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첸오빠는 양띠, 나는 소띠다. 티벳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해마다 그 해에 해당하는 12 종류의 동물을 가지고 있는데 올해가 바로 12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카일라스의 상징인 말의 해인데다가 얼마 전 석가모니가 열반에 이른 것을 기념하는 사가 다와(Saga Dawa) 축제가 겹쳐 이렇게도 바글바글 순례자가 많이 찾아온 것이란다(심지어 어떻게들 아셨는지 한국에서부터 이 날짜에 맞추어 여기까지 찾아오신 산악인 분들을 만나기도 했다). 하긴 꼭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불교와 힌두교, 인도의 자이나교, 티벳 본교 모두에 있어 카일라스는 공통으로 숭배되는 대상이 된다. 이 산을 한 번 돌기만 하여도 그 동안 지은 죄가 사해진다는 믿음(무려 108번을 도는 신도들도 많다)을 가지고 있는 불교도들에게 이 산은 석가모니의 분노의 화신인 ‘삼바라’가 사는 곳이라 하여 숭배되며, 카일라스가 신들이 산다는 메루산일 것으로 믿는 힌두교들에게는 이 곳이 창조신 ‘쉬바’의 영토이기에 또한 숭배된다. 자이나교 역시 그들의 성인 중 첫번째 인물이 해탈한 곳이라 하여 숭배하고, 본교도들도 본교의 창시자가 하늘에서 하강한 장소가 바로 이 곳, 카일라스라 하여 숭배하니 사시사철 순례자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미 중국 호도협에서 아무리 가벼운 짐일지라도 험한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근만근이 된다는 경험이 있는 터, 게다가 이 곳은 기본이 해발 4,500m를 넘어서는 곳이니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라 코라 동안 우리 짐을 져 줄 현지인을 출발 전에 한 명 고용하였다. 카일라스날씨가 흐린 탓에 물방울이 얼굴에 떨어지는가 싶더니 금새 비로, 눈으로, 우박으로 변해가며 내리기 시작했지만 워낙 습기에 굶주려 있던 우리의 출발에 영향을 주진 못했다. Grace는 춥고 냄새 나는 천막 안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즐거워 했고(밤에 어찌나 추운지 오빠는 침낭 안에 들어가 있어도 이마가 시려와 잠을 못 자겠다고 하더라), 라마교도인 Yifat의 표정에서도 한껏 부풀어 있는 기대감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침 9시, 드디어 시계 방향으로 2박 3일의 카일라스 코라 시작!

 

역시나 여러 벌의 카타(티벳에서 상대방을 존중하며 행운을 빌어줄 때 목에 걸어주는 흰색 천)로 완벽한 코라 준비를 갖춘 Yifat이 일찌감치 선두 자리로 나섰다. 며칠간 내리 차만 타서인지 심한 기복이 없는 길인데도 숨이 금방금방 가빠온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해발 4,700m에 달하는 작은(?) 고개(워낙 우리가 높은 곳에서부터 걷기 시작하는지라)를 넘어서니 양 옆으로 늘어 선 산들 사이로 물이 흐르며 평탄한 길이 나타난다. 평탄하다고는 하지만 물론 자갈 혹은 흙으로 뒤덮인 길인데 도대체 언제 출발했는지 오체투지를 하면서 코라를 하고 있는 티벳인들이 종종 보인다. 걷기도 어려운 길에서 절을 하면서 가다니… 정말이지 그들의 끝없는 믿음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 나오는 것일까? 태어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아이를 업은 채, 당연히 산후조리도 제대로 마치지 않았을 아주머니가 코라를 하기도 하고,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걷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노인분들도 중얼중얼 진언을 읊조리며 코라를 하고 있다.

