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맞다면, 인체에 있는 모든 뼈의 숫자는 자그마치 206개에 이른다. 뼈는 다시 근육으로, 그리고 피부 등으로 덮여 신체를 이루는데, 물론 이런 골격계와 근육계만이 신체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이외에도 신경계, 소화계, 순환계, 호흡계 등이 자기네들끼리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 인간이 살아갈 수 있도록 제 할 일을 다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내일 소풍 가는 나를 위해 김밥을 싸고 계시는 엄마의 손놀림을 한 번 상상해보자. 엄마는 김밥 재료들을 뜯고, 씻고, 잡고, 칼질을 하고, 볶고, 양념하고, 심혈을 기울여 돌돌 말고, 자른다. 생각 없이 보기에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을 신경계나 미세한 동작을 잘도 해내는 골격계와 근육계, 그리고 그런 모습을 쳐다보고만 있는 것으로 꼬르륵~ 소리를 내는 나의 소화계라니…

 

하지만 이런 모든 일은 우리가 살아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신들을 모시고 있는 네팔의 옛 왕궁 터인 Durbar 광장에서 심지어 살아있는 어린 여신 Kumari까지 보고 다음으로 우리가 찾아간 곳은 Pashupatinath. 힌두교도가 아니면 못 들어가는, 네팔의 힌두교도들에게는 최고 성지로 손꼽히는 힌두 사원이 있는 곳이지만 우리 같은 힌두교도가 아닌 관광객들이 이 곳을 찾는 이유는 바로 이 곳에서 죽은 시신을 화장시키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갠지스 강이 흐르는 인도의 바라나시가 그렇듯이 내 앞을 흐르고 있는 Bagmati 역시 네팔에서 성스럽게 여겨지는 강인 탓에, 돈이 많은 힌두교도들 중에는 죽을 날이 가까워지면 몇 달 전부터 여기 ‘죽음을 기다리는 집’에 머물며 죽음이 다가오는 그 순간을 경건하게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마침 우리가 이 곳을 찾았을 때에도 사원 아래로 흐르는 강을 따라 만들어진 몇 개의 단에서 마악 시신을 태우기 위해 장작을 쌓아 올리던 참이었기에 반대편 강둑으로 올라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곧 이어 놓여진 시신을 온통 휘감는 화염…

 

카트만두검은 연기가 끊임없이 피어 오르는 한 동안, 오빠와 나는 말을 잃고 그 장례 의식을 바라보았다. 오빠야 업이 업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사체를 접하는 경우가 많았을 테고, 게다가 이미 방문한 적이 있는 인도에서도 이런 광경을 여러 번 보았으며 이 곳 역시 처음이 아니란다. 나 또한 외과 중환자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지라 오빠만큼은 아니더라도 사체에 대하여 무섭다거나 두렵다거나 하는 감정이 사라진 지 오래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눈 앞에서 하얀 천에 감겨 윤곽을 그대로 드러낸, 얼마 전에는 우리와 함께 공기를 나눠 마셨을 한 사람이 한 줌의 재로 사라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심히 착잡해지는 마음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우스꽝스럽게도 우리의 진지함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한 마리의 원숭이였다(이 사원에도 원숭이가 무척이나 많다. 게다가 겁도 없어서 내게로 뛰어올라 손에 쥐고 있던 쌍안경을 빼앗으려고도 했다. 하나의 쌍안경을 사이에 두고 인간과 원숭이의 줄다리기라니…^^;). 얼마간 얼굴에 힘을 주고 한 사람의 육신이 사라지는 광경을 말 없이 지켜보던 우리 앞으로 갑자기 원숭이 한 마리가 쓰~윽 지나가는 바람에 놀란 나로 인해 우리의 침묵이 깨어졌다. 어쩌면 우리와 같은 조상을 가졌을 원숭이에게 매일같이 일어나는 저 엄중한 의식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듯이… 원숭이로 인해 조금은 풀린 긴장에 고개를 좌우로 돌리다가 언뜻 화염 뒤로 나란히 앉아있는 유가족에 눈이 멈췄다. 믿기지 않게도 어느 한 사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서로 농담이라도 주고 받는지 말을 건네며 방글방글 웃고 있기까지 하다. 흔히 장례식장에서 보아오던, 울며 곡을 하고, 오열하다 지쳐 쓰러지거나 실신하고 마는 우리 유가족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인 것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사랑하는 가족의 일원이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난다는 데에 슬퍼하기 마련이다. 그들이라고 과연 슬프지 않을까? 성스러운 강에서 화장을 하여 망자가 해탈에 이르도록 하였기에? 앞으로 그들의 삶을 더 깊게 접하고 느낄 기회가 많겠지만 당장에는 신앙의 위대한 힘이라고는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일반적으로 종교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려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카스트 제도라고 알려져 있는 계급 사회가 아직도 버젓이 힌두 국가에 존재하고 있다. 똑같이 발가벗고 태어나는 사람일진대 누구는 처음부터 상류층으로 태어나고 누구는 불가촉천민으로 규정 지어져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심히 불만스러울 만도 하다. 이 Pashupatinath 사원 상류 쪽에 따로 위치한 화장터가 상류층을 위해 마련된 것이라니 이 땅에서는 태어나 살아가는 것 뿐만 아니라 죽음에도 위아래 차별을 두나 보다. 하지만 오늘 저렇게 보기 좋은 모습으로 망자를 보내는 하류 쪽의 유가족들만큼은, 지금 그들이 보내고 있는 망자가 갈 더 좋은 곳 만큼, 차별에서 해탈한 평등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Tip


관광 : Kathmandu Durbar Square / 타멜 거리 남쪽으로 즐겁게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위치 / 일주일간 유효한 입장권이 200루피라는데 근처 Freak Street를 구경하다가 그만 실수로(?) 무료 입장을 하고 말았다 / 광장으로 들어오는 모든 입구에서 검표를 하니 아마도 우리 같은 행운을 다시 누리기 힘들지도! 하지만 늦은 오후에는 검표소가 문을 닫는다
Pashupatinath 사원 / 타멜에서 남동쪽으로 걷다 보면 나오는 Rani Pokhari 남측면 바로 앞에서 미니 Tempo(1인당 6루피) / 차장에게 목적지를 이야기해두면 친절하게 알려준다 / 입장권 75루피
카트만두Bouddhanath / Pashupatinath 사원 내에서 Gorakhnath 사원쪽으로 올라 포장된 길을 따라 왼쪽으로 언덕을 넘어 내려가면 작은 물줄기가 나오는데, 다리로 이 물줄기를 건너 동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로 왼쪽 건너편으로 Bouddhanath로 들어갈 수 있는 찻길과 마주하게 된다 / 입장권 50루피 / Bouddhanath 건너편에서 다시 Rani Pokhari로 오는 미니 Tempo를 탈 수 있는데 1인당 9루피 / 오전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몰린다고 한다. 오후에 찾는 것이 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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