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은 세계 유일의 힌두 왕국이다. 힌두교의 ‘힌두’가 인더스 강의 산스크리트어인 ‘신두’(Sindhu : '큰 강'이라는 뜻)의 페르시아 발음으로 인도를 가리키는 말이라 하니 문자 그대로는 ‘인도의 종교’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인도에서 발생된 종교가 어디 하나 둘인가? ^^ 그래서 보통 우리에게 통용되는 힌두교란 특정한 교조나 교리가 없고 중앙 집권적 권위나 위계 조직도 없지만, 원시적인 신앙의 형태에서부터 고도로 발달된 사고와 논리에 의지한 인식 체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형태의 신앙을 포괄하는 종교를 일컫는데, 그래서 그런지 오늘 내가 접한 힌두교의 한 단면 역시 다른 종교에 대해 무척이나 관용적이었다.


사전 지식이 전혀 없이 우리가 아침 일찍 찾아간 곳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 유산 중 하나라는 스와얌부나트였다. 사실 발음조차 입에 붙이기가 힘들어서 다른 외국인들이 부르는 대로 우리도 “where is the MONKEY TEMPLE?”을 외쳐가며 미로처럼 엉킨 카트만두 시내를 빠져 나가야 했다.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변변한 포장도로 하나 없었던 네팔이라더니 시내 한 복판이건만 아직도 중세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온 몸을 칭칭 두르는 ‘사리’를 입은 여성이 신에게 공양할 꽃이니 음식물을 공손히 받쳐들고 아침 일찍부터 시내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어떻게 보면 널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신상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고, 그들이 지나다니는 좁은 골목 골목마다 문과 창문에 무늬를 새겨 장식한 높은 벽돌집들이 오랜 세월을 견뎌내 온 모습으로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언덕 위로 살짝 모습을 드러내는 스와얌부나트.


카트만두지금까지 지나쳐온 여느 골목과 다름 없이 부지런히 사원을 향해, 그들의 신을 향해 걸어 올라가는 수많은 네팔인들과 발걸음을 함께 하면서 나는 당연히 이곳이 힌두 사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 네팔이 세계 유일의 힌두 왕국이라지 않은가? 하지만 헉헉거리며 사원을 향해 300개가 넘는 계단을 오르는 나의 귀에 어디에선가 한 번쯤 들어본 듯한, 귀에 익은 음악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왜 사람들이 이 곳을 ‘monkey temple’이라고 부르는지를 온 몸으로 느끼며 내 주위를 뛰어다니는 원숭이들을 이리저리 피하느라 집중이 어렵긴 하지만, 분명 이런 가락을, 이런 악기의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마지막 계단을 오르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놀랍게도 티벳인들을 발견한다. 그것도 자줏빛 가사를 걸친 라마승들이 그들의 사원에서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카트만두그리고 나서야 알았다. 이 곳이 바로 네팔 불교에 있어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부처님이 태어난 룸비니 동산 다음으로 신성시 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아니, 그렇다면 우리와 함께 이 곳을 찾은 네팔인들이 모두 불교도였단 말인가? 물론 아니다. 분명 네팔에는 티벳계 몽골리안이 상당수 살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힌두교를 믿고 있는 인도계 아리아인이 네팔인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이 곳이 불교 사원으로 세워졌을지언정, 동시에 힌두 신상이 버젓이 세워져 있는 힌두 사원이기도 한 것이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지금은 분지인 카트만두가 예전에는 커다란 호수였는데 문수보살(?!?!)이 나타나 호수의 모든 물을 빼내어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 물이 빠지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수면 위로 빛을 내뿜으며 등장한 곳이 바로 이 장소였다나? 이 곳에서는 다분히 불교적인 분위기의 이런 전설에 걸맞는 화려한 스투파(사리를 봉안하거나 절의 장엄함을 나타내기 위해 쌓은 탑)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막 티벳 순회 공연을 마치고 넘어오는 길이라서인지 티벳에서 보던 스투파와 다른 점부터 눈에 보인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마치 네팔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부처의 눈. 빨강 노랑 파랑 하양 까망으로 화려하게 채색되어 스투파 상단부의 사방에 그려진 부처의 눈 세 개가 바로 그것인데, 기묘한 그 형상 자체로는 범접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느껴지다가도 원색의 그 배합에는 천진함 마저 배어난다. 

 

스투파 둘레로는 불교도들이 돌려대는 마니차가 있고, 또 그 주위로는 힌두교도들이 바른 붉은 물감과 작은 꽃잎으로 원 형상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힌두 신상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스와얌부나트. 보너스로 카트만두 분지의 멋진 풍경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불교 사원에 서서 나는 약간의 부러움마저 느낀다. 우리나라처럼 국토의 대부분이 산으로,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들로 이루어진 나라, 그렇기에 산너머 마을과는 말조차 안 통하면서도 서로가 가진 종교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관용을 베풀며 사는 사람들이 가진 그 마음이 부러워진다. 하지만 뭐,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각 종교끼리, 혹은 한 종교 내에서의 비방과 마찰이 사라질 날이 오겠지?

 

다음으로 우리가 찾아갈 나라,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분쟁을 걱정하며…

 

Tip

관광 : Swayambhunath 사원 / 타멜 거리에서 서쪽으로 2Km / 누군가 동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입장료가 무료라고 했는데 고지에 막 올라서려는 순간 나를 부르는 매정한 매표소 아저씨, 1인당 50루피(생긴지 얼마 안 된 매표소인 듯)
숙박 : 샹그리라 게스트하우스(Shangri-la G.H) / 타멜의 입구 격인 Jyatha Rd에서도 꼬불꼬불 안쪽으로 들어가 위치해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Hotel White Lotus의 입구이자 Imperial G.H 맞은편에 위치 / 이 집에서 제일 전망이 좋은 방은 1박에 350루피인 305호인데 우리는 장기 투숙하겠다고 하여 1박에 300루피로 체결 / 내부에 24시간 온수가 나오는 샤워기까지 딸린 욕실 소유(1박에 200루피 짜리 방에도 욕실이 딸려 있기는 마찬가지) / Tel : 250188 / E-mail : ganesh_gana@hotmail.com

* 현재 네팔은 엄청난(?) 비수기로 널려있는 숙소 모든 곳에서 할인이 가능하다. 다만 네팔의 공해 문제가 심각하므로 숙소를 고를 때 수도꼭지에서 어떤 물이 나오는지를 꼭 확인해 볼 것. 또한 비슷한 상호를 쓰는 곳이 워낙 많으므로 특정 장소를 찾고자 할 때에는 정확한 상호명을 알면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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