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탄중국을 여행하면서 오빠 어깨 너머로 이문열씨의 ‘삼국지’와 김진철씨의 ‘거꾸로 읽는 삼국지’를 다시 읽었다. 한 권짜리 문고판으로, 혹은 여러 권의 장편으로, 심지어 만화로도 몇 번이나 읽었던 삼국지이지만 읽을 때마다 흥미진진하다는 데에는 삼국지를 두 번 이상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동의하시리라. 게다가 이번에 읽은 두 편은 유비를 중심으로 서술해 온 관점에서 벗어나 있기에 참신한 맛이 있어 즐거웠다. 촉나라에 중심을 두고 읽다 보면 유비가 죽고 난 뒤 대를 잇는 유선이 등장하는 시점에서부터 항상 안타까웠는데 적어도 이번에는 그러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모두들 이와 비슷한 경험을 국사 시간에 한 번쯤 해 보지 않았을까? 바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등장하는 시점에서 말이다. 아직도 국사책 한 편에 자리했던 광개토대왕 당시의 ‘고구려의 전성기’ 지도가 생각난다. 그 드넓은 만주 땅이라니. 광개토대왕은 즉위 초부터 백제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신라로 쳐들어온 왜군을 몰아냈고, 요동 지방을 차지하고 있던 후연과도 전투를 벌여 고조선의 옛 땅을 탈환했으며, 거란까지도 정벌한 바 있으니 모르긴 해도 아마 그 사이에는 중국판 삼국지를 능가하는 엄청난 이야깃거리가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676년, 결국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대목에 이르러 안타까움에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으니… 이런 감정을 느꼈던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듯 싶다. 물론 삼국 통일은 문화나 언어면에서 이질감이 있었던 우리 민족이 하나의 공동체로 다시 태어나는 역사적인 사건이므로 한국사에서 차지하는 의의가 매우 크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어릴 적부터 ‘땅 따먹기’를 하면서 자라온 나에게 ‘고구려의 전성기’ 지도와 ‘신라의 전성기’ 지도 사이에는 확연한, 결코 무시하지 못 할 크기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여하간 네팔의 역사에도 삼국이 존재했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카트만두 이외에 ‘파탄’과 ‘박타푸르’가 그 나머지 도시 국가의 이름이다. 마찬가지로 이 세 도시끼리도 서로 경쟁 관계에 있었음을 굳이 역사책을 따로 펼쳐 들지 않아도, 파탄의 옛 왕궁 터에 도착하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느낌의 수많은 사원들이 도시 곳곳에 산재해 있고, 그 사원의 지붕이나 기둥마다 아름다운 조각들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이 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저마다의 감탄사를 내뱉으며 여기 저기 사진을 찍어대지만, 울타리 없는 커다란 박물관 같은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에게서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라는 듯 파탄더 이상의 표정을 읽어낼 수가 없다. 나도 경주나 부여, 혹은 공주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경주의 그 아름다운 곡선이 아무렇지도 않고, 낙화암을 동네 뒷산 드나들 듯 오르고, 무녕왕릉 역시 아무 감흥 없이 지나쳐 다니며 살았을까?

 

카트만두와 불과 수 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면서도 훨씬 조용하여 네팔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파탄. 옛 영화는 역사 속에 묻힌 채 지금은 비록 카트만두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지만, 자손들은 아름다운 그 자리에서 오늘도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Tip


관광 : Patan Durbar Square / Rani Pokhari 남측 건너편에서 미니 Tempo(1인당 5루피) / 역시나 200루피에 달하는 입장권을 판매하는데 대로변쪽으로만 입장하지 않으면(광장으로 들어오는 샛길이 여러 군데 있다)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 관람이 끝난 후 광장 앞을 지나가다가 우리가 입장을 할 것으로 짐작한 매표소 아저씨에게 걸렸는데 “광장 안 들어갈 거다.”하니까 “파탄 시내 자체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200루피를 내야 한다.”하더라. “그럼 지금 그냥 카트만두로 돌아 가겠다.”하고 뒤 돌아섰는데 나중에 말을 들어보니 입장료의 상당 부분이 국가가 아닌 개인 주머니로 들어간다고…파탄
      Jawalakhel Central Zoo / Rani Pokhari 남측 건너편에서 Jawalakhel행 Tempo를 찾아 타면 된다(1인당 5루피) / 외국인 입장료 100루피 / 카메라 반입료 10루피를 따로 받는다 / 특별하게 볼 만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동물원 분위기가 난다. 아마도 코끼리가 사람을 태우고 동물원 내부를 돌아다녀서 그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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