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야원녹야원(鹿野園)은 깨달음을 이룬 석가모니가 이곳에 이르러 5명의 수행자에게 최초로 설법을 하였고 그로 인해 그들의 귀의를 받았다고 하여 불교의 4대 성지 가운데 하나로 추앙 받는 곳이다(참고로 불교의 4대 성지는 불교 교단 성립의 기초를 마련한 이 곳 사르나트 이외에 석가모니가 태어난 네팔의 룸비니(Lumbini),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Bodhgaya), 열반에 든 쿠시나가라(Kusinagara)가 그것이다). 옛 이야기에 의하면 먼 옛날, 바라나국(國)의 왕이 이곳에 와 사냥을 할 때에 1,000마리의 사슴을 생포하였는데 사슴의 왕이 하루에 한 마리씩 보내줄 테니 놓아달라 애원하여 모든 사슴이 풀려나게 되었다고 하며 그 이후로 이곳이 녹야원이라 일컬어져 지금의 사르나트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사르나트에는 다시 우리나라 사원인 ‘녹야원’이 있고.

 

보통 외국인 여행자들이 사르나트를 찾는 이유에는 상기 언급한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라는 이유 이외에도, 이후 아소카 왕이 이곳을 순례하면서 여기에 탑과 돌기둥을 세웠기에 더욱 그 세가 흥해, 8세기 초에는 이 자리에 약 30m 높이의 정사(精舍)가 솟아 있고, 그 주위로 100여 단이나 되는 감실(龕室)에 황금 불상과 부조가 있었으며 줄잡아 1,000여 명의 승려가 거주하는 등의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13세기 무렵 이곳을 찾은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에게 유린되어 그 흔적을 찾기 힘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이와 더불어 이곳에는 불교를 신봉하는 많은 나라에서 세운 각국의 불교 사원들이 있어 해당 국가 여행자들에게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한국 사원인 ‘녹야원’도 그런 존재였고.

 

사실 우리가 녹야원을 찾은 데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델리를 목표로 하고 바라나시에 들렸던 우리가, 생각보다 시원한 바라나시에서 특별히 하는 일없이 소일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접하게 된 것이 일간 신문이었는데 그 신문에 의하면 현재 델리의 최고 기온이 섭씨 40도에 달한다는 것이었다. 맙소사, 40도라니… 그렇다고 다시 동쪽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결국 신문의 일기 예보란을 샅샅이 살펴본 결과, 우리가 가야 할 다음 목적지는 최고 기온이 불과 30도라는 해변 도시 ‘뭄바이(Mumbai, 예전에는 봄베이라 불리웠던)’로 결정지어졌다. 일단 뭄바이로 가서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무식한 이 더위가 한풀 꺾일 때쯤 북으로 올라오기로. 그러나 네팔을 떠난 이후로 일주일째 한국 음식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 온 오빠는 한국 식당이 있다는 델리를 은근히 기대해왔던 모양인지 뭄바이로 가야겠다고 결정을 내리고도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그럼 어쩌랴, 방법을 찾아야지. 마침 바라나시에서 멀지 않은 ‘사르나트’라는 곳에 한국 사원이 있다고 하니 그 곳에 가면 적어도 김치 한 조각은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이런 터무니 없는 발상만으로도 생기가 없던 오빠의 얼굴에 희색이 돌기 시작한다.

“그래? 그러면 당장 거기로 가 보자.”


무심코 꺼낸 말이었기에 그런 오빠의 반응에 당황스러워진 나는 거기까지는 어떻게 가냐, 잠은 어디에서 잘 거냐, 만약 그 곳에도 한국 음식이 없으면 어떻게 하냐, 오빠를 붙들어보지만 이미 김치가 눈 앞에서 왔다갔다하는 오빠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짐을 꾸려 사르나트로 떠날 준비를 한다. 

 

차에서 내려 표지판을 보고 찾아가는 길, ‘녹야원’ 간판이 내걸린 사원이 눈에 들어올 때까지 커다란 짐을 짊어지고 여기까지 무작정 찾아온 나는 내내 불안하다. 아무도 서있지 않은 입구를 미적거리며 들어서려는데 이게 웬일인가! 댓돌에 가득 놓인 전형적인 배낭 여행자들의 신발들… 삐익~ 소리 내며 사원 내로 들어서니 먼저 와 있던 한국 배낭 여행자들이 득시글거리며 우리를 맞는다.
“스님은 바라나시에 볼일 보러 가셔서 이따가 오실 거여요. 지금 막 점심을 차리던 중이었으니 일단 와서 식사부터 같이 하셔요.”


