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밤새 뜬 눈으로 밤을 지샌 Grace와 지난 번 사가 입구의 허가서 checkpoint에서 검문에 걸려 그만 라싸로 그 먼 길을 다시 돌아와야 했던 Yifat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사가를 빠져 나갔다. 가이드인 츠링 말로는 티벳의 동부와 서부는 그 지형이 매우 달라 서부가 이렇게 평평한 지대라 하여도 워낙 평균 고도가 높고 건조하여 어떠한 생명체도 살아가기가 어려운 반면, 동부는 물이 흐르는 깊은 계곡이 많아 나무들도 자라고 사람들 역시 많이 모여 산다고 한다. 하긴 이번에 중국에서 예전 티벳의 영토를 잠시나마 여행했을 때를 생각해 보니 정말 이 곳 서부보다는 훨씬 산의 굴곡이 심하게 지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다시금 동부를 가로 질러 라싸로 들어오지 못 한 것이 아쉬워지지만 일단은 지금, 이렇게나 멋진 서부 풍광을 눈에 넣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물론 포장 도로는 진작에 사라진 지 오래이지만 아직까지는 길이 그런대로 나쁘지 않아 운전사 아저씨의 양보로 오빠가 잠시 우리 차를 몰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한국을 떠난 지 약 2개월 만에 잡아보는 핸들이라서인지 오빠 얼굴은 기대 반, 긴장 반으로 뒤섞여 있다. 둘러보는 주위마다 감탄사로 범벅이 되는 이 곳에서 운전을 할 수 있다니, 운전을 못 하는 나로서는 운전을 할 줄 아는 오빠가 심히 부러워져,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을지언정 어느 정도 서부 티벳을 신나게 내달리던 오빠가 다시 내 옆 자리로 돌아오자 나의 이런 질투 섞인 감정을 슬쩍 내 비추어 본다.나


“나만 뒤에 두고 전망 좋은 앞 자리에서 서부 티벳을 누벼 본 기분이 어때?”
“말도 마라, 보는 것보다 길 상태가 훨씬 안 좋아서 경치고 뭐고 바라볼 여유 없이 차가 덜 덜컹거리게 하느라고 정신 없었어.”


아닌 게 아니라 오빠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우리 운전사 아저씨, 가이드가 하루 종일 꾸벅꾸벅 조는 동안 제대로 쉬시지도 못하고 운전만 하셨는데… 그간 고생이 크셨겠다. 

 

오빠점심을 먹기 위해 차를 세운 ‘종바’라는 마을은 마을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작다(우리가 차를 세운 곳은 old 종바로 이 곳에서 30분 가량을 더 달려가면 길과는 좀 떨어져있지만 그래도 제법 커다란 마을인 new 종바가 나타난다). 그 마을에 딱 어울리는 크기의 가게 겸 식당으로 안내되었는데 말이 식당이지, 변변한 식탁 하나 없다. 요리가 되는 메뉴는 오직 두 개, 티벳 전통 국수인 툭바와 중국식 달걀 볶음밥.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는 염소똥으로 준비되는 점심을 기다리는 동안 가이드와 운전사 아저씨는 직접 준비해 온 보릿가루에 버터차를 섞어 손으로 주물러 먹기 좋게 덩어리지어 또 하나의 티벳 전통 음식인 짬파를 만들어 먹는다. 저렇게만 먹어서 부족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 때 하얀 자루에서 떡 하니 꺼내 드는 것이 있으니 바로 말린 양 고기. 바싹 말린 양 고기를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꺼내어 먹을 만한 크기로 쓰윽~ 베내어 짬파와 함께 먹기 시작하는데, 이에 옆 자리에 앉아있던 한 무리의 티벳인들도 질세라 본인들의 자루에서 아직 그 형태가 생생한 말린 양 고기를 꺼내어 도끼로 한 쪽 다리부터 잘라내느라 부산스럽다. 잠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 한 Grace의 눈은 화들짝 놀라움으로 매우 커지고 입은 아예 다물지를 못하는데, 아무리 그들의 식습관일지라도 우리 역시 썩 즐겁지 않은 광경이라는 생각이 든다(여하간 이런 식으로 Vitamin 계열을 제외한 티벳인들의 영양 공급은 그럭저럭 이루어지는 것 같다).

 

종바를 지나 파르양으로 향하는 길은 점점 더 험해진다. 이제는 한동안 제대로 중심을 잡고 앉아있기가 그다지 쉽지 않다. 중국에서는 아무리 깡촌이라 하여도 길을 만들거나 보수하는 민공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는데, 중국의 계산된 무관심인지 아니면 원래 사람 살기 어려운 동네라서인지 이 곳에서는 한참을 달리도록 사람의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하긴 이 동네 길이라는 것이 워낙 따로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드넓은 황야에 그나마 하루에 몇 대 다니는 차들에 의해 생긴 바퀴 자국을 따라 가는 것이 고작이니 날로 조금씩 평평해진다 하더라도 ‘포장도로’라는 것은 어쩌면 아주 요원한 일일 것이다(지난 번 남쵸를 여행하고자 청장공로를 달렸을 때 곳곳에서 중국이 계획하고 있는 꺼얼무-라싸간 철로 공사 현장을 볼 수 있었는데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그 짓은 그만 두고 이 지역에나 신경을 더 썼으면 좋겠다).

 

파르양힘겹게 도착한 파르양 역시 허허벌판에 마련된 작은 마을이다. 이런 곳에서 대체 무얼 하며 무얼 먹고 사는 걸까 궁금하다. 아마도 해마다 카일라스를 찾는 수많은 순례자들로 인해 그나마 마을 부양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 길이 순례자들에게는 분명 성산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가슴 벅찬 길일테지만, 우리는 사실 벌써부터 많이 지치고 있다. 아무리 일몰 풍경이 멋있다 하더라도 문명의 혜택에 푹 젖어 들어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곳 역시 또 하나의 먹고 살기 힘든 동네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어쨌든 드디어 내일이면 카일라스에 도착한다.

 

Tip


교통 : 사가 - Old 종바(점심) / 3시간
         종바 - 파르양 / 4시간


숙박 : 파르양에는 세 개의 숙소가 있다. 입구쪽부터 중국 정부 초대소, 티벳 타쉬 호텔, 티벳 야크 호텔이 바로 그것인데 마찬가지로 야크 호텔에 방이 없어 대신 5개의 침대(?)가 마련되어 있는 주인 가족의 부엌 겸 거실에 침대당 25원을 주고 묵으라는 제안을 받았다. 입구의 중국 정부 초대소의 방은 4인실로 이보다 훨씬 깨끗한데 침대당 40원을 부른다(물론 30원으로 깎아 이 곳에서 잤다) / 당연히 욕실은 없고 문도 지붕도 없는 화장실 역시 공동 사용 / 역시 자가 발전기 사용으로 저녁에 3시간 가량 전기 들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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