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어제의 적이 오늘의 우방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지만, 어제 승부차기까지 한 끝에 멋지게 승리한 한국 대 스페인전 경기를 보고 난 후 오늘 함께 래프팅을 하기 위해 만난 스페인인들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머쓱하기는 그들도 마찬가지인지 “Korean team was really lucky yesterday.”, 어정쩡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어제 경기가 끝난 직 후 여러 다른 나라 사람들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을 때에는 “물론 운도 따랐지만, 실력이 좋았지요.”라고 대꾸했었는데 오늘은 입안에서 맴만 돌 뿐, 정작 스페인인들 앞에서 직접적으로 얘기하기에는 조금 잔인하다는 생각이…

 

여하간 어제는 적이었을지라도, 오늘은 우리와 말 그대로 한 배를 타게 된 운명. 우리와 스페인인 커플을 제외하고도, 네덜란드인 남성과 영국인 여성 커플(분명 여행 중 만났음이 확실한 이 커플은 겉보기에 네덜란드인 남성이 거의 아빠 뻘이다), 홀로 아리랑인 덴마크인 남성까지 7명이 함께 래프팅을 하게 되었다. 래프팅이라…

 

이미 가족들과의 고무보트 뱃놀이나 몇 번의 극기 훈련을 통해 노를 젓는 일에 어색함을 느끼지는 않는 상태였으나, 여하간 내 인생 첫번째의 래프팅은 영월 동강에서였다. 몇 년 전이었나… 동강 살리기 캠페인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직전 즈음이 아니었나 싶다. 래프팅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우리 일상에서 “그게 뭔데?”라는 물음표 없이도 통용될 무렵, 마치 유행처럼 너도 나도 동강으로 몰려들어 심지어 강에서도 배들 간의 정체 현상이 일어나는 기현상을 빚었던 동강붐. 나 역시 그 한 자락에 서 있었다.

 

그러나 물살을 즐기기엔 동강은 너무나 평탄했고, 꾀를 부리기엔 모시고 간 고객이 너무 많았다. 몇 시간을 낑낑거리며 노를 저어야 했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몇 번이나 물 속에 빠져 꼴까닥 혹은 허우적거리면서, 왜 사람들이 동강으로 몰려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일까 의문이 생기기까지 했다. 물론 전신을 울리는 통증이 알싸한 냄새를 풍겨대는 파스와 함께 그 후로도 오랫동안 지속되었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리고 작년 2월, 오토바이를 타고 오빠 뒤에 실려 인도네시아 발리를 돌아다니다 맥도날드 앞 길거리에서 우리가 묵고 있던 리조트에서 제시하는 가격의 1/3에 불과한 래프팅 광고를 보고 기대 반, 의심 반으로 신청한 것이 나의 두 번째 래프팅이었다. 그 때는 남아공에서 신혼 여행 온 백인 부부와 함께 배를 탔었는데, 예상 밖으로 거칠고 빠른 물살에 출발 전부터 겁을 먹은 내 귀에 도무지 영어 설명이 들어오지 않아 정말 불안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막상 흐르는 물살에 몸을 맡기고 나자, 어쩜 그렇게도 재미있던지. 여정의 중간쯤부터 노후된 보트에서 슬슬 바람이 빠지면서 거친 물살이고, 커다란 바위고 간에 그저 부드럽게 타고 넘어가는 것이 오히려 안타까울 정도였다.

 

드디어 오늘 세 번째 래프팅, 발리의 기억에 벌써부터 들떠있던 나는 예약 전부터 아예 1박 2일이나 2박 3일짜리 래프팅을 하자고 오빠를 졸라보는데, 오빠는 여전히 오늘 한 번 해보고 재미있으면 이후 또 하자, 하는 안전주의로 나간다. 드디어 래프팅 시작! 역시나 레저의 천국 네팔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 명성에 걸맞은 즐거움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발리보다 훨씬 강폭이 넓은데도 물살의 빠르기는 빠르면 더 빨랐지, 절대 그에 뒤지지 않아 노를 몇 번 젓지 않아도 산재해 있는 커다란 급류에 다다른다. 강은 곧 우리의 함성과 아우성에 뒤범벅이 되고, 우리는 급류를 통과할 때마다 배가 뒤집힐 듯 요동을 쳐대는 통에 어느새 비 맞은 새앙쥐 꼴이 되어버렸다. 