 

카일라스출발한 지 3시간쯤 지나자 우리 팀의 판도가 뒤바뀐다. 앞서나가던 Yifat이 하얗게 질리면서 우리 뒤로 처지기 시작하는데, 뒤를 돌아다보니 이미 Grace와 Mark는 우리들을 위한 세 명의 짐꾼들과 함께 한참을 뒤에서 헤매고 있다. 그래도 고원에서 장기간 굴러먹은 효험이 있군, 뿌듯해 하면서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와” 인사까지 하고는 Yifat을 지나친다. 그리고 30분 정도 더 걸었나? 예상하지도 않았던 이상 조짐이 오빠에게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오빠의 컨디션이 현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걱정스러워 하는 내게는 괜찮다고 하지만 이내 못 견디겠다며 어서 숙소에 가서 누워 쉬고 싶다고 한다. 길은 그다지 험한 편이 아니지만 워낙 지대가 높은 탓에 일상적인 호흡만으로도 수분 손실이 많이 일어나는지라 오빠의 입술이 이미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 것이 눈에 들어오는데, 수분 보충을 위해 준비해 둔 음료니 과일은 한참 뒤에서 우리를 따라오고 있는지라 당장에 손 쓸 방도가 없다.
“조금만 참아 봐. 좀 쉬다가 물 오면 물 먹고 기운 내서 다시 출발 하자.”
“아니야, 그냥 빨리 숙소로 가서 누울래.” 

 

이제는 다리가 아파도, 목이 말라도 무조건 그냥 가는 수 밖에 없다. 간간이 앞서 가던 사람들을 앞질러가며 오늘 우리가 묵어야 할 숙소를 찾아 뒤도 안 돌아보고 전진에 전진만을 거듭한다. 한동안을 이렇게 가다 보니, 몸이 아픈 오빠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덩달아 쉬지 못 하는 내가 아파오는 다리 때문에 죽을 지경이다. 오빠가 저렇게 힘들어 하니 까짓 다리 아프다고 징징대지도 못하겠고… 다리가 나를 지탱하여 걷는 게 아니라 내 상체가 천근만근 다리를 질질 끌고 겨우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느낌이다. 게다가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하는데 수중에 먹을 것도 없거니와 이 와중에 먹고 가자 했다가는 칼이라도 맞을 분위기다. 날은 왜 또 그리 추운지, 그나마 햇볕이 들어오는 지역은 참을 만한데, 산 바로 아래 난 길이라거나 난데없이 구름이 몰려와 해라도 가리면 세차게 부는 바람에 금방 손이며 얼굴이 시려 온다.

 

이 고개만 돌면 나올 거야, 이 고개만 넘으면 나올 거야… 서로 몇 번씩 이런 말을 주고 받은 끝에 결국 건너편 산 중턱에 위치한 사원 하나를 발견했을 때에는 정말 기뻤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좀 더 가다 보면 산 아래 쪽으로 다리가 하나 나오는데 그 다리를 건너가면 된다고 하는 것 같다. 한 걸음도 더 옮기기 힘든 우리에게 좀 더 가다 나오는 다리라니, 우리는 그냥 현 지점에서 산 아래로 곧장 내려가 그냥 물을 건너보자는데 합의를 본다. 구르다시피 내려가니 당연 물줄기는 높은 데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세고 깊고 넓다. 그렇다고 다시 올라가 다리를 찾아볼 의향은 전혀 생기질 않는다. 세찬 물줄기를 앞에 두고 고지가 바로 저긴데, 하면서 근처를 오르락 내리락 하던 우리에게 그나마 징검다리로 이용할 만한 바위들이 있는 지점이 보인다. 다가서보니 역시나 다리가 짧은 나에게는 심히 무리라는 생각이 드는 간격인데, 어디에 그런 기운을 숨겨 두었었는지 다 죽어가던 오빠가 어느 새 뛰고 있다. 그리곤 어라, 눈 깜짝할 사이에 건너버렸네… 오빠가 건너는 양을 보자니 더욱 자신이 없어진다.
“먼저 올라가서 쉬고 있어. 나는 그냥 다리로 가서 건널게.”

하지만 오빠가 보기 드문 신랑다운(?) 면모를 보이며 잡아줄 테니 건너보라고 계속 꼬셔 대는 통에 결국 젖거나 빠질 각오를 단단히 한 채 첫 바위에 올라선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드디어 오빠가 서 있는 건너편까지 마지막 한 칸.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어 힘차게 다리를 벌려 뛰었으나 내딛는 발 아래로 느껴지는 땅의 촉감이 없다. 아, 이렇게 떨어지는구나, 하는 순간 내 팔을 낚아채는 오빠. 헤헤… 살았다.