아, 이 한국인의 정. 얼씨구나 좋아하는 오빠를 따라 미안한 척(?) 식당에 들어서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제비가 마악~ 차려진다. 그리고 당연히(?) 따라 나오는 총각 김치. 귀에 걸리는 오빠의 입.

 

알고 보니 이곳은 인도를 찾는 한국인 배낭 여행객들의 아지트였던 것이었다. 주지 스님께서 쌀과 된장 및 고추장을 비롯, 요리에 필요한 각종 양념을 무상으로 제공해 주시지만, 이외 반찬 재료는 이 곳을 찾아 들어오는 사람들의 몫이다. 비록 인도에서 구입할 수 있는 야채는 무궁무진하게 많더라도 우리가 먹을만한 야채 종류는 제한되어 있기에 보통은 감자, 가지, 양배추, 오이가 돌아가며 양파와 마늘에 의해 양념이 되지만 그래도 제법 훌륭한 한국 맛이 만들어진다. 내가 ‘아줌마’라는 사실에 무척이나 반가워 하던 사람들이 나의 형편없는 요리 솜씨에 엄청나게 실망을 하긴 했지만(대신 티벳에서부터 들고 다녔던 신라면을 왕창 풀어 점수를 땄다^^), 그래도 아줌마보다 훨씬 나은 ‘아가씨’들이 많아 다행이다. 실력이 딸리는 오빠와 나는 보조 주방장의 조수 정도 역할에도 만족해 하며 이 곳의 화기애애한 ‘MT 분위기’를 오래간만에 즐기는데, 출타하셨던 스님이 돌아오신 후 한국인 12명이 모여 다같이 저녁 식사를 하고 편 갈라 벌이는 ‘닭백숙 내기’ 윷놀이에서 그 분위기는 절정에 다다른다. 윷놀이의 결과는? 타칭 부부 사기 도박단의 승리! ^^;

 

뿌듯한 하루를 보내고 배정 받은 방 침대에 누우면서 오빠는 이 곳에 하루 더 머무르겠다고 한다. 충분히 한국 맛을 느낀 후에 떠나겠다나? 내 그럴 줄 알았다.              

 

Tip


교통 : 바라나시 - 사르나트 녹야원(Korean Temple) / 오토 릭샤 / 30분 / 70루피 / 왕복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이 흥정이 필요하며, 내놓고 외국인 요금을 요구한다. 물론 바라나시역 앞에서 사르나트로 오는 저렴한 버스도 있다고 함


* 인도 여행을 하면서는 웬만한 수준에서 흥정을 멈추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아마도 남들보다 조금씩 높게 지불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 방식이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은 왜일까?


녹야원 <-> 바라나시 기차역 / 오토 릭샤 / 왕복 1시간 / 110루피(10루피는 역에서의 대기에 필요한 주차비라나?)


* 바라나시역의 시원한 외국인 창구에서 기차표 예매를 할 때에는 여권과 환전 영수증이 꼭 필요하다. 물론 요구하지 않는 경우도 간혹 있다던데 그 말을 믿고 처음에 안 가져갔던 우리는 결국 두 번 발걸음을 해야 했다


숙소 : 녹야원 / 천장의 fan과 욕실이 딸린 3인실 / 1층 부엌에서 요리 가능 / 숙박료는 알아서 계산한 뒤 2층 법당 앞에 놓인 헌금함 속으로 골인~


*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찾아오는 신도들의 수에 비해 배낭 여행자의 그 수가 훨씬 많을 녹야원 재정이 그리 넉넉할 리 없다. 인도를 여행하는 배낭 여행자들의 상당수가 분명 이 곳을 찾을 텐데 그럴 때마다 인도에서 구하기 힘든 한국의 조미료를 조금씩 만이라도 준비해 온다면 이 곳을 찾는 다음 사람들에게 크게 도움이 될 듯. 함께 하는 즐거운 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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