 

래프팅 중간 지점에서 가이드(river guide)와 안전 요원이 차려주는 즉석 샌드위치는 또 어떻고. 우리와 같이 실려온 커다란 통에서 미리 준비해 온 야채거리와 개인 접시를 꺼내어 널따란 강변에 자리를 깔고는 노 대신 칼을 잡고 우리를 위한 점심 상차림을 시작한다. 양배추며 오이, 토마토, 양파 등을 씻고, 벗기고, 가르고, 자르고, 다듬고, 채 썰고 하는 폼이 나보다 훨씬 나은 것이, 절대 하루 이틀에 쌓아올린 실력이 아니다. 우리도 빵을 꺼내고, 치즈를 썰고, 마요네즈와 야채를 버무리고, 참치 캔을 따고, 각종 잼 통을 열고, 여러 과자봉지를 뜯고 하면서 모두 함께 상차림을 돕고 있으려니 래프팅이 어느새 피크닉으로 탈바꿈 되어 버렸다.

 

래프팅맛있는 점심 식사 후 스페인 커플이 “이제 우리는 배 위에서 시에스타(한 낮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 스페인인들이 즐기는 낮잠)를 가질 테니 너희는 노를 저어라.” 하는 통에 한바탕 웃음으로 2차 래프팅이 시작되었다. 내리쬐는 햇살은 뜨겁고, 허벅지 위로 튀어 오르는 물살은 차갑다. 몇 차례의 신나는 급류타기를 하고, 흙갈색의 본류로 흘러 들어오는 맑고 투명한 작은 지류에서 꺅꺅 소리지르며 한동안 물놀이를 한 후에 아쉬운 내 인생의 세 번째 래프팅을 접어야 했다.

 

벌써 허벅지며 목 뒤 부분이 따끔따끔 따가운 것이 오늘 낮에 홀라당 다 타버린 모양이다. 하긴 그렇게 나이를 잊은 채 무모하게(?) 놀아대고도 안 타길 바라는 것이 욕심이겠지. 내 삶의 네 번째 래프팅을 다시 네팔에서 하게 될지, 아니면 다른 어떤 나라에서 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스릴 넘쳤던 이번 래프팅의 기억이 아마도 한참을 갈 것 같다.

 

Tip

래프팅 : 타멜 거리에는 여행사가 참 많아 어떤 곳을 선택해야 할 지 고민이 될 것이다. Jyatha Road에서 hotel Utse 방향으로 가다 왼편에 위치한 ‘Rainbow Trek   Expedition’(laxmi@hons.com.np)에서는 트리슐리 강 1일짜리 코스를 1인당 900루피(12%의 세금은 별도)까지 해 주겠다고 했고, Kathmandu G. H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편에 위치한 ‘Youth Tours   Travels’(youthtours@hotmail.com)에서는 1인당 15불(USD, 약 1,200루피 정도, 세금 별도)을 불렀으나(보통 이 정도 하는 것 같다), 안전 사고의 위험이 있는지라 Lonely Planet에서 소개한 ‘Himalaya Wonders’에서 하기로 했다. 여행사가 책에서 소개한 위치에서 사라져 있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물어 물어 찾아간 곳이 ‘Himalayan Glacier Trekking’(hgtrek@ccsl.com.np)인데 두 여행사가 자매사로 전자가 래프팅 전문이라면 후자는 트레킹 전문으로 분화를 시킨 것이라나?(어쨌든 같은 회사란다) 위치는 Hot Bread를 뒤로 하고 Jyatha Road 쪽으로 걷다 만나는 어정쩡한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바로 오른쪽 2층에 위치하고 있다. 가격은 세금 포함, 1인당 20불로 다른 곳보다 비싼 편(결국 2명분으로 35불, 즉 2,750루피에 하긴 했지만)이지만 일 처리가 깔끔하다. 포함 내역은 ;