 

카일라스마지막까지 휘청대는 나를 잡느라 온 힘을 소진한 오빠는 카일라스 산의 북면이 멋지게 마주 보이는 사원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뻗는다. 나는 그래도 침대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침대는커녕 침실조차 따로 없는 사원이다. 신도들이 참배하는 법당의 안쪽 한 구석이 그대로 침실로 쓰여지는데 법당이라고 해 봐야 아주 작아서 아무리 구석을 차지한다고 하여도 신도들이 가운데를 향해 절을 하고 있으면 절로 머쓱해질 만한 위치이다. 침대가 없으니 바닥에 이불을 깔아 오빠를 누일 수 밖에 없는데 바닥이 매우 차갑고 딱딱하건만 금새 오빠는 곯아떨어지고 만다. 나? 나는 계속해서 우리를 향해(?) 절을 올리는 신도들도 부담스럽거니와 배가 너무 고파서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다. 우리를 맞아준 승려 한 분께 이 사원 내 먹을 것이 있느냐 여쭤보자 물하고 짬파만 있단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짬파에는 아직 익숙치 않으니 뜨거운 물로만 배를 채울 수 밖에…

 

우리가 도착하고도 3시간이나 지난 오후 6시. Yifat이 그 문제의 다리를 건너오는 것이 쌍안경에 포착되었다. 한참을 쉬다 걷다를 반복하던 Yifat도 어느 순간 사원 지붕에서 본인을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는지 손을 흔든다. 사원에 도착한 Yifat의 몰골은 말이 아니다. 입술은 이미 다 갈라져 있고, 눈이 다 퀭하다. 말을 들어보니 오는 길에 모두 세 번을 토했는데 마지막 한 번은 먹은 것이 없는데도 분홍 빛깔의 액체를 토했다며 몹시 괴로워 한다. 환자가 환자를 보는 격으로, 누워있던 오빠가 Yifat의 좋은 상담역이 되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보더니 혈액을 토한 것 같지는 않다며 일단 두고 보자고 한다. 거의 아사 상태에 빠져있던 나를 위해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는 상태의 Yifat이 본인이 가지고 있던 몇 개의 과자 전부를 주고는 아무렇게나 깐 이불에 역시 아무렇게나 쓰러져 마찬가지로 금새 코를 골아댄다. 

 

해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는 저녁 8시. 다른 순례자들이 하나 둘씩 잠을 청하고자 찾아 드는데 Grace와 Marc를 비롯, 우리의 짐을 지고 있는 아저씨들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어 우리 애를 태운다. Yifat이 그들을 마지막 보았을 때 Marc가 호흡 곤란으로 무척이나 힘들어 했다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분명 도움이 필요할 그들을 찾으러 나가고 싶지만 오빠 역시 상태가 호전되지 않을 뿐더러 내 몸도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그저 사원 지붕에나 올라 쌍안경으로 동태만 살필 뿐이다. 그리고 9시가 다 되어서야 우리와 Yifat의 짐을 지고 있던 아저씨 두 분만이 사원에 도착한다. Grace와 Marc는 결국 이 사원까지 못 오고 성수기용으로 급조된 근처 다른 숙소에 들었다는 시늉이다. 어쨌든 그들도 근처까지 무사히 왔으니 정말 다행이다. 입맛을 완전히 잃은 오빠를 두고 나 혼자 늦은 점심 겸 저녁을 허겁지겁 먹는다.  

 

한밤중, 오늘의 마지막으로 보이는 몇 명의 외국인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고 나자 승려는 아래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티벳인들을 법당으로 불러들인다. 서너 평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법당에 20명은 될 듯한 사람들이 몰려들어 각기 잘 자리를 잡느라 부산스럽다. 완전히 밀폐된 방은 아니지만 제단 위에는 공양 올린 버터 램프가 끊이지 않고 타고 있고 그 모든 사람들과 지그재그로 엇갈려 포개지다시피 누워 함께 숨을 쉬자니, 굳이 이 곳이 해발 5,000m에 달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어도 절로 숨이 차 오른다. 아, 산소가 그립다. 추워도 좋으니 누군가 창문이라도 열어주었으면… Yifat은 고산병에 도움이 된다는 ‘다이아막스’(이뇨 작용이 있으며 고산지대에 있어 호흡에의 부담감을 줄여준다)를 복용한 탓에 분명 여러 번 화장실에 가야할텐데 벌써부터 밤새 저 인파를 밟지 않고 문까지 왔다 갔다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누우면 숨 차오르는 증세가 심해지는 나는 아예 앉아서 연신 심호흡을 해댄다.    

