아오는 내게서 표를 받아 든 오빠는 꼼꼼히 살펴보더니 열차편에 대한 언급과 승차 시간이 없다며 뭐라 투덜거린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한 마디, “야, 이거 왜 이렇게 싸냐? 제대로 산 것 맞아?”

 

다시 아저씨를 찾아가 또 한참 헤매가며 물어보니 오늘 2nd Sleeper는 없고,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 중에 아무 편이나 오늘 내로 타면 된다는 것 같다. 2nd Sleeper가 아니고 아무 편이나 타라고라? 그렇다면 우리가 구입한 것이 2등칸 좌석표이거나 입석이거나 뭐 그렇단 말인가? 어쨌든 4시간 밖에 안 걸린다는데, 뭐. 이제 표를 구입했으니 바라나시로 가는 일만 남았다.

 

숙소로 돌아와 급하게 짐을 챙겨 들고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갔다. 마침 바라나시를 경유하여 델리를 향해 가는 파트나발 열차가 있어 올라탔는데 왜 그리 객차마다 사람이 많은지, 다들 대체 어디를 가는 건지, 어차피 정해진 좌석이 없는 이상 아무데나 비집고 자리를 잡으면 될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봐도 우리 엉덩이를 붙일 공간이 마땅치가 않다. 선반처럼 보이는 공간에도 사람이 올라 어정쩡하게 박혀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객차와 객차를 잇는 공간에 신문지라도 깔아놓고 앉아서 가야하는게 아닐까 싶은데… 쑤셔둔 신문지를 뒤적거리며 찾는 내게 앞서 가던 오빠가 마구 손짓을 해댄다. 사람들을 헤치고 오빠에게 다가서니 정말 우리 둘이 앉을만한 공간이 있다. 얼른 그 자리로 둘이 스며든다.

 

내 머리 위로 덜거덕 소리를 내며 세 개의 아주 작은 선풍기가 돌아가고 - 그래도 땀이 절로 흐르는데 -, 원래는 3명을 위해 디자인된 듯한 좌석에는 적어도 4명씩 앉았다. 마치 그게 정상이라는 듯이. 창문에는 감방마냥 두꺼운 쇠창살이 쳐져 있어 혹 사고가 나더라도 그리로 탈출하기에는 불가능하게 생겼다. 왜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걸까? 소문과는 달리 열차는 정시에 출발하고 달리는 속도가 붙자 창살 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그나마 조금 시원해진다.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원숭이 보듯 하는 것만 제외하면 그래도 제법 탈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결국 게 중 용감한 사람이 우리에게 이것 저것 묻기 시작한다. 묻는 말에 답하면서 우리 둘레에 앉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자니 차려 입은 그들의 행색에서, 굵은 손마디와 갈라질 대로 갈라지고 터버린 그들의 손에서, 푹 꺼져 휑해 보이는 그들의 눈에서, 골격이 드러나는 그들의 몸매에서 곤궁함이 뚝뚝 묻어난다. 지나치는 기차 밖 풍경도 기차 안과 크게 다를 것이 없긴 마찬가지이다. 정말 지독히도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

 

내릴 때가 거진 다 되어서야 우리가 앉아서 온 자리가 가격이 두 배 이상 비싼, 기존에 우리가 원했던 2nd Sleeper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쩐지 좌석이 그래도 푹신하고 내 머리 위로 접혀진 침대 같은 것이 있다 했더니만… 어쨌든 표 검사를 안 당한 탓에 땀에 절은 우리가 바라나시역을 비틀거리며 나설 때까지 무사 통과했다.

 

어렸을 적, 울 엄마는 딸을 실패에도 굴하지 않는 꿋꿋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나는 언제쯤이나 기차를 제대로 잘 탈 수 있을까? 오늘따라 엄마의 그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Tip


교통 : 파트나 - 바라나시 / 기차 / 4시간 20분 / 1인당 66루피 / Patna Junction Train Station에는 하루에도 몇 차례 바라나시를 지나는 기차편이 있다

숙소 : Puja Guest House / Lalita Ghat 근처(화살표가 있음) / 천장의 fan과 개인 욕실이 딸린 더블룸이 150루피 / 숙소 옥상에 바라나시에서 몇 안 되는 전망 좋은 Roof Top Restaurant을 24시간 운영 / 웬만해서는 매우 찾기 힘든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 번 숙소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고 싶어지지 않을 정도이며(물론 숙소가 너무 좋아서라기보담은 오고 가는 바라나시의 길거리가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_-;), 76년 생이라고는 도무지 안 믿어지는 매니저 Amit이 무척 친절하다 / 우리의 경우 바라나시역(Varanasi Junction Train Station)에서 20루피에(처음에는 40루피를 불렀던) 오토 릭샤를 한 대 잡아타고 Puja G. H 앞까지 안내를 받았다. 오토 릭샤보다 사이클 릭샤가 Ghat (목욕 계단) 밀집 지역으로 좀 더 가까이까지 들어올 수 있으니 사이클 릭샤를 타는 것이 좋을 듯


* 바라나시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숙소로 유명한 샨티 게스트 하우스(Shanti G. H)가 있는데 우리가 묵었던 푸자 게스트 하우스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마찬가지로 전망 좋은 Roof Top Restaurant을 가지고 있어 서양인들도 많이 찾는다는데, 숙소 자체는 별로 좋지 않다(?)라는 소문을 많이 접한지라 처음부터 아예 푸자 게스트 하우스로 발길을 돌렸다. 현재 샨티에 묵고 있는 사람들 말로도 별로라고는 하지만 워낙 한국인들이 많이 머무른다니(현재 10명 이상) 모국인들이 그리우면 고려해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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