1. 출발일, 숙소에서 Tourist Bus 정류장까지의 안내인
2. 카트만두에서 래프팅 출발 지점까지 Tourist Bus 요금 (일반 현지 버스보다 훨씬 편하다)
3. 장비 일체를 비롯, 가이드와 안전 요원까지 포함된 트리슐리 강 래프팅(24 Km)
4. 점심 식사
5. 래프팅 종료 지점에서 포카라(Pokhara) 혹은 카트만두까지의 현지 버스 요금
이다.

더욱 저렴한 가격으로 래프팅을 즐기고 싶으면, Jyatha Road의 한국 식당 ‘쉼터’ 사장님과 상의해 볼 것

* 참고로 카트만두의 많은 여행사들이 ‘White River Rafting’을 내걸고 있으나 트리슐리 강은 흙갈색으로 White River가 아니다. 만약 트래킹과 하얀 색을 띠는 강에서의 래프팅을 동시에 즐기고 싶다면 포카라 근처에서 모두 할 수 있으며 예약은 카트만두나 포카라의 어느 여행사에서도 가능하다

교통 : 카트만두 - 래프팅 출발 지점 / Tourist bus / 3시간 30분 (Tourist bus답게 카트만두 시내 호텔을 돌아다니는데 1시간, 중간에 휴게소에서 식사를 하라며 30분 이상을 소비) / 카트만두 타멜을 나와 왕궁쪽으로 걷다 처음 만나는 사거리에서 길 건너편 오른쪽으로 Kantipath를 따라 내려갈 것. 다음 사거리 못 미처 포카라 Tourist Bus Stop이 있는데 오전 일찍 차들이 출발한다고 한다
       래프팅 종료 지점 - 포카라 / Local bus / 3시간 30분 / 트리슐리 래프팅은 카트만두에서 포카라 가는 길 중간 즈음에서 시작하므로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를 갈 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종료 지점은 포카라로 빠지는 삼거리를 더 지나 치트완으로 가는 길에 위치해 있다)

숙박 : Hotel Xenial Inn / Lake side의 입구 사거리에서 Dam side쪽으로 main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길 중간에 커다란 나무들이 나온다. 첫번째 커다란 나무 왼편으로 나있는 골목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카트만두 타멜의 ‘김치하우스’에서 소개 시켜주는 ‘Hotel Virgin Peak (Tel 00977-61-21565)’가 먼저 왼편으로 나타나고 더 안쪽 오른편으로 Xenial Inn(khimxenialinn@yahoo.com)이 위치 / 천장의 fan과 24시간 온수 샤워 가능한 욕실, 발코니가 딸린 더블룸이 200루피 / 포카라 거의 다 와서 우리에게 접근한 호객꾼을 따라온지라 포카라 Bus Stand에서 Lake side까지 오는 택시비는 무료(Lake side까지 보통은 100루피라는데 요즘은 비수기라서인지 덮어써도 70루피 정도면 OK)

* 카트만두에서 Tourist Bus를 타고 포카라까지 오면 Dam side에서 내리게 된다(New Tourist Bus Stop). 한국인들은 보통 Dam side의 인드라 게스트하우스에서 많이 묵는다는데, 굳이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진 Lake side를 두고 Dam side에 묵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포카라가 카트만두보다 물가가 비싼 편이라고 들었기에 같은 가격에 더 좋은 방을 얻은 것으로 우리는 만족스러웠으나 물론 마음만 먹으면 더 저렴하게도 묵을 수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