 

라마승다음 날 아침, 전혀 증상이 호전되지 않은 오빠는 결국 코라를 포기하기에 이르고, Yifat의 무사안녕을 빌어준 후 본교도 마냥 어제 온 길을 되짚어 다르첸으로 돌아선다. 우리 팀 중 가장 컨디션이 좋은 나로서는 잘만하면 오늘 하루 더 코라를 하는 것으로 1박 2일만에 코라를 끝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오늘 해발 5,630m에 달하는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니 여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오빠로서는 엄청난 무리가 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아, 정말 너무 아쉽다, 아쉬워…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이 제대로 떨어지질 않는다.

 

출발 전에는 이보다 더 열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다르첸의 천막이었지만 그래도 이 곳엔 침대라도 있으니 산 중 맨 바닥보다는 훨씬 home, sweet home답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꼼짝달싹하지 못 하는 오빠 시중을 들고 있자니 오빠 말마따나 이게 무슨 꼴인가 싶다. 하지만 어쩌랴, 현재 우리는 단체 여행 중이고 그들이 코라를 마치고 돌아온 후에야, 그것도 며칠을 더 쉬지 않고 달려야만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나타나는 장소에 와 있는 것을… 정말 앞날이 까마득하다.

 

코라의 마지막 날, 예상보다 훨씬 늦은 시각에 Yifat과 Grace, Marc가 나타났다. 어찌나들 죽을 고생을 했는지 우리 얼굴을 보자마자 달려와 껴안으며 그간의 코라 역정에 대해 쉬지 않고 떠들어댄다.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했다던, 평생에 이런 경험은 정말이지 이번 딱 한 번만으로 족하다는 Grace, 둘째 날부터 다이아막스를 먹으며 버텼다는 Marc 모두 정상을 향해 오르면서 넘어야 할 고개가 왜 그리 많았던지 우리처럼 돌아올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단다. 이들의 드라마 역시 오늘 밤, 아니 한참을 내내 상영될 것 같다.

 

Tip

 

관광 : 카일라스 코라 비용 / 일인당 50원 / 꼭대기 부근에서 검표를 한다는데 꼭대기까지 가지 못 한 우리로는 확인불능(이후 환불을 요구했더니 checkpoint가 있는 바르카를 다시 지날 때 코라를 위해 이 곳을 찾은 것이라는 증거로 제출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갈 때 표를 보자는 말은 없었다)
       포터 고용 / 하루 70원(100원에서 75원으로, 다시 70원으로 흥정) / 여러 명이 한꺼번에 코라를 할 계획이라면 야크 한 마리(마찬가지로 70원)를 빌리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지금은 성수기라 근처 마을에서 야크를 불러들이는데 만 하루가 소요된다고 하는데다가 어차피 야크를 모는데 필요한 소몰이꾼 일당(또한 일당 70원)까지 계산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서 그냥 우리 둘을 위한 포터를 한 명 고용하기로 했다

숙박 : 카일라스 코라 중에 위치한 사원, Diraphuk(첫 날)과 Zuthulpuk(둘째 날)에서 잘 수 있다 / Diraphuk의 경우 이불 한 채당 30원 / 법당 내 바닥에 그냥 이불 깔고 자는 system. 제단에서 밤새 타고 있는 버터 램프가 조명 시설을 대신 한다 / 주로 커다란 바위 뒤를 화장실로 이용한다(큼직한 바위 뒤마다 난리^^;;)

* 외국인들은 보통 2박 3일로 코라를 하지만, 경이롭게도 많은 티벳인들이 하루 만에 코라를 끝내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2박 3일간 순수 걷는 시간이 첫날 6시간, 둘째 날 6시간, 마지막 날 3시간 정도로 총 15시간에 이른다고 소개되어 있으므로 새벽 5시경 코라를 시작하는 티벳인들이 저녁 8시면 다르첸에 다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별로 놀랍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날의 경우, 그래도 비교적 쉬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걸었던 우리만이 소개대로 6시간 소요되었고 Yifat은 9시간, Grace와 Marc는 12시간이 걸렸으니 결코 만만히 봐서는 안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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