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 마른 오빠에 비하면 나는 상당히 쿠션(?)이 좋은 편인데도 엉덩이가 아파서 견디기 힘들 정도로 길이 안 좋다. 하지만 이렇게 4륜 구동 랜드크루저를 탄 우리들은 성산(聖山)을 찾아가는 티벳인 순례자들에 비하면 형편이 아주 좋은 편이다.

 

파르양대부분의 순례자들은 트럭을 타고 움직이는데 물론 짐칸 신세를 져야 한다. 그들이 사는 곳은 당연 카일라스와는 거리가 떨어진 곳일 테니(티벳 서부에는 사람 사는 마을이 매우 적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저런 트럭을 타고 왔는지 모를 일이다. 그저 그들이 트럭 밖으로 매달아놓은 그들의 세간살이(?)로 미루어볼 때 정말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왔나 보다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간혹 물살을 헤치며 강을 건널 때 그들이 강가에서 쉬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식사나 급한 용변을 위해 잠시 정차를 하는 듯 싶다. 당연 식사는 본인들이 직접 준비하여 먹고(그래 봐야 대부분 짬파), 저녁이면 수면을 위해 그들이 직접 커다란 천막을 치는데 간혹 일부는 천막 안의 공간이 부족해서인지 밤에는 기온이 떨어져 무척이나 추운데도 그냥 바깥에서 찬 이슬을 맞으며 잔다. 그들이 이용하는 보온 도구라고는 이미 겹겹이 입고 있는 옷과 둘둘 말아둔, 이미 때가 꼬질꼬질한 담요 한 장이 전부.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버스를 이용한다. 카일라스까지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버스는 없는지, 그 동안 우리가 볼 수 있었던 버스들은 모두 대절 버스였다. 트럭에 비하면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지붕과 창문이 있으니 상황이 훨씬 나아보이지만 마찬가지로 콩나물 시루마냥 빽빽이 들어선 사람들의 행색 하나 하나에서 그들의 고된 생활이 묻어난다(물론 이들보다 더욱 재력이 있는 티벳인들은 우리처럼 4륜 구동 랜드크루저를 빌려 성지 순례를 하기도 하는데 전체 순례자들의 수에 비교해보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나

 

하루에 단 몇 대의 차도 지나다니지 않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이란 그들만큼 우리에게도 역시 반가운 존재이다. 차가 스쳐 지나갈 때마다, 양이나 염소, 야크를 방목하는 유목민들을 만날 때마다, 혹은 그들이 마련해 놓은 작은 천막 앞을 지날 때마다 그들도 우리도 서로 손을 흔들어대기에 정신이 없다. 그런 식으로 한참을 달리던 차가 갑자기 덜컹하면서 뒷바퀴 하나를 진흙탕에 깊게 빠뜨린 것은 늦은 오후, 모두들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괜찮아, 4륜 구동이니까 금방 빼낼 거야.”

장담하는 오빠의 말과는 달리 운전사 아저씨가 이리 저리 조작을 가하고 결국 우리가 내려서 앞뒤로 차를 밀어보고 해도 차는 도무지 꿈쩍할 생각을 안 한다. 주위는 마치 사막과도 같아 차 바퀴를 괼 제대로 된 돌 덩어리 하나 구하기도 힘이 드는데 왜 그리 바람은 센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면 눈을 뜨기는커녕 숨쉬기 조차 여의치 않다. 겨우 모아온 돌들로 바퀴 아래를 고정시키고 다시금 운전사 아저씨가 운전을 해 보지만 헛바퀴만 돌 뿐, 도무지 앞으로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이 차, 4륜 구동 맞아?”

수군거림 끝에 우리끼리 내린 결론은 우리 차가 무늬만 4륜 구동이었지, 사실은 하자가 있는 2륜 구동 차였다는 것. 출발 전 계약서에 차에 이상이 생길 경우에는 라싸의 여행사에서 다시 새 차를 보내주기로 명시해 두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제 아무리 열심히 달려와도 여기까지는 며칠이 걸릴 텐데 이래서는 무용지물이 아닌가! (라싸에는 또 어떻게 현 상황을 알릴 수 있을까?)

 

날이 저물어가는 만큼 걱정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져만 가는데 이 때 저 멀리 지평선에 먼지를 일으키며 나타나는 한 점!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그 점이 순례자들을 가득 실은 트럭이라는 것을 알고 환호성을 지른다. 우리의 애절한(사실은 광란에 가까운^^;) 몸놀림을 알아본 트럭이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서고 이미 우리보다 몇 배는 더 고단함에 절어있을 순례자들이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기꺼이 우르르 내린다. 랜드크루저가 결코 작은 크기가 아닌데도 도움의 손길이 크기에 금방 차체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려지고 ‘칙, 니이, 슘’ - 티벳어로 하나, 둘, 셋 - 구호에 다같이 힘을 모아 차를 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러 사람의 이런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 야속한 우리 차…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굵고 강한 rope로 트럭과 우리 차를 연결, 엄청난 트럭의 힘으로 차를 당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황야를 울리는 환호성과 함께 우리 차가 평지 위에 겨우 올라선다. 정말이지 멀고도 험한 길이 아닐 수 없다.  

 

덧붙임

★ 우리를 구해주고 다시 제 갈 길을 가려던 그 트럭 역시 우리 차가 빠졌던 바로 그 지점에서 똑같이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 모든 승객이 다시 내리고 몇 번 용을 쓰자 무사히 빠져 나오긴 했지만…


★ 이후 한참이 지나 만난 한 독일인 할머니의 말을 들어보면, 그녀가 카일라스에서도 더 서쪽으로 하루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구게 왕국’ 터를 다녀오던 길에 그만 본인이 빌렸던 랜드크루저가 심각하게 망가져 어쩔 수 없이 그 후부터는 더불어 자신의 짐을 싣고 다니던 트럭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능력 있는 할머니라 운전사에 가이드는 기본이고 요리사까지 두 명이나 고용하여 아예 랜드크루저와 트럭, 이렇게 차 두 대로 시작했단다). 게다가 우리를 만났던 날 아침에는 그 트럭마저 연달아 두 개의 타이어가 펑크나는 바람에 더 고생했다는데… 티벳에서 장기간 차를 빌릴 때에는 확인, 또 확인할 것!  

★ 여정의 마지막 날, 운전사 아저씨에게 살짝 물었다. 왜 우리 차는 4륜 구동을 가장한 2륜 구동이냐고… 아저씨 왈, 4륜 구동 맞단다. 하지만 그날, 워낙 심하게 빠졌었기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것. 물길을 여러 번 잘 건넌 것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믿거나 말거나.

 

Tip

교통 : 파르양 - 바르카(출구에 허가서 checkpoint) / 8시간(그나마 강을 건너야 하는 지점에 다리들이 새로 놓여 시간이 많이 단축된 것이란다)
         바르카 - 다르첸 / 1시간

다르첸숙박 : 다르첸에는 두 개의 guesthouse가 있는데 약속이나 한 듯이 도미토리 한 침대당 120원이라는 경이로운 금액을 요구한다. 어쩔 수 없이 대신 잘만한 천막을 찾을 수 밖에 없었는데 둘레로 빙 둘러 6개의 침대를 마련해 둔 이 곳 역시 침대당 35원을 받는다 / 당연 흙 바닥에 충전용 배터리를 이용한 조명 시설 / 슬프게도 근처에 갈 만한 화장실조차 없다(guesthouse 앞의 공동 화장실이 그나마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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